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7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정보 확인.’
<물품 정보>
<보통의 편지입니다. 악의적인 의도나 마법적 장치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품 정보>
<보통의 편지입니다. 악의적인 의도나 마법적 장치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행이다. 황태자 저하의 암살 음모를 막느라 정신없었을 때로, 모든 것을 의심해야 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불가능하겠지. 나도 안다. 선황제 폐하의 유언, ‘황제를 도와달라’는 유언이 있었고 – 그 전에, 지금의 황제 폐하에게 대균열 급의 심경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나와의 우정을 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황궁과 정계의 주변에서 살아가게 되겠지. 하지만... 이제 반 조금 넘게 지난 올해, 제국력 413년에, 남들이 평생 할 경험을 몰아서 했으면서도, 나 스스로는 아직 나를 마법사 비스무레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능만 하다면, 다시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나는 거창하게 한숨을 내쉰 후, 봉투 찢는 칼로 편지 두 통을 한번에 열었다. 첫 번째 편지는 디오틀라 님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백작님이 내 활을 들고 전장에서 대활약을 한 뒤, 내 활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올라가게 되었다오. 어제 군에서 나온 사람과 이야기를 했는데, 이 활을 열 대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오. 전쟁터에서 막 굴릴 수 있는 활은 아니지만, 특등사수에게 맡겨 저격용으로 쓰기에는 아주 적합한 활이라는 호평을 하면서 말이오.
물론 가장 큰 공은 좋은 활을 만든 이 늙은이의 공이겠지만, 캐내지 않은 보물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 경이 드러내어 준 덕에 내 20년 전의 작품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나 다름없소. 그래서 경에게 보답을 주고 싶으니, 언제 시간날 때 한 번 놀러오시오...’
한 대 팔릴 때마다 얼마씩 달라고 할까... 따위의 속물적인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그런 생각을 잠시 접어둔 나는, 마지막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얼굴이 굳는 걸 느꼈다.
‘기리인 모스 백작님 전상서.
먼저 이 편지를 읽고 계신 백작님께서 너무 놀라거나 화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작님이나 백작님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와 저희 종족은 프그단에 대해 알고 있으며, 프그단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괜히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어떻게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작님께서는 우리같은, 다른 종족들에 대해 경계와,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한 번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찾아오고 싶지만, 이미 백작님께서 프그단과 관련해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고생을 하셨기에, 백작님께서 저희를 믿기 힘드실 거라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사흘동안 백작님께서 안심하고 우리를 만날 수 있는 방법 또는 믿을만한 호위를 찾으실 말미를 드리면 어떨까 합니다. 어지간한 조건이면 무조건 백작님의 요구를 들어드릴 것입니다.
사흘 후, 저희가 고용한 인간 심부름꾼이 백작님께 편지를 받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 때 적절한 답장을 주실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명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편지를 접었다. 프그단이 말했던 대로, 다른 이종족들은 나에게 접촉하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 종족은, 아직 만나본 적도 없고 심지어 어떤 종족인지조차 모르지만 –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협상이란 게 그런 거니까.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마나의 손’을 움직여, 즉 마나를 뭉쳐 긴 막대 형태로 만들어, 내 시야 한 쪽에 떠있는 ‘퀘스트’ 버튼을 눌러 ‘메인 퀘스트’를 다시 살펴보았다.
<메인 퀘스트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
<퀘스트 달성 조건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을 안다
퀘스트 진행 힌트 :
1. 제도로 가서 요안나와 함께 당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세요. - 진행중
2. 은둔중인 고대 종족들에 대해 알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고대 종족들 사이에 조각조각 널리 퍼진 그들의 ‘금제’에 대해 단서를 모으세요.
- 엘프 종족들에게서 ‘마나의 갑옷을 입은 자’라는 단서를 수집하였습니다.
- 단서를 수집하면 메인 퀘스트 진행에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프그단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당신은 이종족들과 협상을 하게 될 것이고, 또 하여야 합니다. 협상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또한 이종족들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당신의 메인 퀘스트 성공 확률이 올라갈 것입니다.
- ???
3. ???
퀘스트 보상 : ???>
후우. 나는 X자를 눌러 창을 닫아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맞닥뜨린 퀘스트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시바낙과 관련한 사건을 해결했을 때도, 황제 폐하가 황태자 시절이었을 때 ‘살해 협박’과 관련한 정황을 캐냈을 때도, 그리고 전쟁도. 어느 하나 쉬운 퀘스트가 없었고, 어느 하나 내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퀘스트가 없었다. 그리고, 그 퀘스트들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을 주었다. 다른 사람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내 ‘능력치’들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저 퀘스트들을 해결하며 얻은 보상으로 나는 그 능력치를 올리거나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모든 퀘스트들을 해결함으로서 얻는 가장 큰 보상은, 나에게 처음 주어진 메인 퀘스트,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에 대한 힌트를 얻어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나는 저 메인 퀘스트는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해 두려움마저 들기도 했다. 다른 퀘스트들, 메인 퀘스트(2)(3)(4) 들마저도 긴 시간과 노력이 들고 자칫 위험한 순간도 많았는데, 그런 퀘스트들을 통해 얻는 보상이 힌트인 메인 퀘스트의 규모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일까. 나는 과연 그 메인 퀘스트를 해결할 수는 있는 걸까.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정신을 차려 보니, 고민하다가 나는 그대로 턱을 괴고 앉은 채 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여름도 절반을 지나,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여름, 바깥은 아직 밝았지만 해는 상당히 서쪽으로 가 있었다. 상당히 저녁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침을 닦으며 문가로 다가갔다. 보나마나 오레즈 할아버지겠지 뭐...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에?”
“에...라니. 서운하다 얘.”
“그러게요. 어쩜, 반기는 빛도 아니고 저런 얼굴로 맞아주실 수가 있으세요.”
“이브, 저 머리 좀 봐.”
“그러게, 세상에... 어쩜 졸다 나왔나봐. 와...”
더 뒀다가는 문간에 서서 한도끝도 없이 나를 가지고 질겅질겅 씹어댈 기세라 나는 두 사람을 황급히 문 안에 몰아넣고 문을 닫았다.
“선생님, 이브 씨...”
이브 씨는 공손히 나에게 인사했다.
“여기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잖아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주인님.”
아. 잊고 있었던 두통이 다시 올라오려고 한다. 무슨 짓이야, 선생님 앞에...서... 잠시만. 짧은 사고 과정을 거친 내가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선생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세워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여자 노예도 두고, 아주 그냥 얼굴값을 제대로 하는구만? 응?”
내가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자 – 대체 나는 그게 밝혀진데 대해 당황해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걸 알고도 선생님이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데 대해 안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맞는 걸까? - 선생님은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이브, 이리 와.” 하고 말했다. 이브 씨는 선생님의 말에 고분고분 다가왔다. 내가 황급히 편지 다발을 치우자, 선생님과 이브 씨는 테이블 앞의 의자에 둘러앉았다.
머릿속에서 말이 꼬이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온갖 감정들과, 온갖 궁금한 점들이 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는데, 무엇을 먼저 물어서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선생님과 첫날 밤을 보냈던 그 날 밤을 떠올렸다. 중앙 광장 주변의 카페에서 저녁을 즐기던 우리 앞에 이브 씨가 나타났었고, 선생님은 이브 씨의 언행에 질투를 느꼈고, 그래서 그날 나에게 자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었지.
그랬던 두 사람이 지금 내 앞에 같이 나타났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꽤 친한 것처럼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니, 결정적으로... 이브 씨는 나를 주인님으로 부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그런데 요안나 선생님 앞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쉽게 말해 서로간에 비밀의 공유가 상당히 이뤄졌다는 것을 말한다.
헝클어진 실뭉치처럼 복잡한 내 머릿속을 짐작한다는 듯 선생님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많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솔직히 말해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궁금한 게 많은데요...”
푸훗 하고 입을 가리며 웃은 선생님이 말했다.
“우선, 공동 연구를 하다 보니 이브랑 꽤 친해졌어. 나이도 비슷하고 말야. 학술적인 궁금함도 있고, 무엇보다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나이가 우리처럼 젊은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말야. 그리고...”
============================ 작품 후기 ============================
나이가 드니 주말에 고생하고 나면 그 여파가 쉽게 풀리지 않네요...;
항상 읽어주시고 선/추/코/쿠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니세시키 님 // 아수라장 속에서 기리인을 어떻게 괴롭힐까 생각중입...ㅋㅋ;;
스키테 님 //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짜장면 시켜먹었습니다 ㅎㅎ;; 더 정진하겠습니다.
eastarea 님 // 황제가 그런 판결을 내리면 명판관이 되려나요? ㅋㅋ;;;;
화이트프레페 님 // 애초에 아르토는 참전하려고 생각도 없었을 거에요. 임신이라도 시켜서 참전시킬까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그러면 분명 치정극이 될 거라..
cacao99 님 // 오늘 하루만 100개가 넘는 코멘트 일일이 달아주시고, 특히 1편에 칭찬코멘트 적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힘내서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알고 힘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