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1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드래곤은 약간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구나. 인간이여. 내가 알고 있는 바가 맞다면 그대는 마법사 출신이 아니었던가? 마법사들은 마법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찌 그대는 이 긴 기간동안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잠시 멍해져 있는 동안 내 입의 통제를 어기고 말이 먼저 뛰어나갔다.
“제가 마법사 출신이었다는 건 어떻게...?”
“드래곤의 눈은 대륙 어디에든 미칠 수 있지.”
그러니 까불지 마라, 라고 이해한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대답했다.
“그럼 혹시 제가 올 한 해 어떻게 지냈는지 아십니까?”
“시간이 없었다는 게냐?”
“어... 네, 그렇...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르플레스탁은 눈을 감고 잠시 손으로 탁자를 톡톡톡 두드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하긴. 그럴만 하군. 그대를 엮어넣은 인과의 물결이 너무 거세었군. 인간 기리인 모스, 올 한해 유독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렇겠지.”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무엇이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뺨을 긁었다.
“실은... 지금 이대로 그랜드 아카데미 같은 데 갔다가는 해부당할까봐...”
세 번째 박장대소. 르플레스탁은 기분 좋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의외로 나를 웃기는 재주가 있었구나. 이건 치르낙도 잘 못했던 것인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 인간 기리인 모스. 그대의 화술은 놀라운 수준이구나.”
“감사합니다, 강대한 드래곤이시여.”
“그래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그대의 궁금증을 먼저 풀어줘야겠구나. 내가 그대의 특이한 체질을 어찌 알았느냐고?”
“네, 꼭... 알고 싶습니다. 하나의 단서라도 더 모아, 마법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마나에 안겨있는 느낌’을 다시 회복하고 싶습니다.”
“잘 말해주었다. 그 ‘마나에 안겨있는 느낌’이 바로 인간과 드래곤의 마법의 차이이다.”
에? 잠시만...
“강대한 드래곤이시여, 저희 인간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것은...”
“내가 한 것이 맞다.”
잠시동안 맹렬히 머리를 굴린 나는 간신히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 말씀은... 인간이 지금 사용하는 마법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역시 영민하구나. 드래곤이 사용하는 마법은 한 가지 방식이 아니다. 내가 가르쳐준 방식은 마법의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뭐랄까... 지난 4년간 북부 아카데미를 다니며 마법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이 갑자기 와장창 깨어지는 느낌? 다른 마법의 방식이 있다고?
“드래곤이시여, 그럼 인간에게 지금 전해준 방식은...”
“그대들 인간의 약한 몸으로 마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찌 보면 유일한 방법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마법의 역사도 배우기에, 알고 있다. 몸에 마법 회로를 심으면서부터 인간의 마법 수준이 월등히 올라갔다는 것을. 그 전까지 인간은 마나를 크게 움직이지 못했고, 지금도 마법 회로 없이는 그러하다. 그래서 인간 마법사들은 마나를 회로를 이용해 몸에 끌어들여 순환시키며 그 순환된 마나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게 인간의 몸이 약하기 때문이라... 그러고 보니, 이브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위 마법사들 중에는 제 정신인 사람이 없었다는. 모두가 말년에 불행했다는 그 말. 그걸 극복하기 위해 아카데미가 아닌 대도서관에 가게 됐다고 했었지.
“그럼 드래곤은 어떤 방식을 사용합니까?”
“드래곤은, 자신 주변에 지배할 수 있는 일정한 영역을 지닌다. 그리고 드래곤은 그 영역 안의 마나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한다. 너희들은 마법을 하기 위해, 몸의 동작을 취하거나, 영창을 하지? 어린 드래곤인 해츨링(hatchling)들이 마법을 배울 때 그렇게 한다. 하지만 익숙해진 드래곤은 그리 하지 않지. 곧바로 마법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내 어깨를 돌아보는 시선을 보고 르플레스탁은 가볍게 웃었다.
“그래. 역시 알아채는구나. 처음 그대의 어깨를 눌렀던 것은 마법이었다.”
“그렇군요...”
마나에게 안겨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인간 마법사들과는 달리, 마나를 지배하는 드래곤이라. 부럽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머리를 번뜩 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럼, 혹시, 제 몸 상태가...”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의 방식은 우리 드래곤의 마나를 지배하는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다시 한 번, 내 입이 내 통제를 벗어났다.
“그럼 제게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르플레스탁은 당돌한 아이를 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아주 잠시, 눈싸움을 하다가... 눈을 깔았다. 털을 세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상대는 드래곤이다, 드래곤.
“아쉽지만 그건 어렵겠구나. 인간이 배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배운다 한들 안전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안전을 위해 나는 가르칠 수 없다. 게다가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아...”
3일을 굶주린 끝에 수프 한 그릇이 주어졌다가,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와서 확 뺏아가고, 남겨진 빈 손을 보면 이런 실망감이 들까. 르플레스탁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실망하였는가.”
“그러합니다, 드래곤이여.”
“그런 상황에서 실망하는구나. 음... 좋다. 그대에게 드래곤의 마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힌트는 주어도 무방하겠지. 맹약을 어기는 것도,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아... 다시 수프 그릇이 주어지는 건가.
“부탁드립니다!”
르플레스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남대륙인을 본 적 있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남대륙인들 중에, 주술이라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는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 중에 그들과 싸워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구나. 그 주술사(shaman)들을 찾아가라. 그들이 사용하는 주술에는 다양한 것이 있지만, 아마 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원소(元素, elements)에 관한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들에게 주술을 배우다 보면, 마법을 발현시키는 데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수사기사단 지하 감옥에 잡혀온 포로 중 주술사가 들어있다는 걸 새삼 생각해낸 나는, 갑자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간만에 통제를 벗어난 내 표정이 그렇게 설레어해서였을까, 르플레스탁은 마치, 선생님이 탁아소의 유아를 보듯,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는 이것으로 용건이 끝이었지만, 마지막 용건이 하나 있다, 인간 기리인 모스.”
아직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내 말은 어렵게 나왔다.
“말씀하십시오.”
르플레스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까처럼, 그녀의 약간 짧고 뭉툭한 손가락이 탁자 위를 두드리다가... 멈추었다.
“그대의 한 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나간 올해보다 남은 올해가 훨씬 더 수많은 풍파가 다가올 것이다. 그 중 어떤 풍파는 그대의 마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한 르플레스탁은, 다시 잠시 말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나는 날이 있는 법. 그대가 그런 모든 풍파에서 벗어난다면, 어느날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다.”
“네...”
“그 때는, 잠시 나의 레어를 찾아와 주지 않겠나.”
“네에?”
아주 잠깐, 이놈의 매력 100이 드디어 드래곤마저 홀렸나 하는 미친 생각이 들었지만... 시스템적으로 확인조차 불가능한 존재에게 매력 100이 통할 리가 없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걱정하지 마라. 내 눈은 대륙 어디에든 있다. 그대에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내가 그대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네, 그리 하겠습니다만... 왜 레어에...”
“그대를 위해서는, 드래곤의 마법을 좀 더 배우거나 마력을 회복시킬 연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나에게 있어서는...”
잠시 말을 흐리는 드래곤. 하지만 누구의 안전이라고 재촉하랴.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어렵사리 말을 정리한 드래곤은, 놀랍게도, 약간 쑥스러운 듯,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200년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존재와 다시 대화를 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사귀다가 상대가 콧바람 한 번만 잘못 불어도 날려갈 걱정을 하는 상대에게 연애감정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아요...ㅎㅎ;;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그 내용도 나중에 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체크필통 님 // 하지만 용용이는 (적어도 아직은) 공략대상이 아니라...ㅎㅎ;;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