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5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띠링!’
<본 시스템의 상정 외의 사태입니다. 분석중...>
몇 번 보았던, 점의 개수가 늘어나는 화면을 띄운 채 시스템마저도 침묵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턱이 빠져버린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쩍하니 입을 벌린 채 눈 앞의 광경과 나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트리클이시여...”
탄식처럼 내뱉은 대사제님의 말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말이 아니었을까. 우리 일행 말고도, 2층이나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반 열람자들 여러 명 역시, 당장이라도 그 열린 입으로 침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입을 벌린 채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계단이...?”
한참 외마디 말들을 내뱉으며 충격에 빠져 있던 일행들 중 가장 정신을 먼저 회복한 것은 의외로 키오이그였다.
“백작님, 지금도 마나를 불어넣고 계십니까?”
“아뇨. 지금은 멈췄습니다.”
“그럼 한 번 내려와 보시면 어떨까요?”
아. 그는 숲 속에 있으면서도 언제든 숲을 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나는 마음 속으로 그의 평가를 한 단계 올렸다. 그리고, 위험도도 한 단계 올렸다.
“내려온다고?”
마블라드 교수가 말하자, 키오이그가 대답했다.
“백작님이 마나를 넣지 않고 있는데, 지금 저 열린 문 형태가 유지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 빛덩어리들도 여전히 떠 있고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계단쪽을 바라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그 빛덩어리 세 개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점에 보이지 않는 실로 매어져 돌아가듯, 그 빛덩어리들은 일정한 속도로 돌고 있었다.
“아...”
직원이 그 빛을 보고, 약한 탄성을 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부관장님. 아시다시피 저희 대도서관의 마법진은, 누군가 작동을 시켜서 빛의 길이 만들어지면...”
“그 빛의 길을 따라 가서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기 전에는 꺼지지 않지. 그렇다면 모스 백작이 저 아래로 내려가서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기 전에는, 이 마법진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군. 그럼 아래로 가긴 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저 아래에 무엇이 있습니까?”
당연히 나올법한 내 질문에, 마블라드 교수는 대답 대신 주변을 둘러보더니, “듣는 귀가 너무 많군.”하고 말하고는, 직원에게 사람들을 물리게끔 지시했다. 직원이 누군가를 부르는 대신 손동작을 하며 마법을 쓰자 – 아, 마법학부의 모든 사람들은 제도 아카데미를 졸업한 마법사였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 곧, 도서관 이곳저곳에서 말소리가 울렸다. 뭔가 차분히 설명하는 듯한 직원의 목소리와, 격렬히 저항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란이 잠시 이어지고, 각 층에서 도서관의 자료를 찾아보던 사람들이 직원들에 의해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들려올라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보이고 있는 바닥과, 혹시 몰라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를 스쳐 지나가 문으로 빠져나갔다. 각 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마지막 사람들까지 모두 내보내고 문을 닫을 때쯤에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충격에서 다소 벗어난 상태였다.
“우선, 백작. 내려오시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괜찮을 걸세.”
완전히 믿음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말대로 돌 위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잠시 허공에 뜬 빛덩어리들을 바라보았지만, 그 빛덩어리들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어떤 일이 더 벌어질 것 같지 않기는 하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앞을 벗어날 수는 없겠군. 이 쪽으로 모여보시오들.”
그는 우리 일행을 계단 바로 앞에 둘러앉게 하고는 자신도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래층에 모여든 직원들에게 말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겠지만, 말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미안하다. 이 현상이 정리된 후,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공개하도록 하겠다. 미안하지만 회의실에서 대기하도록. 그리고, 관장님을 모셔와라.”
모두가 학자일텐데, 그래서 호기심과 의문을 정말로 참기 힘들 텐데, 그들은 전혀 군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줄지어 문을 빠져나갔다. 석 달이나마 그 모습을 함께 지켜봤던 제국군이 생각날 정도의 기강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이 다 나가고 잠시 후, 헐레벌떡, 아까의 풍채 좋게 생긴 관장이 저러다 넘어지겠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왔다.
“무, 무슨 일인가, 마블라드...!”
마블라드 교수는 침착하게, 열린 바닥을 가리켰다. 오다스 관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꽉 억눌린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지하가...”
마블라드 교수가 역시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바로는 기록에는 없었네.”
“내가 아는 바로도 기록에는 없어. 저 아래가 열린 것은 말야.”
관장은 아까 우리에게 굽실거리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마블라드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마블라드? 아까 건물이 울리기에 이상하다 생각은 했네만.”
“그것이 말일세...”
마블라드 교수가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자, 오나스 관장은 살집 때문에 작아보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사실이오, 백작?”
“네. 마블라드 교수님의 말은 사실입니다.”
“트리클이시여...”
아까 대사제님이 그러했듯 관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도서관의 지하에 마법진이 있다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오.”
대답을 기다린 게 아닌 듯,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당연히 있소. 마법진을 수리하고 유지보수 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여러 마법사들이 모여 그 마법진의 원리를 연구해보려 애썼음에도, 도서관의 설립자가 남겨둔 설계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닳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회로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소. 그래서 지하에 내려가서 정기적으로 마법진을 점검하고, 타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법진 중 문제되는 부분을 교체해 주곤 했다오. 그런데...”
“그런데?”
“지하에는 방 하나 정도 되는 공간이 완전히 벽으로 둘러싸인 채 막혀 있소. 문제는, 그 벽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점이오. 도서관의 설립자께서는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으셨소. 실제로 이 마법진을 이용해 그 정보를 찾으려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애초에 없는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오.”
“부수면...”
멍하니 말한 내 말에 오나스 관장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 공간의 벽에는 마법 회로가 빼곡이 들어차 있소. 정확히 어떤 기능인지는 모르지만, 마법진을 연구해 본 학자들은 지상과 지하의 마나의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소. 그런 곳이라 쉽게 부술 수 없단 말이오. 그 벽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찌 알 수 있겠소. 만에 하나 되돌리지 못하는 날에는...”
하긴... 나 같아도, 이 대륙의 5대 신비 중 하나를 그런 식으로 망가트리고 나면 역사의 죄인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오나스 관장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공간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소. 단지, 관장들에게는 전대 관장이 새로운 관장에게 전해주는 것이 있다오.”
“그게 정말인가, 오나스?”
“그렇다네, 마블라드.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관장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해주지 말라는 당부가 있어 어쩔 수 없었네. 미안하이.”
마블라드 교수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닐세.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스승님의 판단이 옳으시겠지.”
두 사람은 알고 보니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였나보다. 마블라드 교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기에, 나는 마블라드가 하고 싶은 질문을 오나스 관장에게 대신 물었다. 아니, 마블라드 교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저 아래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저 아래에는, ‘저절로 기록되는’ 두루마리가 있다고 하오.”
“‘저절로 기록되는’이라고요?”
이 사람이 무슨 농담을 하나 하고 바라보니, 그는 농담기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어가 본 것이 아니니 뭐라 확언해 줄 수는 없소. 하지만 전대 관장이셨던 나의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인즉슨, 저 안에는 한 해에 한 번 내지 두 번, 도서관에 들어온 지식의 양에 따라 시기가 바뀌지만, 그때까지 들어온 지식을 총정리해, 중요한 정보들을 정리해서 한 해의 두루마리를 만든다고 하오.”
“...그 정리작업을 대도서관 마법진이 스스로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한다고요?”
“그렇다고 하오. 정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는 정말로,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쉽게도 전승에는 다른 말이 전해지고 있소. 자격과 능력이 있는 자 앞에서 그 문은 열릴 것이다. 그 자 이외의 다른 자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순간.
‘띠링!’
<저 공간에 대한 분석이 끝났습니다>
<위업!>
<당신의 특이체질 덕분에, 당신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대륙 5대 신비 중 하나인 대도서관의 신비 중의 신비가 드러났습니다.>
<설령 길가다 금화를 주웠다 한들, 그 행운 역시 당신의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았다 한들, 이 신비를 드러낸 것은 당신의 업적입니다.>
<보상 책정중...>
<레코딩 챔버>
<발견난이도 – SSS>
<이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대도서관의 설립자가, 마법진 안의 마법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숨겨놓은 공간입니다.>
<그 공간 안에는 대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그 정보간의 연관성과 가능성을 분석해, 지금까지 대도서관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정보나, 모인 정보 중 유독 가치있는 정보들을 모아 기록한 두루마리들이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들은 설립자가 만든 마법진에 의해 저절로 기록되고 보관됩니다.>
<경고! 레코딩 챔버는 챔버의 문을 연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으며, 이외의 사람이 챔버를 들어가고자 하면 그 순간 챔버 내의 모든 기록에 먹물이 뿌려져 볼 수 없게 됩니다.>
<안에서 기록을 들고 나올 수도 없으며, 필사할 수도 없습니다.>
============================ 작품 후기 ============================
이게 실화냐 싶은 순위를 보고 있습니다.
제목 하나 바꿨다고 베스트 40위 안으로 올라가지를 않나, 선작이 100 늘어나질 않나...
그간 거대한 쇳덩어리를 달고 달리고 있었나 싶어 씁쓸합니다.
그리고 새삼, 그간 꾸준히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중간에 쉬고 싶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선/추/코/쿠 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jin-matient 님 // 그런가봐요. 칭찬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hasj12 님 // 그렇게도 보일 수 있겠네요. 전개를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언제나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힘낼게요. 감사합니다!
니코틴 님 //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영생부유령 님 // 선작이 100분이나 늘어서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