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41화 (241/309)

00241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은 세 가지.

1. ‘이종족들에게 내려진 금제’에 대해.

과연 그 금제는 왜 내려졌고,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가. 나는 마법사였다. 금제(geas)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대략은 안다. 마법적인 것이든, 아니면 신성(神聖)에 의한 것이든, 단순한 마나의 배치만으로는 금제의 기간이 길게 작용하지 않는다. 각인이든, 신물이든, 마법진이든, 위력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금제는 자그마치 천 년이나 가는 시간과, 대륙 전역이라는 범위를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금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내용일까.

2. 이종족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에 대해.

아쉽게도, 형에게서는 충분한 사실을 캐내지 못했다. 황제 폐하를 보면서 나는, 그가 가지는 증오의 정도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 그가 그 증오를 프그단과 회색 엘프들에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종족 전체에 대해 돌리는 것을 보고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개별 개인을 탓해야 할 것을 전체로 돌리는 것이 드문 일은 결코 아니다. 나만 해도, 여행중에, 레카 시가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아직 나는 결코 사람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적을 만듬으로서 자신의 집단을 규정하고, 그 집단 안에서 소속감을 얻는다는 걸 알 정도는 된다.

그런데, 충분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라면 그 장벽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방법도 다양하고, 그 장벽을 넘어선 결과도 다양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황제 폐하를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지능이 95라는 점에서 그의 상태가 정상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게 가능하리라고, 즉 프그단을 비롯한 몇몇 ‘용서받지 못할’ 이종족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종족들에 대해 ‘이해’하고, 그로부터 장벽을 넘는 것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 폐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 그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나에게 ‘너는 이종족이 아니지?’라고 묻던 그의 얼굴은 정말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차마 농담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럼, 그 증오가, 진짜일까? 즉, 아버지를 살해하고, 세상을 어지럽힌 존재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는 ‘분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일까? 즉 그의 분노는 ‘학습된’ 것일까?

비교 대상이 너무 적었다. 이종족에 대해 아는 사람은 몇 없다. 그 중에서 내가 저런 이야기까지 나눠볼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었다. 나는 그래서, 우선,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잘 아는 사람 – 나 자신을 황제 폐하와 비교해 보았지만, 폐하의 분노가 과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형을 찾아온 것은, 그리고 약간 떠 본 것은 그래서였다. 사태에 대해 중립적인 형은 과연 이종족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폐하처럼, 역겹고 화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한 발 정도는 물러나 생각하고 있을까. 그걸 안다면 이 궁금증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형을 충분히 떠 보지 못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반응을 캐 봐야겠다. 예를 들면 선생님에게나...

그리고, 내가 지금 가장 골머리를 앓는 세 번째 궁금증.

3. 과연 트리클 신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트리클 신은 실재하신다. 그것은 수많은 사제와 주교,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교황 성하께서 만들어내시는 수많은 치유와 권능으로 입증된다. 신이 계시지 않다면 그 치유의 역사도, 권능의 기적들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신은 공평하시다. 트리클 신의 신물은 천칭이다. 악행을 하면, 자신의 접시에 악업의 추가 쌓인다. 선행을 하면, 반대로, 선행의 추가 쌓인다. 저울눈을 보는 때는 이르게 올 수도, 느리게 올 수도 있기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천칭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악행을 저지를때는 자신의 천칭에 악업이 쌓일 것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아니, 이 이티클레 대륙의 모든 생물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티클레 대륙의 역사에 대해 학교에서 이렇게 배운다. 시간마저도 의미가 없었던 그 옛날, 모든 신이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신들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만들었다. 신들 각자는, 각자가 원하는 바대로 대륙의 부분부분을 꾸미고, 종족을 만들었다. 이를 ‘만신의 창세’라고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신들은 왜인지는 몰라도 둘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 사소한 대립에서 발전한 이 대립은 어느새 신들의 대다수가 둘로 나뉘어 세상을 망가트릴 기세로 싸우는 초대형 전쟁이 되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렇게 될 것이라서 그렇게 된 거였는지는 몰라도, 신들이 나뉜 것을 보니 차가운 속성을 지녔거나 그에 가까운 신들과, 반대로 뜨거운 속성을 지녔거나 그에 가까운 신들로 나뉘게 되었다.

이 전쟁을 ‘냉염전쟁(冷炎戰爭)’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신들 중 열에 아홉이 소멸되었고, 그 신들에게 속해 있던 피조물들도 종말을 맞았다. 그 뿐만 아니다. 신들도 소멸되면서 대륙 자체도 많이 변했다. 우리 북부 대영지가 위치하고 있는 백색 산맥은 냉 속성의 신들의 흔적이라는 설이 정설이고, 아마 남대륙은 염 속성의 신들의 자리였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냉염전쟁 이후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서로 대립을 이어간 신들이 있었다. 천칭의 수호자였기에 전쟁 내내 어느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던 트리클 신은, 천칭의 저울대마저 엎어버리려 드는 신들이 나오자 참다 못해 결국 자신의 저울대를 무기삼아 나머지 신들마저 모두 쓸어버렸다. 이를 ‘멸신전쟁(滅神戰爭)’이라 부른다. 멸신전쟁 때 트리클 신이 썼던 무기가 밤하늘에 흐르는 별의 강으로 남은 ‘트리클의 저울대’이고, 멸신전쟁의 흔적이 우리가 얼마 전 전쟁을 치렀던 그 ‘대균열’이다.

그리고, 트리클은, 왠지는 몰라도, 신이 사라진 인간을 불쌍히 여겨, 스스로의 피조물이 아닌데도 피조물처럼 돌보기 시작했다. 그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제들을 만들고, 인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다. 그리고 신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기에, 나는 지금까지 신의 존재와 신의 역사하심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그단은 몇 번 말했다. 트리클은 우리의 신이 아니라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이종족을 살리고 싶은 것은, 트리클에 대한 복수의 마음이라고. 프그단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를 흔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면 – 엘프들은, 그리고 다른 이종족들은, 멸신전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 트리클 신을 나는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아, 물론 안다. 평생 믿어왔고, 그 권능의 발현을 의심할 수 없는 트리클 신에 대한 믿음이, 분명 교활하기 짝이 없는 어느 엘프의 몇 마디 말에 흔들려 버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메인 퀘스트 창을 띄워올렸다.

<메인 퀘스트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

<이티클레 대륙에서 살아가게 된 당신.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살아가는 이 대륙에는 여러 신화와 전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4백년 전 제국을 건설한 치르낙 대왕 이후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륙에는 아직 전해지지 않은 신화와 전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진실은 아직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실은 묻혀진 지 몇천년이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숨겨진 진실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되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퀘스트 달성 조건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을 안다

퀘스트 진행 힌트 :

1. 제도로 가서 요안나와 함께 당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세요. - 진행중

2. 은둔중인 고대 종족들에 대해 알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고대 종족들 사이에 조각조각 널리 퍼진 그들의 ‘금제’에 대해 단서를 모으세요.

- 엘프 종족들에게서 ‘마나의 갑옷을 입은 자’라는 단서를 수집하였습니다.

- 단서를 수집하면 메인 퀘스트 진행에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

퀘스트 보상 : ???>

<연관된 메인 퀘스트 – 프그단의 부탁>

머리가 복잡하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이 그러했듯, 이번 일도 어디 가서 물어볼 수가 없다. 특히 트리클 신과 관련된 일들은 더더욱 말이다. 아무리 친한 사제, 예를 들면 톨라츠 아저씨처럼 사람 좋고 푸근한 사람이라 해도 – 이런 일은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고도 남으니까. 그리고, 신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사제는, 지금까지의 친분이나 개개인의 품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으니까.

하아. 결국, 저 ‘프그단의 부탁’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은, 그 미룬 결정은 여전히, 오롯이 내 몫이다. 그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의문점을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녹록하지 않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프그단의 부탁’ 창을 건드려 띄웠다.

<메인 퀘스트 – 프그단의 부탁>

<황제 시해범이며, 반란의 배후이며, 당신의 목숨을 위협한 바 있는 회색 엘프 프그단. 당신이 그에게 좋은 감정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어, 당신에게 부탁을 제시했습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메인 퀘스트에 분기가 일어납니다.>

<어느 쪽이 유리하다 불리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또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이성과 품성을 동원해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결정의 권한도,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당신의 것입니다. 본 시스템은 그런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것입니다.>

<프그단의 부탁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 작품 후기 ============================

스피드웨건은 설명을 마쳤으니 이제 물러가도록 하지!

...설명충이 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 죄송합니다.

이제 두세 편 정도면 이 챕터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때 썼던 챕터라 다시 읽어봐도 좀 아쉽기만 합니다.

얼른 심기일전해서 다음 챕터에는 좀 더 재밌는 내용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고 선/추/코/쿠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습서 님 후원쿠폰 6장 정말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jin-matient 님, 스키테 님 // 의문에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astarea 님 //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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