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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33화 (233/309)

00233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시가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부 영지에는 산이랄 것이 없어서 군대가 이동하는 것을 가릴 것이 없고, 우리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 속도로, 황제의 깃발과 트리클 교의 천칭 깃발을 세워들고 당당하게 이동했으니까. 전쟁을 예감한, 성벽 바깥의 거주민들은 이미 몸을 피하거나 집 안에 숨어버린 지 오래일 것이다.

하지만 본대는 성벽 바깥의 2~3층 집들이 늘어선 곳들 밖에서 멈춰섰다. 황제 폐하를 모시다보니, 저들이 빈 집을 점령하고 황제 폐하를 저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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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는 병력을 삼키는 법이다.”

사령관님은 본대를 융파트 영지의 본성 밖에서 대기하게 하며 말했다.

“나는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영이 내려진 우리 군의 군기를 믿는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란 것 역시 알고 있다. 분명히, 우리 병사들이나 심지어 기사들마저도, 도시에 들어가면 약탈에 나서거나, 부녀자 강간 등 범죄에 나설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한 건만 나와도 우리가 저 성문을 평화적으로 열 수 있는 길은 사라진다.”

사르임 경, 다르임 형님, 가벼운 과부하 증세에서 회복된 엔데 경, 그리고 황제 폐하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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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금, 내가, 대열의 맨 앞, 성문에서 300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통지문을 넣은 통을 감은 화살을 활에 재고, 마나의 레일을 대각선 위로 쭉 뻗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빠아아아아. 나는 이 화살이 충분히 멀리 날아가기를 빌며,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기를 빌며, 그리고 감긴 통이 떨어지지 않기를 빌며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르륵. 꽈앙! 화살은 순식간에 까마득한 점이 되었다.

저번 지난 구릉지에서의 회전 이후로 내 보좌격이 되어버린 마스 경이, 눈에 망원경을 대고 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성공입니다! 성 안으로 낙하했습니다!”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의 활로 쏘면 아무리 바람의 도움을 받아도 300보 거리에서 저 성벽을 넘기는커녕 성벽까지 닿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불살은 저 까마득한 거리까지 날아가서 성벽 안에까지 무사히 전문을 전달할 수 있었다.

광대놀음 같지만... 안 그래도 도시로 못 들어가서 사기가 떨어져 있는 병력들에게 뭔가 볼 거리를 줘서 잠시나마 기분전환이 된다면야...

“좋다. 조금 이르지만, 이 자리에 진을 치고 휴식에 들어가겠다. 렛지 장관, 혹시 우리에게 식량을 팔 만한 사람들이 남아있을지 저 도시로 사람들을 보내 타진해 보시오. 나머지 지휘관들은 휘하 병력이 예기가 꺾이지 않게끔 잘 관리해 주기 바라오.”

사령관님이 주변에 모인 지휘관들에게 말하자, 지휘관들은 군례를 올리고 흩어져갔다. 나는 활을 갈무리하며,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애마에 올라타, 멀리 떨어진 성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황제 폐하를 바라보았다. 폐하의 얼굴은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마음 안에서 번뇌가 서로 부딪치고 있는 걸까. 나는 지난 구릉지에서 회전이 끝난 날, 황제 폐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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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고 있던 종이 몇 장을 부스럭거리며 넘기고는, 말했다.

“우선... 마지막에 우리를 쳤던 님크 기사단의 잔당을 심문한 결과, 죽어버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고위 지휘관들은 부정하고 있습니다만... 하위 기사들은 모두, 황제 폐하를 치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어떤 경우건, 적어도 기사단의 반란은 확실한 상황이군요.”

폐하의 표정은 씁쓸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그런 씁쓸함일까. 폐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신료들인 우리 역시도 자연스럽게 약간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폐하. 오늘 제도로 요청서를 발송해서, 수사에 관련된 인원들이 보강되면, 그래서 심문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면, 기사단과 공작가와의 관계를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로 지급으로 메시지를 보냈으니 오는 데 1주일 정도 걸릴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융파트 영지의 상황이 어떠하다고요?”

형은 간략히, 아까 했던 이야기를 했다. 폐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사령관님. 오늘 우리가 맞붙은 병력이, 주로 융파트에서 나온 병력은 맞습니까?”

사령관님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90% 이상의 확률로 그렇습니다.”

“그럼 현재 융파트가에 남은 병력 현황은 어떻습니까?”

사령관님은 에아임 형을 바라보았고, 에아임 형은 종이를 두어 장 넘기더니 말했다.

“사병(私兵)이 더 없다는 전제 하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융파트의 주 전력인 기사단은 거의 괴멸상태에 있다고 보입니다. 애초부터 약했던 보병 전력이나 마법사대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게다가, 우리는 국교인 트리클 교의 사제들에 의해 치유를 받을 수 있지만, 저들은 교황 성하께서 ‘반란군을 돕는 자는 파문에 처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신 바 있으니, 부상병의 복귀도 요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사령관님이 재우치자 형은 서류를 내려놓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흑인 병사들까지 동원했지만, 우리 군의 선전으로 인해 흑인 병사들도 90%가 사망하고 나머지 10%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적의 병력은, 영지 수비를 하는 경비병력 말고는 전력으로서의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 폐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융파트로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나와, 아버님과, 형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물론 황당한 소리는 아니다. 융파트가의 주 병력인 님크 기사단을 비롯해 상당한 수의 병력이 이미 사라진 시점에서, 융파트 가 주변의 군소 백작령, 자작령 등의 한 줌의 먼지 같은 병력들 말고는 딱히 우리 군을 막을 만한 것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사령관님이 묻자, 폐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융파트 가를 포함해 이번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내가 용서해 주면 그들이 다시금 나에게 충성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했었지요. 뫼르말 백작가가 남대륙인을 몰래 들여왔다는 것을 안 시점부터 나는 계속 그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래. 폐하는 나에게 ‘내가 혼자 질 짐이다’라고 말씀하셨었지. 하긴, 이런 문제에 있어 어느 누구의 조언이 무슨 소용일까. 신뢰를 배신당한 느낌일텐데. 나에게 인생의 경험은 많이 없지만,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어둡고 찐득찐득한지, 그래서 결국 거기에 발을 들인 사람을 잡아먹는지는,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할까요. 이 나라의 구조는 엉망입니다. 치르낙 대왕님께서 워낙 위대하신 분이셔서, 불만 없이 서로를 묶는 데 성공하셨지만... 그 때부터, 400년 전부터, 이런 모순은 계속 잉태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확실히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푸른 산맥 서쪽의 직할구역과 로그푸스 변경백령 뿐이고, 그 너머의 대륙 동쪽은 지배하는 이들을 견제하는 능력만 갖췄을 뿐, 사실 세 공작이 나누어 다스리는 것에 불과하지요. ‘추밀원’이라는 이름으로 아들들을 제도에 보내게끔 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와 아버님과 형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주변에 혹시 모를 듣는 귀가 있나 살피다가를 반복했다. 그럴 수밖에. 제국의 귀족을 꼽으라면 누구나 3공작 – 북대공, 융파트, 나스프를 꼽는다. 그런 역사가 4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거다. 누구나 이 상황이 미봉책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 심지어 역대 황제 폐하들마저도 이 상황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대륙 어느누구나 존경하는 치르낙 대왕의 업적이기도 하거니와, 지리적 환경이나 제국의 국력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쉽게 말해 아주 좋지 않은 곳에 생긴 벌집 같은 문제였다. 어느 누구도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데 그걸 지금의 황제 폐하가 직접 건드리고 나온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머나먼 곳, 푸른 산맥보다 바다가 더 가까운 곳까지 제도의 입김이 미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력이 95나 되는 사람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지성을 지녔을 사람이 저런 이상주의적인 말을 할 리가 없다,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폐하는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대륙에서 제일 고귀한 자 중 하나인 공작이 반역을 일으키는 상황은 분명 황권이 제대로 섰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융파트 영지를 직접 징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령관님.”

“넷.”

부지불식간에 차렷 자세를 취한 린베크 사령관님에게 폐하는 어느새 일어서 말했다. 말투에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은 없이 덤덤했지만, 누가 보아도 위엄있고 단호하다고 할 자세로 말했다.

“내일부터 전 군은 융파트 영지로 진군합니다. 사령관으로서 전 군의 안전과 승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황제의 결정입니다.”

“명을 받듭니다, 폐하.”

“에아임 형님. 형님은 지금 즉시 기병 지휘관과 협의하여, 병력을 파견해, 회전 전날 진영을 빠져나간 파라 융파트 및 그 수하들을 데려오기 바랍니다. 이 역시 황제의 결정입니다.”

“명을 받듭니다, 폐하.”

============================ 작품 후기 ============================

오랜만입니다.

그간 쉬면서 몸의 피로도 좀 회복하고... 전개를 좀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쓰면서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제 일신상의 변화가 있어서 얼마 후부터는 하루 한 편씩만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써놓겠습니다.

기다려주신 여러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리리플 열심히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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