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6 막간 #7. [DEPTH] ‘기리인의 길' 과 게임사의 전화 =========================
[DEPTH] ‘기리인의 길’ -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조회수 38753 추천수 382 ‘HOT!’
안녕하세요. ‘기리인의 길’을 연재하던 게이입니다.
그간 제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죄송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제 연재글을 여기에서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아시다시피 DEPTH는 클리어한 경우 말고는 세이브 파일을 넘기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 파일을 드릴 수도, 제 컴퓨터를 그대로 떼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지만 여기에서 글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아껴주신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며,
여러분들 중 꼭 진엔딩 보시는 분이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 뭐야 갑자기
- 뭐 취업이라도 하신 건가...
- 그간 감사했어요 님 플레이는 별의별게 다 나와서 정말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 그런데 왜 갑자기 글을 못 쓰신다고 하는 거임?
- 아쉽네 DEPTH 접는 느낌인데
- 혹시 제작사에서 전화온 거 아님? 여기서부터는 스포 자제해 달라고?
ㄴ 네 다음 망상
“역시 날카로운 사람들이 있네요...”
[그렇다니까요. 지금이라도 중단하시기를 잘 하셨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딥 인사이드’사 대리라는 사람의 목소리는 꽤나 침착했다. 현식은 상대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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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한 주간의 플레이 기록을 돌아보며 스샷을 찍고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잔뜩 들어갈 거라서, 공개하는 순간 엄청난 반응이 일어날 게 뻔했다. 치르낙 대왕 리플레이를 하는 사람들 말고는 어느 누구도 만나보지 못한 르플레스탁을 만났고, 대도서관의 지하에 ‘레코딩 챔버’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리고...
그 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을까 하다가, 설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스팸일까 싶어서, 잘못 걸린 번호면 잘못 걸렸습니다, 라고 해 주려고 현식은 전화를 열었다.
“여보세요?”
[강현식 씨죠?]
하지만 그에게 온 전화가 맞았다. 누구지? 나한테 전화할 사람이 없을 텐데? 택배 시킨 것도 없고... 라고 말하며 현식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네, 실례지만 누구시죠?”
[아, 안녕하세요. 저는 ‘딥 인사이드’사의 C/S팀 대리 마이크 하 라고 합니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억양은 완벽한 네이티브 한국인의 그것이었지만, 현식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걸 궁금해할 정신 따위는 없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하하, 놀라지 마시구요. 안 좋은 일로 전화드린 건 아닙니다. 지금 WG 게시판에 플레이 후기 연재하고 계시죠?]
현식은 놀란 위에 한 번 더 놀랐다. 물론 꽤 많은 사람이 보는 화제의 연재글이긴 하지만, 제작사에서까지 모니터링을 하나...
“어, 네...”
[저도 플레이어의 한 사람으로서 연재글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에? 현식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력 101을 찍는 그의 캐릭터 기리인은 너무 똑똑한 나머지 플레이어인 현식이 집어내지 못하는 의문들도 막 떠올려 선택지로 넣어주고는 한다. 하지만, 그건 기리인이 똑똑한거지, 현식이 똑똑한 게 아닐텐데... 그런데 기리인을 하도 플레이하다 보니 나도 같이 좀 똑똑해진 건가, 하고 생각하며, 현식은 마이크에게 물었다.
“개발사 사람들은 모두 진엔딩이 뭔지 아는 거 아니에요?”
마이크는 하하 하는 웃음소리를 먼저 들려주며 대답했다.
[아뇨, 죄송하지만 저희도 진엔딩이 뭔지 모릅니다. 심지어 DEPTH의 시나리오도 다는 몰라요. 지금 사람들이 공개해서 짜맞춰진 부분이랑 위에서 가르쳐준 부분만 알거든요.]
“그래요?”
[네. 게임 시나리오는 사장님이랑 직속 팀 두 명만 알아요.]
“그런데 게임이 개발이 가능했어요?”
현식의 순수한 물음에 마이크 하는 아마 눈 앞에 있었으면 어깨를 으쓱였을 법한 헛웃음을 들려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희도 신기해요. 요즘 세상에 게임 시스템이나 엔진을 소수의 사람이 단시간만에 잘 돌아가게끔 만들어내는 것도, 시나리오가 그렇게 극비인데 사람들이 작업하는 게 빵꾸가 나지 않았다는 것도요. 아이고, 이 얘기 하려던 게 아닌데...]
목청을 가다듬은 마이크 하는 말했다.
[강현식 씨. 어제 사장님이 지시하셨어요. 강현식 씨를 접촉해 보라구요.]
“네? 대체 왜요?”
[혹시, ‘레코딩 챔버’에 대해 아시게 되시지 않았나요?]
덜컹. 현식은 심장이 잠시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 뭐 제 플레이 로그가 자동으로 전송되기라도 하나요?”
[아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 플레이하실 때 약관으로 그 얘기를 했을 거에요.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DEPTH는 휴대용 기기들로도 플레이 가능하다는 거.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돌아가는 DEPTH도 많아요. 추적이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사장님 이하 시나리오실 분석이라고 하더군요. 저희가 DEPTH 플레이 후기를 수집하고 주시하고 있기는 하거든요.]
하긴, 이런 게임이라면 그럴만 하긴 할 것 같긴 한데...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걸 다요?”
[네. 뭐 사람이 하는 건 많지 않고 대부분 봇(bot)들이 하긴 하죠. 어쨌든, 그걸 토대로 분석한 결과... 강현식 씨의 플레이가 진엔딩에 꽤나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왔나봐요.]
“정말입니까?”
한 옥타브는 올라가버린 현식의 목소리.
[네. 아, 물론 독보적이다 할 정도는 아니세요. 진엔딩에 접근하는 경로는 제가 듣기로는 30가지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 중 몇 개의 길을 타고 있는 유저들도 있구요. 하지만 강현식 씨를 저희 회사 시나리오실이 주목하고 있는 건 맞아요.]
“아... 네, 그래서요...?”
[시나리오실에서 현식씨의 플레이 기록을 토대로 성향 분석을 해서, 그를 토대로 어떤 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를 추적해 보니... 적어도 이번 주 연재분에는 ‘레코딩 챔버’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 같다, 고 하더군요.]
‘헐... 이 회사는 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고 분석 툴을 만드는 게 더 돈을 벌 수 있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레코딩 챔버 이야기도 이번 주 연재글에 올라갈 예정이었어요.”
[네, 그래서 저희가 전화드린 겁니다. 이번 주 연재분에는 그 외에도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을 것 같더군요.]
“네, 뭐...”
[혹 연재를 멈춰 주실 수 없겠습니까?]
“네?”
[강현식 씨가 알게 되신 사실들이 공개되면,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가 영향받을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특히 레코딩 챔버는, 방법은 차치하고라도, 거기에 그런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해주는 바가 크니까요.]
현식은 곰곰이, 이번 주에 올리려던 내용들을 생각해보고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것 같아요.”
[저희가 맨 입으로 부탁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강현식 씨가 연재를 멈춰주신다면, 다음 달에 있을 저희 회사 견학자 명단에 추첨 없이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아...!”
‘딥 인사이드’사는 지금 언론을 대하는 부분 말고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서, 다들 궁금해하고 있던 참인데... ‘회사 견학’이 있다는 것 자체도 현식은 처음 들었다.
“어, 네, 연재 그만 할게요. 어차피 돈 받는 것도 아니고... 대신, 견학명단에는 꼭 넣어주시는 거죠?”
[안 들어가 있으면 그 정보를 공개해도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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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시죠.]
“DEPTH가 엄청 잘 만든 게임인 건 인정해요. 정말 재미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진엔딩에 상금까지 걸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플레이를 시키는 건... 어, 제 말은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구요... 무슨 목적이세요?”
[게임이 재미있으면 됐지, 왜 비밀까지 밝혀내라고 하냐, 이런 말씀이신가요?]
“아... 네... 기분나쁘게 들리셨다면...”
[하하, 아뇨 아뇨. 기분 안 나빴습니다. 저희도 똑같은 질문을 사장님에게 드렸었거든요.]
“그래요? 사장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던가요?”
마이크 하는 몇 초간의 침묵이 지난 후 대답했다.
[뭐 홍보 효과도 있고 사람들이 더 열심히 플레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자기가 이렇게 거액을 내놓은 제일 큰 목적은...]
“목적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보고 싶었다, 하고 말하시더군요.]
“...악취미네요...”
현식은 대충 전화를 마무리하고 끊었다. 하긴... 악취미건 뭐건, 정말 재미있는 RPG니까... 그리고, 그 의도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진엔딩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현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DEPTH를 더블 클릭했다.
평범한 대학생 강현식에서, 다시 대륙 최고의 머리와 얼굴, 그리고 의지를 가진 기리인 모스로 변할 시간이다.
============================ 작품 후기 ============================
간만의 현실 파트입니다...만, 당분간 현실 파트는 넣기 힘들 것 같아 이렇게 올렸습니다. 하긴 제가 저 제작사 같았어도 저런 반응을 보였을 것 같습니다. 민감한 사항들이 많기도 하니까...
내일부터는 다음 챕터가 이어집니다.
* 연중공지인 줄 알고 놀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의도치않게 낚시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 추, 코, 쿠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에 쓸 힘을 얻습니다.
강아지친구 님 // 퍄퍄!
♪..미르 님 // 그 떡밥이 지금 풀리면 안되죠~ ㅎㅎ;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탄자나이트 님 // 오래전 연재분인데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orPhjne 님 // 저 님 댓글읽고 1차로 빵터졌음욬ㅋㅋ
인페르니우스 님 // 감사합니다!
으악으아악 님 // MorPhjne 님 댓글에 이어 님 댓글에서 결국 완전 빵터졌어요 ㅋㅋㅋ 센스쟁이들!
살펴가세요 님 // 다음 챕터는 그렇게 될 거 같아요.
건필하십쇼! 님 // 그러게요? ㅋㅋㅋ; 저도 상상치 못한 활용법이네요~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고구마무침 님 // ...나이스 보트를 태우면... 거기서 글이 끝나는... 아. 다음에 오마케라도 써봐야겠네요.
잘되기를 님 // 감사합니다!
니코틴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