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3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 제목에 대한 공지가 있습니다. 후기를 읽어주세요! *
키오이그의 그런 말을 들으며 나는 대도서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원래는 대도서관 입구의 역할을 하던 두 조각상의 옆으로, 제국 대학의 외벽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늘씬한 여자가 몸에 긴 천을 옷인 것처럼 두른 채 자리에 앉아 책을 펴든 한 쪽 조각상과, 그 건너편 역시 늘씬한 남자가 먼 곳을 내다보는 조각상의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계단 너머에 대도서관이 있었다. 보통의 네모난 건물이 아닌, 원형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겉면은 대도서관이 겪어온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많이 닳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랜 세월만이 대변해 주는 그런 멋이 있었다. 대신전만큼 압도적이고 위엄있지는 않지만, 기품있는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백작은 이 건물을 처음 보는 것이겠군?”
마블라드 교수가 다가와 말했다. 내가 “그렇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부심 넘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블라드 교수는 마학과의 학부장이기도 하지만 대도서관의 부관장이기도 했었지.
“아시겠지만, 대도서관은 제국보다 오래 되었다오. 처음 이름모를 마법의 대가에 의해 마법진과 건물의 기초가 하루아침에 세워지고, 며칠만에 저 3층의 건물이 모두 올라간 것이 500년 전이오. 그 이후 대도서관은 보수는 있었을 지언정, 확장이나 개축은 전혀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이 유지되고 있소. 아직도 남는 공간이 있을 정도니 말이오.”
“처음부터 여유있게 지었단 말씀입니까?”
“5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간이 남아도니 말이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대도서관의 건립자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대륙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과 논문, 대륙에서 모아지는 정보, 온갖 소문 등을 기록한 것을 대도서관에 모으라는 것이었소. 치르낙 대왕이 제국을 세운 이래, 대도서관은 제국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대도서관의 빈 방을 채우고 있소. 여기에 없다면, 제국 어느 곳에서도 구하기 힘들 것이오.”
“제국 정부의 공문서들도 매달 사본이 1부씩 저장되고 있습니다. 정보량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제국 수사기사단의 보고서도 포함되어 있지요. 비밀을 요하는 정보들만 별도의 방에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키오이그가 시의적절히 거드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이 정도의 규모라면 그래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제도라 한들, 책을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책이든 서류든 무엇이든 모아서 도서관을 채우지 않는다면 저 도서관은 언제까지나 일부분만이 채워져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도서관은 거대했다.
“꼭 백작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군. 올라갑시다.”
마블라드 교수는 앞장서서 돌계단을 걸어올라갔다. 우리 일행이 그를 따라 대락 2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서, 원형 아치 형태의 정문을 지나자, 입구에 몇 명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블라드 교수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생긴, 체격도 크고 살집도 있는데다 인상은 호감형인, 하지만 머리카락은 마찬가지로 하얗게 센 노학자 한 명과, 원래 입구에서 사무를 보는 듯 책상에 앉아있는 두 사람, 그리고 실내에서 쓸 수 있는 단창을 든 경비 두 명이 서 있었다.
“아니, 관장님.”
마블라드 교수가 약간 놀란 듯 말하자, 풍채좋은 노교수가 껄껄거리며 다가왔다.
“부관장님이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온다고 해서 내 직접 내려왔습니다. 이 분들이 그 분들인가요?”
내가 곁눈으로 흘깃 본 마블라드 교수의 표정은 떨떠름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는 우리 일행을 소개했다.
“관장님. 이 분이 연구회의 연구 대상이신, 기리인 모스 백작님이십니다.”
그러자 관장은 갑자기 내 앞으로 성큼 걸어와 내 두손을 덥석 잡았다. 뭐, 뭐야.
“아이구, 제국의 영웅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국 대도서관 관장 투와 오다스라고 합니다. 오다스 관장, 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 부탁은 오히려 저희가 드려야죠. 아무쪼록 저희 대도서관을 잘 부탁드립니다.”
왜 이리 저자세로 나오는 걸까. 그는 마블라드 교수가 소개해 주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요안나 선생님과 키오이그에게도 허리숙여 인사하고, 대사제님에게 이르러서는 땅에 들어갈 것만 같은 낮은 자세로 몸을 숙여 반지에 접구했다.
“허허, 신의 종에게 이렇게 과한 예의를 보일 필요는 없어요. 일어나세요.”
“아닙니다, 대사제님. 다시금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사제님이 꼬집은 대로, 너무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오다보니, 오다스 관장은 예의가 바르다기보다는 비굴하다는, 그리고 뭔가 목적이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첫 인상과는 달리 썩 기분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연구를 시작하시기 전에, 제 방에 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먼저 차라도 한 잔 하시면서...”
다들 나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내가 지금은 신분이 제일 높아서 그러나. 아니면 좌장이 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그러나. 모르겠다. 하지만 귀족이 된다는 건 그런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얼마 후 약속이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일을 진행하고 싶군요. 세 시에 수사기사단 본부로 가야 합니다.”
오나스 관장은 잠시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재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후 “아이고, 제국의 젊은 영웅이라 당연히 공무가 다망하실 텐데...!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모시기로 하죠.”라고 굽신거리며 말하더니, “어이! 백작님의 편의를 잘 봐드려. 알겠나?”라고,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그는 곧바로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섰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럼 백작님, 원하시는 자료를 찾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굽신거리며 오나스 관장이 옆의 ‘직원 전용’이라고 팻말이 놓여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마블라드 교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쩐지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장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책상에 앉아있던 직원이 일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제국 대도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대도서관 자체 사정상 마법진을 이용한 열람이 한 분을 제외하면 불가합니다.”
“제가 그 한 사람인 것 같군요. 기리인 모스라고 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합니다, 백작님. 대도서관 이용은 처음이시죠?”
그는 확인을 위해 물어본 듯,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희 대도서관의 이용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일반 열람과 마법진 열람입니다. 일반 열람은 자료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경우나, 마법진 열람을 통해 원하는 자료를 찾은 경우, 마법진을 발동시키지 않고 직접 방을 찾아가 서가에서 자료를 찾아 보는 경우입니다. 반면 마법진 열람은, 저희 대도서관 지하에 새겨진 마법진을 발동시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입니다.”
음?
“제가 질문 한 가지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마블라드 교수 과의, 꼬장꼬장한 스타일일 것 같은 젊은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초심자의 뻔한 질문이 될 것 같지만... 제가 ‘가장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게 아니고, 저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찾아준다는 말입니까?”
그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네, 정확하십니다. 마법진은, 마법진을 이용하는 사람의 머릿속을 읽어, 현재 대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 중 이용자에게 가장 필요할 정보를 자체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그 정보가 보관된 서가로 이동하는 길을 밝혀주죠.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나올 수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는 정 반대의 정보나, 아예 딴판의 정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연구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자료가 나오거나, 정 반대의 증거자료들이 나오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오거든요. 물론 그렇기에, 연구자가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할 각오만 있다면, 더 좋은 연구가 생산되기도 합니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는 “화제가 흘러버렸군요.”라고 겸연쩍게 웃더니,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경비가 지키는 문을 지나, 대도서관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돌로 단아하게 꾸며진 대도서관의 내부가 보였다.
“와...!”
기둥도, 원형의 돌벽도, 문기둥들도 모두 흰 돌로 이뤄져 있었다. 어디서 이 많은 흰 돌들을 구했을까. 원래 흰 돌은 만지면 가루가 묻어나오거나 하지만, 마법적으로 마감이 잘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은 없었다. 세월의 흐름은 벽과 바닥에 묻은 손때와 빛바램 등으로 나타나 있었지만, 그마저도 오히려 멋지다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단 하나, 바닥만이 흰 색이 아니었다. 가로세로 한 뼘 정도 되는 검고 흰 타일들이 가지런히 쭉 깔려 있었다. 그 타일들의 사이에는 약간의, 검지 손톱 정도의 넓이의 공간이 있었다. 뭘까. 괜히 있는 공간 같지는 않은데.
“아름답죠? 불필요한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단순함에서 오는 미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아래로 가리켰다. 그의 손 끝을 보니, 자그마한 발판 모양의 돌이 있었다. 그 긴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이 올라갔는지, 발판에는 발바닥 모양의 자국이 패여 있었다.
“이 위에 올라서시면 됩니다.”
“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내가 묻자, 그는 약간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기 오르테 교수님이 말씀하셨겠죠? 백작님은 모르시겠지만 지금 전 직원이 만약의 비상 사태를 대비해 대기중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오르시죠.”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하아. 나는, 발판에 오르려다, 발판 모양이 신발 신은 모양이 아닌 맨발 모양인 것을 깨닫고, 구두를 벗었다. 양말까지는 안 벗어도 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나는 발판에 올랐다.
============================ 작품 후기 ============================
월요일이네요.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 제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좋은 제목은 아니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냥 그럴거면 제목으로 흥미라도(아니면 어그로라도) 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라노벨식으로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건 나만이 안다' 뭐 이런 걸 생각하다가...;;
전에 제목 공모할 때 어떤 분이 올리셨던, '지능 101에 매력 100, 마나 0'으로 하려고 합니다.
오늘 낮부터 새 제목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보시던 분들의 계속된 성원 꼭 부탁드립니다.
리리플은 하루만 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