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85화 (285/309)

00285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아르논 양과 리미. 그 날, 승전기념 무도회에서 둘이 친해질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 못했는데, 어느새 둘은 언니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는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라는 연결다리가 있어서였을까? 지금도,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둘은 손을 잡고 내 집을 가리키며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레이디들,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어머, 감사해요, 모스 백작님. 그럼 감사히 안내를 받겠어요.”

아르논 양이 부드럽게 대답했고, 아르논 양과 리미는 내가 열어주는 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임에 곁다리로 끼어본 적은 꽤 있다. 그래서 나는 아르논 양과 리미가 집의 정문에서 그리 넓지만은 않은 별채와 정원을 지나 오레즈 할아버지와 에스틴이 한참 테이블보를 깔고 있는 곳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에스틴.”

내가 두 사람을 부르자,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곧 에스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가씨.”

“에스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아르논 양이 성큼 다가가, 에스틴의 두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한두해로는 결코 쌓을 수 없는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삼, 나는 ‘정보 확인’을 통해 보았던, ‘나스프 가와의 강한 링크’를 떠올렸다.

“못 뵌 지 며칠 안 되었는데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아가씨는 무탈하신가요? 공작님도 잘 계시고?”

“며칠 안 지났는걸 뭐. 새 집은 어때? 백작님이 잘 대해주셔?”

“네, 그럼요.”

설마 험담하겠냐 하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마운 기분이 든다.

“아르논 양, 리미. 이 쪽은, 오레즈 할아버지. 내가 전쟁 전까지 신세를 졌던, 바로 옆 집, 에아임 형님 집에서 일을 봐 주시는 할아버지셔. 정말 좋은 분이야. 그리고, 이 분은, 에스틴 오누트. 우리 집에서 일을 봐 주시는 분이야. 우리 집에 오기 전에는 나스프 공작가에서 일하셨고. 할아버지, 이 쪽은 나스프 공작가의 레이디 아르논 양이시고, 이 쪽은 저와 북부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했던, 북부 르플레스탁 기사단 단장인 요뢰브 백작가의 리미 요뢰브 양이에요. ”

아르논 양과 리미는 치마를 펴며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이걸로 두 레이디에게 ‘두 사람을 단순한 사용인으로 대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는 전해졌겠지?

“아이구, 반갑습니다요. 두 아름다운 숙녀님들을 이 집의 첫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요. 백작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설령 그렇게 생각 안 했어도 여기서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맞겠지. 예의바르게 겸양과 축하가 한 번 더 오가고 있는데, 밖에서 다른 마차가 다가오는 벨 소리가 들렸다.

“잠깐 실례.”

그 말을 남기고 나는 황급히 대문 쪽으로 향했다. 어째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내 예감은 맞았다. 이번에 도착한 마차는 아까같은 공작가의 화려한 마차가 아닌, 제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색칠이 된 승용 마차였다. 승용 마차다 보니 마부가 내려 문을 열어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안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언제나처럼 블라우스와 몸에 달라붙는 스커트를 입고, 머리를 틀어올리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이브가 내려왔다.

내가 손을 내밀자, 이브는 밝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주.인.님.’이라고 말했다. ...가만 보면 이 여자는 나를 진짜 주인님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나를 곯리려고 저러는 거 같단 말이야. 시스템의 정보가 틀리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그리고 이브의 뒤를 이어, 이브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환한 금발머리의, 요안나 선생님이 내려왔다.

“선생님.”

“기리인, 불러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은 불러야죠.”

내 말에 선생님은 아름답게 미소지었다. 간만에 나는 가슴이 뛰는 기분을 느꼈다. 이브보다 한두 컵은 큰 선생님의 가슴은, 그러나 그 이율배반적인 탄력 때문에 옷맵시를 망가트리지 않고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자, 이거 선물.”

우리 두 사람을 공동으로 섬긴다는(아니, 그렇게 주장하는) 이브가 종이에 싼 네모난 것을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주방 맡은 분한테 주면 좋아할 걸? 남대륙에서 올라오는 특이한 향신료들을 조금씩 담은 거야. 후추는 물론이고, 세이지(sage), 로즈마리(rosemary), 큐민(cumin), 핫 페퍼(hot pepper)...”

“돈 많이 쓴 거 아니에요?”

이브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 부모님은 이런 걸 취급하는 무역상을 하고 계세요.”

아, 맞다. 테밀 누나가 그랬었지. 오르테 가문은 자신의 친정과 인연이 있다고. 그리고 테밀 누나는 상인 가문 출신이라고 했었고. 그러면 오르테 가문도 상인이겠구나.

“고마워요, 이브. 고마워요, 선생님.”

“뭘. 들어갈까?”

내가 두 사람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한 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르논 양과 리미가 우리 쪽을 보고는 딱 굳어 버렸다. 으윽. 내심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그리고 별 일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서로에게 서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요안나 선생님, 이브 교수님. 이 분은 나스프 공작가의 레이디 아르논이시고, 이 분은 요뢰브 백작가의 레이디 리미 이십니다. 아르논 양, 리미. 이 분은 요안나 이스카, 제 마법 아카데미에서의 은사님이시고, 이 분은 이브 오르테, 제국대학 마학과 교수님이십니다. 두 분은 제 몸상태에 대한 연구를 돕고 계세요.”

아무래도... 신분보다는, 나이가 우선일 것 같아서, 선생님과 이브에게 아르논 양과 리미를 먼저 소개했는데... 아르논 양과 리미는 그게 영 서운한 것 같다. 표정들이 밝지가 않아. 아. 오늘 집들이에 무슨 요리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소화불량은 확정일 것 같다. 내 짐 중에 옛날에 아르토 누나가 줬던 소화제가 있었지 아마...

“반가워요. 요안나 이스카라고 해요.”

“아르논 나스프라고 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행히 아르논 양은 단련된 레이디 답게, 기분나쁜 티는 일절 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어서...

“리미. 오랜만이야.”

“네, 선생님. 제도에서 뵐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리미는 아르논 양보다는 수양이 약간 부족한지, 아니면 아카데미 때 약간은 껄끄러웠던 사이의 앙금이 약간은 남은 건지, 다소 뾰족하게 대했다. 요안나 선생님은, 한 때 선생님답게, 한 때의 제자의 날카로움을 웃음으로 넘겼다. 이어 이브와 두 사람이 서로 소개한 후... 두 사람은 마치 2인 1조로 경기를 하듯 서로 말로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2인 1조라지만... 주로 요안나 선생님과 아르논 양이 서로 공방을 주고받고, 리미와 이브는 잠깐씩 거들기만 할 뿐이었다.

“기리인과는 원래 제도에 도착하면서부터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었거든요. 여러 일이 있어 늦어지게 되었지만, 이제 와서야 원래의 예정대로 돌아가게 되어서 기쁘기 그지없답니다.”

“어머, 그렇군요. 그 ‘여러 일’ 동안 모스 백작님은 제국에서 빠질 수 없는 인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셨지요. 그래서 지금은 사교계 최고의 인기남이 되셨답니다.”

“제게도 자연스럽게 들려올 정도였으니 기리인의 활약이 어마어마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답니다. 저는 그가 마법에 정진하면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대마법사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신께서 그 길을 예비하셔서 대마법사가 되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모스 백작님은 명궁으로, 또 황제 폐하의 충신으로 제국에 공헌하시고, 이제는 모스 영지의 주인으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시게 되었으니,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요?”

아아. 웃으면서, 나라는 사람을 옆에 세워두고, 뭣들 하시는 거에요...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은 그 자리에서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이번에도 마차 소리였다. 이번 마차는 나도 타 본 일이 있는 마차였다. 기사단에서 출퇴근할 때 준다는 마차. 그 마차가, 내 예상과는 달리 우리 집 앞에 멈춰 섰다. 그 마차에서 내린 인물은 다행히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형!”

내가 한달음에 정원을 지나 형에게 (반쯤은 살았다, 라고 생각하며) 달려가 대문을 열어주자, 수사기사단 정복을 입은 채의 형은 들어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웃었다.

“어이구. 집주인께서 이렇게 직접 환영해주시고, 이거 몸둘바를 모르겠는걸?”

“그럼 저는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래야 하나요?”

큭큭거리던 형은, 아, 하는 말과 함께, 마차 안에 대고 “내려”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가 예상했던 사람 한 명이 내려왔다.

“마스 경.”

전쟁터에서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호흡이 잘 맞는 친구같은, 그리고 이제는 ‘내 영지’의 행정관으로 일할, 이트로프 마스 경. 경은 웃으며 군례를 올렸다. 상관에 대한 예의였다. 그리고는,

“받으시죠. 동부산 위스키입니다. 적어도 20년은 넘게 숙성된 거라고 하더군요.”

“뭘 이런 걸... 고마워요, 마스 경.”

“뭘요. 이런 게 다 뇌물 아니겠습니까?”

“그럼 나는 뇌물죄로 마스 경 당신을 체포해야 하나?”

“아이구, 에아임 형님. 농담처럼 안 들리는 농담은 좀 마세요.”

두 사람의 촌극같은 대화를 보고 있자니 왠지 웃음이 났다. 그리고, 마스 경이 비켜서자... 마치, 자동인형이 내려오듯, 절도있는 동작으로 한 사람이 내려왔다. 이번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아까 조금 전까지, 도움을 받았던, 그리고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던, 사람.

“아드마 경...?”

아드마 경은 여전히 내 눈을 잘 보지 못하는 채로, 하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덜 수줍어하는 태도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잡아 악수하자, 형이 웃으며 말했다.

“말했지? 아드마가 내 부관 격이라고. 어차피 지금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서 지내게 될 텐데, 그러느니 또래 여자들이 분명히 있을 이 자리에 약간 강권해서 같이 가자고 했지. 기리인, 괜찮지?”

나쁠 거 없지. 아드마라는 사람이 궁금하기도 하고 말야.

“그럼요. 잘 오셨어요, 아드마 경.”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히 오느라 선물을 준비 못 해서...”

“와 주신 것 자체가 감사하죠. 들어오실까요?”

내가 세 사람을 테이블로 안내했을 때, 아까 2:2의 말싸움 대결을 벌이던 그들은 어느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으니 아니나다를까 그녀들은 어느새 공동의 적 하나를, 그러니까 나를,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하기야 그게 가장 빠르게 친해지는 길이긴 하지... 하지만 계속 들어주기도 뭐하니.

“으흠.”

네 사람이 한꺼번에 깜짝 놀라는 모습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여러분, 소개할게요. 제 의형이신, 그리고 옆집의 주인이신 에아임 로그푸스 제국 수사기사 정보부장이십니다. 그리고, 제 영지의 행정관 이트로프 마스 경, 그리고 에아임 형님을 수행하는 아드마 수르제므 제국 수사기사세요. 이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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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노 할머니와 테리아가 맛있게 요리한 요리들이 차려지고, 옆집에서 테밀 누나와 뢰다가 건너오고, 정원에 약간 어두움이 내려, 오레즈 할아버지와 에스틴이 집 안에서 조작해 정원에 마력석 등을 켜고, 우리가 식사를 하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진짜로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끼익-. 마차 바퀴가 제동기에 긁히는 소리. 우리 집 앞이었다.

“어, 누구시지...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백작님, 제가...”

에스틴이 나서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문쪽으로 향했다. 왠지는 정확하게는 몰라도 그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차의 마부가, 비르히였기 때문이었다.

“히엑?!”

내가 비르히가 마부석에 앉아있다는 걸 알고 괴상한 소리를 내자, 비르히는 여전히 그 무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까딱여 목례하더니... 재빨리 내려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비르히가 마부라면, 그 안에는 한 사람밖에 있을 수가 없을 텐데... 세상에...

“폐하!”

간신히 마지막 이성이 남아 목소리를 죽여 속삭이듯 외쳤고, 그럼에도 폐하는 누가 들을까봐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말했다.

“기리인. 이 친구야. 집들이 할 때 다른 친구는 부르면서 나는 부르지 않을 작정이었냐?”

“어찌 제가 무례하게 그런...”

“이거 실망인데. 친구들을 부르길래 나는 나도 부를 줄 알았는데 말야. 어쨌든, 이건 선물.”

갈색 종이로 포장된, 큼지막한 물건을 나에게 건네며, 폐하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마 드르연 경이 내일 알면 게거품을 물을 거다. 이건 황궁에 걸려있는 그림이거든.”

“폐하...!”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얼른 들어가자.”

============================ 작품 후기 ============================

순위가 올랐을 때 흔들리지 않고 지금처럼 쓰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순위가 내렸을 때 흔들리지 않고 예전처럼 쓰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물론 참 쉽지만은 않네요. ㅠㅠㅋㅋ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씁니다.

7월해군 님 //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오레오 오즈하고는 전혀 관계없는데(심지어 저는 오레오는 먹어봤지만 오레오 오즈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그게 생각날법하다는 건 인정! ㅋㅋ;;;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초코레도백작 님 //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뭐... 레이드 보스를 만나면 얼라건 호드건 손잡는게 법칙 아니겠습...ㅋㅋㅋ;;

별그리고나 님 // 감사합니다!

JSLEE9908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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