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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22화 (222/309)

00222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백작님! 같은 거 한 발만 더 부탁드린답니다! 지금이 아니면, 쓸 기회가 없을 겁니다!”

말 안해도 알고 있다. 보병들이 서로 섞여서 격돌하기 시작하면, 궁병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나는 전통을 살폈다. 혹시 모른다. 이 화살은, 만약의 사태에 전장을 바꿀 수 있는 전략적인 무기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몇 발은 남겨둬야 한다. 지금 남은게 대략 열 발 정도이다. 디오틀라 님에게 연락이 닿아서 제도에서 이 화살이 공수되어 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아껴써야 한다.

그래도, 지금 두 발 정도 쓰면 어떨까.

“쏜다아!”

갑자기, 내 옆의 마스 경이, 크게 외쳤다. 생각보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높았다. 합창 시키면 잘 할 것 같다. 그의 맑은 목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 의도대로, 적병들에게까지 닿았다. 저벅저벅하며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보병들보다, 적병 모두의 눈길이, 내 쪽으로 향했다. 나는 예의 과장된 동작으로, 화살을 활에 메겼다. 빠아아아아아아. 적병들의 명백한 동요를 확인하며, 나는, 우리 병사들이 100걸음쯤 앞으로 걸어갔을 때,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륵. 콰앙!

파파파파파파파팍!

다시 적 대열의 일각의 병사들이 허물어졌다. 수십명의 병사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쓰러져, 바로 절명하거나, 바닥을 뒹굴며 꿈틀거렸다.

“돌겨어어어어억-! 앞으로오-!”

사르임 장군이 칼을 뽑아들며 크게 외쳤다. 병사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숙련되어 있는지, 그렇게 뛰면서도 그들은 발 소리가 하나로 울렸다. 척. 척. 척. 척.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발소리. 그 순간.

“으, 으, 으아아아아!”

적의 보병들이 갑자기 진영을 허물어트리며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닥을 뒹구는 부상자나 전사자들을 마구 짓밟으며 그들은 앞을 다투어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앞줄의 혼란이 뒷줄까지 전파되기 전이라, 당장 적의 보병들이 이루고 있던 전선이 일제 혼란에 빠졌다.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 당장이라도 뒤로 도망가려는 사람,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 그러는 중에도, 척. 척. 척. 척. 마치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일정하게 우리 보병들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순간, 화악-! 전장 가운데에서 마주치고 있던 바람이, 일시에 적병들을 향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곧, 적이 우리 쪽으로 마법을 밀어붙이던 것을 포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일까, 이제는 우리 보병들이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에 바람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마스 경, 적이 우리 보병 위로 마법을 떨어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아...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는 곧 아래의 마법사 게트에게 뭐라뭐라 말했고, 게트는 눈을 감았다. 메시지 스펠을 시전하는 모양이다. 답은, 게트가 아니라, 마스 경에게 바로 왔다. 마스 경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나에게 말했다.

“사령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응 마법을 구상중이랍니다.”

“공중 정찰대에게 적 마법사대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아, 알겠습니다.”

어느새, 우리 옆으로 올라온 게트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아까보다는 좀 더 긴 시간이 오간 후, 마스 경이 나를 보며 말했다.

“대략 여기에서 7백보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 정면을 12시라고 할 때 대략 2시 정도의 방향이라고 합니다.”

“7백보...”

“아무리 경의 활이 멀리 날아가도, 보통 활이 간신히 닿을 수 있는 거리가 3~4백보 아닙니까. 그 두 배의 거리를, 최소한의 살상력을 가지고 날릴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최소한의 견제만 해도 무방합니다. 마법은 정신집중이 약간만 흐트러져도 위력이 급감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산탄 화살을 재었다.

‘띠링!’

간만에 듣는 이 효과음. 효과음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서브 퀘스트 – 초장거리 저격>

<바람의 도움을 받아도 활의 최고 사거리는 400보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력을 지니는 유효사거리는 당연히 그보다 훨씬 짧은 300보 정도입니다. 마나 화살에, 바람의 도움까지 받고 있지만, 지금 적의 마법사대는 700보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적의 마법사대가 정신 집중을 잘 못 할 수 있을 정도의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목표 : 적이 우리 보병대 위로 시전하려고 하는 마법을 막으세요.>

<만약 활쏘기에 성공한다 해도 마법이 시전될 경우 퀘스트는 실패로 처리됩니다.>

<보상 : 이번 전쟁의 공적 1위에 등극합니다. 보병사령관 사르임 장군의 큰 호의를 얻습니다. 황제, 사령관, 부사령관은 이미 호감도가 높으므로 추가적인 호감도가 쌓이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를 그린다. 내 화살이 갖는 위력은 대략, 보통 화살의 5~6배. 하지만 아까처럼 직선으로 쏘아서는 거리가 안 미친다.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대략... 그래. 100보 밖의 과녁을 노리던 것처럼, 내가 마불살을 터득하기 전에 고향에서 디혼 선생에게 활을 배우던 때 노리던 것처럼. 나는 그 때의 감각을 기억하며, (그리고, 지금 내 옆에 톨라츠 아저씨가 있으면, “약간만 더 들어야겠군요, 어... 네, 좋습니다” 이런 정도로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경고. 적의 마법이 20초 후에 시전됩니다. 20. 19. 18.>

이런 제기랄! 더 이상 조준을 수정할 여유가 없다. 나는 마나의 레일을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들어올린 채로,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르륵. 꽈앙! 우리 뒤에서 적진을 향해 불어가고 있는 바람이, 화살을 밀어주고 있었다. 보통은 150보 길이의 마나 레일을 벗어나, 100보 밖에서 산탄이 터지는데... 꽈앙! 하는 굉음과 함께 폭음이 터진 것은, 서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돌입한 우리 보병들의 머리 위를 지나서였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허공에 핀, 하얀 꽃에서, 수많은 자탄들이 앞을 향해 역시 하얀 줄기를 뿜으며 앞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수십 수백줄기의 자탄들이 눈 한번 깜빡이자 어마어마한 속도로 점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서, 넓은 영역에서, 평원의 군데군데에서, 흙먼지가 하늘로 뿜어져 올라갔다. 하나, 둘. 퍼퍼퍼퍼퍼퍼퍼펑! 빠른 속도의 무언가가 땅에 틀어박히며 나는 소리가 평원 전체를 울렸다. 좋다. 둘 하고 소리가 울렸으니, 이 정도면 대략 거리는 맞는 것 같다.

‘띠링!’

<퀘스트 성공! - 초장거리 저격>

<너무 넓은 범위라서 아쉽게도 마법사대에 대한 직접 살상에는 실패하였으나, 당신의 산탄은 충분히 마법사대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법을 시전하기 위한 정신 집중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제대로 창의 방진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적의 창병들에게 드디어, 제대로 방진을 구성한 채 창을 앞으로 곧게 뻗은 우리 보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미처 뭔가 반응해보기도 전에...

“으아아아아!”

창병 집단의 가장 필수적인 힘은 서로간의 밀집에서 나온다. 공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밀집한 대형, 자신과 자신 좌측의 동료를 방어하는 방패, 앞으로 곧게 뻗은 창. 이런 것이 없다면 창병의 힘은 반의 반으로 줄어든다. 우리 편 보병들은 300걸음의 거리를 달려오면서도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대열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리고 그 대열에서 오는 파괴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적에게 돌입한데 비해...

우리보다 두 배는 넘는 보병을 보유하고 있던 적군은, 내 산탄 화살에 의해 100여명의 전투력을 일시에 상실한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대열이 붕괴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욕지기가 올라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돌이켜 보니, 지금껏 나는 멀리서 활로 전투를 했지, 이렇게 병기와 병기가 직접 부딪히는, 생존하고자 하는 욕망이 서로 부딪히며 낳는 피와 비명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참 절박하지만, 동시에 추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추태를 보일 수 없다. 나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때, 마스 경이 말했다.

“적진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메시지 스펠로 전달받았는데, 백작님의 화살이 마법사대를 흐트러트렸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백작님은 작전에 대해 잘 모르시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대열이 무너져 달아나고 있는 적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쟁 중에 가장 인명피해가 많이 나는 단계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회전에서 격돌이 있었을 때, 아닌가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아닙니다.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날 때는 대열이 무너져 도주할 때이지요. 밟혀 죽고, 깔려 죽고, 등에 칼 맞아서 죽고... 승리한 측에서 가장 전과를 많이 낼 때도 그런 때입니다.”

“아...”

“백작님도 잘 아시겠지만, 백작님의 활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우리보다 두 배는 많은 병력이 사기를 잃고 도망가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리인의 활의 위력이 너무 커 서전을 무리없이 승리로 장식하는 황제군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면 아쉽죠.

자정 조금 지나서 뵙겠습니다.

뚜뿌뚜뿌님 후원쿠폰 18장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Xiayu 님 //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한달 조금만 더 지나면 방학이에요! 힘내세요!

화이트프레페 님 //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가... <아저씨>였던가요? ㅎㅎ;;

eastarea 님 //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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