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62화 (262/309)

00262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아...”

파란 머리의 드래곤이, 그것도 신화나 전설 속의 존재인, 그 치르낙 대왕님과 같이 놀았던 드래곤 르플레스탁이 쑥쓰러운 듯 시선을 피하고 있는 걸 보니, 지금도 이미 아득히 멀어져 있는 현실감이 더더욱 없어지는 것 같다. 내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더니, 드래곤은 오늘 처음으로 약간은 자신없는 표정을 지었다.

“싫은 게냐?”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저, 너무 놀라서...”

“그런가... 하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래도 아직까지는 약간 자신없는 표정의 르플레스탁. 잠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뭔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무지무지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풋내기같은 화법을 쓴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황제나 공작 앞에서도 아무런 압박감 느끼지 않고 화술을 썼었는데. 화제라도 얼른 돌려야겠다.

“강대한 드래곤이시여, 그럼 앞으로는 어찌 지내실 예정이신지...?”

“말했지 않느냐? 나의 힘을 행사할 생각은 없다고. 아마, 그레이 엘프들처럼, 아니면 다른 이종족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살아가기도 하고, 혹은 나의 레어에서 칩거하기도 할 것이다. 예전처럼 나의 레어 주변을 지배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시군요... 그럼 30년쯤 후에 제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과일 장수가 위대한 드래곤일 확률도 없지는 않겠군요.”

“하하하! 그래, 그런 거지. 예전에 드래곤이 많았을 때는 그런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이 꽤 많았었다.”

“드래곤이... 많았다고 하셨습니까...?”

르플레스탁은 흠칫했다.

“아... 이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다. 잊거라.”

“네...”

잊으라, 고 말하면 더 잊혀지기 힘든 것이 인간의 기억인데... 드래곤이 많았다고? 어느 시대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드래곤은 르플레스탁이 유일하다. 그만큼 드래곤은 희귀한 존재라는 말이다. 아... 궁금한 점만 더 늘어간다. 나는 다시 한 번 원래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드래곤이시여, 그럼 제도에는 언제까지 계실 예정이십니까?”

“음... 모르겠다. 해가 몇 번 뜨고 질 때까지는 제도를 구경할 작정이긴 했다만...”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면... 아아.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저걸 못 알아들으면 이상하잖아...

“그럼 드래곤이시여, 어느 하루 저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으음? 괜찮겠느냐? 그대는 그대의 일로 바쁘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보통 저 정도 나이의 여자가 저러면 귀엽다는 느낌을 받을 텐데(대표적으로 아르토 누나), 강대한 드래곤이 그렇게 나오니 위화감만 들었다.

“아까 대화에 굶주려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느 하루, 저와 함께 제도를 구경하시죠. 나중에 드래곤께서 마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미리 보답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그대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마.”

안하면 무지무지 실망했을 거면서... 이런 걸 두고 우리 북부에서는 ‘헛기침으로 인사 받아낸다’고 하지... 음. 하지만 드래곤 앞에서는 내색을 할 수 없다. 내 앞에서 좋아하는 티를 숨기기 힘들어하는 저 존재가 사실은 콧바람 한 번으로도 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자.

“드래곤은 트리클의 천칭을 존중한다. 그러니, 그대의 호의에는 호의로 답할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허공에 손을 뻗었다. 아니, 아니다. 그녀는 허공을 만지고 있었다. 허공이 갑자기, 물결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손이 그 물결 속으로 쑥 들어갔다.

“뭐, 뭡니까, 그 마법은?”

“이거 말이냐.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너희 인간들은 배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확장마법이 걸린 공간을 잘라 붙인 것이다.”

“아...!”

무지무지 편리하겠다! 어디를 가든 맨몸으로 다닐 수 있고! 그 안을 이리저리 찾는 것 같던 드래곤은 뭔가를 하나 쑥 꺼냈다. 자그마한 목걸이였다.

“목걸이입니까?”

“아하하, 아니다. 이것은 칼이다.”

“네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드래곤은 갑자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우리 주변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 쪽을 거의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한 번 튕겨서 인식장애 마법을 펼치실 수 있으시다니...”

“놀랄 것 없다. 마나를 지배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그보다, 이것을 보아라.”

드래곤은 목걸이 끝에 달린, 로켓(locket) 같은 것을 가리켰다. 로켓은 마치 길쭉한 강낭콩 같은 모양이었고, 가운데에 튀어나온 조그만 단추 하나가 있었다. 드래곤이 단추를 누르자 로켓의 끄트머리가 툭 분리되며, 앞부분이 떨어져 나왔다. 그 앞부분에는 뭔가 자그마한 막대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받거라.”

내 펼친 손 위에 그, 마치 자그마한 인형들의 장난감 같은 모양의 로켓 끄트머리를 올려놓은 드래곤은 말했다.

“마나를 불어넣어 보거라. 활을 쏜다 했었지? 그 화살에 마나를 불어넣듯이 말이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손 위에 놓여있는 그 물건을 마나로 덧씌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내 손 위의 물건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끼손톱보다 작았던 그 물건이 점점 커지며, 어느새 두 손으로 잡아야 할 크기가 되었다. 길이도 꽤 길어져, 내 팔꿈치에서 손 끝 정도의 길이가 되었다. 꽤 묵직한 그것은...

“단검(dagger)...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칼이라는게 대단히 희한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폼멜(pommel)과 손잡이는 보통 롱소드의 그것 정도 되었다. 그리고 로켓의 둥근 부분이라고 했던 것은 손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가드(guard)였다. 하지만 거기 달린 날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길이는 보통의 단검 정도의 길이였다. 그러니까 롱소드 자루보다 짧은 한 뼘 조금 넘는 날만 달려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날은 하나도 날카롭지 않았다. 그 검신의 날에는 가느다란 홈이 파여 있었다. 홈이라니! 도저히 절삭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을 것 같은 모양새인데! 심지어 나는 손가락을 가져가 칼날을 직접 쓸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긁힌 자국 하나 나지 않았다.

“모르겠느냐. 이 칼은 그대 같은 사람을 위한 칼이다.”

“네? 저 같은 사람이라니...”

“우리 드래곤처럼, 마나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자를 위한 칼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대에게도 해당한다는 말이지. 손잡이를 잡거라. 마치 롱소드처럼.”

무슨 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에아임 형에게 기초만 배운 검술대로, 오른손으로 가드 바로 아래를 잡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둔하구나. 마나를 불어넣어 보거라.”

내가 멍청하다고 소리들은 건 어언 몇 년만인 것 같은데... 나는 아까 자그만 로켓에 마나를 불어넣었듯이 지금 자루만 있는 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어억?”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대 같은 사람을 위한 칼이라고.”

내가 칼에 집어넣은 마나가, 내가 쥔 손잡이를 통해 칼로 올라가, 아까 칼에 파여있던 가느다란 홈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검신을 따라 올라간 마나는 칼보다 더 길게 맺혀, 롱 소드 정도의 길이인, 마나의 칼날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마나 에지(mana edge) 아니겠느냐. 인간의 검사들이 그저 흉내만 내는 것과는 다르지. 아. 칼 조심하거라. 너는 칼 끝이 어디이고 날이 어디 있는지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테니 말이다.”

내가 내 손에 든 칼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드래곤은 피식 웃으며 아까의 물결치는 공간에서 뭔가 하나를 꺼내었다.

“자.”

휙. 드래곤이 던져준 것은 다름아닌 사과였다. 마치 갓 나무에서 따낸 듯 싱싱함이 살아있었지만, 나는 지금 드래곤이 던져준 사과가 먹으라고 하는 게 아닌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사과를 향해 마나로 만들어진 칼날을 휙 하고 휘둘렀고... 머릿속으로 그렸던 대로 정중앙을 가른 것은 아니었지만, 사과의 1/3 정도가 갈라서 떨어졌다.

그리고 드래곤은 놀라운 짓을 했다. 둘로 나뉜 사과 두 조각을 집어들더니, 서로 꾹 눌러주었다. 그리고 손을 떼자... 둘로 갈라진 사과가 딱 붙어 있었다!

“에엑?”

“그만큼 마나 에지가 자르는 힘이 좋다는 이야기 아니겠느냐. 무엇이든 단단한 재료를 자를 때 이 마나 에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

불현듯 나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 북부 대영지에서 빵 자르는 나이프로 테이블을 갈라버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귀한 보물을...”

“그것을 그대에게 준 것은 그대의 호의에 대한 보답도 있다. 그 칼날은 금속이 아닌,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것이다.”

“드래곤의... 뼈라고요?”

“그래. 드래곤에게서 남는 뼈 중 하나를 가공해 날과 손잡이를 만든 것이다. 절대 부러지지 않고, 가볍다. 게다가 그대가 불어넣는 마나를 잘 받아들이기 위한 마법진도 새겨져 있다.”

‘정보 확인’.

<물품 정보>

<마나 에지 소드(mana edge sword) – 아티팩트. 랭크 : SS>

<오로지 마나를 통제할 수 있는 드래곤을 위한 마나 에지 소드입니다만, 당신 역시 마나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드래곤에게서 선물받을 자격이 되었습니다.>

<경고! 마나 에지가 다른 이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나를 불러일으킨 상태에서는 매우 취급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용이 종료된 후에는 폼멜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리면 폼멜을 통해 주변의 마나를 흡수한 롱 소드가 자연스럽게 로켓의 형태로 돌아갑니다.>

============================ 작품 후기 ============================

1시 전에!!!

읽어주시고 선, 추, 코, 쿠 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GoodYear 님 // 아무리 플래그마스터라도 드래곤에게까지...ㄷㄷㄷ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그럴땐 무적의 말이 있죠.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가면 알게 된다"라는 말을 기리인에게 제가 하면...ㅋㅋ;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그러게요, 용용이 불러다가 얘기 좀 해 볼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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