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79화 (279/309)

00279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눈 앞의 일의 충격, 그리고, 대륙 5대 신비로 꼽히는 대도서관의 마법진 속에 감춰진 더욱 신비한 일이 눈 앞에서 닫혀 버렸다는 어마어마한 상실감에 오나스 관장, 마블라드 교수, 데비로스 교장, 뢰큐 교수, 그리고 심지어 이브까지 모두 잠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를 꼭 안아주는 요안나 선생님을 진정시키고, 그들이 충격에서 회복되기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제 정신을 차린 그들 앞에서 나는 아까 내가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기록의 방이라고?”

“자격이 없는 자가 입장하면 기록 전체가 읽을 수 없게 말소된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지어 저에게도 허락된 것은 세 개의 두루마리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내용을 밖에서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까지 하더군요.”

“신이시여...”

트리클 신을 찾는 대사제님을 보며 나는 설령 황제 폐하의 앞에 무릎이 꿇려진 상황에서 칼이 내 목에 들이대어지더라도 결코 내가 안에서 본 이야기를, 신에 대한 의심을 살 수 있는 이야기를 발설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설령 저 ‘레코딩 챔버’가 망가지는 것을 각오하고 이야기한다 한들, 결과는 둘 중 하나겠지. 대사제님의 믿음이 크게 흔들리거나 – 혹은 내가 트리클 교단의 공적이 되거나.

“그 방이 울림으로 백작님에게 말을 걸었단 말입니까?”

“네. 그렇지 않고서는 제가 저 방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없었겠지요.”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이군...”

“하지만 그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소.”

대사제님이 손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며 말하자 여러 사람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속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트리클 신이 탐탁치 않게 여긴다 해서, 혹시나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럴까봐 걱정했었는데. 그래서 두루마리 숫자도 하나 줄이려고 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말이다.

“대체 어떤 존재가...”

“인간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방은 제 물음에 대답도 하고, 제가 말하기 전에 경고도 하고 하더군요.”

“허허...”

모두가 입을 헤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거나 얼굴을 쓰다듬거나 머리를 긁거나 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기록하는 정보가, 저 방을 만든 존재에게 전달된다는 것인가?”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 나와서 다행이다.

“정보 그 자체가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만한 공간도 아니고요. 대도서관의 큰 마법진 안에 저 방의 마법진이 숨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백작? 아하...”

오나스 관장이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시오, 관장?”

“대도서관 마법진에 대한 설계도가 있다는 사실은 아까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이 마법진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렸고요. 그런데 그 단서가 있다면, 어느 마법회로는 대마법진을, 어느 마법회로는 방의 마법진을 구동하는 것이라는 걸 구분해보는 시도를 해 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아무튼, 그 방은... 우리가 대도서관에 들여놓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합니다. 마치 지성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보의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밝혀지지 않은 정보나, 모두가 놓치는 정보를 발견하는 모양이더군요. 그런 정보를 모아서 기록하는 모양입니다.”

“두루마리가 몇 개 정도 되어 보였소, 백작?”

마블라드 교수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대충 파악했었으니까.

“대략 2천개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1년에 4~5개 정도의 두루마리를 생산해 내는 것 같더군요. 제 손에 잡힌 두루마리 두께로 볼 때 보통의 책 한 권 정도에 들어갈 내용이 두루마리에 기록될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닐세, 백작.”

마블라드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대도서관에 들어오는 자료들 중 상당수는 최근 백 년 안에 들어온 것이고, 최근 백 년 안에 들어온 자료들 중 절반은 최근 30년 안에 들어온 것이네. 이런저런 부침이 있지만 인류는 확실히 진보하고 있다네. 지식의 양도 그만큼 늘어났지. 정보가 많아지면, 그 ‘기록하는 방’도 기록할 내용이 늘어나겠지. 그러므로 최근에 기록한 두루마리가 더 많을 걸세.”

“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확인할 방도도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 방의 주인은 웃으며, ‘누군가는 와서 방의 두루마리를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오나스 관장과 마블라드 교수, 그리고 이브의 고개가 홱하고 내 쪽으로 돌려졌다.

“그 말은...! 누군가가 여기를 들어온다는 것 아니오?”

“그렇겠지요.”

“그럼 그런 존재가 역대 관장들에게 경고한 것일까요?”

“그렇겠군... 관장들 중 일부는 그 경고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그들이 왜 그리 무서워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는지 이제는 알겠군...”

“그 존재는 관장님에게, 저 방을 잘 지켜라 라고 말했습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도서관은 우리가 관리하지만, 우리의 것이 아니오. 대도서관의 마법진의 어마어마함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오. 우리에게 이런 신비를 허락해 준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것을 우리에게 주고 간 이라면 상상도 못 할 위대한 존재일테지.”

관장의 말을 받아 마블라드 교수가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리고 모스 백작이 말해준 이 방의 존재는 모두 함구하는 게 좋겠소.”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키오이그가 말했다.

“저 역시 동감입니다.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분명, 인류를 지켜보는 어느 강대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동요할 수 있습니다.”

역시 그는 제국 행정부에서 나온 사람답게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 황제 폐하에게만은 귀띔을 해드려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찬동을 표했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을 본 후, 뢰큐 교수가 말했다.

“모스 백작의 증세를 밝히기 위해 모였건만, 오히려 연구해야 할 일들만 더 늘어난 채 모임을 마무리하게 되었군요. 모스 백작님이 제국 기사단에 약속이 있으셔서 오늘 제 1차 연구회는 여기까지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방의 도움으로 얻은 게 없지는 않지만, 이 분들은 오히려 수수께끼만 더 늘어난 꼴이 됐구나... 새삼 나는 참석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대도서관 측 인물들은 얼굴이 밝아 보였다. 천상 학자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대사제님의 얼굴은 좀 침중해 보였다. 아까, 신께서 탐탁찮아 하신다는 내용 때문일까. 그리고 아카데미 쪽 사람들 역시도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저희 아카데미에서는 돌아가는 대로 마탑주님들의 모임을 소집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탑주님들의 지혜를 모으면 뭔가 방법이 반드시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다른 기록들을 좀 더 찾아 보겠소. 그리고 우리는 마법진 연구에도 손을 대어 볼 작정이오.”

“교단에서는... 오늘 일을 교황님께 보고드리겠소. 그리고 신께 좀 더 기도드려볼 작정이오.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 나조차도 뭐라고 알 수가 없소. 신의 종인 나는 신의 뜻을 따를 뿐이오.”

대사제님은 얼른, 신께서 이 모임 자체를 막으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뢰큐 교수는 대사제님의 배려에 고개를 꾸벅여 감사를 표하고는 말했다.

“그럼 다음 주 이 날에 다시 이 자리에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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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인사를 나눈 후, 대도서관 정문의 계단을 내려와 뿔뿔이 흩어졌다. 미리 대신관님을 기다리고 있던, 대신전에서 보낸 마차가 떠나고 나자, 승용 마차를 기다려야 하는 나와, 나를 기다려주는 요안나 선생님과 이브만 곁에 남았다.

“기리인, 정말 어디 다친 데 없는 거지?”

선생님의 걱정은 연구가 아니라 내 몸의 안위인가보다. 나는 웃으며 선생님의 팔을 가볍게 다독여 선생님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반면, 이브는...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정말 대단하세요. 역시 주인님은 예삿분이 아니세요. 감춰진 신비도 주인님의 앞에서 드러나고.”

“쉬잇. 누가 들어요.”

“우리 셋만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주인님은 역시 제가 반할 만한 분이세요.”

그렇게 말하는 이브의 눈에는 분명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이 사람이 정말. 장난에는 장난으로.

“이브. 내 허락 없이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나를 주인님이라고 함부로 불렀죠?”

“아...”

약간 진지하게 말하자 이브는 약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정말로 내가 화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브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됐고, 다음에 보면 또 ‘벌’을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는 일부러 ‘벌’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발음했다. 그리고 똑똑한 이브는 역시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브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물론 그 ‘벌’은 여주인님을 만족시켜드린 후가 될 거야.”

“조금이라도 늦게 말했으면 나 삐질 뻔 했어.”

요안나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오늘 저녁에 일 없죠?”

“응, 왜?”

“옆집의 에아임 형네를 포함해서 몇 분을 초청해서 저녁을 먹을까 하고요.”

“어머... 집들이 하시는 거에요? 주인님?”

“그렇게 되겠네요...”

두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초청해 줘서 고마워, 기리인. 저녁에 갈게.”

“좋은 선물 사서 갈게요, 주인님. 저녁에 뵈어요. 그리고, 주인님이 밤늦게 주실 ‘벌’도 기대하고 있을 게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마침 달려온 승용마차의 문에 올랐다. 두 사람은 내가 탄 마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거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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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 집 주소를 마부에게 가르쳐주며 간단한 편지를 전해주고, 삯으로 은화 몇 개를 쥐어준 후, 나는 제국기사단 본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고지식하고 딱딱한 건물이었다. 융통성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건물을 올라가서, 경비에게 내 신분을 말하고, 1층의 로비로 들어갔다.

전에 제국 수사기사단 단장 모툼 경을 처음 만났던, 검과 천칭을 든 기사의 동상 앞은 여전히 붐볐다. 모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니는 가운데, 한 사람이 가만히 서 있었다. 수사기사단의 정복을 입은, 약간 칙칙한 갈색 머리에, 훤칠한 키의 여자였다. 그 여자는 내 얼굴을 발견하더니, 부츠를 신은 두 발을 척 하고 붙이더니... 나를 향해 다가와서는, 군례를 붙이며 말했다.

“모스 백작님이시죠?”

화장만 약간만 해도 얼굴이 꽤나 이쁠 것 같은 여자인데... 화장기도 하나 없고 웃음기도 하나 없으니 상당히 딱딱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 기사단 본부가 주는 인상처럼, 융통성이라고는 많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인물 말이다.

“네, 누구신지?”

“저는 제국 수사기사단 정보부의 4급 기사, 아드마 수르제므 라고 합니다. 에아임 부장님의 지시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드마 경.”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여전히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하지만 정중하게 내 손을 맞잡아왔다.

“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기다리지 않고, 부츠를 딱 마주치며 뒤로 돌아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훤칠한 그녀가 성큼성큼 걷자 그 속도는 꽤나 빨랐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기사의 상 뒤에 있던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간만에 새로운 여캐의 등장...입니다만, 얘랑은 별 관계가 아닐 겁...아니려나? ㅋㅋ;;;

읽어주셔서, 그리고 선/추/코/쿠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아라를 새로고침하며, 간만에 글 쓸 맛이 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hasj12 님 // 치킨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특선곰탕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쓸게요~!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베스트 목록에 들어가니 순위가 떨어지지 않게끔 매일 쓰게 되네요 ^^;;;

스키테 님 // 돌아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기다렸습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파닭맛을알어 님 // 감사합니다. 그 떡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

Hainch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쓸게요!

스쳐지나간 님 // 정주행과 칭찬 감사드립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정주행과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달아주셨던 댓글들은 모두 봤습니다. 가끔씩은 ㅋㅋ 거리기도 했어요. 감사합니다!

별그리고나 님 // 삼종세트 정말 감사합니다!

여름반지 님 // 어이쿠... 과분한 칭찬이세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힘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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