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42화 (242/309)

00242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아직 Y냐 N이냐를 정하지 못한 채로 나는 다음 며칠을 지냈다. 그저 황제 폐하나, 에아임 형, 혹은 사령부의 일을 간간이 도우며, 그 다음 며칠간 벌어진 일의 관찰자인 것처럼 며칠을 지냈다.

무조건 항복 선언을 접수한 다음 날, 고즈스 경의 말대로 융파트 공작과 뫼르말 백작, 그리고 수사기사 이트 누웨트 경을 비롯한 몇 명의 반란 수괴가 몸을 묶은 채 나타나 폐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미 프그단을 통해 일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었던 폐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없는 모욕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그들을 정중히 대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배석자를 두긴 했지만, 융파트 공작 부자간 상봉도 이루어질 정도였다. 공작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 그것이 물리적인 의미로 머리와 목이 분리되는 것이건, 아니면 정치적인 의미로 모든 작위와 권력을 잃는 것이건 – 공작위와 영지는 파라 융파트 경에게 계승될 듯 했다. 황제 폐하로서도 제국의 3공작 중 하나가 단번에 없어지게 되면 그를 소화하는데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파라 경에게 공개적인 충성서약을 받고, 그를 다음 융파트 공작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했다.

하지만 뫼르말 백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인정을 바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뫼르말 가의 외동딸이었던 알리시아 뫼르말은 선황제 폐하와 함께 사망하였고, 선황 폐하의 유언을 받든 황제 폐하께서는 뫼르말 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담이었을까, 제발이 저렸던 듯 뫼르말 백작가는 스스로 반역의 길을 선택해 버렸다. 현 융파트 공작을 목베지 않는다면(파라 경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융파트 공을 수도의 작은 저택에 연금하는 정도의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인질의 기능도 겸해서다) 반역자들 중 주모자격인 한 사람을 골라 처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지금의 뫼르말 백작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뫼르말 백작가는 멸문(滅門)이 확정적이었다.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에, 융파트 성 내로 파견된 선발대가 융파트 성을 장악하였다는 보고를 해 왔다. 그 다음날 우리는 황제 폐하와 엄선된 정예 기사와 병사들 3천명으로 융파트 성에 이르는 대로에서 시가 행진을 했다. 반란은 진압되었으며, 융파트 영지에는 이제 황제의 손길이 강하게 미칠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행사였지만, 동시에 종전을 가장 강렬하게 선언하는 방식이기도 했기에 그랬다.

그리고 나는 최고의 전공을 세운 장수로서, 그리고 새 황제 폐하의 최측근 중 한명으로서,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자니 매우 민망하지만) 얼굴값 때문에 행렬의 최선두에 서야 했다. 레브가 아닌, 기사단의 거대한 전마가 이끄는, 급조된 마차에 올라, 활을 등에 맨 채, 길 좌우에 늘어서고 2층 창문에 매달려 우리를 바라보는 융파트 영지의 사람들 사이로 지나갔다.

내 이름이 꽤나 알려진 모양이었다. 융파트 군의 패잔병으로부터 퍼진 소문이 이미 널리 퍼진 것일까.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로부터 “괴물 활이다” “저런 미남이 괴물 활이라니...” 이런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별로 화는 나지 않았다. 화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흘깃, 뒤쪽을 곁눈질했다. 내 뒤에는 사령관님을 비롯한 각 군의 대장들이 나처럼 엄숙한 자세로 따라오고 있었고, 그 뒤에, 다른 마차보다 크고 호화스럽게 꾸며진 마차에 황제 폐하께서 앉아서 행렬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뒤를 따르고 계셨다. 이미 우리 앞에 지나간 번거대한 전마를 탄 기병대원에 압도된 저들은, 나를 비롯한 장교급들이 지나갈 때는 이미 압도되어 있었다. 나를 보면서는 그나마 ‘괴물 활’ 운운하던 그들은, 황제 폐하의 마차가 보이자마자 모두 고개를 깊이 숙였다. 폐하의 존재가 만든 압도된 침묵 속을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걸어, 이미 열린 지 오래인 융파트 성의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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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식 중에서 이렇게 조용하고 재미없는 개선식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마스 경과 함께 성문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모든 점령 절차는 이미 다 이뤄져 있었고, 공식적인 항복 의식은 저 안에서 폐하와 사령부가 몇몇 사람들만 데리고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융파트 공작을 비롯한 반란수괴에 대한 처벌은 제도에 도착해 논공행상을 치르면서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단, 두 사람, 뫼르말 백작과 수사기사 이트 누웨트 경에 대해서는 제국의 법률에 따라 참수한 후 그 목을 효수(梟首)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습니까? 저는 개선식이 처음이라...”

마스 경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점령지에서 한 개선식도 처음이긴 합니다. 승리한 군대와 그 장병들을 맞이하는 게 아니고, 자신들을 정복한 정복자를 맞이하는 기분일 테니까 말이죠. 그래도! 자고로 개선식 하면, 환호와, 꽃과, 어여쁜 처녀들의 웃음과 함성소리! 그게 제맛인데 말입니다.”

마스 경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 뒤에 깍지를 낀 채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제도에 가면 제대로 개선식을 하기로 했다니까, 그 때는 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잠시 반색하다가, 내 얼굴을 뚱하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안되겠습니다.”

“네? 갑자기 무슨...”

“백작님 옆에 서면 다들 백작님만 보고 환호할텐데, 그리고 백작님 호위병사인 저는 백작님 근처에 있어야 할 텐데, 그럼 처녀들이 백작님만 볼 것 아닙니까.”

“마스 경, 흰 소리는...”

“흰 소리라뇨. 저 진지합니다. 돌아가면 진지하게 대열 변경을 건의할 겁니다.”

“...마스 경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요? 알았으면 진작 같이 이렇게 놀러다닐 걸 그랬네요. 재미있는 사람이었네.”

다행히 마스 경은 그 화제로 나를 더 지분거릴 생각이 없었던 듯, 웃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이렇게,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돌아다니게 된 것은 일종의 위무 공작에 가까웠다. 에아임 형의 건의를 황제 폐하께서 받아들여, 황실의 내탕금을 푸셨다. 굶주리지야 않았지만 전쟁 때문에 분위기가 침체해지고 피폐해졌을, 그리고 나스프 공작이 초반 빠르게 황제의 편을 들면서 무역이 끊겨 생필품 수급이 어려워 내핍해졌을 융파트 영지의 사람들을 약간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제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좀 들어보고, 선전도 하기 위해 나가는 거였다. 쉽게 말해 나가서 돈을 좀 쓰고 오라는 거였다.

“백작님, 그럼 백작님만 믿어도 됩니까?”

“...뭘 말입니까?”

“성심껏 백작님을 섬긴 이 마스를 모른 체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아이고, 알았어요. 내가 살게요. 돈 받은 건 마스 경이 가져도 됩니다.”

“역시! 통 큰 호남자!”

나는 피식 하고 실소했다. 받은 돈이라봐야 얼마 안 되기도 하고... 마스 경에게는 내가 한 턱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늘같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는 재미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전쟁터에서는 나를 노린 화살들이나 마법들을 막아주기도 했고 말이다. 사람 보는 눈이 좋다던 그 에아임 형이 기억하고 아끼는 사람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기사의 봉급을 감안하면, 이런저런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이런 푼돈이라도 모으려고 하는 마스 경이 나는 밉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런, 데... 어디로 간다...”

“뭐, 어차피 다들 이리저리 흩어졌을 테니 우리도 그냥 발 닿는 대로 가 봅시다. 마스 경은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있습니까?”

“말씀 편하게 하시죠, 백작님.”

“아니, 그래도... 제가 너무 어리니까 말입니다. 저한테 형님 소리 듣고 싶으신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어우, 그러면 제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싫습니다. 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건 있지만, 뭐... 지금으로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군요.”

“어디 술집이 없을까...”

우리는, 정작 딱히 술집을 찾아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없이, 발 닿는대로 이리저리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딱 들어가는 순간,

“이런. 실수했군요.”

순식간에 약간 낮아지고 냉정해진 마스 경의 목소리.

“뭐가 말입니까?”

“백작님.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뭐가 말입니까.”

“백작님이 보시면 별로 속이 좋지 않을 광경일수도 있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아하니 이 곳은... 매음굴이군요.”

“매음굴...”

왠지 몰라도 약간은 어두워보이는 골목길에, 이미 살갗을 많이 드러낸 창녀들이 나와서 길거리를 지나는 남자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우리 군에서 나온 것 같은 남자들 몇 명도 복장이 약간은 흐트러진 채 골목 안으로 들어가거나, 바지춤을 추스르며 나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곧 이번 챕터가 끝나겠군요.

벌써 6월이네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전쟁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챕터였고, 썼으니 만족합니다.

좀 더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계속 해 보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eastarea 님 // 분기점 앞에서 세이브 로드를 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ㅠㅠ

화이트프레페 님 // 사실 게임이 아니라도 대화를 하면 그게 도움이 될 상황도 있죠. 적은 더 가깝게 두라는 말도 있고...

스키테 님 // 그 현실보상을 향해 계속 달려가는 중인 기리인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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