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302화 (302/309)

00302 10. 흐려진 별 =========================

형은 우리를 감질나게 할 생각은 없었던 듯,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폐하께서는 물론 잘 아시는 내용일테고, 기리인 너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제국 해군기지는 일종의 외항(外港)이자 관문 역할을 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척의 상선이 드나드는 ‘황제의 항구’를 위해 1차 검문 역할을 하지. 위험한 물품은 압수하기도 하고, 물목을 미리 정리하기도 하고. 덕분에 ‘황제의 항구’ 세관은 교역량에 비해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농담이 있지.”

“...거짓말이겠네요. 세관이 바다에서 들어오는 것만 조사하는 것도 아닐테고,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걸 검사하려면 꽤 바쁠 텐데 말이에요.”

“역시 안 속는구나. 아무튼.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과는 약간 다르게, 해군기지의 1/3 정도는 그런 제도 경비 겸 상선 임검 업무에 할당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법적인 물품을 압수해 모아두는 창고도 있지.”

“기리인, 그거 아냐? 그 창고에서 나온 물품들을 통해 얻는 수익이 꽤나 쏠쏠하다는 거 말이다.”

황제 폐하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가끔씩 진짜 위험한 물건들, 예를 들면 폭발물이라든가, 마법적 함정이라든가, 맹수라든가, 혹은 전염병에 걸린 거라든가... 이런 것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 그래서 군이 동원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음. 형은 잘 모르는 나를 위해 배경을 설명해 주고 싶었나보다. 내가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꾸벅이자 형은, 이번에는 황제 폐하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는 공식 보고다 라는 뜻인가보다.

“제가 제국 해군기지에 갑자기 내려가게 된 건... 연쇄 살인 사건의 보고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폐하께서 잘 말씀해 주셨듯이 아무리 연쇄 살인 사건이라 해도 제도와 해군기지 정도의 범위에서는 고작해야 3급 기사가 배정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저희도 보고를 받았을 때 4급 수사기사를 대표로 한 수사단을 꾸려 파견했습니다.”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범인을 잡지 못한 모양입니다?”

형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하오나 폐하, 그렇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수사단의 단장이었던 4급 기사마저 그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폐하가 헛 하고 짧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뿐만 아니었다. 집무실에서 이리저리 오가던 비서관들마저도(집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비서관들에 의해 기록된다. 가필은 가능해도 수정은 불가능하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사기사단원이 당하다니. 온갖 전설들을 실시간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수사 기사단의 근본적인 힘은 개개인이 월등히 강하기 때문이다. 에아임 형만 해도 혼자서 검사 두셋을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당했다는 건...

...아니, 잠깐. 뭔가 이상한데.

“형.”

“응.”

“그것만 가지고는 형이 내려간 이유가 설명이 안 되는 거 같은데요. 만약 살인 자체가 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마탑의 인원이 더 파견되었을 것이고, 신성모독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대신전이 움직였겠죠. 그리고, 오해 없었으면 좋겠지만, ‘평범한’ 살인이었다면 – 하급 기사들이나 동원하는 다른 병력들의 숫자를 늘렸겠죠.”

폐하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앞질러 말한 것을 불쾌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뭐랄까.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가 불쾌한 거라서 좀 떨떠름해 하는 얼굴이랄까. 내친 걸음이라 이야기를 계속하면서도 나는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형이 저런 반응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사기사단의 정보부장이자 1급 수사기사가 움직일 만한 ‘연쇄 살인사건’은 어떤 사건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첫째, 아주 특이하거나 끔찍하거나 한, 비정상적인 살인사건이다. 둘째,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더 큰 범죄와 연결된 사건이다.”

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리인. 잘 맞췄다. 그 두 가지 모두가 해당되는 사건이었다.”

“아...”

형은 다시 황제 폐하에게 보고하는 자세로 돌아갔다.

“처음 사건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것은 보름 전이었습니다. 당시 압류품 창고를 경비하던 해군 수병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시체가 워낙 참혹했기에, 자체 경비대가 아닌 수사 기사단에 의뢰하자는 해군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수사단을 꾸리는 와중에도 세 명이 추가로 살해당했습니다.”

“참혹하다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형님?”

형은 마치 떫은 페르시몬을 한 입 베어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커다란 마수가 한 입 베어문 것처럼... 허리께가 푹 파여 있고, 온 몸이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것처럼 너덜거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으엑.

“이 단계에서도 수사기사단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었습니다. 압수품 중에는 맹수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고, 그 맹수가 탈출해서 사람들을 해치는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상처 자국을 조사해 본 신관들이 이것은 보통의 맹수들에게서 생길 수 없는 상처라고 보고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마수(魔獸)?”

폐하의 물음은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이었지만, 형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수 전문가들을 불렀지만... 그들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수에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자연력의 편중이 상처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아. 무슨 얘긴지 안다.

북부군이 주로 상대하는 것은, 백색 산맥의 음한한 마나로 인해 음한한 성질을 띠게 되어버린 마수들이다. 그런 마수들을 상대하다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고는 동상(凍傷)이다. 팔다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마치 고드름이 깨어지듯 와장창 깨어진다. 혹은, 마수가 팔다리를 깨물게 되고... 그 상처가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그렇게 얼어버린 상처는 설령 팔다리를 되찾더라도 붙일 수 없어지게 된다. 그게 북부 대요새에 팔다리를 잃은 상이 군인이 많은 이유다.

그리고 마수는 원래 그렇다. 보통 동물이 편중된 자연력, 쉽게 말해 그 자리에 많은 성질의 마나에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다. 백색 산맥에는 빙계의 성질을 지닌 마수가, 그리고 남부 열대 수림에는 뜨겁고 습한 기운을 지닌 마수가 날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상처는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합당한 추론이군요. 하지만 그렇다면... 수사기사단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잠시 주저하던 형은, 곧 말했다.

“키메라(chimaera)입니다.”

키메라라면... 전설 속의 동물 말인가. 사자의 머리에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 같은? 하지만 그건, 아이들에게 엄마아빠가 잠자리에서 해 주는 동화에나 나오는 거잖아.

“...믿기 힘들군요.”

황제 폐하의 말에, 형은 기분상했다는 표정이 아닌, 이해한다는 끄덕거림을 보여주었다.

“실은 저희도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들어가 있는 결론이지요. 입이 큰 맹수이지만, 보통의 맹수에게서는 생길 수 없는 커다란 이빨과 입의 자국이 있다. 하지만 맹수는 아니다. 그리고 마법적인 흔적이 있긴 하지만, 상처를 내는 마법이 쓰이지는 않았다.”

...어느새, 나와 황제 폐하의 표정도 형처럼,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 결론이 내려진 순간, 저희는 최근 해군 기지의 출입 기록과 압류한 물품들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말로 키메라의 소행이라면 그 자체로도 커다란 문제이지만, 대체 어느 누가 키메라를 만들었는가?를 반드시 추적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사 키메라가 아닌 다른 어떤 수단으로 살인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제국 해군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분명 제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폐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의 결론에 동의합니다.”

“형, 잠시만요.”

형은 미약하게 웃으며 말했다. 평상시의 쾌활하고 장난기있는 형이 아니라서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형이 전에 제게 해 준 이야기가 있었어요. 제국 수사기사단이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범죄 두 가지가 있다고.”

“...기억한다.”

“형이 움직일 정도로 큰 사건이라면, 그리고 형이 조금 전에 말했듯, ‘제국의 안전’이 걸린 사건이라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국 수사기사단이 가장 중점적으로 수집하는 정보, 반역에 대한 정보와 연결되어 있다는 심증이 든다.”

순간, 방의 기온이 1도 정도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반역이라니. 대체, 전쟁터에서 돌아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반역이라니.

폐하의 표정은 마치 돌을 깎아 가면을 씌운 듯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형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폐하. 저도 이 정보를 믿고 싶지 않았고, 폐하께 말씀드리기는 더더욱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명백한 위험을 말하지 않는 것은 신하 된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폐하는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영 충격이 크신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폐하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제도에 키메라를 들여오기 위해 수작을 부렸단 말입니까?”

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폐하. 저와 저희 정보부의 생각은, 애초부터 목표가 해군 기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뭔가 말하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안 그래도 어두운 폐하에게 맞췄다는 소소한 즐거움이나마 주고 싶어서였다. 폐하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애초에 걸리게끔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폐하. 키메라가 든 상자를 겉에 단순히 밀수품 같은 걸로 위장해서, 걸리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군의 기록 몇 가지에서 의심될 만한 배들을 추려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대체 왜? 해군을 노리는 거지? 설마... 남대륙이 관계되어 있는 것인가?”

에아임 형은 고개를 저었다.

“남대륙은 이번 일에 관계가 없사옵니다, 폐하. 떠오른 섬 북섬의 해군 함대의 보고서도, 해군 순찰함대의 보고서도 하나같이 남대륙 해군의 움직임은 없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대륙은 지금 우리들을 칠 수가 없습니다. 인질 반환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질... 아. 기사단 지하의, 그 흑인들 이야기구나. 그 중에는 고귀한 족속들도 있을 테니까. 분명한 협상의 카드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럼 대체 왜? 해군도 없다면 왜 해군 본부를 목표로 삼은 것이지?”

폐하의 말에, 에아임 형은 지금껏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봉투째 폐하에게 건넸다.

“폐하. 지난 폐하의 친정 이후, 융파트 영지에 대한 정보망을 처음부터 새로 꾸려야 했사옵니다. 그 이후 최근에야 정보망이 구축되어 제국 중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있사옵니다. 오늘 드린 서류는 그 정보망을 통해, 지난 반란 이후 소위 ‘잔당’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사옵니다.”

폐하는 봉투를 열어, 세 장짜리 내용을 읽다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버림받은 땅이라니...!”

“네에?”

내가 놀라서 묻자, 황제 폐하는 잠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 아마 ‘보여줘도 돼요?’와 ‘어차피 보여주실 거 그렇게 하시죠’였을 거다 – 폐하는 서류째로 나에게 넘겨주었다.

서류는 단정한 글씨로 쓰여진 기사단의 보고서였다.

[당시 반군의 전략가들이었던 몇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후, 반군은 지휘부를 잃고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세력을 규합했겠지만, 그들은 한 번의 회전에서 너무 큰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군의 빠른 진격으로 인해 재편성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다.

불행중 다행히도 황제 폐하의 군대는 민심을 우려해 도시를 점령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 틈을 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 중 황제군에 잡히면 같이 효수되기 좋은 직책의 사람들이 함께 사라졌다.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융파트 공작령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 동니아트 강을 건너면 나타나는 ‘버림받은 땅’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사건이 나오면 어쩔수 없이 스피드웨건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졸려서...ㅠㅠ

여러분들 덕분에 씁니다. 감사합니다.

강에서 만난 선원, 티르완과의 복선을 언급해 주신 으악으아악 님, 카드보험 님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르완은 조금 더 기다려야 나올 것 같습니다. ^^;

잘되기를 님 // 감사합니다!

liz5611 님 // 300회 축하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이제 기리인을 굴려야죠!

살펴가세요 님 // 그럼요~ 사건이죠~!

원샷노킬 님 //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기대해주세요 ㅎㅎ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아직 남대륙행은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Guaaaaak 님 //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기리인을 처참히 굴리려고 작정중입니다 ㅎㅎ;

능력Skyey 님 // 감사합니다!

엘뤼엔D그류페인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 용용이가 귀엽죠 ㅎ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