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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59화 (259/309)

00259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내 왼손 위에 아르논의 오른손이 포개지고, 내 오른손이 그녀의 왼쪽 허리에 닿는다. 그녀가 왼손을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올리자, 마침맞게 음악이 시작된다. 하나, 둘, 셋, 둘, 둘, 셋. 내 왼발과 그녀의 오른발이 같은 방향으로 뻗고, 둘, 셋. 살짝 턴. 다시, 하나, 둘, 세 걸음.

귀족이란 게 어떤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체면 생각을 엄청 많이 한다’는 거다. 만나본 귀족 중에는 진정으로 귀족적인 사람도 있었고, 그저 작위만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아닌 것처럼 하는 게 귀족이었다. 그런 반면,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래서 눈치와 체면을 보는 안에서는 최대한 욕망을 채우려 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왈츠라는 게 그런 춤이었다. 격식에 맞춰서, 정해진 길을 밟아가며 추는,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춤. 하지만, 내 어깨에 올라와 있는 아르논 양의 손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고 싶은 욕망과, 지켜야 할 법도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과 귀족으로서 사는 게 참으로 힘들겠다는 갑갑함이 동시에 들었다.

“여전히 날렵하시군요.”

“백작님이야말로, 몇 달만에 추시는데도 잘 하시는데요?”

하나, 둘, 셋. 사실은 그 때 기억해둔 스텝을 따라가기에만도 벅찼지만, 아르논 양은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호흡을 정말 잘 맞춰줬다. ‘여자가 리드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를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그녀를 리드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능숙하게 맞춰주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턴. 따안, 따아안.

음악이 끝나고, 우리를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내가 들어올린 왼손을 축으로 아르논 양이 은색의 드레스가 화려하게 펴지게끔 한 바퀴 빙글 돌아 내 옆에 서고, 우리는 다른 참석자들과 마찬가지로 황제 폐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폐하가, 일어나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런. 일어나려다가 황급히 다시 무릎을 꿇었다. 폐하가 우리 앞에 와서 말했다.

“일어나라, 기리인. 아르논.”

아... 그랬지. 아르논 양은 황제 폐하의 외사촌 여동생이었지. 그러니 저런 격의없는 말투를 쓸 수 있는 거겠군. 우리가 일어나자, 폐하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리인, 아까 옆에 있던 레이디는 어디 두고, 이번엔 내 사촌여동생이냐?”

“폐하... 너무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폐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자, 두 사람, 이쪽으로 올까? 아르논, 오랜만에 이 오라비랑 같이 이야기나 하자꾸나.”

이건...! 폐하가 나스프 공작을 견제하는 건가. 아르논 양의 표정이 약간 씁쓸해졌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왼손의 힘을 살짝 풀었지만, 그녀는 내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뺄 수도 없어(생각해 봐라. 파트너였던 남자가 매몰차게 손을 놔 버리는 레이디라니, 그게 얼마나 모욕이겠나), 우리는 약간 어정쩡한 상태로 폐하를 따라 한 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앉아서 대화를 할 사람들을 위한 원탁이 여럿 놓여 있었다. 폐하가 거기에 앉고, 나는 아르논 양이 앉는 것을 도와준 후, 아르논 양에게서 약간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궁내부원들이 곧 샴페인 잔을 날라왔다.

“건강을 위해.”

으아. 폐하의 건배사는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아르논 양의 표정이 약간 더 흐려졌지만, 그녀도 나도 별 말 없이 “건강을 위해.”라고 말하며 잔을 들어올렸다. 한 모금 마신 폐하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리인, 너 춤은 언제 배웠냐?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 같은데?”

“폐하의 추측이 맞습니다. 제도로 내려오기 전에는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그럼?”

“선황제 폐하께서 황공하옵게도 제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신 후, 무도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에아임 형이 억지로 자기 집 지하의 연무장에서 연습을 시켰습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한 번 연습하고, 실전 두 번 한 거란 말야? 아르논, 정말 대단하구나. 전혀 티나지 않게 잘 보좌하는 걸 보니 너의 실력을 알 만 하구나.”

“황공하옵...”

“편하게 하자, 편하게. 사촌누이에게서까지 극존칭을 듣고 싶지 않다.”

“과찬이세요, 오라버니. 모스 백작님이 잘 하시니까 그런 거죠.”

아르논은 약간 밝아진 표정으로 황제에게 말했다. 그러더니,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폐하, 폐하와 이야기해 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폐하 역시도 같은 아련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게 말이다. 어릴 적에는 함께 자주 놀았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를리 마마는 어딜 가셨나요? 황태후 전하께서도 보이질 않으시고...”

아차.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폐하에겐 여동생이 있었지. 황태후 마마도 있으시고.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폐하는 약간 흐려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 대신 신전에서 종일기도를 드리고 있지.”

“종일기도요...”

“아버지의 원수를 잡지 않았느냐.”

아아, 하고, 아르논과 내가 동시에 탄성을 냈다.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폐하와 내 눈이 마주쳤고, 폐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폐하는 아마 프그단을 생각하고 있겠지. 그 날 밤의 일을.

“나는 공무가 있어 자리를 비우지 못하니, 어머니와 아를리가 대신 신께 기도드리는 중이다. 그리고 마침 아를리도 디트리클 시에 볼 일이 있고.”

그랬구나... 폐하는 화제를 더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는지, 기지개를 가볍게 켜며 말했다.

“아아- 예전에 황태자 시절에는 나도 꽤 춤 췄었는데. 아르논, 기억하니?”

“물론이죠, 오라버니, 황제, 아, 결례를 용서하세요. 선황제 폐하의 명으로 폐하와 제가 왈츠를 춘 것이 몇 번인데요.”

아르논 양은 나와의 대화가 끊긴 것은 약간 아쉬운 듯 했지만, 폐하와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구김살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저런 성격. 단순히 어린 성격은 아닌데 말이지... 선한 성격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어느 레이디든, 폐하께서 손을 내미시면 거부할 레이디가 있겠습니까.”

“기리인, 이 녀석아. 그게 문제란 말이다.”

“네에?”

“한번 생각해 봐. 그게 왜 문제가 될지.”

...아.

“그렇겠군요... 아무나 손을 잡을 수가 없군요. 파급되는 효과가...”

“그래. 처음에는 불꽃의 가벼운 움직임일 뿐이지만 그 끝에는 커다란 폭탄이 있지. 지금 나에게 황후가 없으니, 어느 레이디와 손을 잡든, 잠재적인 황후 후보로 여겨지지 않겠냐.”

폐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이고... 신경쓸 게 너무 많아. 분명 대륙에서 제일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날마다 줄어드는 것 같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주춤한 사이, 아르논 양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폐하. 그럼 저와 한 곡 추시지 않으시겠어요?”

“너와?”

“네, 폐하. 폐하께서 저를 황후 후보로 여기실 리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니, 가장 안전한 것이 저 아닐까요?”

하긴, 8촌 이내의 근친혼은 치르낙 대왕 이래 금기지... 게다가, 폐하가 나스프 공작가와 약간의 알력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말이지. 그러니... ‘폐하와 공작가가 화해를 한다’는 제스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제외하면 – 아니, 그걸 제외할 필요도 없겠군. 일단은 화해를 청하며 ‘내 영지’에서 힘을 기르겠다는 것이 폐하의 복안이시니까.

뭐... 나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아,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폐하. 아르논 양, 그럼 나중에 또.”

“아...!”

그제야, 폐하와 왈츠를 추기 위해서는 가운데로 나가야 하며, 그러면 내가 일행이 없어지므로, 자신의 곁을 떠나가게 된다는 걸 깨달은 아르논 양이 울상이 되었다. 호의적으로 봐 주려고 해도 좀 맹한 데가 있다 정도이겠군...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어, 그녀는 뭐라 말할 듯 말할 듯 말하지 못한 채, 얼굴은 울상인 채, 폐하의 손을 잡은 채, 나를 바라보며- 가운데로 나아갔다. 황제 폐하께서 나오자 나오려던 나머지 남녀들이 모두 도로 들어가버리게 되어, 폐하와 아르논은 홀 한 가운데에서 홀로 손을 맞잡고 몸을 붙인 채 서 있었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나는 우수한 리드에게 리드되는 아르논을 볼 수 있었다. 황제 폐하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스텝을 밟으며 아르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르논은, 끌어당겨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듯 폐하의 리드에 맞추어 몸을 내맡기는 듯 하면서도 먼저 그 자리에 가 있곤 했다. 둘의 왈츠는 차라리 합을 잘 맞춘 대련에 가까웠다. 개개인의 기량도 능숙하고, 거기에 오랜 기간 서로 호흡을 맞춰온 터라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아... 아르논 양이 저렇게 잘 췄었구나.

“잘 추는군요.”

너무나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어 나는 하마터면 그냥 대답할 뻔 했다. 옆을 돌아보자, 처음 보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파란색 머리카락에 작은 키의, ‘아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얼굴만 약간 더 동안이었다면 아이인 줄 알았을 법한 여자였다.

============================ 작품 후기 ============================

황제 : 어딜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려고.

아르논 : ㅠㅠ

[Here comes a new challenger!] 일까요? ㅎㅎ

후원쿠폰 주신 유한도전 님 정말 감사합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그럼 지금 상황은 갑자기 맵이 움직여 자신의 병력을 가로막은...? ㅋㅋ

체크필통 님 // 하지만 댕청...;;;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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