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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71화 (271/309)

00271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요안나 선생님의 지도교수인 뢰큐 교수였다. 대략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평범하게 생긴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그는, 장황한 인사나 수식어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사람들에게 가져온 종이다발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보고서 – 기리인 모스 백작의 특이체질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보고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드리면, 기리인 모스 백작님은 원래 스물도 되기 전에 6서클의 일부까지 사용 가능했던, 대마법사가 될 것을 기대받던 인재였습니다.”

“정말이오?”

마블라드 교수가 물었고, 뢰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 이스카 양이 그의 마법 아카데미 선생님이었고, 그 선생님이 그를 평가한 기록이 있습니다. 보고서에 역시 첨부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그는 북부 대요새에 일어난 대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8서클의 날씨 변화, 고급(change weather, advanced) 마법을 사용해 버렸고, 그 여파로 회로 과부하로 인해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마치 죽을 병에 걸린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받았다. 대부분이 마법사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데, 보통의 과부하 환자들과는 달리, 백작님의 몸은 매우 특이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아무리 과부하 환자들이라 해도 마나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그들의 몸은 예전같이 활발하게는 아니더라도 일정부분 마나와 친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백작님의 몸에서는 마나가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

정부 마법사, 키오이그의 한숨섞인 탄성.

“그 점을 빠르게 발견한 요안나 양이 아카데미에 이를 보고했고, 우리 아카데미는 최대한 빠르게 그를 확보하려 애썼습니다만...”

“4백년 대륙 마법의 역사에 처음 보는 일이오. 그런 큰 먹이를 혼자 먹으려다간 배탈나는 법이지.”

이 말을 한 것은 심지어 대사제님이었다. 그리고 마블라드 교수와 이브 마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데비로스 교장과 뢰큐 교수의 표정은 약간 뭐 씹은 표정이 되었다. 잠시 입맛을 다시던 뢰큐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모든 소동은 백작님이 미틱 시와 레카 시에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빚어졌습니다. 그 공으로 기사 직에 오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명문가 중 하나인 로그푸스 가의 에아임 경과 의형제를 맺게 되어, 어느 기관도 그에게 압력을 넣거나 그를 독점하지 못하게 되었기 떄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브 오르테 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그랜드 아카데미, 제국 대학, 대신전 삼자가 참여하는 연구회를 꾸리게 되었습니다만... 백작님이 전장에 나가게 되어 지난 석 달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습니다.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연구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 그간의 경위입니다.”

참석자들은 짧게 박수를 쳤고, 교수는 고개를 꾸벅인 후 박수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연구를 직접 주재할 요안나 양이 발표하겠습니다.”

내 곁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일어나 앞으로 나서서는,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우선 먼저 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작님, 이리로 나와주시겠습니까.”

내가 별 말 없이 앞으로 나서자, 선생님은 자그마한 핀 하나를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손을 찔러 피를 내어 주십시오.”

아... 이렇게 확인하려는 건가. 나쁘지 않지. 내가 손가락 끝을 쿡 찌르자, 붉은 피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치유(heal).”

흰 빛이 선생님의 손 끝에 모이고... 그 빛나는 손이 내 손 근처에 다가오자, 그 빛이 일시에 팍, 사그라져버린다.

“트리클이시여...”

“다른 마법사님들도 한 번씩 해 보십시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수며 교장이며 모두 달려와 앞다투어 치유마법을 시전했지만... 효과는 똑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두가 서로의 눈을 돌아보는 가운데, 대사제님이 다가와 별다른 주문 시전도 없이 내 손을 슥 스쳤고, 그러자 피가 멎으며 상처가 사라졌다. 이런 상처에 대사제님의 치유라니 호화스럽기 짝이 없구나.

“보시는 바와 같이, 그의 몸 주변 일정 거리에서 마법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마나 애로우(mana arrow).”

선생님이 갑자기 만들어 날린, 마나로 만든 보랏빛 화살은... 역시 내 몸에서 반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오자 팍 하고 소멸되었다.

“하지만, 이미 생긴 물리력 자체를 소멸하지는 못합니다. 물체 창조(create object).”

전에 에빌로 누나가 했던 것처럼, 내 머리 위에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생겨났고...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살짝 자리를 비키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손으로 받아내었다.

“만약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면 마법사들의 악몽 같은 존재가 될 뻔 했군.”

데비로스 교장이 중얼거린 말에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또한 그는 우연한 계기에, 마나 자체를 직접 배치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고함치듯 물어본 마블라드 교수. 그리고 어느 누구도 교수의 말에 항의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교수가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소리쳤을 것처럼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요안나 선생님은 마치 날더러 대답하라는 듯 나를 향해 고갯짓해 보였고, 나는 담담히 말했다.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소! 어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교수. 모두의 눈에 떠오른 불신을 보고 나는 말로는 안 되겠고 직접 보여줘야만 되겠군, 하고 생각했다.

“교장님. 마법 실험을 하는 넓은 공간이 있습니까.”

“바로 이 곳 지하에 있네. 마법사들이 새 마법을 시험하는 곳이지. 시험을 위한 허수아비들도 많이 있지.”

“그럼 혹시, 활 한 자루만 빌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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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회의를 중단한 우리는 곧바로 회의실을 나왔다. 알프레드가 허공 중에 슥 나타났고, 데비로스 교장이 뭐라뭐라 말하자 알프레드는 곧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알프레드가 잠시 ‘흔들리더니’, 알프레드가 둘로 ‘갈라졌다’. 한 알프레드는 우리를 계속 안내했고, 다른 알프레드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얼마 후, 우리가 넓은 1층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에 오자,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 나에게 활과 화살을 넘겨주고 갔다. 화살은 촉이 없이 뭉툭한 것이었고, 활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 그래. 크주크 형과 훈련하던 장난감 비슷한 활과 화살보다 아주 약간 나은 정도였다.

뭐,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만.

“여기가 마법 실험장 1호실입니다.”

알프레드가 그렇게 말하고는, 스르륵 사라지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나타났고, 뢰큐 교수가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며 박수를 짝! 짝짝! 하고 이상한 리듬으로 세 번 치자 공간의 불이 확 하고 밝아졌다. 와. 이런 데 불 켜는 마법까지 걸어뒀냐. 역시 그랜드 아카데미.

1호실이라고 해서 커 봐야 교실 하나 정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한 학교 학생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대강당 정도의 크기였다. 뢰큐 교수가 “허수아비”하고 말하자, 저 먼 쪽 벽에 서 있던, 대충 만든 것 같은 허수아비가 스르륵 굴러왔다.

“백작님. 어느 정도 거리면 되겠습니까.”

“활이 잘 익지 않았긴 하지만... 100보 정도면 괜찮겠군요.”

하, 하고 누군가 비웃음 비슷한 탄성을 냈다.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잠시 후에도 그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두고 보자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이번 전쟁에서 최고의 공훈을 세웠습니다. 모두, 제가 마나를 불어넣은 화살을 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특수한 활과 화살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뢰큐 교수가 허수아비에게 “100보 거리”라고 말하자, 그 허수아비는 곧장 100보 정도 떨어진 곳에 가서 섰다. 나는 전장에서 하도 여러 번 해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대로, 마나의 레일을 만들어, 길게, 허수아비에게 뻗었다. 그리고, 그 장난감같은 활을 당기며, 촉이 없는 뭉툭한 화살을 그 레일 위에 실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최대한 부드럽게, 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륵. 화살이 아무런 소리 없이 앞으로,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허수아비의 머리를...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냈다. 눈 한 번 감았다 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하다못해 요안나 선생님마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력 시위를 할 거라면, 한 번에 그치면 안 되겠지.

“200보로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허수아비, 200보.”

아까보다 훨씬 먼 것 같은 거리에 허수아비가 섰다. 나는 한껏, 마나의 레일을 앞으로 뻗었다. 150보 지점까지 뻗어나간 레일 위에 나는 예의 그 화살을 물리고, 놓는다.

톡.

스르르륵. 눈 한번 감았다 뜨자 화살은 어느세 150보 정도 날아가...

꽈앙! 허공에 하얀 꽃을 피웠다.

후두두두두둑!

뭐야, 갑자기 웬 소리야, 하고 보니... 어설프게 만든 화살은 그 어마어마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었다. 150보 지점에서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넓은 영역이 화살의 파편에 휩쓸렸다.

“신이시여...”

대사제님의 나지막한 한 마디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그간 너무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전개된데다가 오래전에 연재했던 부분도 있어서... 중간에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장면을 넣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늘 감사드립니다.

계룡산도인 님, cacao99 님, eastarea 님 // 늘 감사드립니다!

유한도전 님 // 저야 두고 싶지만...ㅎㅎㅎ;;;;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일종의 아재 센스인거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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