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68화 (268/309)

00268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어?”

여기는... 형의 집이잖아?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다시 봐도 똑같았다. 형수님과 오레즈 할아버지의 솜씨로 단아하게 단장된 정원. 언젠가 외박하고 들어온 나를 맞아 형이 내 구레나룻을 잡아당겼던 저 대문.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오냐?”

“형!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형이 그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나보다 집에 먼저 왔던지, 이미 단출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형은, 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형이 웃는 걸 보니 나쁜 일은 아닌가본데...

“어찌 된 일인 것 같냐?”

“글쎄요, 전혀...”

“열쇠 줘 봐.”

나는 형에게 고분고분히, 황태후 전하가 주신 열쇠 꾸러미를 넘겼다. 형은 열쇠를 받아들더니, “따라와라.” 하며 앞장섰다. 그런데, 다른 곳이 아니라 형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형, 왜...”

“어허, 조용히 하고 따라만 와.”

형은 분명 재미있어하면서도 짐짓 엄한 목소리를 내며 앞서서 척척 걸어갔다.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형은 현관 쪽으로... 꺾는 게 아니고, 갑자기 내 방(이었던 곳)도 아니고, 현관도 아닌, 옆집과 맞닿은 담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담장에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 생겼다. 다름아닌, 뢰다의 키만한, 스윙 도어(swing door)였다...!

“저거...!”

“너 임마. 어제 테밀이 너를 괜히 외박 보낸 줄 아냐?”

“그럼, 형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 와. 내가 입이 근질거려서 참느라 혼났다.”

와... 나는 가슴 속에서 막 배신감이 이는 걸 느끼며 형을 노려보았다. 형은 큭큭거리며 웃더니, 내 머리를 헤집었다.

“놀랐지?”

“좀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랬어요.”

“삐졌냐?”

“혀엉!”

“미안, 미안. 그래도 이렇게 아니면 언제 너를 놀라게 해 보겠냐.”

큭큭 웃던 형은, 머리 뒤에 손을 깍지껴 댔다.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걸어, 스윙 도어를 지나쳤다.

“그 왜, 그렇잖냐. 자식이나 형제가 성인이 되면, 분가(分家)라는 걸 하잖아? 사실 너는 성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백작위도 얻었고, 앞으로 돈도 많이 벌 거고... 그런 너를 내 집의 손님방에 계속 두는 건 너한테도 안 좋고 나한테도 안 좋을 것 같았거든. 그랬던 차에 마침 황태후 전하께서 제안을 하셔서, 적절히 타협을 봤지.”

“타협이요?”

“니가 내 동생이란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냐. 게다가, 황제 폐하가 나스프 공작가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우리 로그푸스 가와 친한 모습을 보이고 계시지. 물론 실제로도 친하지만 말야. 그러니까, 공작가에서는 유일하게 말이 먹힐 만한 황태후 전하를 통해서, 일단 너라는 연결 고리를 나에게서 떨어트려라도 놔야 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괜찮은 수인거 같은데요.”

형은 나를 잠시 멀뚱히 바라보더니, 어깨로 툭 밀었다.

“뭘 남의 일 얘기하듯이 얘기하냐.”

“암튼, 그랬는데요?”

“그런데, 황태후 전하는 잊고 있었던 거지. 내가 어쨌든 너의 ‘후견인’이라는 걸 말야. 아무 집이나 줘서 나한테서 떼어놓고 싶었겠지만, 그건 내 허락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던 거지.”

이건 뭐... 귀신을 잡은 엽서 이야기도 아니고. 형을 떼어놓기 위해서는 형의 허락이 필요하다니 무슨 이런 상황이.

“아예 막아버릴 수도 있었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더 과격한 수를 쓸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뭐... 제도의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이렇게 큰 집을 그것도 공짜로 주신다고 하니 얼마나 좋냐.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했지. 귀족가의 집에는 반드시 고용인이 따르지 않냐. 너의 집을 우리 집 근처에 두는 대신, 고용인을 황태후 전하가 추천하는 사람으로 하기로 했지.”

“어... 어느 게 유리한 건가요?”

“하기 나름이지.”

하기 나름이라... 어느새 우리는 깔끔하긴 하지만 형네 집만큼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 근처에 와 있었다. 막 자른 풀에서 상쾌한 냄새가 났고, 여름밤을 반딧불과 귀뚜라미들이 밝히고 있었다. 물론 모기들도 제법 날아다녔지만. 으윽. 형은 손을 휘휘 저어 날벌레들을 쫓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적은 더 가까이에 두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네 집사라는 분도 좋은 분 같아 보였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옆집이니까, 예전과 달라지는 것도 없을 거고 말이지. 여차하면, 오레즈랑 에노 부부가 네 집사 부부를 교육시킬 수도 있고.”

“아...”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어 형에게 물었다.

“그럼 형, 혹시 며칠간 바빴다는 게, 황제 폐하의 경호를 위한 게 아니고...”

“니가 속을 줄은 몰랐다. 황제 폐하의 경호는 당연히 황실 경호대가 하지. 우리 수사기사단이 돕긴 하지만 나까지 매번 나설 정도는 아니야. 니가 바쁘게 움직일 때 우리는 이 준비를 했지.”

“...그럼, 테밀 누나랑, 오레즈 할아버지랑, 에노 할머니도 모두 공범이에요? 와...”

진짜 배신감 느낀다... 형은 피식 웃더니, 열쇠를 나에게 다시 내밀었다.

“자. 기념비적인 첫 귀가 순간이니까, 집주인이 문을 열어야지.”

이 양반이 어디서 말을 돌려...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형의 손에서 열쇠를 건네받아 두꺼운 청동으로 된 문을 열었다.

끼이익-.

집 안은 환했다. 마력석 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거실에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뽐내는 가구들과 장식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물며 응접실에 놓인 탁자 하나, 소파 하나마저도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어... 그래. 나스프 공작가를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사람을 압도하는, 천박하지 않고 귀족스러운 호화스러움. 기사단의 예복을 잘 차려입고 있지만, 그런 내가 여기서는 손님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에아임 님, 오셨군요. 그리고, 이 분이...?”

40대 후반... 그러니까, 대략,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 나이 정도 되는 중년의 남녀가, 소파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퍼뜩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형은 이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 듯,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에스틴 씨, 테리아 씨. 네, 이 쪽이 제 동생, 기리인 모스입니다.”

두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것 – 침대에 까는 시트인 모양이었다 – 을 테이블 위에 두고는, 나란히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갑자기 주인님이라고 불려서 당황해버린 나는(게다가, 이브 생각이 아주 잠깐 나서 더 당황했다), 잠시 어찌할 줄 몰라 형을 바라보았다. 이놈의 형이란 사람은 그런데 동생이 당황하니까 그게 재미있는지 빙글거리며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제기랄.

어쨌든,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함께 지내야 하니, 잘 지내봐야지. 어떤 게 예의바른 행동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대사제 님을 만날 때를 떠올렸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행동을 진심을 다해 할 뿐이다.

“일어서세요.”

두 분이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게 맞겠지.

“처음 뵙겠습니다. 기리인 모스라고 합니다. 신의 도우심이 있었는지, 어쩌다보니 두 분과 함께 이 집에서 살게 되었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나이뻘인데 함부로 말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내 존댓말과 정중한 태도 때문일까, 에스틴과 테리아라는 두 사람은 오히려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에스틴 오누트라고 합니다. 이 쪽은 제 처, 테리아입니다. 나스프 공작가에서 일하다가, 좋은 분의 소개로 이번에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모시게 된 분이 제국에 그 명성을 떨치고 계신 젊은 영웅 기리인 모스 백작님이시라니 영광입니다.”

으으. 아직도 영웅이라는 호칭은 내 귀를 마구 긁고 싶게 만든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느낌이란 말이다.

“에스틴 씨, 테리아 씨.”

“호칭을 낮추어 주십시오. 고용인에게 경칭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인님.”

“그럼 두 사람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는 두 분의 고용인이지 노예 주인이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표정이 약간 복잡미묘해졌다. 존중해준다고 감격했을까? 아니면 약한 주인이라고 얕보고 있을까? 어느 쪽이 진실이건,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에스틴 씨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백작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백작님도 저희에게 ‘씨’는 빼고 불러주십시오.”

옆에서 형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그걸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야’라는 말로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에스틴, 테리아. 이렇게 부르도록 하죠.”

“네, 백작님.”

왠지 몰라도 대단히 오랜만에 사용하는 느낌이지만, ‘정보 확인’.

<이름          : 에스틴 오누트

나이          : 44

HP           : 2780

힘            : 78

민첩          : 84

지력          : 88

마나친화력    : 66

매력          : 82

지구력        : 89

특수          : 사교술 B+, 가정경영 A0

스킬          : >

<나스프 가에서 일하던 고용인입니다. 이번에 황태후 전하의 지시로 이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스프 가와 강한 링크가 있습니다.>

<이름          : 테리아 오누트

나이          : 40

HP           : 1780

힘            : 68

민첩          : 77

지력          : 89

마나친화력    : 71

매력          : 80

지구력        : 84

특수          : 가사 A0

스킬          : >

<에스틴 오누트의 아내입니다. 이번에 황태후 전하의 지시로 이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스프 가와 강한 링크가 있습니다.>

‘띠링!’

<디버프 – 말조심>

<당신은 당분간 당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어디론가 보고가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의식하면서 행동해야 합니다.>

<디버프의 결과로 집에서 피로회복되는 속도가 25%만큼 감속합니다.>

아 놔 진짜....

============================ 작품 후기 ============================

적당한 타협으로 기리인은 에아임 옆집에서 말조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1편에 누군가 달아주신 신랄한 평가에 멘탈이 깨졌다가 간신히 회복하는 중입니다 ㅠㅠㅋ 그게 사실이라서 더 아픈 평가였습...

유한도전 님 // 아쉽게도 틀리셨네요!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앞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들도 막 쏟아지겠죠? ㅎㅎ;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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