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4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아!”
함성이 너무 거대하면, 오히려 단어가 뭉개지고 와아- 하는 소리만 들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문에서부터 대로의 길가에 늘어선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며, 꽃을 뿌리며, 우리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가끔씩 만세-! 하는 소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마스 경, 당신이 여러 번 이야기했던, 여자들이 환호하는 맛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아니나다를까, 늘어서있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모두가 하나같이 열광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전쟁의 끝이라는 게 그런 걸까? 제국이 안정된 것을 기뻐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남편이거나, 연인인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그들의 기쁨과 환호는 생생했고 거짓이 없어 보였다.
“백작님, 손 좀 흔들어 주고 그러십쇼. 너무 굳어 있으십니다.”
내가 탄 마차에 함께... 한 단 아래도 함께라면 함께지만, 어쨌든 같은 마차에 옆을 향해 앉아서 길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던 마스 경이 나를 보며, 약간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간, 마스 경과 함께 지내며 그가 짓궂고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지만 그의 말을 따랐을 때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약간 찜찜했지만, 어쨌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꺄-악!”
순식간에 환호소리를 뒤엎을 정도의 비명소리가 나오며... 나를 향해 수백 수천 송이의 꽃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내 이럴줄 알았지!”
“와! 못생긴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누가 신이 공평하시다고 했냐!”
“좀 작작들 좀 던져요!”
마스 경과 함께 내 마차에 함께 올라탔던, 나를 호위해주던 15인의 병사와 한 명의 마법사가, 겨냥이 잘못되어 그들에게도 쏟아지는 꽃의 비를 손으로 가리며, 짐짓 못 견디겠다는 듯 투정섞인 목소리로, 하지만 웃는 얼굴로 장난스럽게 외치고 있었다. 뭐라더라. 제일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은 그 공을 세우기 위해 악업을 많이 쌓은 상태이기 때문에 천칭이 기울어 있으니, 일부러 그를 매도해서 그의 천칭의 짐을 나눠지려는 의도에서 생긴 풍습이라던가. 어쨌든, 제일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그와 가장 친한 장교나 병사들과 함께 한 마차를 타고, 그 병사들이 장난스럽게 던지는 놀림이나 비난을 받으며 개선식에 임하는 게 풍습이라던가.
“이러다 백작님 꽃에 잠겨서 익사하겠다!”
저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온갖 종류의 꽃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앞을 보기가 좀 곤란할 정도였다. 꽃만이 아니었다. 꽃에 묶은 손수건이며 말은 종이며... 어이쿠. 어떤 과감한 처자의 속옷까지 있구먼... 나는 괜시리 민망해서 얼굴을 돌렸다. 일부러 먼 곳을 보았는데, 왠지는 몰라도 그러자 더 환성 소리가 커졌다.
“정말 잘 생겼다...”
“모스 백작님! 이 쪽을 좀 봐 주세요!”
“여기에요! 여기요!”
내 마차 앞에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전공을 세웠다는 것이 크게 써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작님! 신궁! 모스! 기리인! 등 대중없이 내 이름이나 작위나 별명을 연호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 는 너무했다...
“백작님. 손이 멈춰 있으시잖아요.”
아오. 이제는 아주 능글맞게 웃으면서, 자신도 손을 흔들면서, 마스 경이 툭 말을 던졌다.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나중에 한 번 조지기는 해야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제도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게 된 거지.
“이제 백작님은 길거리도 마음놓고 못 다니시겠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던진 다발째의 꽃을(참 절묘하게도 던졌다) 공중에서 받아들며, 마스 경에게 물었다.
“알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백작님의 얼굴을 알아버렸는데, 그리고 한 번 알면 잊어버리기 힘든 미남자인데, 앞으로 제도의 길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겠어요?”
“아... 싫다, 정말... 그래서 개선식 하기 싫었는데...”
티나지 않게 한숨을 푹 쉬자, 마스 경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사령관님이고, 다르임 경이고, 사르임 경이고 백작님이 맨 앞에 나서지 않으면 아예 개선식 자체를 하지 않을 거라는데요. 엇차, 참 징하게도 많이들 던지네...”
이번에 내가 받아든 건 귀엽게 만든 주먹 두 개 만한 곰인형이었다. 그걸 던진 건 나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나는 융파트 영지에서 나와 마스 경이 포상금을 털어 구해내 쉬고 있는 크크롤을 비롯한 아이들이 생각나, 저절로 미소를 지으며, 인형을 던져준 아이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주변의 여자들이 넋놓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두 명이 실제로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뭐, 뭐야...
“휘-익! 이거야 말로 살인미소 아닙니까?”
“이야! 웃어보이는 것만으로 여자를 기절시킬 수 있는!”
“전설의 바람둥이 루오페 자작의 재림이다!”
방금 말 한거 누구야! 그딴 제멋대로인 쓰레기를 어디다 대고! 내가 고개를 홱 돌렸지만 이미 예상했던 듯 모두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그 때였다.
- 기리인.
이, 이건... 메시지 스펠이다! 그리고... 요안나 선생님이다!
- 나 여기 2층에, 너한테는 두 시 방향이겠네. 고개 들어봐.
고개를 들자, 창문이며 발코니를 점령한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나는 요안나 선생님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찬란한 금발머리를 틀어올리고, 가벼운 블라우스를 입은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왔다.
- 보고 싶었어.
저도요.
마법을 잃은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느껴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입모양으로 ‘저도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환하게 웃더니,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는 내 쪽으로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그 옆의 사람을 보았다. 옆에는...
나는 간신히 내가 올라있는 단의 난간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선생님의 옆에는, 이브 오르테 교수가 서 있었다. 그녀 역시도 선생님처럼 손가락에 입맞춘 후 나에게 키스를 날려왔다. 나는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헤 벌린 채 그녀들을 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개선식 행렬이 앞으로 전진해, 그녀들이 내 2시 방향에서, 3시로, 그리고 4시로 지나갈 때도.
- 너무 놀라지 마. 나중에 이브랑 같이 보자. 행사 잘 해.
선생님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 스펠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대체 왜 저 둘이 같이 있는 거야. 서로 못 잡아먹을 것처럼 굴더니. 게다가, 나한테 이브 씨가 손키스를 날리는데, 말리지도 않았다고? 뭐지... 불안하고, 답답하다. 설레는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라이벌이 될 지도 모르는 여자와 함께 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가.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은 귀신같은 존재라고 했다. 가만히 두면 점점 더 커져서 마음을 전부 먹어치워버리는 그런 허기진 귀신 말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말자. 나중에 선생님이 뭐라 하는지 직접 들어보고 얘기해도 늦지 않잖아.
그러는 동안 행렬은 어느새 중앙 광장에 이르렀다. 중앙 광장을 빙 둘러싼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안에 늘어선 할버드를 든 제도 경비대원들 안은 병력이 늘어설 수 있도록 다른 민간인들은 들어와 있지 않았다. 우리에 앞서 먼저 개선행진을 했던 보병대와 기병대가 이미 오와 열을 정교하게 맞추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마차에서 내려, 마차에 매인 흰 말에 올랐다. 거대한 전마는 단련받은 대로 한 번 푸르르거릴 뿐 나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잘 받아주는 느낌이었던 레브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내 말 고삐를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16명 중 한 명이 와서 잡고, 내 뒤에 마스 경을 필두로 한 나머지가 2열 종대로 섰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이미 행군해서, 자리를 잡고 있던 보병대와 황실 기사단의 사이로, 그러니까 광장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우와아아아아!”
“신-궁! 신-궁! 신-궁!”
갑자기, 조금의 예고도 없이, 보병대와 기사들이 일제히 어마어마한 환호를 외쳤다. 신-궁! 하는 챈트(chant)는 곧 광장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몇 천 몇 만은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외치는 신-궁! 신-궁! 소리는 황궁의 외성벽마저 울리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나는, 미리 마스 경이 “백작님께서 쑥스러워하시면, 백작님보다 못한 전공을 세운 분들을 모욕하는 걸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 대로, 가슴을 펴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려 애썼다. 환호는 도저히 그칠 줄을 모르고, 우리가 그들의 대열을 가로질러, 미리 마련된 연단의 앞, 한가운데에서 약간 좌측에 이르러, 마스 경과 15인이 2열 종대를 2열 횡대로 바꿀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환호가 잦아들 때쯤, 궁병대와 마법사대가 배치를 마치고, 나처럼 새하얀 전마를 탄 린베크 아버님을 비롯한 토벌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나타나 내 옆에 늘어섰다.
빰빠밤-빰-!
외성벽 위에 늘어선 수십 명의 나팔수들이 일제히 길다란 예식용 나팔을 불자, 관중들의 환호와 말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완전히 조용해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집중된 이목이, 단상 위로 오르고 있는 선황비 전하 – 그러니까 지금 황제 폐하의 어머니이자 나스프 공작의 여동생 – 와, 황제 폐하의 부재동안 제국을 다스린 재상에게 집중되었다.
============================ 작품 후기 ============================
9챕터 시작합니다.
약간 분위기 가볍게 시작합니다.
기리인은 여난을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스카테 님 // 언젠가는 씨앗도 썩어야만 식물이 될 수 있긴 하죠. 하지만 시궁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식물이 되기 전에 썩어버린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쇠황조롱이 님 // 맞는 말씀입니다. 그나마 얘가 제일 안전하죠. 본인도 무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겁니다.
eastarea 님 // 그렇죠. 쟤니까 Y한거죠. 저같으면 Y 못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