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63화 (263/309)

00263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어떠냐?”

잔뜩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드래곤.

“이런 귀한 물건을 저에게 주시다니...”

“뭘.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호의에 대한 답으로 주는 것일 뿐인데.”

은근 뿌듯한 표정을 짓는 르플레스탁. 생각보다 인간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치르낙 대왕이 대화를 통해 설득했던 것인가.

“이런,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인간 기리인 모스. 혹 할 말이 있는가.”

나는 퍼뜩 한 가지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외람되오나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지...?”

“부탁? 말해보라.”

“실은...”

내가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자 드래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부탁이 아니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나는 기분나빠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아... 감사합니다, 드래곤이시여.”

“다음에 함께 보낼 하루에는 나를 에스, 라고 부르면 좋겠구나.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니 거리감이 느껴지는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스.”

그녀는 빙긋 웃더니, 마치 공기 속에 녹아들듯이 그대로 사라졌다. 뭘까, 저 마법은... 역시 마법은 드래곤의 것인가. 부럽다. 인간 대마법사라 해도 저 정도는 못 할텐데.

나는 새삼, 내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같은 인간이 아닌 신화속의 강대하고 위대한 존재와의 대화는 무섭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스템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봐, 시스템. 이번 사태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은데.

‘띠링!’

<세상을 스스로 개변시킬 수 있는 존재에게까지 능력이 통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긴... 산맥을 마치 종이자르듯 떠낼 수 있는 존재에게 내 매력이나 의지력이 통하기는 어려웠겠지.

<글쎄요. 매력이나 언변은 통한 것 같습니다만.>

뭐?

<아. 오해가 있었군요. 다른 레이디들처럼 당신에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아닙니다. 드래곤처럼 빼어나지만 고독한 존재에게 어느 정도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솔직히 내 심정은, 그렇게 매력적이어서라도 나를 예쁘게 봐 줬으면 좋겠다. 콧바람 한 방에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존재니까 말이다.

<동감입니다. 후방에서 누가 접근합니다.>

어?

“기리인, 혼자 앉아서 뭐해?”

뭐야. 리미잖아.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그만. 너랑 얘기하면 가끔 복장터져. 주의를 현실로 돌린 나는 웃으며 리미에게 말했다.

“아, 아까 황태자 저하랑 아르논 양이랑...”

“아르논? 나스프 가의 레이디 아르논?”

리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뾰족함이 어려 있었다. 아이고, 리미야, 리미야.

“응, 아르논 양. 아르논 양이 황제 폐하의 사촌 여동생이거든. 그래서, 아무하고나 왈츠를 추기 어려운 황제 폐하에게 춤 상대가 되어드리겠다고 했어.”

“아...”

리미는 ‘흥미없지만 예의바르게’라는 티를 내듯 아... 하는 목소리를 냈다. 안 되겠는데.

“리미야, 여기 잠깐만 앉아봐.”

리미는 아무 말 없이, 아까 르플레스탁, 아니, 이제는 에스라고 불러야지. 버릇들이지 않으면 드래곤이 화나는 일이 생길지도. 암튼 에스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순수한 우정에서 비롯된 충고 하나만 하려고 하는데.”

“...우정?”

포인트가 거기냐...

“기분나빠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리미가 약간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데뷔 준비를 많이 했겠지만, 나도 지난 몇 달 동안 이 사교계에서 약간은 경험을 했거든.”

“황제 폐하와 친밀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약간의 경험’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어쨌든간에. 그 경험에 비춰보자면, 리미 너는 얼굴 표정 관리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얼굴 표정 관리를 하라’는 소리를 얼굴 표정을 잘 관리 못하는 사람에게 했으니 당연히 리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진짜 리미의 성공적인 정착을 바라는 마음이 반, 그리고 ‘너한테 미움사도 잃을 건 없지’라는 냉정한 계산이 반이었다.

“지금도 봐. 내가 조금 싫은 소리 한다고 팍 표정이 나빠지잖아. 속으로야 무슨 소리를 하건 겉으로는 웃는 게 사교계라고 들었는데. 너 웃으면 예쁘잖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나 말이 있어도 일단은 웃어봐.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습관이 될 거야. 너의 평가도 올라갈거고.”

리미는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내 충고가 통해서였을까. 그녀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명백히 밝아져 있었다. 리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렇게?”

“응, 그렇게.”

“웃으니까 예뻐?”

...이런 제기랄.

“응, 예뻐.”

리미는 아까보다 한층 환하게 웃었다. 뭐하냐, 기리인. 드래곤 만났다고 정신 못차리냐. 리미한테 이러면 어쩌자는 거냐. 그 때, 악단이 새로운 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기리인. 나하고 춤 추면 안돼?”

내가 혹시라도 거절할까봐 약간 두려운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리미를 보고서 나는 도저히 그 권유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첫 왈츠를 아르논 양과 추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만약 아르논 말고 다른 사람과 안 춘다면 무시무시한 뒷말이 나올 테니까.)

“그래. 니가 편지에 그렇게 썼었잖아. 나하고 왈츠 추고 싶다고. 가자.”

리미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내 팔꿈치에 손을 올리고 무대 중앙으로 함께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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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발을 한 번씩 밟은 걸 제외하고는 성공적이었다. 리미도 아르논 양 만큼 숙달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우아함을 충분히 보여준 것 같고 말이다.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한 우리 둘이 걸어나오는데, 갑자기 웬 남자 하나가 우리 앞에 슥 나타났다.

“모스 백작.”

콧수염을 공들여 길렀지만, 그 콧수염만큼 품위가 따라온다고 보기는 힘든 얼굴이었다. 비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턱살이 둘은 잡혀있는 얼굴. 쉰이 가까운 듯한 그의 손에는 비슷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의 손목이 잡혀 있었다. 분명 딸이겠지.

“만나서 반갑네.”

어디서 다짜고짜 반말이야.

“네, 반갑습니다. 송구하오나 제가 아직 많은 분들의 존함을 알지 못하여...”

“괜찮네. 그대가 아직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를 수도 있지.”

이 사람이 점점... 하지만, 웃어야 한다. 리미에게 아까 한 말도 있고, 황제 폐하께 누를 끼칠 수는 없다. 그 자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했다.

“나는 에르센트 레스니라고 하네.”

레스니... 아. 그 레스니인가.

“후작님이셨군요.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나와, 아직 내 손을 잡고 있던 리미는 함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레스니 후작가. 쉽게 말해... 레카 시 건너편의 중부령을 지배하는, 융파트 가의 봉신이다. 레카 시처럼 완전히 독립된 자유시를 이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황제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에 레스니 후작가는 성쇠를 거듭하며, 성할 때는 융파트와 제도의 중간에서 야료를 부리고, 쇠할 때는 양쪽의 눈치를 다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쪽은 북대공령 르플레스탁 기사단 단장이신 에반스 요뢰브 백작님의 따님, 리미 요뢰브 양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리미가 멋지게, 드레스를 펼치며 인사를 했지만... 레스니 후작은 그저 고개만 한 번 까딱 해 보였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히 관심없다는 태도였다. 리미는 아까 내가 한 말이 있어 계속 웃고는 있었지만, 귀가 빨개져 있었다. 이해한다. 나같아도 지금 부글부글 끓으려고 하니까.

“모스 백작. 이 쪽은 내 딸 웨르티라네.”

“처음 뵙겠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히, 리미보다 둔하고 멋없는 동작이었다. 게다가 제 아비를 닮아서 피둥피둥한 것이 영 거북스러웠다. 오해를 사기 전에 말하자면 나는 살집이 있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실제로 학교 다닐 때 사귀었던 여자 중에는 누가 봐도 늘씬하고 예쁜 사람도 있었지만, 통통한 사람도 분명 있었다. 통통하다고 숫기를 잃지 않는, 같이 지내기 재미있는 선배나 친구들과 몇 번 만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기억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그리고 결정타는 후작이라는 작자가 날렸다.

“자네도 이제 영지를 얻음으로서 고귀한 이들의 반열에 한 발 내딛게 되지 않았나. 고귀한 들이라면 고귀한 사귐을 할 줄 알아야 하네. 먼저 만나고 춤추는 이들부터 가려서 사귈 줄 알아야지. 특히 자네처럼 천한 신분에서 올라온 이들이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야.”

이 새끼가... 황제 폐하 앞에서도, 선황 폐하 앞에서도 쫄지 않고 내 할 말을 하는 나다. 감히 내 앞에서 내 성질을 긁고, 내 친구를 모욕해? 나는 리미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쏟아진 어이없는 폭언에 얼굴이 새하얘진 채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 손을 빼려는 리미의 손을 오히려 더 꽉 잡으며,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후작님은 이번 전쟁에서 어디 계셨습니까?”

불쾌한 얼굴로 후작이 말했다.

“어찌 고귀한 몸이 그런 자리에 가서 흙먼지를 묻히며 구르겠는가.”

나는 일부러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함께 가셨는데 말이죠...”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은 뻔뻔하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그로캐를 쓰는 연습을 해 보고 있습니다.

(리리플, 262편)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GoodYear 님 // 그거 잘못하면 둥지 짓는 드래곤처럼...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이게 좋은 플래그일지 나쁜 플래그일지...

유한도전 님 // 조만간 또 데이트씬이 나올텐데 기리인 반응이 볼만할듯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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