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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58화 (258/309)

00258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제국 모든 영토의 정당한 지배자이시며, 대륙 모든 인간과 생물들의 주재자이시며, 신앙의 수호자이신,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저벅저벅. 아직 황후가 없는 황제 폐하는 혼자 걸어서 입장할 터였다. 성큼성큼 걷는 발소리가 들리고, 폐하가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일어났다. 넓은 홀 안에, 아까 내가 보았던 것처럼 지난번 무도회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어느새 카트와 트레이에 샴페인 잔을 가득 채워든 궁내부원들이 사람들에게 잔을 돌리고 있었다. 잽싸게 두 개 집어들어 하나를 리미에게 건넸다.

“어머, 매너남.”

피식. 농담이라는 걸 알았기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매너에는 매너답게, 레이디처럼 답례해야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렇게? 치마를 들면서 인사라도 할까?”

그래. 너는 이렇게 생기있을 때, 제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매력적이야. 틀에 박힌 레이디들처럼 말고 말야.

어느새 자신도 한 잔을 받아든 폐하가 말했다.

“신의 가호 아래, 짐의 충성스러운 장수와 병사들이 전력을 다해 싸워주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기쁜 자리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고를 기념하고 치하하며, 함께 건배합시다. 승전을 기념하며!”

폐하를 따라 모두가 잔을 들어올렸다가, 비웠다. 황실에서 마시는 최고 품질의 샴페인은 단 맛과 청량한 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옆을 흘깃 보니 리미 역시 별 문제 없이 샴페인을 비워내고 있었다. 그때처럼 취해서 막 떠들지는 않겠지... 하긴, 생각해 보니 그때는 취한 척 한 거였었지. 의외로 술 셀지도 모르겠네.

궁내부원들이 빈 잔을 받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잠시 어수선함이 지나간 후, 폐하가 말했다.

“또한, 어느 무도회가 그러하듯이, 무도회는 선남선녀의 만남의 장이기도 합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폐하가 약간은 겸연쩍은 듯 그렇게 말하자 장내에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특히 이 자리에는 짐의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지혜로운 장병들이 여럿 참석해 있습니다. 그들이 신이 예비하신 짝을 만날 수 있는 복된 자리가 되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모스 백작. 모스 백작은 어디 있나?”

...갑자기 나는 왜?

“여기 있사옵니다, 폐하.”

“역시 이미 레이디 한 명을 곁에 두고 있군? 짐이 신경써주지 않아도 역시 알아서 잘 하는군.”

아까보다는 큰 웃음이 홀 안에 맴돌았다. 으윽.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건 바람직한 의도지만 그걸 나를 놀려서 달성하다니.

“모스 백작, 곁을 차지한 그 행운의 레이디는 누구인가?”

폐하는 웃음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한 번 놀렸으니 한 번 기회를 준다는 건가. 마침 리미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나는 말했다.

“폐하. 이 레이디는 저와 북부 마법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한, 르플레스탁 기사단 단장인 에반스 요뢰브의 여식, 리미 요뢰브라고 합니다.”

“오, 그렇군. 동문수학한 친구였군? 레이디, 그 말이 맞소?”

바짝 얼어버린 리미는 그저 “네, 폐하.”라고 한 마디 간신히 했을 뿐이었다. 폐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직 모스 백작은, 최고 공훈자이자 이 자리 최고가의 상품은 아직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레이디 여러분의 건투를 빌며, 무도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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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번에는 바스 당스 같은 것이 없이 곧바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심, 저번에 바스 당스를 출 때 공주님마저 밀어내고 이브가 내 옆자리를 차지했던 그런 일이 또 벌어질까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 백작님, 반갑습니다.”

“아, 당신은... 이홈 경이었죠. 전장에서 나에게 망원경을 눈에 대어준 적이 있었던. 맞죠?”

“기억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짧게 악수를 나눈, 나이가 40 정도 되어 보이는 그는, 이어, 내 예상과는 달리, 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리미에게 말했다.

“레이디. 초면에 무례를 용서하시길. 레이디께서 정말 에반스 경의 여식이 맞으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이홈 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레이디의 아버님과 저는 막역한 지우입니다. 그가 북부로 간 뒤 가끔씩 소식만을 들었을 뿐 서신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이렇게 장성한 따님을 두셨을 줄이야...”

“아, 어머... 놀라운 우연이고 인연이네요. 반가워요, 이홈 경. 리미 요뢰브라고 합니다.”

리미가 내민 손에 부드러운 동작으로 입을 맞춘 이홈 경은 리미를 보며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저 말고도 아버님과 막역하게 지냈던 분들이 많이 있으십니다. 그 분들에게 소개를 시켜드리면 어떨까요?”

리미는 ‘어떻게 할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미는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백작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이홈 경. 다음에 뵙겠습니다. 리미, 잘 하고 와.”

리미는 약간은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져갔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교계의 인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이미 사교계에서 인맥을 쌓은 사람이 자신과 연이 있는 신참자를 소개해 주고, 그러면서 신참자에게도 인맥이 생기는 거라던가. 그런데 오늘 리미는 그런 사람이 없이 왔다. 갑자기 병이 나서 참석을 못했다고 하던데... 대개 그런 상황에서 참석하지 않는 걸 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리미가 용감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런 상황에서 폐하는 나에게 시의적절한 도움을 준 셈이다. 의외로 리미의 아버지, 에반스 요뢰브 백작이 쌓아둔 관계나 인맥이 아직 살아있었던지, 이홈 경을 따라간 리미는 여러 남녀를 만나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잘 됐다. 내 옆에 있는 것보다는 저렇게 사람들 소개받는 게 훨씬 낫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등 뒤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모스 백작님.”

아는 목소리였다. 내가 몸을 돌리자, 아니나다를까. 은빛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검은 색의 무늬 장식이 들어간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긴 은색 장갑을 낀 아르논 양이 서 있었다.

“아르논 양. 오랜만입니다.”

내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나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편지를 그런대로 주고 받아서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경의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모스 백작님.”

“그렇군요. 저희가 함께 식사를 한 지 벌써 넉 달 가까이 되었군요. 그 이후로 처음 뵙는 것이군요.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후훗, 저야 뭐 같은 일상을 보냈는걸요. 그래도 백작님과 주고받은 편지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보냈어요. 그 편지에도 썼지만, 참 친절하세요. 백작님.”

“아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오늘의 내, 대(對) 아르논 양 전략전술의 기조는... ‘곁을 주지 말자’이다. 예의바르게 대화하고 품위있게 대하되, 그녀에게 여지를 주지 말자. 지금까지 편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더 여자를 늘렸다간, 게다가 그게 나스프 공작의 외동딸이었다간... 폐하와 나와의 관계가 일그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폐하는 내가 나스프 공작을 견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내가 적진으로 투항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아르논 양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의바르게, 하지만 곁을 주지 않게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르논 양이 갑자기 푹 찌르고 들어왔다.

“경. 오늘 첫 춤을 다시 저와 춰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여러 대답들과, 그 대답들이 불러올 일들이 떠올랐지만, 그 순식간에 모든 안을 비교 검토해보고 폐기한 후에야, 나는 내가 외통수에 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마땅히 거절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나는 약간은 떨떠름하게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르논 양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나가야겠는걸요.”

마침 그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 음악의 전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린 건가, 이 여자도 나중에 숙성되면 한 정치력 하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아르논 양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실까요?”

기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우리 말고도 10여 쌍이 홀 한 가운데의 빈 곳으로 나왔다. 나는 아르논 양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서며, 흘깃, 황제 폐하를 바라보았다. 폐하는 ‘사정은 알겠지만, 약간 껄끄럽군’이라는 긴 이야기를 눈빛에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르논 양이 나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걸 허락한 시점에 이건 피할 수 없었던 거랄까... 나는 한숨을 내쉬지 않으려 애쓰며, 아르논 양의 손을 잡고, 무대의 중앙으로 나갔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늦게 시작했더니 조금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르논 : 빈틈 발견! 기습공격!

리미 : ㅠㅠ

기리인 : 뭣들 하세요...

스키테 님 // 돌아오는 날까지 잘 쓰고 있을게요!

체크필통 님 // 그러게요. 기를 살려놔야 캣파이트가 치열할... ㅋㅋ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cacaoo99 님 // 감사합니다!

니코틴 님 // 코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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