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4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밖에 서 있던 병사를 데려와 우그나즈를 데려가게 했다. 나가기 전, 나와 우그나즈는 서로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는 홀가분하고 뿌듯한, 죄수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병사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감방으로 향했다.
“하크도 씨,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백작님.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면 경비 서느라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되니 저도 좋지요.”
가볍게 웃으며 말한 그는, 약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아드마 경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오늘 들은 이야기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두 사람은 ‘그렇긴 하지만...’이라며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척 하면 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오래 지냈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약간은 짜증난다 싶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런 호사스러운 생각을 하다니, 하며 나 자신에게 잠시 놀랐다.)
“이야기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테고, 오히려 이야기를 꺼낸 우리만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당장,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을 상대해야 할 텐데...”
아드마 경의 얼굴이 확 변했다. 하긴. 이단심문관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없을 리 없지. 나만 해도, 톨라츠 아저씨를 상대한다는 생각만 해도 무서운데 말이다.
“그래도...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의외로 끈질긴 하크도. 아오. 머리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우그나즈에게 마음 속으로 미안하다고 사죄하며, 나는 하크도를 바로 바라보았다.
“하크도 씨. 그걸 어떻게 믿죠? 테리스크 신에 대한 주장은 우그나즈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가 신성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는 순간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백작님의 손을 통해...!”
“그렇죠. 주술을 선보였죠. 하지만 그는 주술과 테리스크 신이 관계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 하긴 그렇겠군요...”
‘띠링!’
<유도에 성공했습니다. 유도 스킬에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그러니, 말하지 않는 게 최상입니다. 정 갑갑하면 성 밖의 숲에라도 가셔서 ‘임금님의 명마의 뒷발은 돼지발굽이다!’라고 외치시는 정도로 하시죠.”라고 말했고, 하크도는 낄낄대며 잠시 웃었다. 옛날 옛적, 명마 중의 명마를 얻은 왕이 사실은 명마가 아니라 마법생물을 탄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마굿간지기가 입이 근질거려 숲에 가서 외쳤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에 부모들이 아이에게 흔히 해 주는 옛날 이야기이다. 아, 어떻게 되었느냐고? 결국 소문이 퍼져서, 왕은 결국 그 마법생물을 대놓고 타게 되었다던가.
“가시죠, 백작님, 하크도 씨.”
농담에도 약간 웃을까말까 할 정도로만 표정 변화를 보인 아드마 경이 문을 열며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아까의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창을 하나 든 채 계속해서 옆의 눈치를 보고 있는 병사 한 명과, 벽에 기대어 계속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위르노가 있었다.
“위르노 경.”
“배, 백작님!”
위르노는 순식간에 아까 우리 방에서 나갈 때의 모습, 그러니까, 울먹거리며 무릎이라도 꿇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솔직히 나이 많은 남자가 저러니까 좀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에게 약간의 숨쉴 틈을 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경은 입이 무겁습니까?”
내 질문에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윽고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이 무거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도 입이 무거운 편이거든요.”
알아들었을까? 다행히, 그는 밝아진 얼굴로, 아까보다 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아들었구만.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넷! 수고하셨습니닷!”
마치 신임 기사 시절로 돌아간 듯 그는 아드마보다 훨씬 더 절도있게 군례를 올렸다. 대충 고개를 끄덕거려준 후, 우리는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철창 사이의 복도를 걷던 중, 놀랍게도, 아드마가, 말을 걸었다.
“백작님.”
어우, 깜짝이야. 다행히 약간 움찔하는 정도에서 그친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 나를 향해 눈을 맞추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흘깃거리고는 있었다. 약간의 발전이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네, 아드마 경.”
“감사합니다.”
잠시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쌓인 게 많았나 봅니다.”
“타인의 험담을 하기는 그렇지만... 좀, 그렇습니다.”
아드마는 약간의 잇소리를 섞어, 그러니까 이를 꽉 깨물고 그 말을 했다. 어느 쪽을 동조해 줄 수도 없는 나는, 그저 그녀에게 약간의 위로를 건네는 게 고작이었다.
“힘내세요. 위르노 같은 사람들이 속이 충실하지 않다면, 언젠가는 신의 천칭에 올라갔을 때 쭉정이임이 들통나 버릴 겁니다.”
트리클 신에 대해 완전히 믿고 있지 못한 주제에 트리클 신의 천칭 비유를 쓰다니, 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드마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여보일 따름이었다. 뭔가 마음에 와닿는 말이나, 아니면 현실적인 조치를 취해주고 싶은데... 나는 여기에서는 부외자일 따름이었다.
1층 계단을 올라가, 우리는 하크도를 보낸 후,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 형의 방 앞에 갔다. 노크하며 말하자, 아까와 같은 “들어와.”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아까보다 서류가 더 증식한 것 같은 형의 방 안에 다시 들어갔다.
“어, 기리인. 갔던 일은 잘 됐냐.”
“잘 됐어요.”
형은 흥미가 동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떻게 잘 됐는데?”
“뭐... 그 사람을 설득해서, 주술의 기초를 배웠죠.”
“그래?”
형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한 번 해 볼래?”
“어... 보여드리고 싶지만, 여기는 좁은데다 위험해서... 서류에 불 붙으면 안 되잖아요.”
“붙어도 돼. 사실은 몇 개는 태워버리고 싶거든.”
형은 정말로 진절머리난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로 해 보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형, 오늘 저녁에 집에 오실 수 있으세요?”
“몰라. 추가적으로 일이 터지지 않으면 가능하겠지.”
“집들이 할까 해서요.”
“집들이? 오늘 밤에? 간다. 갔다가 다시 일하러 오는 한이 있어도 갈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밤에 우리집에서 봐요, 형.”
“그래. 아, 기리인. 나중에 여유있을 때 좀 얘기 좀 하자.”
“어떤 얘기요?”
“둘만 있을 때 하자. 나 조사하고 있는 게 있는데 니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할 거 같아.”
아... 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듣는 귀도 있고 하니, 오늘 밤에 집에서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형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함께 계단을 내려온 아드마는, 천칭과 검을 든 기사의 상 앞에서 아까처럼 절도있는 자세로 섰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드마 경.”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잠시, 주저하며 그 손을 바라보다가, 그런대로 맞잡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손을 잡아왔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고 감사했습니다. 백작님.”
그리고 아드마 경은 절도있게 군례를 올린 후, 뒤돌아서 1층의 복도 쪽을 향해 절도있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좀 더 친해질 기회가 있다면, 왜 그녀가 그렇게 자신을 싸매고 사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들에게 백안시당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며, 나는 발길을 돌려 기사단 건물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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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요.”
“백작님, 오셨습니까.”
에스틴이 걸레를 들고 걸어가다가, 나를 보고는 공손히 인사를 해 왔다. 그의 등 뒤에서, 그러니까 부엌 쪽에서, 테리아가 “백작님,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요리 중이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미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넘어 거실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연락줘서 미안해요. 준비하기 힘들었죠?”
“아닙니다. 공작가에서는 이보다 더 급하게 준비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물며 참석자가 많지 않으니 별로 힘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적다 해도 대략 스무 명은 될 텐데요...”
“그러니 우리가 와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죠.”
오레즈 할아버지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내가 자리를 비켜주자, 할아버지는 옆집에서 가져온 듯한 접시들을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에스틴이 달려가 접시를 받아들고는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아이고, 할아버지.”
“도련님이 이런 훌륭한 집에 사시게 되었다니, 그리고 그게 바로 옆집이라니, 그저 신께 감사할 일일 따름입니다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옆집이라서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보고 살게 되어 저도 기분이 좋은데요.”
오레즈 할아버지는 그저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아직 늦여름이고 하니, 휴대용 테이블을 펴서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요.”
“좋죠.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오히려 청소하기 편합니다요. 에스틴 군, 들었지요?”
“네, 어르신. 백작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백작님께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되올지?”
“말 조금 편하게 하셔도 돼요. 무슨 부탁인데요?”
“테리아와 에노 어르신께서는 요리에 바쁘시고, 저와 오레즈 어르신은 테이블 세팅에 바쁘니, 혹 대문에서 손님들을 맞아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주인의 의무 아닙니까, 그건. 당연히 할게요.”
에스틴은 약간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으로 목례해 왔다. 나는 현관문 밖으로 나가, ‘내 집’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형의 집처럼 정성들여 관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깔끔한 정원은, 꽤나 널찍했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다섯 개 연속으로 놓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에스틴과 오레즈 할아버지가 쪽문을 통해 형의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휴대용 테이블을 가지러 가는 거겠지.
늦여름이라 해가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오후 여섯 시 밖에 되지 않아 바깥은 밝았고, 그리고 더웠다. 그래도, 남부의 그 지독할 정도의 습하고 더운 더위보다는 낫다. 갑옷 속으로 줄줄 흐르던 땀과 열기를 떠올리던 나는, 고개를 젓고는, 밝은 주황색의 벽돌로 깐 길을 걸어, 집의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보기에도 좋아보이는 마차 한 대가 저 멀리서 달려오더니, 우리 집 앞에 멈추었다. 마부가 얼른 내려와 문을 열어주었고, 안에서 익숙한 은색 장갑을 낀 팔이 나왔다.
“모스 백작님.”
“어서 오세요, 레이디 아르논.”
아르논 양이 팔을 뻗어왔고, 나는 예의바르게 그녀의 팔을 잡아, 그녀가 마차를 내려오는 것을 도왔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은발의 그녀인지라 은색의 드레스나 장갑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녀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백작님.”
“아닙니다. 집들이 하는데 친구를 부르는게 당연하겠지요.”
“그럼 친구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겠는걸요?”
아르논 양은 생긋 웃더니, 마차 안쪽으로 눈짓했다. 내가 안을 바라보자, 리미가 내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밀었고, 리미는 짐짓 새침하게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기리인, 축하해.”
“고마워, 리미. 와 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지. 와, 집 좋다... 언니 집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도에서 이 정도면...”
============================ 작품 후기 ============================
으아. 피곤하네요. 자칫하면 졸 뻔 했습니다. 글쓰다 일어나서 팔을 붕붕 돌리고 있으니 와이프가 달밤도 아닌데 뭐하냐고 핀잔을... 윽윽.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위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재미있게 써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jin-matient 님 // 지금보다 강해지면 기리인은 법사가 아닌 궁수로 완전 전직하는 거니까요 ㅎㅎ 그리고 칼도 갑옷도 좋은 거 받은 거 있고...
벌레입니다 님 // 오늘은 실패했습니다 ㅠㅠ 다음에 노력해볼게요!!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강해질수록 그는 더더욱 구르게 될 뿐...? ㅎㅎㅎ
낙화vs목련 님 // 슼>킅>삼>슼의 묘한 먹이사슬이...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사실 저도 메드로아 떠올렸는데...! 이젠 그 만화를 아는 사람은 아재인가요...?;;
박성빈 님 // 조만간 풀어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감사합니다!
강아지친구 님 // 칭찬 감사합니다!
龍帝 님 // 어우 진짜 브라우니(브라움+세주아니) 조합 토나오더라구요 ㄷㄷ
체크필통 님 // 그럼요! ㅋㅋㅋ
melontea 님 //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 보이셔서 걱정했는데! 일에 치여산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실은 저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