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17화 (217/309)

00217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잠시 기다리니, 그 전령이 폐하의 천막을 나서서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흠칫 놀라고는, 말했다.

“모스 백작님!”

“네, 접니다만.”

“사령관님의 전언입니다! 지금 바로 폐하를 모시고 지휘소로 오시랍니다!”

무슨 일일까. 저렇게 급하게 달려올 정도라면... 뭐, 이 사람에게 물어봐야 의미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폐하의 천막 앞으로 갔다.

“폐하.”

“나간다.”

문 앞에서 기다리자 폐하가 곧 천막 문을 열고 나왔다. 몇 시간 사이에 그 얼굴이 팍 수척해진 느낌이었다.

“폐하...”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건 누구와 나눠질 수 없는 짐 아니냐.”

폐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가운데, 주위의 모두가 폐하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주변을 가로질러 폐하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폐하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선황 폐하보다 못하다는 자괴감? 기어코 자신들을 배신한 뫼르말 백작가에 대한 분노? 반란의 정황이 있는, 니아트강 동편의 절반을 지배하는 중원의 강자 융파트 공작가에 대한 두려움?

지금 이 순간, 폐하는 정말 고독해 보였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누가 나눠질 수도 없는 고독. 갑자기 나는, 선황 폐하에게 에아임 형과 함께 불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부럽냐’고 물었던 선황 폐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무슨 깡이었을까... 황제라는 거, 엄청 외로운 거였구나.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경비병의 그 소리를 기다리지 않고 황제 폐하는 쑥 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휘소 안의 분위기는... 묘했다. ㄷ자 모양의 한가운데, 대개는 작전지역 지도나 부대 배치상황 등이 표시되어 있던 자리가 깨끗이 치워지고, 지휘관 회의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ㄷ자의 입구 부분에,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취조하는 분위기였다.

폐하가 들어서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가 자연스럽게 상석에, 린베크 아버님 옆자리에 앉자, 모두가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폐하가 그리 묻자, 린베크 아버님이 대답했다.

“폐하. 반란군이 보낸 사절입니다.”

! 그렇구나... 하긴, 오늘쯤 올 거라고 예상했던 거니까... 폐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를 향해 말했다.

‘띠링!’

응?

<황제의 카리스마가 발동합니다. 카리스마의 수치는 88입니다.>

<수치 비교... 당신의 냉철 94와 의지력 101이 있어 당신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황제의 철혈(鐵血)이 발동합니다. 철혈의 수치는 85입니다.>

<수치 비교... 당신의 냉철 94와 의지력 101이 있어 당신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황제의 분석 기술이 발동합니다. 분석은 현재 Lv. 1입니다.>

남이 기술을 발동한다는 걸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까의 그 혼자 있는 시간에, 폐하는 어떤 종류의 각성을 한 것일까? 철혈이라... 혈관 속에 피 대신 쇳물이라도 흐른다는 건가. 엄청 차가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적의 사신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에, 나와 폐하의 관계는 예전같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냐.”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반란군의 사신은, 미소지으면서 폐하를 보았다.

“님크 기사단의 제1 기병대장, 고즈스라 하옵니다, 폐하.”

“짐을 아직도 폐하라고 부르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저희는 폐하에게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둘러싼 간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런 핑계는 역대 어느 반란군이나 다 대는 것이니까 관심 없다. 그보다, 네 놈은, 짐을 폐하라고 부르면서, 짐의 허락도 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냐?”

“폐하, 현실을 직시하소서. 어찌 폐하의 군세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적장에게 그런 현실도 모르는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까?”

제1 기병대장이면 기사단에서 권력서열 3~4위는 되는 집단이다. 그 집단의 대표다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를 잘못 고르셨어, 고즈스 경.

“호오, 그렇다면 네놈은 제국의 황제인 짐을 능멸하려는 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내었다고 봐도 되겠군? 한입으로 1분도 안 되어 거짓을 늘어놓는 사신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이냐.”

대번에 진퇴양난에 빠져 쩔쩔매는 고즈스 경. 폐하의 말을 인정하면 자신들은 황가 자체를 타도하려고 드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므로, 명분 자체가 흔들려버리게 된다. 드래곤 르플레스탁에게 인정받은, 저 전설의 위인 치르낙 대왕의 자손들. 그들을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황위를 차지하겠다는 거니까 말이다. 일반 민중들에 앞서서, 저들을 따르는 병사들마저 흔들려버릴 수 있는 말이니까. 그렇다고 무릎을 꿇지 않자니 굴욕을 감수하고 들어가는 것이고.

협상에서 자기 감정이나 입장은 제일 덜 중요하다. 나라면, 무릎을 꿇을 것이다. 만약 저놈이 생각보다 바보라면...

“사절에게 굴욕을 주는 것이 폐하의 방식이었습니까?”

...바보였군.

“그러니까 네 놈은 나의 신하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냐? 말하라! 네놈이 대표하여 온 군세는, 나의 신하인가, 아닌가?”

마른 덩치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폐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것이 카리스마 88의 힘인가. 고즈스가 약간 질린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폐하의 신하들이옵니다.”

“그럼 다시 묻겠다. 네 놈은 나의 신하라고 스스로 주장하면서, 어찌 내 앞에서 내 허락도 없이 그렇게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냐?”

...지금 나는 폐하의 방식에 동의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폐하, 나라면, 내가 폐하의 입장이었다면, 상대를 지금처럼 찍어누르기보다는, 살살 구슬러서 정보를 조금이라도 뱉아내게 만들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나같은 표정이 아닌, 고즈스 같은 표정 – 그러니까 약간은 짓눌린 듯한 표정이었다. 의외로 효과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고즈스가 서서히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이제 좀 볼만하군. 이제 용건을 말하라.”

괜히 자존심 때문에 한 번 반항했다가, ‘폐하의 신하’라는 걸 인정하고 시작해야만 하게 된 고즈스는, 반은 억눌린 듯한, 반은 똥씹은 듯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폐하, 폐하의 신하들인 저희 군은 폐하의 눈과 귀를 가린 간신들을 타도하기 위해 봉기하여...”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 건 경이 아니었던가. 용건만 말하라.”

무릎을 꿇고 있는 고즈스의 머리와 목이 시뻘개지는 게 보였다. 그만큼 굴욕이었을까. 이를 꽉 깨무는 듯, 힘줄까지 서는 것이 보였다. ...대체 저들은 저정도로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을 왜 사절로 보낸 것일까. 이게 ‘언변은 약간 부족하지만 무력이 강한’ 대표적인 무장(武將)인 건가. 고즈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누가 들어도 ‘평정을 찾으려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 화가 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아침, 회전을 청하옵니다.”

폐하는 옆에 앉은 린베크 아버님을 흘깃 보았고, 아버님은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위치는?”

“어차피 이곳은 평원이라 병력을 숨길 곳도 없지 아니합니까. 저희가 있는 지난 구릉지로 오시지요.”

“역시 거기군. 내려다보는 이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억울하면 다른 장소를 잡으시지요. 날짜가 길어지면 좋을 것이 없을 줄로 압니다만.”

린베크 아버님은 이런 경험이 많은 듯, 상대의 명백한 도발에 허허 웃으며 흘릴 뿐이었다.

“시간은?”

“포진을 마치는 시간부터로 하시지요.”

“알았다.”

“더불어, 오늘 밤은 내일의 정정당당한 대결을 위해 야습은 없는 것으로 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로서야 고마운 일이지.”

나는 놀란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이런 것도 서로 합의할 수도 있는 것인가? 내가 놀라건 말건, 이번엔 폐하가 물었다.

“식량이 모자라지는 않는가?”

“모자라다고 하면 좀 나눠주시겠습니까, 폐하?”

비꼬는 어투가 명백한 고즈스의 대답에 폐하는 유들유들하게, 숫제 턱까지 괴고 받아쳤다.

“경처럼 무릎을 많이 꿇는다면 못 나눠줄 것도 없지.”

“이익!”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경이 된 고즈스는 이를 갈았다. 황제의 신하라고 선언한 마당에 뭐라고 할 수도 없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중이니 그럴만도 하지. 폐하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력을 업은 것도 아니고, 중부와 남부의 기사단의 일부가 서로를 약탈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보급을 제대로 받기가 참 힘들터인데, 자네도 그렇고, 어제 우리 병력에게 당해 지금 이 자리에 누운 반란군의 병사들의 입성도 나빠보이지 않으니 하는 소리다.”

“반란군의 입성까지 살피시는 폐하께서는 진정으로 성군이시군요.”

“군주를 칭찬할 때 그렇게 마음을 담지 않은 칭찬을 하면 역효과가 난다. 알아두도록.”

말로는 이기기 힘들다 여겼는지 고즈스는 고개를 한두번 저은 후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갓 제위에 오르신 폐하 주변에 있는 간신배들을 몰아내고 국기를 바로 세우자는 저희의 뜻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십시일반 대어주시는 자금과 군량이 저희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외워온 티가 난다...

“그런가. 그대들의 뜻이 아주 멀리까지 전해진 모양이군. 알았다. 사령관, 더 물을 것은 없습니까?”

“네, 폐하. 이만 돌려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도 없는데 무릎꿇느라 고생했네. 일어서게.”

다시 한번 이를 까득 깨문 고즈스가 일어서다가, 폐하의 뒤에 선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이, 불현듯 크게 떠지더니, 얼굴에 분노로 가득했던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 저, 저, 저 사람이...”

“아, 자네도 이 사람을 아는가? 기리인 모스 백작이라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우리가 인사하러 갔을 때도 모스 백작이 활약했다고 하더군?”

“괴, 괴, 괴물 활...!”

“모스 백작, 괴물 활이라는군?”

나는 그의 눈을 보며 씩 웃어주었다.

“으아아아아!”

그가 황급히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양 옆에 서 있던 기사 두 명이 황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그 자리에 배석한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달리 방법이 없어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만 긁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루 한 편 기간동안 수치가 처참하게 박살났네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이 연재해야겠다고 다시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쓰게 해 주는 힘이십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아마 그렇겠죠?

칼레이어드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이제 그 얘기도 나올겁니다! ㅎㅎ

melontea 님 // 이미 황제의 곁에 있는 이상 별 수 없죠 ㅎ

eastarea 님 // 어떻게 그 엑스맨을 활용할 것인가가 포인트가 되겠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