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66화 (266/309)

00266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얼른 침대에 가서 눕고 싶었는데, 아직 끝나려면 먼 것 같다. 집에 돌아가려고 문을 나서던 나는, 궁내부원의 전갈을 받고 황궁에 남아야 했다. 무도회가 끝마칠 무렵에 황궁으로 돌아오신 황태후 전하가 나를 잠시 보고 싶어하신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명이라고 거절할까.

“백작님, 여기.”

“아, 감사합니다.”

나를 따라다니는 궁내부원 한 명이 찻잔을 건넸다. 찻잔에는 갈색의 달콤한 향이 나는 커피가 담겨 있었다.

“저, 성함이...”

“플레흐입니다.”

“플레흐 경.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시는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봐도 될지...?”

플레흐라는, 이 늦은 시간에도 단정하고 말쑥하게 생긴 서른 남짓한 궁내부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례는 아닙니다. 확실히 백작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전례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실제로도 모르거니와...”

아시죠, 라는 눈빛으로 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긴 그럴밖에. 특수관계인 사람에게가 아니고서야, 모시는 분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궁내부원이 있을리 없겠지. 내가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메이드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메이드 한 명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백작님,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저 옷을 입었을 때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드를 따라 간 곳은 1층의 어느 자그마한 응접실이었다. 2층은 황가의 인물들과 엄선된 메이드들이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설령 공주의 부마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 나는 응접실 문 앞에서 망토자락을 다듬었고, 그것을 잠시 기다려준 메이드가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황태후 전하의 말이 들렸다. 나는 메이드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모스 백작님, 어서 오세요.”

티 테이블에 앉아 있던 황태후 전하가 나를 보고는 일어서서 맞아주고 계셨다. 나는 황급히 다가가서 그녀가 내민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앉으시죠.”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메이드가 있었기에 내가 전하의 의자를 넣어준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전하가 말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경은 오늘 이것저것 많이 먹고 마셨을테니, 차는 내오지 않겠어요. 괜찮죠?”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황태후 전하.”

“그리고 이 자리는 우리밖에 없으니 격식은 조금 덜 차려도 무방할 거에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인도 약간 긴장을 푼 황태후 전하는, 정자세로 앉은 나를 잠시 뜯어보듯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온갖 시나리오와 그 대응방안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지워지기를 거듭하고 있을 때, 전하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네?”

예상했던 반응 중 하나였기에, 나는 생각했던 대로 약간 얼빠진 반문을 적절하게 할 수 있었다. 전하는 그런 나를 보고 입가를 가리면서 가볍게 웃었다.

“놀라지 말아요. 백작님이 나와 황제 폐하, 그리고 아를리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요.”

“아... 저는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전하. 칭찬 거두어주소서.”

“겸양은 넣어두세요. 백작님이 아니었다면 그날 우리는 죽거나 적어도 크게 다쳤겠지요. 그이를 데려가신 것은 신의 뜻이니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겠지만...”

아. 나는 새삼, 선황제 폐하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밝혀낸 진상을 말씀드리자, 선황제 폐하는 알리시아 양과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밝혔지. 결혼생활 내내 억눌리기만 해서 단 한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 “저는 아버님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면, 지금 내 눈 앞에 앉아있는 황태후 전하께서는 선황제 폐하를 대체 어떻게 대했던 것일까.

부부간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부부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묵묵히 전하의 말을 기다렸다. 전하는 잠시 눈을 먼 곳에 두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백작님은 저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번 전장에서도 황제 폐하를 여러 번 구해냈다고 하니, 아들을 구함받은 어미로서는 어떻게든 백작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늦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백작님을 청한 거랍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는 짧게 웃더니,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뒤쪽에 시립해 서 있던 메이드 중 한 명이 쟁반에 무언가를 받쳐들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전하는 쟁반 위의 것을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열쇠였다. 아까 폐하에게 수여받았던 도시의 열쇠처럼 큼지막한 게 아니라, 집에서 우리가 쓸 법한, 그런 보통의 열쇠 세 개가 달린 꾸러미였다. 아, 그럼 혹시...

“아까 어전 회의에서 들었겠지만, 이것은 집의 열쇠에요.”

아니나다를까. 전하는 웃으며 말했다.

“백작님이 되어서도 다른 이의 집에 더부살이하듯 얹혀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그에 걸맞는 생활을 누려야 하는 법. 하지만 이제 막 귀족이 된 백작님이 그런 기반을 가졌을리는 없을 터, 그래서 고민 끝에 집과, 집에 딸린 고용인을 구해주기로 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전하. 어찌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를...”

“배려가 아니에요. 이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백작님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나 역시도 그에 합당한 보답을 드리지 않으면 내 천칭의 균형이 어긋나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한 전하는, 웃으며 말했다.

“경의 저택을 관리해줄 고용인들은 내 사가(私家)에서 내가 직접 알던 사람들일 정도로, 일 잘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에요. 집사 한 명과 살림을 맡아 줄 그의 아내이니까 안심해도 좋을 거에요.”

“아...”

그런 거였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알겠군...

“백작님. 그리고 이렇게 늦은 밤에 부른 것은 백작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에요.”

나는 잠시 하려던 생각을 접어둔 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전하의 말을 기다렸다.

“폐하께서 백작님에게 영지를 내리신 것에는 분명 속뜻이 있다고,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띠링!’

<냉철이 발동합니다.>

<고급 언변의 ‘외교’가 발동합니다.>

내가 위기감을 가지자마자 자동으로 스킬을 발동시켜주는 시스템.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전하에게 물었다.

“결례인줄은 알지만 소신 잠시 여쭙고자 합니다. 전하께서는 폐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기에...?”

“되묻는 걸 보니 백작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모양이군요.”

질문에 질문으로 받아치는 걸 보면 황태후 전하의 화법도 제법이군...

“그럼 다시 묻겠어요, 백작님. 백작님은 나의 오라버니를 만나본 적이 있으시죠.”

오라버니라면, 나스프 공작님이지. 당연히 모를 리가 없지. 아까도 이야기도 했고, 그 딸과도 꽤 친해진 마당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전하는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작님이 본 우리 오라버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맹렬히 머리를 굴린 끝에 나는 일단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전하를 만족시킬 법한 그런 대답을 골랐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무례를 용서하소서, 나스프 공작가는 흔히 권세가 막강한 ‘세가(勢家)’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사옵니까.”

잠시 전하의 눈치를 살폈지만, 전하는 그 말에 크게 기분나빠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그 분을 뵙기 전까지는 권력욕이 많은 그런 분이 아닐까, 보통사람과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행동하는 양식이 다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만...”

“다만?”

“다시 무례를 용서하소서. 그 분도 딸의 문제 앞에서는 보통 평민들이나 다름없는 딸바보가 되신다는 것을 확인하였사옵니다.”

뜬금없는 말에 전하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입을 가리며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전혀 상상조차 못한 말이었어요. 백작님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더더군다나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아르논이 내 조카이기도 하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잠시 웃음을 진정시키던 전하는, 말했다.

“농담처럼 백작님이 이야기했지만, 세상에서는 우리 공작가가 황가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마저 있지요. 내 아버님이셨던 선대 공작님께서 나를 선황 폐하에게 짝지어주시고, 궁내부와 마법부를 비롯한 여러 부서에 본가와 친한 인물들을 임명한 것을 보면 그 말을 부정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 그런 말을 하시면...

============================ 작품 후기 ============================

기리인의 상황을 야구선수에 비유하면 : 신인왕과 MVP를 차지하고 화려하게 FA가 된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선수. 게다가 잘 생겼고 언론인터뷰도 잘 함. 원소속구단과 강한 링크가 있으나 계속 타 구단에서 접촉이 끊이지 않음.. 정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선/추/코/쿠 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간만에 들어보는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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