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39화 (239/309)

00239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뭐냐.”

폐하는 명백히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말투였다.

“왜 이제 와서, 이렇게 무릎을 꿇고 나타난 것이냐.”

“인간의 황제여. 사정은 인간 기리인 모스가 말한 것과 같소.”

“그걸 지금 말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던 황제 폐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나는 뭐라 말할지 몰라서, 그리고 누가 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당황해서 서 있었다. 의외로 입을 연 것은 프그단이었다.

“인간의 황제여.”

폐하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거렸다. 분노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숨을 들썩이며 자신을 조절하는 폐하를 향해, 감정이라고는 하나 없어 만지면 돌가루가 묻어날 것 같은 광물의 질감인 프그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평생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소. 그러니 내가 그대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오.”

“...궁성에서는 대체 어찌 지낸 것인가?”

폐하의 뜬금없는 물음에 프그단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이지, 욕망이 아니오. 인간의 욕망은,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실수는 참으로 이해하기 쉽소. 그리고 궁성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욕망이 제 1의 행동원칙이니, 내가 왜 지내기 어려웠겠소.”

“...”

폐하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프그단의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약간은 화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나도 저 목소리를 듣고는 내가 마치 돌이나 바위에게, 혹은 강물에게 화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쨌든, 인간의 황제여. 그대가 지금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소. 물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소. 내게 그대가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선황을 살해한 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것.”

“그 뿐만 아니다. 너는 반란의 배후 인물이기도 하니, 내 원수이자 내 적이다.”

프그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그단의 표정은 아까 내 천막에서 나에게 말할 때와 차이가 없었다.

“그 최대의 적이 스스로 저항을 포기하고 그대의 앞에 무릎을 꿇었소. 이미 목숨도 바칠 생각으로 온 것이니, 잠시 이야기만 들어줄 수 없겠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다이오.”

‘띠링!’

<아제트 하페르의 철혈이 발동합니다. 수치는 85입니다.>

<이미 많은 경험으로 면역이 있는 당신에게는 영향이 없습니다.>

“후우... 그래, 알았다. 말하라. 듣겠다.”

“고맙소.”

프그단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정리해 말을 시작했다. 천 년 전,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금제로 인해 말할 수 없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인류 이외의 모든 이종족들이 역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 금제를 풀기 위한 전승이 각 종족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러 전승들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특정한 ‘인류’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건으로 생각된다. 천 년동안 기다렸지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4백년 전 치르낙 대왕이 대륙을 통일하며 대륙이 안정된 후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그때 기리인에게, 세상을 어지럽게 할 것이라고 했던 것은...”

“그렇소. 세상을 어지럽게 해, 평소라면 숨어있을만한 여러 사람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튀어나오게 하려 했던 것이오. 그럼 그 중에 우리가 찾을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소.”

프그단은 나와 협의한 대로, 황제에게 ‘내가 그들이 찾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폐하와의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걱정된 내 선택이었고, ‘만약 폐하가 나를 의심하게 된다면, 정세의 안정은 물건너간다’는 내 논리적인 설득을 프그단이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지독히도 이기적이군.”

“인정하오.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몰려 있었소.”

“자기합리화에도 능하군.”

...나와 같은 말을 하는군.

“좋다. 그게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인가?”

“아니, 충고가 하나 남았소. 인간의 황제여.”

폐하는 이빨을 꽉 내리문 채 잇사이로 잇소리를 뱉았다.

“...지껄여봐라.”

“아마 그대는 나를 제도로 압송하여 공개적으로 처형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오.”

“이제 와서 두렵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게 그대의 뜻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소.”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모욕과 고문 좀 더 당한들 무슨 차이이겠는가.”

...차이가 클 것 같은데요... 철혈로 협상에는 임하지만 냉정하시지는 못하군요. 아니, 나도 부모님의 원수를 만난다면 그럴지도...?

“그 이야기가 아니오. 내 추론이 맞다면 내 정체에 대해서는 고위직들만이 알고 있을 거라고 믿소만.”

“그건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추론하게 되었는가 궁금하군.”

“간단하오. 당신들 사이에 이종족이 정체를 감춘 채 숨어있다 해 보시오. 그 이야기가 퍼졌다면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될 것이오. 사회는 얼어붙어버리겠지. 어디 그 뿐이겠소. 당신이 내리는 어떤 지시도, 회의에서 있을 어느 누구의 말도 ‘혹시 저 말이 이종족이라서 하는 말일까’ 하는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어디, 내 말이 틀렸다면 부정해 보시오, 하며, 프그단은 고개를 쳐들었다. 폐하는, 내 기대대로, 고개를 저었다. 폐하도 지력이 95다. 최고 수준의 지능이란 말이다. 저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천 년 가까이 인간을 지켜봐 온 프그단의 관찰에 건질 부분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기분 나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인간의 황제여. 이미 우리 동족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들을 위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오. 그대들 인간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오. 우리의 존재를 어둠에 묻어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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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그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언제 말이냐? 프그단이 자기 동족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말이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폐하는 일언지하에 대답했다.

“더러웠지.”

“아...”

“기리인. 나는 인류 이외의 종족이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상상만 해도, 막 화가 치솟고 끔찍하다. 당장 궁내부 장관이었던 프그단이 이종족이지 않았냐. 그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숨어다니며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냐. 나는 보기만 해도 막,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는데...”

으음. 나는 안 그랬는데. 물론 화가 났지만, 당장 찢어죽이고 싶은 생각까지는 안 들었는데... 폐하의 분노는, 프그단이라는 개체 하나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이종족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분노인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폐하의 분노는, 좀 과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걸 지금 밖으로 꺼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말은 힘이 있다. 내가 말로 그 생각을 구체화하는 순간, 내 생각은 거기에 묶어버릴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폐하를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다.

“폐하. 그 상황에서 폐하께서 보여주신 자제력은 정말 훌륭하셨사옵니다.”

“아, 그것 말이냐... 그래,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야, 프그단이 한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종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분노하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말이다, 그 분노와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당장이라도 저 빌어먹을 잡것들을 죄다 잡아 없애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쳐 올라오더구나. 몇 번이나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예를 들면 에아임 형에게 꼭 물어보자. 폐하의 저 분노는 좀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힘들었지만, 프그단의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되는 길이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기리인.”

폐하는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프그단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정적으로 생각한 계기가 뭐였을 것 같냐?”

“글쎄요...”

“너 때문이었다.”

나는 저절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폐하를 바라보았다. 폐하는 나를 바라보며, 약간은 멋쩍은 듯 웃고 있었다.

“프그단이 말한 대로, 프그단을 공개 처형하면 그 후로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할 사회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가장 의심받을 게 누구일까? 내 생각엔 기리인, 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순식간에 혜성처럼 사교계에 나타나, 한 달 남짓한 기간만에 스스로의 공적 만으로 백작위를 차지했고, 전쟁터에서도 누구도 의심하지 못한 공훈을 세웠다. 네가 쏘는 화살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오늘 너는 프그단을 묶어 내 앞으로 데려왔다.”

아... 그런가. 나는 폐하의 사고의 흐름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꽤나 확률이 높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 상황에서, 프그단의 정체가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분명 너에 대한 의심이 나올 거다. 동족까지 팔아 출세를 추구한 사람이다, 그의 공적은 그가 엘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반드시 나올 거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정체는 불분명하고, 추적은 불가능하고, 막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너를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좋은 친구 하나를 잃게 되겠지.”

“폐하...”

“기리인.”

폐하는 갑자기 절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소서, 폐하.”

“너는, 인간이지? 위장한 이종족이 아니지? 그렇다고 말해다오. 부탁이다.”

폐하는 정말 절실한 말투로 저 말을 나에게 했다. 아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폐하, 소신의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걸고, 그리고 폐하에게 소신이 느끼는 우정에 걸고 맹세합니다. 소신은 소신 그대로이며 다른 정체가 없습니다.”

“그래... 믿겠다. 기리인.”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자다 깨서...

eastarea 님 // 월요일이네요. 힘내세요!

스키테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에 어울리는 글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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