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19화 (219/309)

00219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서서히, 우리가 행군하는 방향 오른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평원의 일출은 빨랐다. 세상이 약간 주황색이 된다 싶더니만, 쑥 하고 해가 어느새 올라왔다. 내가 타고 있는 레브가 말발굽으로 풀을 밟는 소리가 조금씩 서걱이기 시작했다. 풀에서 이슬이 마르나보다. 가끔씩 말들이 푸르르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우리 군은 조용히, 결전을 앞둔 군들이 그러하듯이, 조용히 말을 걸리거나 걸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속도가 느려졌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우리 군이 배치에 들어간 후였다. 우리와 함께 걷던 기병대가 우리를 추월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제, 파라 융파트 경이 스스로 나간 후, 작전지도를 놓고 린베크 아버님이 했던 설명을 기억했다.

---

“지난 구릉지는 마치, 대륙을 커다란 넓은 반죽이라고 했을 때, 그 반죽을 5시 방향으로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서 생긴 것과 같이 생겼다. 야트막한 동산 정도의 언덕이 수백 수천개가 있다. ...뭐, 모두가 잘 알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운을 띄운 린베크 아버님은 적 부대의 깃발을 가리켰다.

“현재 적은 정석적인 수비진형을 갖추고 있다. 장창을 장비한 것으로 생각되는 보병부대가 앞을 막고 있고, 기병대가 그 뒤에서 돌파 또는 우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궁병부대와 마법사부대가 진영의 뒤에서 원호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예비병력은 2선의 기병대가 전부이지만, 혹시 모르니 내일은 정찰 마법사를 두 배로 가동하도록 하겠다.”

마법사대의 대장인 오클리프 엔데 경이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의도는 생각보다 아주 상식적이다. 언덕 위에 포진해 우리의 주력인 기병의 돌격력을 줄이고, 우리의 기병이 돈좌되면 그 때 사격을 퍼붓거나 혹은 자신들의 기병대로 역습을 가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만약 우리의 기병대가 저들을 우회하여 측방이나 후방에서 들이친다면?”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예상이니까.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아마 최우선의 목표는 우리 기병대의 우회나 돌파를 저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마 저들은 마법적인 힘이나 목책 등을 동원해 측면을 좁히고 어떻게든 정면을 향해 우리가 들어오게끔 하려고 하겠지.”

“실제로 저들은 오후 내내 장애물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정찰 결과가 있습니다, 사령관님.”

에아임 형이 종이를 넘기며 말하자 사령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르임 장군.”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령관님이 말했다.

“내일의 선봉은 보병이다.”

“넷!”

의문 없이 바로 대답하는 사르임 장군.

“적들과 동일한 포진으로 나설 것이다. 우리의 보병전력이 적들에 비해 약하지만, 병력의 질은 우리가 훨씬 우수하다. 사르임 장군, 그렇지 않은가?”

“그, 그, 그렇습니다!”

장군은 긴장했는지 또다시 말을 더듬고 있었다. 이젠 익숙한 모습에 참석자들 모두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령관님은 다시 지휘봉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들이 전면을 좁히면, 즉시 5열로 대열을 편성하여 앞으로 전진하라. 자세한 사항은 사르임 장군이 직접 판단하여 정하도록.”

“그, 그리 하, 하겠습니다, 그, 그런데, 화, 화, 화살과 마, 마법은...”

“그에 대해서는 우리의 궁병대와 마법사대를 믿도록 하라.”

“넷!”

“그리고...”

사령관님은, 나를 돌아보았다.

---

보병대가 늘어서고, 기병대가 그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안 이랬는데. 어제 그 야밤에 말을 달릴 때도 괜찮았는데. 어제는 안 보이고 오늘은 보여서 그런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적진을 바라보았다. 내 착각일까. 약간은 웅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방패와 장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적병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늘어서 있었다. 야트막하나마 언덕 위에 서 있는 적병들을 올려다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뭐, 우리도 보이지 않으면 유리하니까.

뒤에서는 침묵마법까지 써가며 최대한 소리죽여 못질과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하루만 쓰면 된다. 하지만 내 활의 반동을 견뎌낼 수 있게 튼튼하게는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대한, 적이 보지 못하게끔 부분부분을 미리 어젯밤에 만들어, 오늘 수레로 싣고 와서 진영 뒤에서 조립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볼 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겠지만, 정확히 뭘 하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모스 백작님! 11시 방향에 적의 마법사입니다.”

오늘 우리 마법사들은 쉽게 인식되기 위해 왼쪽 팔꿈치에 노란색의 천을 둘렀다. 미리, 하늘을 나는 마법사들에게 경고해 두었다. 노란색의 천을 두르지 않은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면 저격의 위험이 있다고.

“마스 경. 저 마법사를 저격해도 되겠는지, 혹 저격하면 그것이 개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상부에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에이햄! 전령으로 사령부에 다녀오도록.”

나는 전통에서 화살을 하나 빼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생포할 필요가 없다. 윌로우 화살촉을 단 화살을 활에 물리고, 아직 시위를 당기지는 않은 채, 가만히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병대는 내 옆을 스쳐가 보병대의 뒤에 하나둘씩 포진하고 있었다. 이미 적이 목책이나 캘트롭(caltrop, 마름쇠)들을 뿌려놓아 전장은 우리 많지 않은 보병대가 5열로 늘어서자 대략 맞았다. 우리 보병대가 3천명이었던가. 전장의 전면은 6백명이 방패를 서로 밀집하여 선 대형이겠구나. 생각보다 좁구나...

그 때, 사령부에 전령으로 갔던 에이햄이 마스 경과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들은 돌격하여 내려올 가능성이 적으므로 지금 바로 저격에 들어가시랍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에이햄이 군례를 올리고 약간 떨어진 자기 자리 – 그러니까 나를 호위하는 자리로 향했다. 나는 적 마법사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생각보다 멀다. 대략 1천 보 정도...? 마나의 레일이 거기까지 닿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보거나 소리를 듣고 피하지는 못할 거다. 나는, 허공에 멈춰서 있는 그 놈을 향해 마나의 레일을 뻗어내었다. 150보 언저리까지 뻗어진 마나의 레일을 나는 내 활에 불려진 화살에 연결하여 화살을 감싸고, 곧바로 활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아아. 활이 금속과 목재의 비명을 지르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시위를 최대로 당긴 후... 조준을 확신하고, 그대로 놓았다.

톡.

150보 정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화살은 앞으로 쏘아져 갔다. 그러다가...

빠앙!

순식간에 허공에 하얀 꽃이 피며 화살은 하얀 베일(veil)을 단 채 앞으로 날아갔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뜨자,

허공에 떠서 가만히 머물러 있던 그 마법사의,

머리에 정확하게 화살이 틀어박혔다.

끔찍한 광경이 보이고, 소리는 하나, 둘, 셋 정도 이후에 온다. 지금까지 여러 번 본 광경, 머리 속의 피와 뇌수, 그리고 이름모를 액체가 퍽 하고 터져나가, 적병들의 머리 위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보다 먼저, 적의 마법사가 바람이 멎어버린 날의 연처럼 아무런 맥아리없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세를 올리기 위해서일까? 우리 편의 보병들과 기병들이 갑자기 환호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말 위에서도 적병들이 크게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졸지에 핏물을 뒤집어썼는데도 움직이지 못하는 적병들이 황급히 머리와 얼굴을 닦아내고 있었다.

“신궁! 신궁! 신궁! 신궁!”

우리 편의 몇 천명이 발을 구르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편이 나를 떠받들수록, 그리고 적이 나를 무서워할수록, 우리가 이길 확률은 커지고, 우리가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기병대가 포진을 끝내고, 궁수대가 내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동안, 조립하던 병사들도 대충의 작업을 끝낸 모양이었다.

“1단 올려! 어잇-차! 어잇-차!”

병사들은 가로세로가 두 걸음에 높이가 내 키 정도 되는,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각 기둥 사이를 X자와 가로대로 통나무를 다시 대어 튼튼하게 보강한 대를 백 개도 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만든 것들을 이어붙여, 너비가 어지간한 집 두 개를 붙인 것 만한 넓은 대(臺)를 세웠다. 이미 위에 두터운 판자로 바닥까지 다 대어 둔 후였다. 황급히 위아래에서 대를 이루는 나무판들을 서로 못질하여 연결하는 동안, 다른 병사들이 사다리를 가져와 빠르게 대 위로 올라, 서른 개 남짓한 대를 그 위로 올렸다. 바닥과 각 기둥의 사이를 줄과 못으로 단단하게 고정하자, 남은 여남은 개의 대를 맨 윗층에 올려 총 3층의 대를 만들었다. 맨 위에 올라갈 대에는 난간까지 못질이 되어 있었다. 야전에서 이런 걸 만드는 데 꽤나 경험이 많은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가라, 전략병기!

여러분 모두 투표는 하셨나요? 아직 안 하신 분들은 8시까지니까 얼른 투표하고 오세요~!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 힘이십니다.

카드보험 님 // 뭐 줘터지면 정계를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ㅎㅎ 앞으로의 일은 차차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여긴 하늘만 흐리다가 비는 아직 안 오는데, 남쪽은 비가 많이 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투표는 꼭!

eastarea 님 // 사전투표가 그냥 슥 찍으면 되니 정말 편하더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