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45화 (245/309)

00245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그리고, 궁내부 장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드르연 경 –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기사직을 수여받던 그 날, 나를 안내했던 사람이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궁내부 내에서 위치도 높고 평가도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 이 나서서, 마력석을 이용해 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나팔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말했다.

“제국 모든 영토의 정당한 지배자이시며, 대륙 모든 인간과 생물들의 주재자이시며, 신앙의 수호자이신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척! 하고 차렷 자세를 취한 후 – 아까 내가 지나왔던 통로를 향해 돌아섰다. 연단 앞에 있던, 지휘관들과 나와 마스 경 일행 역시 뒤돌아서자, 저 멀리서 세 마리의 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황제 폐하께-”

내 옆에 서 있던, 린베크 아버님이 나이든 분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지 싶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단련된 정예병들인 황제군은 군마 한 마리까지도 전혀 미동치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나조차도,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눈만 돌려 사방을 살필 따름이었다.

저 멀리서 황제 폐하가 탄 흰 말이, 역시 흰 말을 탄 황제의 호위무사 두 명, 비르히와 토르히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 폐하가 다가오자 길거리에서 구경하던 모든 백성들이 분주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느라 혼란이 가중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에아임 형이 지휘하는 수사기사 여러명이 지금 혹시 모를 암살자를 대비해 바삐 뛰고 있겠지...

다른 사람들은 마차에 타서 환호받으면서 오고, 황제 폐하는 그냥 하얀 말 한 마리만 타고 들어오는 이것도 전통이라고 한다. 치르낙 대왕이 병사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 자신은 최소한의 치장만 한 채 들어온 데서 유래한 거라는데... 알고 보면 오히려 그런 수수함 때문에 다른 어떤 화려한 마차나 장수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황제 폐하는, 하얀 말을 탄 채 조용히 걸어오고 있는 황제 폐하는, 무릎을 꿇느라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소음들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조용함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장병들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사람들도 말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황제 폐하가 탄 백마의 말발굽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달그닥. 달그닥.

“예(禮)!”

린베크 아버님의 그 말이 떨어지자, 모든 기사단이 전원 말 위에서 칼을 뽑아들고는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와 곧게 검을 세웠다. 창병들 역시 창을 일제히 자신의 몸 앞에 일자로 세워들었다. 단상 앞에 서 있던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령관님을 필두로 모든 사람이 일제히, 차고 있던 칼을 뽑아 같은 자세로 검을 곧추세웠다. 나 역시도 오늘을 위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아까 연습해본 대로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광장은, 극도로 조용해졌다. 폐하가 탄 말이, 다각 다각 거리며 다가와, 대열의 앞에서 멈춰섰다. 폐하가 자신의 검집에서 의전용 보검을 뽑아들어,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잠시, 광장에 정적이 흘렀다. 폐하가 검집에 다시 칼을 도로 꽂아넣고, 아직 칼이나 창을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세워들고 있는 장병들의 사이를 마치 사열하듯 지나, 단상 앞에 도열한 우리들 앞을 역시 지나... 단상 위에 올랐다.

“바로!”

일제히, 장병들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창을 정면에서 왼쪽에 세웠다. 이어 단상 앞의 우리는 뒤로 돌았고, 장병들 역시 좌우향우 해서 정면을 향했다. 그제야, 무릎꿇고 있던 제도 시민들이 부산스럽게 일어나며 제 자리를 찾았다. 잠시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드르연 경이 다시 나팔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황태후 마마와 제국 재상은 황제 폐하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두 사람에게만 향한 것이 아닌 시민들에게 안내하는 듯한 말투였다. 황태후 마마와 재상님이 무릎을 꿇자, 폐하가 저벅저벅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연단 앞에 서 있던 나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폐하. 폐하께서 맡기신 폐하의 것을 이제 폐하께 다시 돌려드리나이다.”

두 사람은 마치 합창하듯 하며, 뭔가 금속제의 물건을 각자 한 손으로 붙잡아 받쳐올렸다. 황제 폐하는 그 물건을 집어들었다. 가는 쇠사슬이 달려 목에 걸 수 있게 된 그것은, 열쇠였다. 척 보기에도 고색창연한, 쉽게 말해 매우 낡은 열쇠였다. 관리를 잘 했는지 녹이 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 저게 제도의 열쇠인가보다. 물론 실제로 성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제도의 지배권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평소에는 황제의 집무실에 걸어두겠지. 오늘이야 행사를 해야 하니까 가지고 나온 거고.

“어머님, 일어나세요. 재상도 일어나시오.”

두 사람이 일어서자. 황제 폐하는 한 걸음 다가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님. 재상. 제가 있을 때보다 제도가 더 안정된 듯 하군요.”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준 폐하는 곧, 드르연 경이 달려와 앞에 밀어준 나팔 앞에 가서 섰다.

“사랑하는 제도의 신민 여러분. 나는, 제국 모든 영토의 정당한 지배자로서, 대륙 모든 인간과 생물들의 주재자로서, 그리고 신앙의 수호자로서 신께서 부여한 권위에 의하여, 제국력 413년에 발생한 국지전에서 무사히 승리를 거두었음을 선언합니다. 트리클 신께 영광이 있기를.”

“와아-!”

장병들 뿐만 아니라, 광장을 채우고 있던 모든 제도 시민들이 한꺼번에 함성을 질렀다. 황제 폐하의 뒤에 있는 황궁의 외성벽에 함성이 되울려, 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귀가 윙윙거릴 지경이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순수한 기쁨에서였다.

“사랑하고 아끼는, 린베크 사령관님 이하 나의 장병 여러분. 그 노고를 치하하며, 여러분의 공을 잊지 않고 합당한 포상을 할 것을 황제가 약속합니다.”

이제는 나도 ‘황제가’ ‘황제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말이 얼마나 무게를 갖는지 알게 되었다. ‘황제가 약속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등 뒤의 병사들이 아까보다 훨씬 크게 환호한 것도 그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폐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연단에서 내려가자, 황급히 달려온 드르연 경이 나팔에다 대고 말했다.

“이것으로 승전 보고회를 마치겠습니다. 폐하와 폐하의 명을 받아 군을 지휘한 사령관은 지금 신께 승리를 보고드리기 위해 지금 곧 대신전으로 향하실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오늘 이 자리에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모든 제도의 신민들에게 드로그 금화 한 닢씩을 기념으로 하사하셨습니다.”

바쁜 시기에 생업이며 학업을 포기하고 군대 행렬에게 꽃을 던져준 후 금방 끝나버릴 열병식을 구경하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짓을 하고 있던 제도 시민들이 진짜로 기다리던 것을 드디어 받은 후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은 함성이 되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신께서 황제 폐하를 보호하소서!”

“폐하께 감사를!”

나는, 아주 잠시, 심술궂은 마음이 들어,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파라 융파트 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가 황제군의 정보를 빼돌렸으며, 사실상 융파트 군의 승리를 위해 행동했고, 마지막 교전 직전에 적전 도주 행위까지 저질렀지만 – 그러나 여러 사정이 겹쳐 그는 처벌받지 않고 융파트 공작위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일 어전에서 열릴 추밀원 회의에서 현 융파트 공작 – 현재 수사기사단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 의 공작위 박탈이 결정되는 즉시, 융파트 공작이 될 거였다.

하지만 예전의 공작이 산의 왕(王)이라 불리는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은 벽에 그린 호랑이 그림 정도의 존재로 그 위세는 뚝 떨어졌다. 폐하가 융파트에게 살려준 것은 명분, 쉽게 말해 ‘체면’ 뿐이었다. 융파트 영지는 살아남는 대가로 보유하고 있던 금화를 비롯한 재산 대부분을 몰수당했다. 폐하가 통 크게 ‘1인당 금화 한 닢’이라는 포상금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압류한 재산 때문이었다.

융파트 경의 표정은, 생각보다는 담담했다.

“기리인.”

깜짝이야. 어느새 내 곁에 에아임 형이 다가와 있었다.

“아, 형.”

“너는 신전에 안 가니?”

“네, 폐하와 사령관님만 가시는 거니까요... 내일 어전 회의 때 대기하라는 명만 받았어요.”

“그래. 그럼 집에 갈 거지?”

“형은 같이 못 가요?”

형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를 암중에서 수행해야 한다. 이런 역할인 줄 알았으면 승진 안 한다고 할 걸 그랬는데 말이다. 일한다는 표도 안 나고 힘은 더럽게 들고.”

내가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형은 내 머리를 평소처럼 쓰다듬더니, 가방 하나를 건넸다.

“내 가방이다. 집사람한테 좀 전해줘. 뢰다하고도 좀 놀아주고. 아. 내일 저녁은 약속 잡지 마라. 전승기념 무도회 할 거다.”

“무도회요...”

내 표정이 팍 삭았었나보다. 형은 낄낄대며, 내 어깨를 툭 치고는, 돌아섰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짐 나르러 가야 합니다. ㅠㅠ 살아돌아오길 기원해주세요.

언제나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날려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씁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너무 얘 외모를 높게 잡았나 싶어요. 너프도 못 시키겠고...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꽁냥거리는 내용이 있겠지만... 얼마나 갈지는... 후후후... 주인공은 굴러야 제맛...

스키테 님 // 사실 저도 그 말씀을 생각한 게 맞습니다. 기리인의 말은 땅이 아니고 시궁창에 씨앗이 떨어졌을 때를 말한 거니까요 ㅎㅎ;

nnuhgwyegd 님 // 중요한 질문 감사합니다. 대답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떡밥을 풀어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전쟁 중에도 메인 퀘스트의 단서를 몇 개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좀 더 빠른 전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