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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27화 (227/309)

00227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사령관님!”

“안다! 전원! 전투 태세!”

하지만 땅이 흔들리며 말들이 놀라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기수들은 그 말들을 달래느라 진형은커녕 제자리에 있는 것조차도 애를 먹고 있었다. 정상 근처에 있는 나까지는 그러지 않았지만, 놀라 움직이는 말들이 주변 말들까지 놀라게 하며 이미 혼란은 대열을 타고 전염되고 있었다.

땅의 울림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앞만이 아니었다. 좌우에서도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혼란을 진정시켜라! 엔데 경! 마법사들과의 연락은!”

“시도중입니다만, 이 쪽의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스펠이 잘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 애쓰며, 좌우를 돌아보다가, 정면을 주시했다. 땅이 흔들리다가, 갑자기, 뭔가 불쑥 위로 나왔다. 나무 상자 같았다. 갑자기, 땅이 폭발적으로 팍 하고 터지듯 흩어지며, 그 상자가 지면으로 쑥 올라왔다. 상자라기보다는... 관(coffin) 같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개의 관이 흙을 마구 터트리며 지면으로 올라와있었다.

“저건... 뭐지?”

마스 경의 혼란스러운 말이 아니라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사령관님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사령관님은 턱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이빨을 꽉 깨문 채, 정면과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관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 언덕을 2중, 3중으로, ㄷ자 모양으로 포위하는 관이었다.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가능할까.

‘정보 확인.’

<물품 정보>

<매복관(lurking coffin)>

<남대륙에서, 지하에서 매복 전술을 펼치기 위해 만들어진 관. 남대륙 특유의 주술적 처리가 되어, 병사들이 가사 상태로 하루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

제기랄. ‘시스템’! 혹시 저 전술의 약점이 없을까?

<가사 상태에서 깨어나기까지 약 5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군요.>

맨 먼저 튀어나온 관이 열리고, 피부가 시커먼 사람이 한 명 나왔다.

흑인을 보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햇빛을 많이 받아 그을린 사람과는 비교할 게 아니었다. 잉크를 진하게 물들인, 검디 검은 색깔이었다. 머리카락은 검고, 지독한 곱슬머리로 꼬불꼬불하게 말려 있었다. 눈의 흰 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흰 색이었다. 검은 얼굴에 흰자가, 그리고 그 안의 검은 눈동자가 더 시선을 끌었다.

그는, 그를 내려다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히죽 웃었다. 그의 이빨도 흰 색이었다. 검은 얼굴을 순간적으로 가로지른 하얀색의 미소는 매우 거슬렸다.

그가,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헐렁한 소매가 아래로 내려가며, 팔에 낀 팔찌가 짤그랑거렸다. 금색과 은색, 그리고 묘한 색깔의 팔찌였다. 그의 손바닥은 다른 피부와는 달리 연한 색이었다. 그가, 그 손을 주먹을 쥐더니,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관이 일제히 열리며,

흑인 병사가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평소에 보지 못한 시커먼 피부의 흑인들을, 그것도 소매도 바지통도 헐렁한 기묘한 복장에 칼, 창, 활 등의 무기마저도 제각각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지독하게도 비현실적이었다. 병사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반포위된 셈이니 그럴 법도 했다.

“사령관님!”

“엔데 경. 마법사들은 뭐라 하는가.”

“후방의 적 부대는 두 시간 정도의 거리라고 하며, 병종은 기병입니다. 융파트가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던, 님크 기사단의 절반 병력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예상대로군.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쪽은?”

“흑인 병사의 수는 대략 2천 정도입니다.”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다고도 할 수 없군. 문제는 우리에게 지금 기병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 우리가 기병을 돌격시키는 것을 기다려서 저것을 발동시켰을 거다.”

사령관님은 이를 꽉 깨문 채 잇소리를 섞어 말했다.

“선택지는 없다. 우리가 후방으로 물러나면, 저들은 한데 모여 이 언덕을 장악하게 될 거다. 그리고 우리는 뒤에서 오는 기병과 정면에서 오는 저들 사이에 끼어 난타당하게 되겠지.”

그 때, 가까운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황제 폐하가 시종 두 명 정도를 데리고 이 쪽으로 모였다.

“폐하.”

“예의는 됐습니다. 그래서, 사령관. 방책은?”

“궁병대와 마법사대를 각기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측면의 적을 견제하며, 보병대와 궁병대의 반, 마법사대의 반을 이용해 정면을 뚫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밀려서 앞뒤로 포위당하는 것보다 위험이 덜할 줄로 아룁니다, 폐하.”

황제 폐하는, 내 생각보다는 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린베크 경.”

사령관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지시를 내렸다. 엔데 경과, 궁병대를 지휘하던 이름을 모르는 기사가, 각자의 부대로 돌아가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정면의, 아까 맨 처음 나온, 그 흑인 적군을 바라보았다. 허리에는 폭이 넓고 휘어진 모양의 칼집을 차고 있었고, 등에는 뭔지 모를 금속과 나무가 섞인 길쭉한 막대기같은 것을 메고 있었다. 그는 눈길을 의식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담담히 바라보자, 그는 헤죽 웃었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미소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그가 등에 메고 있던 길쭉한 막대기를 내려, 자신의 어깨에 한 쪽 끝을 대고, 반대쪽 끝을 내 쪽으로 가리켰다. 내 쪽을 향한 끝은 비어 있었다. 그는 손을 딱 튕기더니, 손가락 끝에서 불꽃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막대기 한 쪽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접시 같은 것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그는 내 쪽을 신중하게 겨냥했다.

<경고! 피하십시오!>

나는 재빨리, 레브의 고개를 숙이게 하며, 말 잔등에 납죽 엎드렸다. 그 순간.

따앙! 슈우우욱!

내 머리 위로 뭔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뭐, 뭐야. 큰 소리와 불꽃 때문인지, 간신히 진정시킨 말들이 다시금 몇 마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그 남자가 들고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정보 확인’!

<물품 정보>

<화승총(matchlock gun)>

<남대륙에서 많이 나는 화약을 이용한, 빠른 속도의 투사체 발사 장치입니다. 자그마한 금속 탄환을 날리는 장치입니다.>

맞으면?

<궁금하면 맞아보시든가요.>

이게 점점 더...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니, 그 남자는 뭔가 복잡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 ‘총’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종이 봉지를 꺼내, 입으로 뜯고, 그 총의 엄지손톱만한 접시에 종이 봉지의 내용물인 검은 가루를 뿌리고, 뚜껑을 닫은 다음, 총을 세워들고, 종이 봉지의 나머지를 총 안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나저나 당하고 살 수만은 없잖아. 저게 꽤 큰 소리와 불빛이 나서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렇게 다시 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아직까지는 약점이 너무 많은 무기 아닌가. 나는 화살을 하나 꺼내 활에 매겼다. 그리고, 마나의 레일을 그 남자에게 뻗으며, 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아. 내가 시위를 당기자, 그 남자는, 다시 헤죽 웃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헤죽 웃었더니, 그 남자는 재빨리, 아까 자기가 나왔던 관의 뒤로 가서 숨었다.

적절한 판단이다. 관은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화살은 뚫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닌 보통의 궁병이었다면 말이다.

나는 마나의 레일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활시위를 최대한 당긴다. 내 성격은 더러운 데가 있다. 아까도 나를 공격한 놈들이 나오자 곧바로 죄책감이고 욕지기고 부조리함이고 다 잊어버린 채 분노에 휩싸이지 않던가. 감히 나를 노려? 넌 뒤졌다, 이 개새끼야.

톡.

스르르륵.

꽈앙!

눈 깜짝할 사이에 관에 꽂힌 화살은, 충격으로 관을 만들고 있던 나무를 산산조각내고는, 그 적병의, 왼쪽 가슴에 들이박혔다. 아까처럼 뚫고 나가는 걸 기대했지만, 두꺼운 관을 박살내느라 힘이 좀 떨어졌는지, 화살깃이 있는 뿌리까지 박히는 정도에서 그쳤다. 물론, 폐가 작살난 그 병사가 살 가망은 없었다.

“어억!”

순식간에, 시야 안에 있는 모든 흑인 병사의 눈이,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그 적병에게 쏠렸다.

“우와아아아아!”

동요하던 우리 군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반포위당해서 상당히 사기가 떨어져있던 중인지라, 이런 걸로 사기를 반전시켜보려는 모두의 마음이 작용한 것일까. 우리 군은 아무런 명령 없이도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환호에는 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마스 경. 누구를 노리면 좋겠습니까?”

“어...”

마스 경은, 전장을 이리저리 빠르게 눈으로 훑다가, 두 시 방향을 가리켰다.

“저 놈들, 활을 꺼내 당기고 있는 저 놈들을 노리십시오.”

“...저게 활이 맞습니까?”

활이라기보다는 커다란 금속 덩어리였다. 길이도, 도저히 세워서 쏠 수 없을법한, 적어도 세 걸음 정도는 되는 활이었다. 그 놈들은 그 활을 옆으로 눕혀 겨냥하고 있었다. 저건 발리스타(ballista)라고 해야 하지 않나. 어쨌거나, 한 놈이 활을 옆으로 든 채 단단히 고정하고, 다른 한 놈이 활 시위를 전력으로 뒤로 당기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둘을 동시에 꿰뚫는 궤도를 그린 후, 그 궤도대로 마나의 레일을 깔고... 활시위를 힘껏 당긴 후, 놓았다.

톡.

스르르륵.

꽈앙!

휘어지는 궤도로 날아간 내 화살은 허공에 하얀 꽃을 만들며, 앞에서 활을 들고 있던 녀석의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이어, 내가 노린 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 활의 활시위를 당기던 다른 녀석의 가슴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지는 못하고... 갈비뼈를 박살내고 가슴에 큼지막한 구멍을 하나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자, 과연 기리인은 이 정도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요?

내일 낮에 뵙겠습니다.

제 글을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보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삽질하면, 가오가 안 살잖아요~ 판타지답게!

eastarea 님 // 말씀하시니 저도 샌드위치가 먹고 싶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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