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8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발리스타(ballista)에 가까운 큰 활을 들고 있던 두 놈은, 한 명은 머리 위가 터져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가슴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비틀거리며 차례대로 쓰러졌다. 털썩, 털썩. 잠시 전장에 정적이 흐르다가,
“우와아아아아아!”
앞 열에 늘어서 있던 보병, 그리고 궁병, 마법사대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적병들, 흑인 병사들의 얼굴은 (원래 검은 사람들이라) 하얗게 질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누가 봐도 질려하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예전에, 치르낙 대왕이 나타나 대륙의 전란을 종식시키고 이티클레 대륙을 통일시키기 전에는, 지금처럼 궁술도 마법도 발달하기 전에는, 종종 전쟁을 위해 만난 두 진영에서 무예에 자신이 있는 장수를 내보내 1:1 대결을 벌이고는 했다던가. 그 서전에서 승리한 느낌이랄까? 물론, 1:1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일도 많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 악재가 있는 우리들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었다.
“안즈그카스! 호두르 은스클!”
저 뒤의 누군가가, 분노해서, 손에 들고 있던, 아까 처음에 나한테 죽은 남자가 들고 있던 것 같은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런, 알아듣기 힘든 말을 했다. 남대륙 사람들이나 우리나 하는 말은 똑같다고 하지 않았나? 저건 남대륙에서만 통하는 얘기인가? 그 얘기가 떨어지자, “호두르 은스클”이라는 이야기가 ㄷ자로 늘어선 적들 사이에서 몇 번 오가더니, 적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을 든 사람은 활을 등에서 내리고, 검을 든 사람은 검을 뽑아들고, ‘총’을 든 사람은 아까 그 놈이 그랬듯, 총을 내려 조그마한 종이봉지를 찢기 시작했다.
“이대로 밀리면 안되니, 공격을 하려는 거지. 하지만, 사격전이라면 위치가 유리한 우리가 우세하다! 궁병대! 사격 준비! 마법사대! 공격 준비!”
이젠 거리낄 것도 없다. 우렁차게, 사령관님이 명령을 직접 내렸다. 그리고 사령관님은 나를 보며, 묻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는 반 정도는 비어있는 전통에서 미늘 화살촉을 하나 꺼낸 후, 그 놈에게 레일을 이었다. 익숙한 동작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그놈을 바라보자, 그놈은 전혀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아슬아슬하다. 150보를 약간 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저 놈도 ‘총’을 쏜다는 건, 화약을 갖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한 발 써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빨간 보석을 짧게 한 번 눌렀다. 활이 가볍게 우웅 울었다. 나는, 그 놈이 나를 보기 전에,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르륵. 꽈앙!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 놈은 내 마불살의 목표가 된 사람 중에 처음으로, 우연인지 아니면 노린 건지, 꽈앙! 하고 레일을 벗어나 달려드는 내 마불살을, ‘총’을 휘둘러 튕겨냈다. 아니, 튕겨내려 했다. 그 순간, 내가 발동시킨 3서클의 화염 마법이 화살 전체를 휘감았고...
꽈앙!
그 놈이 가지고 있던 총과, 허리 왼쪽에 찬 주머니가, 불이 이어붙더니, 갑자기 퍼퍼펑! 하고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총은 버렸지만, 허리 왼쪽에 벨트에 찬 주머니를 단시간에 떼어낼 수 없었던 그 놈은... 곧, 옷에 이어붙은 불길 때문에 고생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놈이 달려와, 불길을 두드려 끄고 있을 때.
톡. 스르르륵. 꽈앙!
내가 두 번째로 날린 마불살이, 그들에게 닿았다. 퍼억! 운이 좋게도(물론 내 입장에서 말이다), 내가 가슴께를 겨냥해 날린 화살은, 불을 끄기 위해 몸을 두드리고 있던 사람의 왼손을 먼저 맞췄다. 하얀 꽃을 달고 있던 화살은 그 왼손을 문자 그대로 ‘터트려버린’ 후에, 이번에는 튕겨내지 못한 애초에 노렸던 남자의 옆구리를 ‘날려버렸다’.
나는, 오연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그들을 쭉 훑어보았다. 명백히 질린 표정들이다. 아직 우리는 공세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를란프 그흐카! 를란프 그흐카!”
나를 가리키며 몇 명이 소리질렀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보나마나, ‘괴물 활’ 운운하는 거겠지.
“잘 했다, 기리인. 역시 너의 활은 혼자 전황을 뒤집을 능력이 있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럼 이제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단지, 저들이 분명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분명해.”
그때, 삐-익! 하고, 적에서 누군가가 호각을 불었다. 아쉽게도 누구인지 놓쳤다. 마스 경을 바라보니, 경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 호각을 분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면, 지휘관에 해당하는 한 사람을 더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적을 붕괴시킬수록, 내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살아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띠링!’
<좋은 태도입니다. 시궁창같은 전장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빠지지 않는 지금같은 태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호각소리에 반응한 적들은 ㄷ자 포위를 멈추고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좋은 대응이군. 우리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고 봐서, 포위망을 유지하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일자진을 구성해 우리의 돌파를 막아내는 것이 맞겠지. 부관! 엔데 경과 사르임 장군에게 전하라! 봉시진을 구성한다! 궁병대와 마법사대는 봉시진 좌우에 화력을 퍼붓는다!”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아버님.”
“말해라.”
“산탄 화살을 날려볼까요?”
아버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이다. 조금 기다려라. 돌파할 때를 노린다. 아직 우리는 저들이 무엇이 가능한지 정확하게 모른다.”
“아...”
“기리인. 잠깐 여유가 있으니 짧게 말하마. 지휘관에게는 반드시, 예비 병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전력을 쏟아붓고 나면, 지휘관은 사건을 특등석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될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예비 병력이 없다.”
“아...”
“반면 저들은 지금 두 시간 거리에 기병이 있는 셈이지. 다행히, 신께서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아서, 너의 활이 남아있는 셈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님은 세 시간 만에 처음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최대한 아껴라. 일반 화살도 이제는 좀 아낄 필요가 있겠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다르임이 얼른 적들을 물리쳐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숨섞어 아버님이 말했을 때, 부관이 다가왔다.
“사령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다. 부관은 내 말을 전 병력에게 전하라. 제군들! 지금 위치에서 내 말을 들어라!”
“제군드을! 지금 위치에서 내 말을 들어라아!”
부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받아 외쳤다. 일부가 고개를 돌렸다가, 뒷 사람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 찔끔해 눈을 앞으로 돌렸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우리가, 저들을 빠른 시간에 돌파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빵 사이에 낀 고기 꼴이 되어, 앞뒤로 얻어맞게 될 것이다.”
왜 약한 말을 하는 걸까? 위기의식을 주려는 걸까?
‘띠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인식되면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싸웁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것을 군사 용어에서는 ‘강을 등지고 싸운다’고 부릅니다.>
그런가... 내가 경험이 모자라니까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님은 계속 말을 했고, 적병은 계속해서 집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저 위기를 돌파한다면! 오히려 이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도 있다! 그것을 원하는가!”
“예에!”
쩌렁쩌렁, 두 언덕 사이에서, 우리 병사들이 내지른 소리가 울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가!”
“예에!”
“황제 폐하를 위해, 신을 위해, 적을 무찌르자!”
“예에!”
지금까지는 계속 부관을 통해 전달하다가, 마지막에 아버님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내질렀다.
“전진하라아!”
“와아아아아아-!”
우리 병사들이, 언덕을, 뛰지는 않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간신히 일자 진형을 편성한 적은, 검을 든 병사들이 앞에 늘어서고, 그 사이로 활과 총을 든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위에서, 활을 들기만 한 채, 레브의 등에 앉아 바라보는 동안... 우리 병사들은 착실히, 빠른 걸음으로, 언덕 아래의 적군에 접근해갔다.
“톼프카!”
“쏴라!”
양 쪽에서 동시에 명령이 떨어지고, 적병들과 우리 병사들이 동시에 움직임에 들어갔다. 활을 든 적병들은 활시위를 당겼고, 총을 든 적병들은 아까 그놈처럼 손가락을 딱! 튕겨, 손가락 끝에 불을 만들어냈다. 저거 배울 수 있는 걸까, 같은 여유로운 생각을 잠시 하고 있는 동안, 우리편의 궁병들이 먼저, 뾰족한 촉을 이루고 있는 우리 보병들의 좌측으로 화살을 일제히 사격했다. 동시에, 적병들도 화살과 총을 우리 보병들을 향해 날렸다.
============================ 작품 후기 ============================
간신히 한 편 썼네요.
리리플은 있다가 밤에 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언제나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분들 덕에 힘 얻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