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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30화 (230/309)

00230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마법사였을 때 하늘을 날아다닐 때 말고, 이렇게 빠르게 달려본 건 처음이다. 말의 갤럽(gallop)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거친 숫말들인 전마들 사이에서, 레브는 뒤처지지 않게 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모두가 전투마를 탄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갤럽이라 해도 보통 말의 갤럽이라 전투마들로서는 칸터(canter) 정도였다.

우리는, 조금씩 전진하면서 보병대의 왼쪽, 즉 적의 우익으로 화살을 날리고 있는 궁병대와, 전투력이 반쯤 와해된 채 산발적으로 적의 좌익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마법사 부대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달리면서 흘긋 본 그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뜬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제야 그들의 목표물이 아닌, 전방에 어느새 올라온 관들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왼쪽으로!”

정규 편성된 병력이 아니다보니 지휘도 신호가 아닌 말로 하는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궁수대와 마법사대를 돌파하여, 새로 올라온 관들 부근에 다다르자마자 왼쪽으로 꺾었다. 모두가 왼쪽으로 꺾는 그 순간, 나는, 일반 화살 세 개를 꺼내어 속사 준비를 했다.

도박이다. 하지만, 실패해봐야 화살 세 개 날리는 거지만, 성공하면 우리는 크게 여유가 생길 것이다. 말의 등 위다. 숨을 고를 여유가 없다. 나는 레브의 고삐를 오른팔꿈치에 감은 채, 몸앞으로 달려가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최대한 빠르게, 하지만 최대한 정확히. 나는, 마나의 레일을 만들면서, 단 한번만,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흡! 하고 숨을 멈춘 후... 최대한 빠르게, 레일에 물린 화살을 놓고, 다시 빠르게 당겨, 같은 레일에 화살을 물린 후 놓고, 다시 빠르게 당겨, 세 발째도 같은 레일 위로 쏘아보냈다. 한 레일에 화살을 두 발 세 발 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내 도박은, 반 정도만 성공했다.

퍼엉! 첫 번째 화살은 충분한 가속력을 얻기 전에 관에 부딪혔다. 그래서 평소처럼 관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관을 넘어트렸다. 관은 마치, 어릴 적에 나무토막으로 했던 도미노 놀이처럼, 옆 관을 몇 개 넘어트렸다. 그리고... 그 레일 위로 두 번째 화살이 그대로 쏘아졌다.

두 번째 화살은 관들이 몇 개 넘어져주는 바람에 꽤 가속할 수 있었고, 관을 두 개 관통할 수 있었다. 관통당해, 좌우로 구멍이 뚫린 관은, 구멍과 관 바닥으로 피를 뿜어내며, 서서히 넘어갔다. 화살이 명중한 세 번째 관은 관통하지 못하고 반 정도 틀어박힌 후 아까처럼 옆으로 넘어가며 다른 관들을 몇 개 넘어트렸다. 이제 대략 80보 정도 확보가 된 상황.

그리고... 세 번째 화살이, 80보만큼 가속하며, 날아갔다. 마나의 레일 안에 갖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날아간 화살은, 순식간에... 꽝! 꽝! 꽝! 열 개 이상의 관을 꿰뚫으며 날아갔다. 그러면서도 아직 마나의 레일 안에 있는 화살은 전혀 힘을 잃지 않고 날아갔다. 내 기대대로 말이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 화살은 꽈꽈꽈꽈꽈꽝! 하는 식으로 꽝! 과 꽝! 사이를 점점 없애며 날아가다가... 결국, 얼마나 갔는지 모를 지점에서 마침내 힘을 잃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궁병대와 마법사대가 입을 모아 환성을 질렀다. 내가 앞을 바라보니, (충직한 레브는,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앞쪽에도 이미 환성을 받기에 충분한 광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흑인 병사의 주력에 우리 보병의 주력이 돌입하여 창과 검을 맞부딪히고, 우리 마법사대와 궁수대의 사격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이라, 우리 급조된 돌격대가 화살이나 마법의 밥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본 듯, 우리 일행에서 아버님을 비롯한 열 명 정도가 벗어나, 관을 사이에 둔 채 2열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앗!”

아버님을 비롯한, 열 명 정도의 기사들이, 전원 칼을 꺼내들고, 칼에 마나 에지(mana edge)를 발동한 채, 검으로 관을 베어넘기고 있었다. 나는 그저께 다르임 형님이 두꺼운 숙영지의 문, 보통의 집의 기둥 굵기는 되는 통나무를 베어넘기던 것을 기억했다. 아무리 두꺼운 관이라도 그 기둥만큼은 안 될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마치 잘 드는 칼로 부드러운 치즈를 자르듯, 무리없이 검은 일도양단, 관과 그 안에 든 흑인 병사까지 베어넘기고 있었다. 비스듬히 칼이 자르고 지나가면, 잠시 후, 스르르륵, 잘린 윗부분이 비스듬히 잘린 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왔다. 피와 골수와 창자와 온갖 것들을 흘리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사상태에 있었지만 인간임에는 틀림없던 관 속의 내용물은 어느새 반으로 잘린 끔찍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 하! 하아!”

역겨워할 틈도,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다. 우리가 지금 더 빨리 달릴수록, 조금이라도 통로가 더 넓어진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마법사대가 약간은 통제를 회복한 모양이었다. 불덩어리 몇 개가 전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세워져 있는 관을 향해 날아가는 것들도 있었다. 다행히 엔데 경이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다.

그 때, 차가운 것이 볼에 느껴졌다. 뭐지. 볼 뿐만 아니라 팔에도 한 조각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아니, 축축하다. 비가 오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자, 아까 마법을 쏘기 위해 끌어모은 구름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는 낙뢰 마법을 위해 구름을 모으면, 낙뢰가 떨어진 후 얼마 안 있어 구름은 흩어진다. 그 구름은 마나로 인위적으로 모은 것이니까. 하지만 아까 엔데 경이 대규모의 번개 마법을 위해 마나로 구름을 만들었을 때, 워낙 많은 마나로 큰 구름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법이 끝난 후에도, 구름이 일부 남아버린 것이다. 일부라고 해도 전장의 상당부분을 덮기에는 충분했다.

후두두두둑.

본격적으로, 자연스러운(?) 비가, 전장에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는 온통 피바다를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그 피바다에, 비오는 날의 습한 공기가 더해지자, 피안개가 피어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공기 자체에서 피 맛이, 그 약간의 쇠맛마저 들어있는 그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역겹다기보다는,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내가 살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있는 걸까.

“그래도 다행이군요! 비가 오니 저 ‘총’은 사용하지 못 할 겁니다!”

냉철은 마스 경, 당신에게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비가 내려서 피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나보다, 비가 내려서 화약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고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말이다. 아니면, 내가 아직 전쟁이라는 것의 진면목을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어느새, 관을 사이에 끼고 달려가던 사람들이 거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쯤, 새로 나온 관들 중 잘리지 않은 것들이 열리고, 역시 흑인 병사들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나오는 족족, 빠르게 말을 달리며 무기를 채 들기도 전에 목을 날리는 린베크 아버님과 기사들의 밥이 될 뿐이었다. 한 녀석이 검으로 저항해 봤지만, 목을 베느라 잠시 지체해 속도가 약간 느려진 아버님을 대신해 선두로 속행해 나선 어느 기사가 먼저 검을 강하게 쳐내렸고, 그 때문에 생긴 틈을 그 기사의 뒤를 쫓던 기사가 날려버렸다. 목이 허공으로 약간 붕 떴다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갔다.

“하! 하! 하아!”

“항복하고자 하는 자는 무기를 놓고 엎드려라!”

마스 경이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외쳤다. 우리 앞에 있던 흑인 병사가 고작 여남은 명 정도 되는 시점에서 그들은 모두 무기를 땅에 버리고, 저항을 포기한 채 납죽 엎드렸다. 린베크 아버님은 당황하지 않고 말의 고삐를 잡아채, 말이 빙 돌아 선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급한 선회는 아니라서 아버님과 기사들을 좇던 우리 말들이 그를 좇아 반대쪽을 바라보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도 할 일은 없었다. 내 3연사에 이미 넘어지고 꿰뚫린 관들 위로 정신차린 마법사들이 화염 마법을 퍼부어 관들은 이미 상당수가 불타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있던 가사 상태의 사람이나 죽어버린 시체들까지도. 약간 과장 더 보태서 할 일이 없었다. 이미 두 번째로 튀어나온 수백 개의 관은 의미있는 전력으로서의 모습이 없었다.

“트롯(trot)!”

스스로도 약간 속도를 늦추며, 아버님이 그렇게 크게 외쳤다. 전체 대열이 아버님의 말을 따라 속도를 뚝 떨어트렸다. 나는 돌입한 보병대를 바라보았다. 통일된 힘을 가지고 돌입한 보병대는, 장창과 방패를 이용해서 적을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적을 반으로 가르기 직전이었다. 아군을 사격하는 것이 두려워 사격은 멎어 있었다. 그걸 본 아버님은 혀를 쯧쯧 차더니, 부관을 불렀다.

“적의 우익에 화살과 마법을 퍼부어라! 적이 돌출한 우리 보병을 노리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우리는 분단된 적의 좌익으로 향한다!”

============================ 작품 후기 ============================

조금만 더 썼으면 또 꾸벅꾸벅 졸면서 엉뚱한 말이 적히는 걸 볼 수 있었겠군요. 대체 정신차려보니 왜 선거구라는 단어가 기록돼있는거니...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남부군이 왜 저렇게 싸우는가?에 대해서는 저들이 왜 저런 전투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작중에서 서술될 겁니다. 반군이 어떻게 황제군이 어떻게 나올 거라는 걸 알았는가에 대해서는... 음. 전체적인 병력이 우위에 있는 황제군을 이기기 위해, 기병을 우선 떼어내고, 보병을 고립시킨 후, 비대칭 전력인 궁수와 마법사를 포위해 죽이거나, 혹은 보병을 먼저 죽이거나 이런 전략을 짰을 겁니다. 애초에 전력이 앞서온 북부는 꼼수를 정수로 뚫어내려는 시도를 한 거구요. 차차 앞으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astarea 님 // 제가 비를 내리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걸 어찌 아시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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