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72화 (272/309)

00272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연구는 시작하자마자 난항에 부딪혔다.

“마법사로서 참담하지만, 나는 저 현상을 마법으로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 손을 가볍게 들어보이며 데비로스 교장이 말했다.

“아니,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기 힘듭니다. 화살과 마법에 대해 더 연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모스 백작님의 저 화살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마나를 직접 배치한다는 그 이야기조차 우리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마나 에지를 쓸 수 있는 기사들은...”

내가 그런 얘기를 꺼내봤지만, 곧바로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백작님. 아시겠지만 그들 역시 단순하나마 마법 회로를 뚫습니다. 그래서 그 회로를 이용해서 마나를 검에 투사하지요. 백작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나를 직접 밀어넣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

“아무튼, 그렇습니다. 재현이 되어야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 연구를 할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데비로스 교장과 뢰큐 교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대신관님을 바라보니, 대신관님 역시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 아까 모스 백작님이 활 시범을 보인 이후 나는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다오. 신께, 왜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느냐, 모스 백작이 보이는 것이 악한 것은 아니냐, 그가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대신관쯤 되면 신께 대답을 듣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오. 무엇보다 교황 성하를 제외하면 신께 가장 가까운 이들이 이 늙은이 같은 대신관 아니겠소. 그런데...”

평생 설교로 단련된 사람답게 대신관님의 말솜씨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내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신께서는 답을 하지 않으셨다오.”

“네?” “그게 무슨...” “신께서 외면하신다는 것입니까?”

사람들의 분분한 말에 대신관님은 두 손을 들어올려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오. 실제로 신께서는 모스 백작의 행사가 악한 힘이나 이단적인 요소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셨다오. 저번 대신전에서도 그러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다시 여쭈었을 때도 그러했소.”

“그럼...”

“하지만 신께서는 이 현상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을 하지 않으셨다오. 무시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분명히 내 물음은 신께 가닿고 있소. 신께서도 내 물음을 들으셨다고 나는 확신하오. 하지만 신께서 그에 대해 대답하시지 않기를 선택하셨고, 그리고 그것은 나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오.”

모두가 조용하고 있을 때, 키오이그가 손을 들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 중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저 뿐인 것 같아서... 대사제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어린아이가 성(性) 같은, 지금은 알면 오히려 해로운 지식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부모가 하는 태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 역시 부모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상당히 비유가 가까울듯하오. 신께서는, 순수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스 백작의 몸에 나타난 현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기를 택하신 거라는 말이오.”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럼 신께서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신다는 이야기인가... 내 표정을 보았는지, 대사제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오, 모스 백작. 신께서는 우리의 연구나 백작의 노력을 막은 것이 아니라오. 아이가 부모의 뜻을 모두 짐작하지 못하듯, 우리는 신의 뜻을 모두 알지 못하오. 또, 신께서도 우리가 신의 뜻을 모두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를 원하시지 않고 말이오. 트리클 신께서는 천칭의 중앙을 잡고, 선악의 저울눈을 맞출 뿐, 저울대를 옮기거나 저울눈을 바꾸지는 않으신다오. 백작은, 그리고 우리는, 지금처럼 계속 미지에 대해 탐구해 갈 것이오. 그것이 신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임무이기도 하오.”

막지는 않겠지만, 알려주지도 않겠다, 이런 뜻인가... 이 모임이 이단으로 지목되어 다음 번에 열리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는 피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마블라드 교수를 바라보았다. 교수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우선, 내가 제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마학에 대해 알고 있소, 백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오르테 교수가 저를 찾아왔을 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법에 학술체계를 세우는 것을 우선시한다고...”

깡마른 백발의, 누가 봐도 꼬장꼬장하게 생겼다고 할 법한 노교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단에 서서 강의하면 멀리까지 잘 들리겠다.

“마학을 가르치는 우리 모두는 그래서, 그랜드 아카데미 출신의 마법사라오. 그렇기에 우리 역시 백작의 상실감에 대해 잘 알며, 접근방식이 막막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접근법이 없진 않소.”

“그렇습니까?”

약간,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나 스스로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측이니까 말이다.

“그래요, 백작님.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에게는 대도서관이 있지요.”

아, 그래. 대도서관. 사용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의 위치를 찾아주는 마법진이 있다는, 대륙의 5대 신비 중 하나. 처음부터 차후 확장될 것까지 대비해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는데다, 그 마법진이 역대 대마법사들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물건이라, 유지보수하는 게 고작이라는, 그 곳.

그러고 보니, 전에 이브가 찾아왔을 때, 대도서관 얘기를 하다가...

“선생님.”

“네, 백작님.”

남들의 눈을 의식했는지 선생님은 나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대도서관에 가 보셨나요?”

“네, 가 봤습니다.”

“그럼 마법진에 서 보셨나요?”

“네, 서 봤습니다.”

오오?

“그럼 어떤 자료를 찾으셨는지?”

그런데 선생님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알려드리기 곤란합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말이라 내가 멈칫하자, 선생님은 미안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나중에 따로 사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자료에 대해 설명드리기도 곤란하고, 아직 자료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한데다, 해석을 해서 취해야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아직...”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이 여전히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눈짓을 했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알려줄게, 라는 뜻이라고 해석해버린 뒤,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이 대화를 마무리하게끔 예의바르게 기다린 이브가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에 백작님께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백작님께서 ‘내가 올라가도 그 마법진이 문제가 없겠느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대도서관과 저희 대학측은 몇 차례에 걸쳐 심각한 회의를 거쳤답니다. 백작님의 체질을 정확히 재현할 수 없어서 실험은 못 해봤지만, 몇 차례의 회의 결과...”

“결과...?”

“오늘 하루 제국 대도서관의 개방을 막고, 모스 백작님에게만 개방하기로 했어요. 동시에 전 직원이 수리를 위해 비상대기하기로 했어요. 만약 모스 백작님의 특이체질로 인해 마법진이 망가지게 되면, 전 직원이 동원되어 이를 수리하는 걸로 결정했지요.”

...뭐야 그게. 뭐 뾰족한 해결책이라도 있는 줄만 알았건만...

“우리 아카데미도, 대신전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단서가 그것이니 별 수가 없군요...”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는 듯, 목소리에 씁쓸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데비로스 교장이 말했다. 그러자 이브가 말했다.

“그럼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제국 대도서관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백작님이 마법진에 서 보신 후, 그 결과를 가지고 대도서관 회의실에서 회의를 이어가면 어떨까요?”

모두가 동의했고, 그렇게 나의 그랜드 아카데미 첫 방문은 짧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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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라도 불러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걸어서 5분이면 제국 대학 부지 내에 위치한 –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도서관을 포함하는 식으로 제국 대학의 부지를 정한 거라고 – 대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다고. 100년 가까이 서로 대립해 온 두 기관이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위치라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걸으니, 정말로 금방 대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대도서관은 ‘대’자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나는 대신전의, 그 거대한 건물을 떠올렸다. 그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고 그 2/3 정도의 높이였지만, 대신 넓이는 대신전보다 넓은 것 같았다. 그 넓은 대도서관을 포함하는 제국 대학의 부지 역시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사실 대도서관의 위치는 언제나 제국 정부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대상이지요.”

키오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도는 좁습니다. 좁다 보니 땅값도 비싸고요. 그런데 그 금싸라기 땅의 한가운데 저 큼지막한 대도서관과 제국 대학이 있으니, 공간을 활용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얼마나 아깝습니까. 저 땅을 활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제도 공작을 맡아온 역대의 황태자들이 한결같이 했지요. 디트리클 시처럼 제국 대학을 독립적인 도시로 만들면 좋을텐데, 하고 말이죠.”

“그래서요? 왜 이전하지 못했죠?”

“저 마법진을 정확히 옮겨갈 자신이 없는 게죠. 복제도 안 돼, 부분이동도 안 돼... 그리고 대도서관이 여기 있어야 하니 제국 대학도 여기서 옮겨가지 못하는 거죠. 제국 대학이 처음 생길 때 대학의 권위를 위해 좀 무리를 해서 대도서관을 자신의 안에 품었는데, 이제는 배꼽이 배를 끌고 다니는 상황이 된 거죠."

============================ 작품 후기 ============================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마뱀DX 님, 계룡산도인 님, 박성빈 님, cacao99 님 // 정말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그러게요 저도 집에서 하나 키우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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