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97화 (297/309)

00297 10. 흐려진 별 =========================

10. 흐려진 별

딱!

“밀고 들어오는 게 약해!”

자존심 상하게도 형은 두 손도 아닌 한 손으로 내가 힘껏 내리친 목검을 받아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밀리는 기세를 이용해 탄력을 주어 내 목검을 멀리 쳐냈다.

“핫!”

한두번 당해본 게 아니라 나는 익숙하게 반응했다. 뒤로 두 스텝 빠르게 물러나, 형이 비어있는 내 가슴으로 휘두른 목검을 피한 후, 그대로 빠르게 앞으로 다시 두 스텝 밟으며 찌르기를 들어갔다.

“좋아!”

형이 칭찬하는 것은 드문데. 살짝 기분 좋으려고 한다. 내 찌르기가 꽤나 빨랐던지, 형은 옆으로 피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검으로 살짝 빗겨내는 데 그쳤다. 순간 나는 형의 공격을 예상하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니나다를까 형은 내 목검을 다시 한 번 퉁겨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버티는 게 고작이었고, 그걸 이용해 다른 공격은 할 수 없었다.

“이익...”

결국 우리는 서로 칼받이 근처에서 칼을 맞댄 채 힘겨루기, 즉 스테일메이트(stalemate)에 들어갔다. 잠시 힘겨루기를 하다가(형이 약간은 힘을 빼 주었다. 솔직히 형 힘이 96인데 맘만 먹으면 언제든 힘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었을 테니까) 형은 힘껏 나를 뒤로 밀어냈다. 하지만 나는 대책없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탄력을 주어 뒤로 스텝을 밟으며 다시 대응 자세를 갖추었다.

“그만 할까?”

“하아... 하아... 네.”

나는 곧장 형의 집 지하의 연무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기리인, 칼. 칼 놓지 마. 검사의 마음가짐은 그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 죄송해요...”

내가 오른손을 옮겨 목검의 손잡이 위에 대고 언제든 잡을 수 있게끔 하고 나니, 형이 한 쪽에 있던 물통을 가져와, 입 속으로 절반쯤 쏟아붓고는 나에게 건넸다. 시원한 물을 마시니 더워졌던 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많이 늘었다?”

“정말요?”

“응. 이제는 하루에 다섯 번 밖에 안 죽겠네.”

왁. 그럼 그렇지.

에아임 형은 기수 수석 졸업자에다가 수사 기사단이 생긴 이래 손꼽히는 초고속 승진자의 명성에 걸맞게, 개인 전투력도 기사단 수위를 다투는 사람이었다. 검술 수련의 일환으로 매일 아침 형과 대련을 하며 나는 그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따라올 수는 있겠냐?”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게, 형과 대련한 첫 날에 나는 수십 수백번이나 쥐고 있던 목검을 놓치고 목젖에 목검이 들이대어지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얻어맞은 건 덤이고 말이다. 배낭 한 쪽에 잘 보관되어 있던 아르토 누나의 근육통 연고를 상당부분 써야 할 정도로 형과의 지도 대련은 혹독하고 동시에 엄격했다.

역설적으로 그랬기에, 주 2회 오는 검술 선생은 발전이 빠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술 선생에게 기초를 배우고, 매일 형과 실전 대련을 한 지 한 달째, 이제는 형과 대련하는 한 시간 동안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자, 가자. 씻고 와. 아침 먹게.”

“네, 형. 오늘은 저희 집 차례에요. 씻고 건너오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형을 뒤로 하고 나는 계단을 올라, 눈을 비비며 나오는 뢰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정원을 가로질러 스윙 도어를 밀고 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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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어요, 테리아.”

마지막 팬케이크 조각을 시럽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며 형이 말하자, 테리아는 조용한 성품답게 별 말 없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만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뢰다는 사과 한 조각을 포크로 찍다가 놓쳤고, 테밀 누나가 뢰다가 다시 그걸 찍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솔직히 팬케이크는 우리 집사람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오레즈 어르신.”

오레즈 할아버지와 에스틴이 겸양을 주고 받고 있는 동안, 형은 남은 차를 들이킨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리인, 먼저 일어설게. 아, 맞다. 너 황궁에 들어가는 게 내일이었던가?”

“네. 내일이 금성의 날이니까요.”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좀 가자.”

“네?”

“폐하에게 보고드릴 게 있어서. 니가 옆에 있으면 폐하께서도 좀 누그러지시니까 말야. 야, 요새 폐하가 얼마나 까칠한지 아냐.”

“그래요?”

“그나마 너 들어오는 날이니까 좀 나은 거야. 너 모르지. 금성의 날 전날에 보고들이 잔뜩 올라가는 거 말야. 금성의 날에 니가 폐하를 도와주니까 그 날은 폐하가 어지간한 실수도 넘어가 주실 정도는 되시거든.”

그것 참... 나는 입맛을 다셨다.

“기리인. 그러지 말고, 아예 진짜로 취직하라니까.”

“폐하께서 그건 싫으시다는데 어쩌겠어요.”

“그 양반도 고집 하고는 참...”

황제 폐하를 ‘그 양반’이라고 부르는 불경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에아임 형은, 들고 왔던 출근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다. 형의 뒤를 어느새 접시를 깨끗이 비운 뢰다와 테밀 누나, 오레즈 할아버지와 에노 할머니, 그리고 에스틴과 테리아가 따랐다.

형과 내가 형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오레즈 할아버지와 에노 할머니가 에스틴과 테리아를 잘 품어준 덕에, 우리 두 집은 거의 한 집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다. 뢰다가 심심하면 공이나 장난감 칼을 들고 우리 집에 건너와 나와 놀 정도였다. 사람들을 잠시 둘러보며 나는, 에아임 형이 나가는데 이렇게 다 우르르 나오는 장면이 지금 우리 두 집 사이를 대변해주는 단적인 장면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부쩍 아이 티가 사라지고 있는 뢰다가 또렷해진 발음으로 아빠에게 인사했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인사했다. 형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어느새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단의 출근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자, 뢰다야. 너도 준비해야지.”

“엄마, 유치원에 티크람이랑 오후에 놀아도 돼?”

“티크람네 집에 갈 거니?”

“응!”

“그래, 그러렴. 엄마가 저녁 먹기 전에 그 집에 들릴 거니까, 그 때까지만 노는 거다? 저번처럼 저녁 먹고 오겠다고 떼쓰면 안돼?”

“알았어!”

“자,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삼촌! 있다가 봐~”

“그래, 뢰다야. 잘 다녀와. 누나도 잘 다녀오세요.”

테밀 누나와 뢰다, 그리고 오레즈 부부를 배웅하고 나자, 자리를 정리하던 에스틴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백작님. 오늘 일정은...”

“기억하고 있어요. 한 시간 후에 마차가 오기로 했어요.”

“네. 저녁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으십니다만...”

“음. 어떻게 될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르논과 함께 돌아올 가능성이 커요. 저녁은 넉넉히 준비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스틴, 똑똑하고, 센스있고, 싹싹하고, 다 좋은데... 꼭, 나스프 공작가에 관련된 일만 나오면, 반 보 정도 더 앞서나간단 말이지. 미묘하게 거슬려... 뭐라고 말할 정도는 안 될 정도로 거슬린단 말야.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내가 입을 옷을 고르러 옷방으로 들어가는 에스틴을 보며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 시간 남았으니, 숙제나 마저 하러 가야겠다. 나는 서재로 향했다.

“기리인, 공부를 좀 해 주면 어떨까? 제국 관료가 되기 위한 공부 말이다. 만약 네가 마법을 회복하면 그건 그대로 교양이 되는 거고, 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냐?”라는, 황제 폐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하긴 제국의 어느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은퇴한 관료 두 분으로부터 각각 법률과 회계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재상 각하가 주선해 주신 두 분은,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재상 각하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답게, 융통성의 우선 순위가 다른 성격에 비해 훨씬 낮은 분들이었다. 내가 무슨 행사를 하건, 무슨 귀족을 보고 오건, 심지어는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고 황궁에 다녀오건 말건, 숙제는 무조건 되어 있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숙제냐, 하고 투덜대면서도 한 번도 숙제를 밀리지는 않았다. 아니, 밀릴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할 게 무서워서...였다. 귀족가의 명예라는 거, 실은 남 눈을 지독히 의식하는 게 아닐까...?

암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귀족의 계승 우선순위와 그 예외사항을 다룬 복잡하고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을 다시 보고 있자니, 에스틴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백작님, 갈아입으실 옷입니다. 그리고 마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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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오는 나스프 공작가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전히 최상의 노력이 기울여져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정원을 지나, 깨끗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를 돌아 저택의 현관에 이르자, 이미 아르논은 현관문 밖에 서 있었다. 이크. 늦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는 건 이미 평가에서 깎이고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다. 마차가 서기를 기다려 나는 약간 서두르며 내렸다.

“레이디 아르논.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실 줄은...”

아르논은 오늘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가볍게 후후, 하고 웃었다.

“어머, 아니에요, 백작님. 백작님은 제 시간에 도착하셨어요. 제가 기다리기 힘들어 문 밖에 나와있었던 거랍니다.”

으아. 그게 더 부담스럽다구요.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조금 아르논과 친해지자, 아르논은 예의 그 순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는 스스럼없는 태도로 시도때도 없이 공격을 들어왔다. 지금처럼 말이다. 성격상, 대놓고 들이대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손해보는 한이 있어도 그걸 거절하지만, 아르논처럼 기분나쁘지 않게 은근슬쩍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싫어하지 않다 보니... 어느새 아르논과 나는, ‘꽤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백작님,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가실까요?”

“아, 공작님께서 계십니까?”

와악. 점입가경이로군. 그렇게 속으로 내가 절규하건 말건, 내 몸은 익숙하게 팔꿈치를 옆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논 역시 익숙하게 내 팔꿈치에 자신의 손을 끼어왔다.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마차를 그대로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머지 않은 곳에, 저번에 왔을 때 아르논의 안내를 받아 잠시 구경했던, 공작님의 집무실 겸 서재가 있었다. 우리 둘이 걸어가자, 문 밖에 서 있던 시종장 에크네익스 씨가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웃으며 목례했다. 내가 마주 목례하자 그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공작님, 아르논 아가씨와 모스 백작님이십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에크네익스 씨가 열어준 문을 통해 들어가자, 책상에서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던 공작님이 우리를 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스 백작, 간만이군. 두 주 만에 보는가?”

“네, 공작님. 전에 궁성에서 잠시 뵈었었죠.”

나스프 공작은, 전쟁 이후, 자신을 빼고는 모두가 의견을 모아, ‘늙었다’. 그가 벗어서 책상위에 내려놓는 안경이 그러했고, 얼굴 피부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생기가 그러했다. 이러다가 검버섯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작은, 조금씩 늙어가는 것 같았다.

융파트 공작가의 위세가 급격히 몰락하면서, 사람들은 이래저래 나스프 공작가가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크게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사사건건 충돌해 온 융파트가 없는 지금, 나스프는 그간 무력에 쓰이던 힘을 모아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황제 폐하의 작전이 성공하는 것인지까지는 몰라도, 나스프건, 융파트건, 그를 구성하는 하부 귀족들의 입김이 더 커졌고, 공작가는 예전처럼 그들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특별한 사업체가 없이 영지의 주민들에게 걷는 세금과 공작가 직영의 상단들이 얻는 수익 정도로(물론 그마저도 어마어마한 금액이기는 했지만) 살림을 꾸려온 나스프 공작가는, 당장 세수가 감소하자 조금씩 타격을 입고 있었다. 공작이 저렇게 늙어보이는 것도 그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 온갖 고민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그 난국을 타파하기 위한, 그 대책 중 하나이고 말이다. 그러니 공작이 나를 저렇게 반가워하는 거겠지.

============================ 작품 후기 ============================

새 챕터 시작합니다.

기리인은 또다시 구르게 될 겁니다.

오늘(28일 금요일) 새벽 7시부터 이 글이 반반무 대상이 됩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theophany 님 후원쿠폰 100장 정말 감사합니다. 더 힘내서 끝까지 열심히 쓸게요!

아, 지난 편에서... 글 속의 글이 아닌, 이 글이 연중한다는 걸로 잘못 아시고 많은 분들이 낚이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올릴 때 전혀 그 생각을 안했었는데... 그래서 막간 편의 제목도 처음에는 '연중공지'라고 올렸다죠... 그랬는데 반응을 보고 아차 하고 얼른 바꿨습니다만, 내용 자체가 낚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겠더군요...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습니다만... 기분 나쁘셨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특히 리플 달아주신 분들 중에 그런 의견 주셨던 theophany님, 아빠의웃음 님, 잉여로사는법 님, 유한도전 님, cacao99 님, 낙화vs목련 님, 탄자나이트 님, 살펴가세요 님, 기와인 님, 별그리고나 님, 보티스 님, 바람색 님, 박성빈 님, 시즈프레어 님, 스키테 님, DANDI 님 정말 죄송합니다 ^^;;; 다음에는 조금 더 생각하고 쓰는 버릇을 들이겠습니다.

Guaaaaak 님 // 제가 설정한 DEPTH는 스카이림이나 폴아웃, 위쳐 같은 게임과 비슷한 스탠드얼론 RPG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 자신이 게임의 캐릭터라면, 그리고 제가 내리는 선택들이 사실은 저를 조종하는 플레이어의 선택이라면, 저는 그가 내리는 선택이 제가 선택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면 제 스스로 제가 내린 선택을 합리화하지 않을까요...? 아 물론, 주인공의 지력 등의 능력치에 따라 게임 시스템에서 제공해 주는 선택지 자체가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인페르니우스 님, 건필하십쇼! 님 // 역시 독자님들이 원하시는 건 다양하셔서...^^;; 적정비율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니코틴 님 // 아직 뭐라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네요 ^^;

계룡산도인 님, eastarea 님, 책모기 님 // 감사합니다!

Zxion 님 // 혹 다른 데서 비슷한 장면을 보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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