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5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우리가 얼마나 적에게 손해를 강요하는가에 달렸다. 내가 보기에, 적은 우리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 것을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병 전력이 그들보다 우위라는 명백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보병 전력의 상당수를 그렇게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즉,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누적시켜, 우리가 그들에게 덤벼드는 것이 저들이 원하는 것이다.”
대충,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에게 손해를 누적시켜야 한다. 최대한 큰 타격을 주어, 설령 우리가 저들의 벌려진 아가리 속으로 뛰쳐들더라도, 아가리를 최대한 약하게 해서 그걸 부수고 나올 수 있을 정도까지는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기병에게 맡기겠다.”
“맡겨주십시오.”
다르임 형님은 그 말을 기다렸나보다. 마흔은 되는 사람에게도 저런 호승심이 있구나. 사령관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고, 각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기리인. 산탄 화살은 쓰면 안 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를 바라보는 사령관님, 린베크 아버님의 눈빛에서... 나는, 지독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는 그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작전을 세우더니, 그것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지우지 못한 건가? 물론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남들과 나눌 수 없는 불안, 초조가 있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결국, 대륙에서 손꼽히는 무인에게도, 자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벗을 수 없는 짐인 건가.
“알겠습니다.”
“일반 화살은 얼마나 남았나?”
“대략 서른 발 정도 남았습니다.”
“많지 않군... 기리인.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조금 전에 저기, 마스 경에게 들었습니다. 도주할 때라고...”
“그래. 그래서 사기(士氣)가 중요한 거다. 설령 밀리고 있더라도 사기가 높은 부대는 지휘관이 내놓는 계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하지만 사기가 낮은 부대는 아무리 묘책을 내놓아도 반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아서서 도주하거나, 아군을 위협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아버님은 툭툭, 다르임 형처럼, 내 어깨를 쳐주고는 말을 돌려 황제 폐하에게로 다가갔다. 애써 곧게 편 그 어깨에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니너아 모스를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장군이라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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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은 나를 자신의 곁에 있게 했다.
“체스로 치면, 너는 퀸(Queen)에 가깝다. 전장 어디든 타격이 가능한 전략적 무기에 가깝지.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으로서는 너를 가까이에 두고, 활용 방법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네 활, 쏠 때 근처에 있어도 상관은 없는거지?”
“네.”
대답은 짧게. 버릇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실제로 바빠서였다. 몸의 준비나 활의 준비할 것은 없다. 그것이 아니고, 나는 집중을 다시 가다듬고 싶었다. 자꾸만, 조용하게 있으려니까, 아까 우리 병사들의 부츠 아래에서 뭉개지던 적병의 시체들이 떠올라서였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심호흡. 심호흡.
“공격을 시작하라.”
아버님이 부관들에게 명령하자, 부관들은 곧 깃발을 꺼내 휘젓는가 하면, 호각을 꺼내 길게 불었다. 그 호각소리가 신호가 된 듯, 마법사대는 일제히 영창에 들어갔다. 평원에 가득한, 어느 성질로 치우치지는 않았지만 양은 엄청난 마나가 그들의 영창에 따라 반응했다. 나는, 마나를 ‘만질’ 수 있는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궁수대는 일제히, 150보 정도 떨어진, 적의 본진을 향해 화살을 먹였다.
“궁수대! 사격 개시! 호위대는 궁수대를 겨냥한 화살을 방어하라!”
큰 방패를 든 병사들이 궁수대의 앞에 늘어섰다. 우리 궁수대원들, 전원이 기마 능력자이며 동시에 1등급 사수인 저들은, 하지만 지금은 말에서 내려, 약간 비스듬한 윗방향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피피피융! 쐐애애액! 피융! 피피융!
순식간에 우리 궁병들이 쏘아날린 몇 백발의 화살이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일제히까지는 아니고 약간씩의 간격을 두고 쏘아낸 화살은 쐐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적진을 향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격! 반격하라!”
적진에서 누군가 외치며 지휘봉을 흔들고 있었다. 적들의 궁병이 황망히 활을 준비해 사격을 개시하려는 그 순간,
후드드드드득!
드디어 그들에게 가닿은 화살이 비가 되어 적진의 중앙에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가끔 전쟁을 묘사한 장면을 보면 화살의 일제사격을 ‘화살비’라고 했는데 이해가 갈 것 같다. 무엇보다... 소리가 꼭 빗소리다. 저, 화살이 맨땅에 떨어지는 걸 보라. 후드드드드득.
비록 그 화살들 중 목표를 맞힌 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비처럼, 화살은 사격을 준비하던 적의 궁병들 위로 쏟아졌다. “으아아악!” 화살에 맞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감싸쥐는 장면이 여기서도 똑똑히 보였다.
“부상자를 돌봐라! 부상당하지 않은 자는 사격을 개시하라! 적의 궁병대를 막아내야 한다!”
아까 지휘봉을 들고 휘두르던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흐음. 좋은 목표인 것 같은데.
“기리인. 저 사람을 노려볼 수 있겠냐?”
“걱정마세요.”
150보까지는 소리도 나지 않고, 직선으로만 날아가니까요. 마나로 레일을 만들어서 쏘는 건데, 못 맞추면 그게 문제죠.
나는 미늘 화살촉이 연결된 화살을 하나 꺼내어 활에 물렸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마나의 레일이 연결되자마자, 톡 하고 시위를 놓았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느라 주변의 마나가 고갈 상태라서, 내 마나 레일을 만드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퍼엉!
아까 지휘봉을 휘두르며 떠들어 대던 놈의 머리를 정확히 맞추었다. 퍼엉! 아까도 익숙하게 본, 머리가 마치 수박인 것처럼 뒤가 깨지는 방면. 익숙한 장면이지만, 결코 익숙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마나 레일에서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가속된 내 마불살은, 그대로, 놈의 머리를 뚫으면서... 놈의 머리를 목에서, 마치 종이조각 하나를 큰 종이에서 떼어내듯, 머리를 몸에서 분리해 버렸다. 머리의 뒷부분이 아까 수박처럼 터져버린, 후두가 없는 머리가, 관성을 못 이기고 몸에서 떨어져 나가... 땅에 떨어져, 구르기 시작했다.
설령 바로 앞에다 활을 갖다놓고 쏜다 한들 저런 위력을 낼 수 있을까. 말로도 차마 표현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장면에, 적의 궁병들이 모조리 동작을 멈추었다. 아군은 챈트(chant)도 못 할 정도로 언어도단적이고 참혹한 광경에 놀라 입을 다물어 버렸고... 적군은, 특히 궁병대는 이미 공포에 젖었다.
“마스.”
사령관님이 외치자, 마스 경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아까 그랬듯, 낭랑한 목소리로 적진을 향해 외쳤다. 그의 맑은 목소리는 여전히 전장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보라! 황제 폐하에게 거스르려 했던 자가 천벌을 받아 머리가 터져 죽었도다! 누구든지 폐하의 권위에 도전하고 싶거든 나서라! 그럼 그 자 역시, 머리가 터지고 몸에서 뜯겨나갈 것이니!”
낭랑한 목소리로 담은 무서운 협박에, 저 쪽 언덕의 모두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리인. 아직이다.”
그 때, 아버님이 나를 보며 손을 들어보였다.
“네, 아버님.”
“잠시. 너무 밀어붙이면 저들은 또 도주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계속 도망다니는 적을 쫓아가기만 해야 해. 여기서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한다. 그러니, 잠시 기다려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당기지 않은 활에서 화살을 빼낸 후 적진을 바라보았다. 순간.
“공격 개시!”
전장에서 처음 듣는 소리... 아, 엔데 경이구나. 엔데 경은, 괜히 마법사대의 대장이 아니라는 듯, 두 가지 스펠 – 그러니까, 공격 마법이나 보조 마법을 쓰면서, 동시에 허공에 떠있는 마법사들과 메시지 스펠을 주고받는 일까지 해내고 있었다. 이제 그는 마법사대의 공격까지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버틸 수 있을까? 과부하 걸려 마법회로가 망가지지는 않을까? 나처럼 말이다...하지만 엔데 경은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듯,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멈추지 마라! 화염 마법은 안 된다! 전격계와 수계, 지계(地系) 마법만 사용해라! 회로가 과부화될 것 같거나, 혹시 만에 하나라도 마나를 자신의 회로 속으로 끌어당기지 못하게 되는 자는 즉시 보고하라!”
엔데 경은 그러면서도 큼지막한 얼음덩어리 하나를 만들어 앞으로 날리고 있었다. 메시지 스펠을 동시에 사용하며 날리는 것이라 저 덩어리 자체는 단순한 그냥 얼음덩어리였다. 저게 3서클짜리였지 아마. 휘하의 마법사대 역시 적진을 향해 온갖 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적진에서도 반격에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컴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한 편 썼습니다.
쓰는 과정에 졸다가, 꺠 보면 이상한 구절이 적혀있고...를 수 회 반복했습니다 ㅎㅎ;;;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보내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화이트프레페 님(233) // 안그래도 조만간 불러올까도 생각중입니다. 아직 전쟁 끝나려면 많이 남았어요~
eastarea 님(233. 234) // 언제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니코틴 님(234) // 원고료 쿠폰 12장 정말 감사합니다. 더 힘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