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95화 (295/309)

00295 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요안나 선생님은 말하기 전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내 품을 벗어나,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2층 내 침실에는 방한따위 무시한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열어놓은 커튼을 통해 달빛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보름에 가까워지는 달은 어두운 방안을 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침대까지 뻗어온 달빛은,

무릎꿇고 앉은 요안나 선생님을, 안 그래도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그 피부를, 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내 앞에 앉은 선생님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맞추고 섹스를 나눈 상대인데 말이다. 달빛을 받은 선생님은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연히, 나도 일어나 바로 앉았다. 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넓은 침대 위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창 밖 정원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들만이 찌륵찌륵 들려오는 순간이 잠시 지나가고,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기리인, 내가 찾은 문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모은 낙서에 가까웠어. 마탑 출신의 어느 이름없는 마법사가 자신의 연구 내용을 기록한 것이었어. 그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도저히 가치있는 내용이라고 봐주기 힘든 것도 있었어.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 내용을 재촉한 것은 내가 아닌 이브였다.

“이 마법사는 열 명 정도 되는, 과부하 회복자들을 만나봤나봐. 물론 기리인, 너처럼 회로가 완전히 타 버린 사람은 없었지만, 그 중에는 두세 달 정도 마나 회로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던 사람도 있었대.”

“그랬군요...”

나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될 지도 모르겠는데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회복자들의 공통점이 있었어.”

“그래요?”

‘당연히 공통점이 있으니까 정리를 해 뒀겠지’하는 생각과는 별개로 나는 귀가 솔깃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모두 제국 남부, 그것도 남부 대수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었어. 그 중에서도, 두 명은 나스프 공작령 아래 대수림에 면한 우사드마스 백작령에 세워진, 그랜드 아카데미의 남부 출장소 근무 중 일어난 일이었고...”

이브가 쿡, 하고 웃더니 덧붙였다.

“주인님. 주인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랜드 아카데미 남부 출장소라는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아요. 깡시골에서도 다른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오지에 세워진 마탑이다보니, 거의 ‘유배지’와 같은 말로 쓰여요.”

“그래?”

묻기는 이브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요안나 선생님이 했다.

“응. 성적이 최하위자이거나 사고를 친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이야. 거기를 갈 바에는 공방에 들어간다는 사람들도 많고. 그러다보니, 거기에서도 온갖 사고가 생기고, 자포자기한 마법사들이 연구는 도외시하고 온갖 황당한 시도를 많이 하다 보니 과부하 걸린 사람들도 많이 나온대.”

“아...”

“그 뿐만이 아냐. 세 명은 나스프 영지의 제국 남부 아카데미에 있었고, 그 외에도... 그 책에 나온 사람들의 위치를 표시해 봤어. 주로 제국 남부, 그 중에서도 적어도 나스프 영지 아래에 있었어. 확실한 건 대수림에 가까울수록, 회복이 빠르거나, 더 중한 환자가 낫거나, 했다는 결론이었어.”

...이야기의 끝을 알 것 같다.

“하지만 수가 너무 적어요.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잖아요.”

내 급조된 항변을, 선생님은 달빛의 힘까지 빌어 위엄있게 반박했다.

“기리인. 과부하에서 회복되는 환자가 그리 흔한 줄 아니? 너 정도가 아니라, 며칠 정도만 앓아눕는 가벼운 과부하 환자들도 그 후에 마나 회로를 사용할 때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그 통증은 평생 가도 낫지 않는 경우도 많고. 과부하를 한 번이라도 겪은 마법사들 중에는, 그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마법사의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을 정도야.”

...안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내가 과부하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찾아본 것이 과부하에 대한 책들이었으니까. 내 몸에 느껴지던 극심한 통증과 더불어, 책에서 서술된 그 내용들이 내 희망을 꺾어놓기에 충분했었지.

“그리고, 기리인. 너도 처음 연구 모임에 참석했을 때 봤겠지만, 우리에게는 단서가 너무 부족해. 아카데미에서는 단서를 하나도 못 잡고 있는 것 봤잖아.”

이브가 거들었다.

“주인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국 대학 쪽도 그다지 사정이 좋지는 않아요. 대도서관 쪽은 지금 주인님의 몸 상태에 대한 연구보다는 어제 주인님에 의해 밝혀진 지하의 방과 마법진에 대한 연구에 더 관심이 쏠려 있어요.”

“아니, 대체 왜? 처음에는, 서로 나라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더니... 이제는 서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건 뭔가요?”

“주인님이 너무 거물이 되신 거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요안나 선생님이 대신 대답했다.

“기리인. 너는 너무 유명해져 버렸어. 사교계의 신성, 제국의 젊은 영웅, 황제 폐하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 스물도 되기 전에 몇 백년만에 궁수로 ‘가장 영예로운 마차’에 오른, 정말 보기 드문 미남. 반 년도 되기 전에 평민에서 계승 백작이 된 사람.”

잠시, 그 이야기를 생각하던 나는... 반은 어이없고 반은 화난다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제는 작위도 생기고, 영지도 생기고, 황제 폐하의 총애도 얻었으니까, 굳이 마법을 회복하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도 없을 거고, 어차피 연구도 단서도 잘 안 잡힐 만큼 어려우니까,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건가요?”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와, 씨발.”

“기리인, 말조심해.”

이 상황에서도 내 선생님 노릇을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있는, 달빛에 나신을 빛내고 있는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후우. 적어도 두 사람 만이라도 끝까지 제 편이 되어 줄 거라고 믿고 싶네요.”

“당연히 그럴 거야.”

“물론이죠, 주인님.”

두 사람이 시간차 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약간은 누그러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래서요?”

이브가 조심스럽게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와 내 무릎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연구에는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에요. 주인님의 증상은 어느 누구도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고, 주인님이 어제 그 방에서 보신 내용은 발설하실 수 없는 내용이잖아요. 연구에 참여하셨던 대사제님마저도 ‘탐탁찮아하신다’는 말만 남기고 소극적이셨구요.”

“그렇긴 하군요. 그래서요?”

선생님은, 말하기 전에,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뭔가 어려운 말을 하기 전 준비하는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기에, 나와 이브는, 가만히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리인. 정말 미안하지만...”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나는 어디 한 번 말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선생님에게 화 낼 일이 아닌 줄 잘 알면서도, 불합리하게, 화가 난 표정으로, 선생님을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달빛을 받아,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인 것 같은 선생님은, 그런 나의 분노와 짜증을 누그러트리는 묘한 힘을, 자애스러운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 그녀의 향기를 막아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의 향기마저도, 달빛에 누그러져, 평소의 고혹적인 면모가 약간 덜하고, 아름다움과 자애스러움을 더 풍기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지만?”

“두세 달 정도 헤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

“싫어요.”

내 즉답에 선생님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리인. 가능하면 나도 떠나지 않고 싶어. 하지만 잊지 않았겠지? 이건 내 안식년의 연구 주제이기도 해. 기리인 네가, 네 몸을 회복시키고 다시 마법사가 되고 싶어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내가 연구하는 주제를 성공시키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남쪽에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혼자 가요?”

“아니. 아카데미에 어제 신청서를 냈고, 오늘 받아들여졌어. 나 이외에 몇 명이 팀을 꾸려서 내려가게 될 거야. 남부 출장소의 임기가 끝나 교대하기 위해 가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스물에서 서른이 넘는 인원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니까 위험할 걱정은 없어.”

“그래도 싫어요. 가지 마세요.”

“기리인...”

마치 아이로 돌아가 떼를 쓰는 것 같은 내 말투에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달래는 듯한 말투를 하며, 내 쪽으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내 앞에, 거의 닿을 듯이 다가와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불안하니?”

뭐가 불안한 걸까. 나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대답했다.

“두 세달이라고 했나요?”

“응... 그 이상 있으면 연구를 마무리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 동안 선생님이 떠나버릴 것 같아서 싫어요. 그 동안 선생님이 내가 아는 선생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싫어요.”

후자는 왜 붙였을까. 아마도, 지금 달빛을 받고 있는 선생님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이브가 약간은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돌아보고 있는 가운데, 선생님은 부드럽게, 후후, 하고 웃으며, 한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기리인.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니? 떠나지 말라는 말은 꽃이 나비에게 하는 거지, 나비가 꽃에게 하는 게 아니야. 나비는 꽃을 떠날 수 있지만, 꽃은 나비를 떠날 수 없고 말야.”

갑자기 온갖 것들이 떠오른다.

에아랍 씨가 말했던, 하피 족의 전승. ‘꽃을 울리지 않는 나비’.

레코딩 챔버에서 봤던, 대수림 안에 있다는, 호수 속의 산이라는 신비.

그 날, 우리가 처음 섹스를 했던 그 잊지 못할 날의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도 불안해? 나만큼 더 불안할까? 제도, 아니 대륙 최고의 신랑감이자 인기남이 된 남자를 두고 떠나는 내가 더 불안하지.”

아. 그렇게는 생각 못 했는데...

“기리인. 내가 이브를 우리 곁에 두게끔 허락한 게 실은 이것 때문이기도 했어. 조금이라도, 너라는 나비를 잠깐씩이라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꽃이 있다면, 너를 유혹할 꽃들이 조금이라도 적어지겠지, 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만족하라는 건가요. 뭐에요 그게...”

이브는 그 정도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듯,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미소지은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기리인.”

“네.”

“그 때, 왜 말을 놓지 않느냐고 물었지.”

“네.”

“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하지.”

“네.”

“이제 말할게.”

다시, 깊이 심호흡을 한 선생님은, 내 뺨을 만지던 손을 거두고는,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사랑해, 기리인.”

쩡.

그건 실제의 소리였을까 아니면 나 혼자만 들은 소리였을까.

그 소리는 어디서 난 것이었을까. 내 마음 속에서 나는 소리였을까.

어느 쪽이건,

나는 그녀의 마음에 답해줘야 한다.

“나도 사랑해, 요안나.”

조용히, 내가 그녀를 내 품 안에 끌어안는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녀는 여신같이 아름답지만, 그녀는 내 곁에, 아니, 내 품 안에 있다. 여전히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그녀에 대한 갈증, 그녀를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갈증은 여전하지만...

“나 없는 동안 이브가 널 돌봐줄 거야. 그리고, 다른 레이디들도 만나야 하면 만나. 이제 계승 백작이잖아. 정실과 첩을 두지 않으면 오히려 말이 나올 거야.”

“그래도... 너라는 여자를 두고 어떻게...”

자연스럽게, 말이 놓아진다. 요안나는, 내 품 안에서, 미소짓더니, 가볍게 나에게 입을 맞춘다. 그녀의 살갗이 나에게 따스한 온기를 주며 녹아든다.

“난 내 남자가 세상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면 해.”

그러더니, 다시 얼굴을 내 눈 앞까지 가져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줄 거지? 수많은 꽃들을 울리지 않을 거지?”

우연의 일치겠지... 나는, 내 눈 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우리 기리인이지.”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다시 입을 맞춰온다. 이번 것은 아까같은 애정의 표현이 아닌, 명백한 섹스의 개시 신호이다. 그 서슬에 내가 뒤로 드러눕자, 요안나는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애정과, 욕망과, 두려움과, 기쁨과, 까닭모를 슬픔,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모두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도, 이제 잠시 멀리 가는 꽃으로서, 오늘은 전면적으로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해. 당분간은 다른 꽃들을 바라볼 마음이 안 생길 정도로 모든 걸 나에게 쏟아부었으면 해.”

“사랑한다고 한 번만 더 말해주면 그렇게 할 게.”

그녀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환하게, 지금껏 내가 그녀를 본 이래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기리인 모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챕터의 끝입니다.

쓰다가 고치고 쓰다가 고치고 하다보니 이 시간이...

히로인이랑 말 트는데 300편 가까이 되었다니 새삼 놀랍네요;;;

참, 적정 수위를 지킨다는게, 어렵네요.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님들이 제 힘입니다.

OneChance 님 // 처음 받아보는 순위 리플이네요.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아하하 ^^;;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 님 // 절단마공 죄송합니다 ^^;;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잘되기를 님 // 감사합니다!

도마뱀DX 님 // 그러게요... 제가 제목을 참 못짓다보니...ㅠㅠ

Guaaaaak 님 // 에스틴이 '뭐 그런 루머 신경도 안 쓴다'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루머가 흠될 것도 없을 거고, 나스프 공작가나 황태후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니라 황제에 대한 내용일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전에 한 번 썼던 거라, 다른 여자나 소재가 생기면 그 때...^^;;

Riby 님 // 감사합니다!

liz5611 님 //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탄자나이트 님 // 정주행과 칭찬 감사합니다!

하늘바라기17 님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금요일의 반반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필하십쇼!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그러게요 다음에 절단마공 할 때는 연참신공과 같이 펼쳐야...ㅎㅎ;;

바람색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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