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3 10. 흐려진 별 =========================
버림받은 땅.
북부 영지의 동쪽 끝에 맞닿아 있는, 정말 신비한 땅이다. 신비...하다기엔 좀 께름칙한 느낌이지만. 북부 대요새의 동쪽 문으로 나가, 약 1주일 정도 말을 타고 가면, 어느 순간, 버림받은 땅에 들어서 있다.
한 번, 북부 아카데미때 답사를 가 본 적이 있다. 흰색 산맥의 견학 겸, 수학여행 겸 해서 매년 북부 아카데미 학생들이 가는 여행이다. 나는 마차 위에서 멀리서 바라본 버림받은 땅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거기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대수림이 있는 북부 답지 않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없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땅에는 작은 자갈 같은 것도, 큰 바위도 없다. 입자가 굵은 모래만이 지평선 끝까지 쭉 뻗어 있다.
거기에 없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자그마한 벌레조차도 없고, 자연스럽게 그를 먹고 사는 동물들도 없다. 아무리 땅을 깊게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 뿐인가. 그곳에서는 어떤 것도 썩지 않는다.
물만 충분하다면 사람이 무리 없이 지나갈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오래 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신에게 버림받은 땅.
“기리인, 너는 북부 출신이지? 그 곳을 가 본적이 있냐?”
폐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폐하는 물으셨다.
“어떻게 생각하냐?”
많은 것이 생략된 질문이었지만 이제 폐하와 보낸 시간도 제법 된 나는 폐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이 보고서에 대해 내 의견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거였다.
“음... 폐하. 제 생각에는 버림받은 땅에서의 생활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곳에는 물도 없고 집을 지을만한 것도 아무 것도 없기에 사는 것이 무척 힘들지만, 만약 마법사가 여럿 있다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닙니다.”
“물을 만들어낸다, 는 건가.”
“네, 폐하. 그리고 거기에서 키메라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문제?”
“거기에는 키메라를 만들 동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백색 산맥의 마수들조차 버림받은 땅에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맹수들을 실어나르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거군.”
그리고 폐하는 에아임 형을 쳐다보았다. 에아임 형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직 조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폐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이 빠른 폐하답게, 말했다.
“어쨌든, ‘키메라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지금 해군 기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겠군.
첫째, 정말로 키메라의 소행인가.
둘째, 만약 그렇다면 키메라를 부리는 자들은 누구이며, 무슨 목적인가.
셋째, 만약 키메라의 소행이 아니라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를 흉내냈는가.
아직 이 점들에 대해 충분히 답변해 줄 만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형님?”
“송구하오나 그렇사옵니다, 폐하. 게다가...”
“게다가?”
“수사기사단에서는 지금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4급 수사기사가 살해되었는데도 말입니까?”
“보통의 상황이었으면 수사기사단은 전력을 투입했겠지요. 1급 2급 수사기사들이 떼로 달려들어 사건을 단숨에 해결하고 동료의 원수를 갚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은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수사기사단은 지금 지난 전쟁의 뒷수습에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를 배신한 중부 지부를 정리하고 새로 중부 지부를 꾸려 정보망을 다시 꾸리는 한편, 모스 영지에 세워질 수사기사단 남부 지부에도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들이 정리되면 다시금 여유 전력이 있겠지만...”
“아... 그렇겠군요. 내가 잊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보통의 군주였으면, 미안합니다 소리가 나오는 순간 우리 둘은 무릎을 꿇고 말씀 거두어주소서 운운 했겠지. 하지만 황제 폐하에게 미안합니다 소리를 한두번 들은 것도 아니고, 그 때마다 저런 소동을 벌이고 폐하가 역정을 내다 보니 이제는 그저 무덤덤해졌다. 지금도 형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좋은 예다.
“그럼 수사기사단이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단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믿을만한 수사 보조 인력들과, 해군 기지에 인연이 있는 4급 수사기사를 포함해 몇 명을 증원할 계획입니다만...”
폐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기리인, 부탁 좀 해도 될까?”
“부탁이라니요. 말씀만 하십시오, 폐하.”
“나의 대리인으로 해군기지에 가 다오. 수사기사단과 협력하여 진상을 조사하고, 네가 보고 들은 것을 나에게 그대로 보고해 주면 좋겠다.”
누구의 명이라고 거부할까.
“그리 하겠습니다, 폐하.”
“그래. 내일 아침에 여기서 나와 같이 아침을 먹고 떠나라. 너 뿐만 아니라 내일 출발할 사람들 모두가 말이다. 에아임 경은 오늘 중으로 인선 작업을 마무리해 주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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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점심을 먹고 오후까지 폐하의 일을 도왔다. 그저 의논 상대가 되어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폐하는 꽤나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고, 폐하께 보고드리러 오는 사람들도 평소보다 대하기 편하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나는 궁내부원에게 부탁해 편지를 한 통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의 결과로, 나는 손에 간단한 책자 하나를 지금 들고 있었다.
[키메라를 논하다 – 키메라의 제작, 관리, 그리고 대처법에 대해]
‘키메라는 마법의 부산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마법의 결과물이 그러하듯, 마법을 시전한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키메라에게 약점을 찾는다는 것은 극히 무의미한 일이 되기 쉽다. 역량이 낮은 시전자가 시전한 누더기보다 못한 키메라의 경우 어린아이의 장난스런 일격에도 와르르 분해되기 십상이지만, 고위 마법사가 만든 키메라의 경우는 마치 처음부터 한 생물이었던 것처럼 매끈한 외양을 지닌다...’
쭈웁, 쭙, 쭙, 쭙.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메라의 통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이 전쟁에서 키메라를 쓰지 않게 된 이유이다. 그 원인에 대해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아직 명확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마법에 의해 융합되는 과정에서 키메라의 자아가 매우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을 지지하고 싶다. 그렇기에 키메라는 사람이 길들일 수도, 또한 마법으로 조종할 수도 없다.’
쭙, 쭙, 쭈웁, 쭈웁.
‘만약 시가에서 키메라를 상대할 경우에는 다음을 명심하라. 키메라는 대개 보통의 맹수보다 훨씬 강력하며, 마수에 육박하는 육체적 능력을 가진다. 그렇기에 키메라는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 예를 들면 집 안이나 골목 위도 얼마든지 공격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주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반드시 혼자가 아닌 여럿이 뭉쳐 상대해야 한다.’
쭈웁, 쭈웁.
“이브.”
“푸하아-. 네, 주인님.”
“책을 가져다 준 건 고맙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에요, 주인님.”
“하지만 이렇게 내가 책을 못 보게 방해하는 건 아니지 않아?”
이브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다시 혀를 길게 뻗어 내 물건을 아래에서부터 쭈욱 핥고 나서, 손으로 내 물건을 지분거리며 말했다.
“주인님,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주인님께 도움이 되는 자료를 가져왔으면, 노예에게 적절한 상을 주셔야죠. 지금도 주인님께서 자료를 보시는 동안 주인님께 몸도 마음도 모두 바쳐 봉사를 하고 있는 충직한 노예인걸요.”
아. 진짜. 가끔은 이 여자가 진짜로 나에게 충성스러운 노예인건지 아니면 그저 말만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물론 시스템의 ‘정보 확인’에 이브는 나라는 사람을 자신의 사고 체계의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고 있다고 나오니 그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복장터지게 하는 걸 보면, 그런 의구심이 안 들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나오든, 결과는 똑같을 거다. 지금 이브를 그대로 둬도, 혹은 ‘벌’을 주겠다고 엎드리게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냥 빨리 끝내는 편이 낫다. 나는 책을 탁 하고 덮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브. 올라와.”
“어머! 주인님, 감사해요. 이 음란한 노예에게 주시는 상 감사히 잘 받겠어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몇 번이고 해 봤던 동작이라 익숙하게, 내 물건을 쥔 채 의자에 앉은 내 무릎 위로 올라오는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곧 내 물건이 익숙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으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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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분풀이성으로 나는 이브를 몇 번이고 공략해 결국 이브의 입에서 “자, 잘못했어요, 주인님!”이라는 말을 이끌어내었다. 이브는 정화 마법을 쓸 생각도 기력도 없는 채로 몸에 온통 땀과 정액과 체액을 묻힌 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가 이 방에 들어올 때 펼친 방음 마법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아까 에스틴과 테리아에게 인사하고 현관문을 나선 후 비행 마법으로 조용히 날아들어와 내 방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에스틴과 테리아 뿐만 아니라 옆집 사람들까지 모두 내가 어느 여자와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요란한 섹스였다.
“후아... 주인님, 점점 저 혼자서 주인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주인님의 늠름한 매력은 날이 갈수록 끝도 없이 늘어나는군요.”
“입이 살아있는 걸 보니 슬슬 힘이 돌아오는 모양이네. 얼른 움직여요. 이제 늦었는데.”
이브가 몇 번 숨을 고르다가, 힘을 끌어모아 일어나서는, 침대 시트와 자신의 몸에 정화 마법을 펼치고, 수건에 물을 묻혀 내 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옷을 주워입고, 창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인님. 어디 가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간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아.”
“혹시 제게 부탁하셨던 자료가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흠칫하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애무를 위한 동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애정 표현 같았다.
“주인님. 키메라는 위험해요. 만드는 사람에게도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거의 사장되어버린 기술에 가까워요.”
“아까 본 책에 그렇게 써 있더라.”
“황명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올려다보는 이브의 눈길은 수심에 차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실 수 없으시겠지만... 부디 몸 조심하세요, 주인님. 키메라는 위험해요. 주인님의 활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하실 수 있겠지만, 활을 쏴보지 못하는 수도 있어요. 주인님은 혼자가 아니시잖아요. 저도 있고, 요안나님도 계시고... 조심하겠다고 꼭 약속해주세요.”
나는 마치 충직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며 말했다.
“약속할게, 이브. 몸 조심하겠다고 말야.”
진심이었다. 그리 위험할 일이 없을 테니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리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제가 쓴 걸 읽어봐도 별로 재미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얼른 컨디션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바람색 님 // 감사합니다!
cacao99 님 // 감사합니다!
스키테 님 // 얼른 다음 사건으로 가야죠 ㅎㅎ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박성빈 님 // 감사합니다!
Guaaaaak 님 // 현실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저런 커다란 이벤트들이 많을지도 모르지요. 아직 새싹일 뿐이었을 때 꺾여버려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혹은 꽤나 커졌지만 언론에 알려지지 않아 모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인페르니우스 님 // 감사합니다!
잘되기를 님 //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체크필통 님 // 원래 최고 권력자는 그런 법이죠 ㅎㅎ 고독하고, 쉬지도 못하고...
살펴가세요 님 // 애도를 표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