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88화 (288/309)

00288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공방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약간 세월에 녹이 슨, 멋부린 ‘디오틀라’라는 글자마저도 멋진 그대로였다. 나는 에스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 어?”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디오틀라 씨의 딸, 네라 양이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라 씨였죠? 안녕하세요?”

“세상에... 모스 백작님? 아버지! 아버지! 이리 나와 보세요! 모스 백작님이 오셨어요!”

그녀가 안쪽 뜰로 통하는 문을 열고 외치자, 안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내 기억 속 그대로의,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장인이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모습의 디오틀라 씨가 뛰쳐나왔다.

“오, 이게 누구신가!”

덥석. 디오틀라 씨는 내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말했다.

“내 편지 받았겠지? 자네 덕분에 내 활이 유명해졌다네. 그 뿐인가, 활이 팔리면서 다른 것들도 함께 잘 팔리고 있어. 모두 자네 덕분이라네!”

“아... 다행이군요...”

예상 이상의 환대에 나는 당황해버렸다. 저번처럼, 디오틀라 씨를 따라나온 수많은 대장장이들도,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라 씨 마저도 말이다.

“자, 자,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 네라야! 차를 준비해다오!”

그리고는 그는 내가 대동한 손님이 누구인지도 묻지 않은 채,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에스를 바라보자, 에스는 흥미와 떨떠름함이 반반 섞인 기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자가 디오틀라인 게냐?”

“네.”

“듣던 대로 특이한 자로구나...”

‘특이한’이라는 말이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에스와 함께 디오틀라 씨의 뒤를 따라 그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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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의 방은 둘둘 말린 도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왔었을 때보다 더 도면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깡! 깡! 하고 쇠를 두드리는 소리, 치익- 하고 쇠를 담금질하는 소리 등 온갖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전보다 더 활기찬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군요.”

인사치레로 한 마디 하자, 디오틀라 씨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암. 자네가 내 활을 가지고 최고의 선전을 해 준 덕에, 우리 공방을 찾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졌다네. 특이하지만 믿을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해 주는 손님들도 많고. 편지에서 이야기했었지? 자네 덕분에 처음으로 군에 내 물건을 납품할 수 있었다네. 특등사수들을 모아 내 활을 연습시켜 저격병 용도로 사용할 거라고 하더군. 모두 자네 덕분일세.”

껄껄 웃으며, 마침 네라 씨가 날라다 준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그제야 내 곁에 앉아있던 사람이 눈에 들어온 듯, 겸연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나만 떠들었군. 같이 오신 분은...?”

“이 분은... 에스타크 레펠 씨입니다.”

순간. 아주 순간적으로, 나는, 에스의 존재감이 갑자기 크게 확장해, 온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사람 형태로 변신해 있는 에스타크 레펠 양이 아닌, 드래곤 르플레스탁의 본체 그대로를 본 느낌 말이다.

하지만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니, 그런 압박감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안녕하셔요. 에스타크 레펠이라고 해요.”

“아... 반갑소, 레펠 양. 디오틀라 공방에 온 것을 환영하오. 백작이 소개해 준 분이라면, 우리에게도 중요한 고객이 될 것이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리고 자신이 왜 식은땀을 흘리는지조차 모르면서도, 에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에스가 조용히 미소지으며 답례하자, 디오틀라 씨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한 번 닦은 후 말했다.

“음... 우선, 백작. 혹시 우리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정도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우선, 동행한 레펠 씨에 대해서입니다. 이 분은 대륙을 돌아다니며 신기한 문물을 접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제도에서 신기한 문물을 접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기에 제가 이 공방을 추천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제 활을 보며 납득하시더군요.”

디오틀라 씨는 뿌듯함이 엿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귀 공방에서 만드는 제품 중 신기하다고 할 만한 새 발명품들을 서넛 정도 보여주실 수 있을지...?”

디오틀라 씨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백작의 부탁이니 들어주어야겠소만,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소. 레펠 씨는 혹시 다른 공방이나 혹 대장장이들과 관계가 있는 분은 아니신지...?”

“맹세코 그런 분들과는 관계가 없사와요.”

와. 아까의 그 강한 압박감까지는 아니지만, 약하게 압박감을 뿌리며 에스가 대답했다. 그 압박감 때문에 기가 눌려버린 디오틀라 님은 저 한 마디에 납득해버린 모양이었다. 부럽다. 배우고 싶다. 보나마나 드래곤이라서 가능한 것이겠지만.

“알겠소... 그럼 내 친히, 내 발명품들을 안내해 드리지. 그리고, 백작. 부탁이 두 가지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 귀 공방에서 금고(金庫)를 만드시는지?”

“금고?”

사실 이것 때문에 디오틀라 공방을 행선지로 정했다. 집에 있는 돈만 해도 꽤 거액의 돈이 생긴데다가, 만에 하나 내가 주고받는 편지나 서류들이 에스틴이나 테리아를 통해 나스프 공작가로 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금고가 하나 있어야겠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에스틴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직접 나선 것이었다.

디오틀라 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군. 두 사람 다 이 쪽으로 오시오. 최근 내가 개발한 물건을 보여드리지.”

그는 방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그 쪽 구석에는 뢰다가 일어선 것 만한 키의 물건에 하얀 천을 뒤집어 씌워놓은 것이 있었다. 그는 그 하얀 천을 잡더니 휙- 하고 벗겨내었다.

그 아래 있는 것은 보통의 금고였다. 육중하고, 두꺼우며, 튼튼해 보였다.한 쪽으로 열릴 수 있는 문도 무거운 금속 광택을 빛내고 있었다.

“금고로군요.”

“그렇지. 하지만 이 녀석은 보통의 금고가 아니라네. 여길 보게.”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보통, 자물쇠를 달 수 있게끔 고리가 달려 있거나 한데, 여기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있어도 자물쇠를 달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어떻게 잠급니까?”

그는 웃으며 손잡이 위에 달린 묘한 원판을 가리켰다. 원판이라기보다는... 마치 시계처럼 60개의 칸이 나뉘어 한 바퀴 빙 둘러져 있었고, 약간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원판을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다. 으음...

“숫자로 잠글 수 있게끔 한 것이로군요?”

내가 미처 생각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에스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디오틀라 씨는 약간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뒤를 보여주었다. 원판의 뒤에는 납작한 원판에 톱니 모양의 자국이 있는 원판이 세 개 붙어 있었다. 튼튼해 보이는 쇠막대가 그 원판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보 확인’.

‘띠링!’

<물품 정보>

<다이얼 금고(dial safe). 아티팩트. 랭크 : B+>

“원판이 세 개니, 숫자가 세 개이겠고, 한 쪽으로만 돌리면 동작이 부정확해질 가능성이 크니, 오른쪽-왼쪽-오른쪽이나 그 반대이겠군요. 손잡이를 돌리면 저 쇠막대가 움직일 것이고, 세 원판이 모두 맞아야만 쇠막대가 안으로 완전히 올라가며 문이 열리겠군요. 맞지요?”

에스는 한 눈에 보자마자 줄줄줄 읊어대었다. 시스템이 정보를 미처 다 표시하기도 전에 말이다. 디오틀라 님은 완전히 당황해버려 더듬더듬, “어... 어... 그렇지요...” 이런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드래곤이란 존재는 정말 대단하군요.>

시스템마저도 저런, 내가 기억하는 한 최초의 항복선언을 할 정도였다. 새삼 나는 그녀의 압도적인 지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마음과 또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사와요. 단지, 원판의 톱니 모양을 좀 더 정교히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사와요. 지금의 모양이라면 지정한 숫자의 앞뒤로 2 정도까지는 오차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을 듯 하와요.”

디오틀라님은 숫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군. 내 딴에는 대단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건만, 처음 보는 여자분이 대뜸 약점을 잡아낼 정도로 별 것 아닌 발상이었단 말인가...”

처음 보는 여자분 정도가 아니니까 문제죠... 디오틀라 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원래는 자네에게 싼 가격에 넘기려 하였지만, 저렇게도 쉽게 작동원리가 파악당하는 물건이라면 팔 수야 없지. 가져가게. 나갈 때 네라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고 가게. 오늘 오후 중에 물건이 자네의 집으로 배달될 걸세. 번호는 7-10-19라네.”

어깨를 푹 떨군 디오틀라 씨가, 기죽은 듯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잠시 훑어보다가, 다른 흰 보자기를 쓰고 있는 물건 쪽으로 다가갔다.

---

“에스...”

“미안하다. 나도 일이 그리 될 줄은 몰랐느니라.”

디오틀라 님이 자신있게 보여주는 물건 – 금속으로 만든, 속이 빈 바퀴 위에 검은 고무를 씌운 바퀴, 손잡이를 돌려 장전할 수 있게 만든 석궁, 그리고 남대륙의 병사들 중 소수가 지난 전쟁에서 가지고 나와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화승총 등 – 을, 하나하나, 에스는 면전에서 그 작동원리를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점이 문제이니 이렇게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저 석궁은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 장력 때문에 갈수록 힘들어지니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위아래 동작은 어떠냐 라든가.)

결국 의기소침하다 못해 우리에게 삐져버린 디오틀라 님은 중간쯤에서 삐져서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우리는 구경도 다 못한 채, 아니, 아까 네라 양이 가져다 준 차도 다 못 마신 채, 쫓겨나다시피 공방 밖으로 나왔다. 간신히, 네라 양에게 내 집 주소를 남겨 금고를 받게끔 한 게 최선이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하려 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같은 마음가짐인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너마저 잘난척할줄은’이라는 고상한 야유. 이 정도는 설마 괜찮겠지. 그러자 에스는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미안하다. 내가 긴 잠을 자는 동안 꿈 속에서 무엇을 했겠느냐. 내가 하였던 여러 가지 취미 활동 중에 저런 제품을 구상하는 것도 있었느니라. 그러다 보니,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들어 그랬느니라. 그대에게 불편을 끼치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드래곤은 나에게 정중히 사과해왔다. 드래곤의 사과까지 받았으니 내가 여기서 더 어깃장을 부릴 수는 없지.

“뭐, 저도 최신식 금고 하나 공짜로 받았으니, 마냥 빚지지만은 않았지요. 그래도, 언행에 조금만 더 주의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알았다. 그리 하마.”

이제는 에스가 약간은 의기소침해할 때였다. 쩝. 마침 밥 때도 되고 했으니, 맛있는 걸 좀 먹여서 의기소침해하는 에스의 어깨를 펴 줘야겠다.

“이제는 점심 식사를 하러 가시죠. 제가 제도에서 가 봤던 가장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기대되는구나, 기리인 모스. 어디냐?”

“이 곳에서 머지 않은 곳이옵니다. 혹 못 드시는 요리가 있으신지?”

“나에게 그런 것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 인간들이 즐기는 맛있는 요리는 나 역시 맛있게 즐길 수 있느니라.”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형과 선생님과 함께 갔었던, 스테이크 하우스 ‘우르송’이 보였다.

“이 쪽입니다, 에스.”

============================ 작품 후기 ============================

이번 챕터는 계속 길어지네요.

아무래도, 그간 쌓였던 메인스토리 관련 떡밥을 한 번 정리하고,

급물살을 타게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군요.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 그리고 쿠폰 주시면 더 감사히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낙화vs목련 님 // 사고뭉치 용용이!

이돌자 님 // 마계까지는 아직...ㅎㅎ;;;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 그럼 그게 바로 '둥지 짓는 드래곤'이네요 ㅎㅎ; 기리인은 쥐도새도 모르게 보쌈당하고...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기리인이 뒷수습하느라 바쁜 커플이 되겠네요 ㅎㅎㅎ;;;

Liviera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칭찬 감사합니다!

♪..미르 님 // 칭찬 감사합니다. 이걸로 생계를 하려고 생각했었으면 하루 두 편씩 지금보다 더 열심히 쓰지 않았을까요? ^^; 밤에 하는 취미 겸 부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되기를 님 // 감사합니다!

ShiNeLine 님 // 정주행과 칭찬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모르드개 님 // ^^;; 가능한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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