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5 10. 흐려진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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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해군 기지에는 가 보셨어요?”
출발한지 세 시간째. 평평한 돌로 잘 관리된 길이던 황도에 비해, 올록볼록한 돌들로 포장된 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엉덩이가 아프고 속도 좀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새삼, 디오틀라 씨의 공방에서 봤던 고무 달린 바퀴가 생각났다. 그게 있으면 좀 덜 아플 것 같은데. 어으.
게다가 우리는 공무로 나선 길이라 속도를 늦추거나 할 수 없었다. 혼자 말을 타고, 중간의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고 달린 에아임 형 만큼 빨리 달릴 수는 없어서 중간 역참에서 1박하는 일정이었지만, 어쨌든 그마저도 꽤나 촉박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고, 집중하기도 힘들어 그저 계속 흔들거리며 경치를 구경할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꿋꿋이 잠을 청했고 성공해낸 에빌로 누나에게는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결국, 무려 황궁의 주방에서 나온 점심 도시락을 먹기 위해 잠시 세 대의 마차를 세운 지금에야, 우리는 길가의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펴고 편히 좀 앉을 수 있었다. 하급 보조인들은 자신들에게 지급된 식사를 들고 대충 길바닥에 주저앉았고, 아저씨와 누나와 나, 그리고 이번 수사단의 지휘를 맡은 에하트나스 경이 약간 호화스러운 도시락을 가운데 놓고 자리를 펴고 앉았다.
“해군 기지요, 가 봤지요. 일 때문에 몇 번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저씨가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어때요?”
약간은 두루뭉술한 내 질문에, 아저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특이한 곳이지요. 해군 기지에도 가 봤고, 그 내항인 이오브농 항에도 가 봤지만, 둘은 분위기가 너무 다릅니다. 기리인 씨는 바닷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나는 미틱-레카 정기선에서 만나 술을 마셨던, 바다에서 떠나온 선원 티르완 아저씨를 떠올렸다.
“네.”
“그렇다니 잘 알겠군요. 바다를 직장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요. 거친 사람도, 방탕한 사람도 있지만, 땅에 발을 들인 순간에도 ‘여기는 내 집이 아냐’ 같은 분위기가 있는 느낌이더군요.”
옆에서 에빌로 누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누나도 동감인 모양이다. 사제가 될 사람인 아저씨의 이야기 솜씨는 역시 탁월했고, 나와 에하트나스 경은 어느새 아저씨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듯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해군 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또 달라요. 뱃사람 분위기도 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의 분위기도 나고, 군인인 것 같기도 하고... 좀 기묘한 사람들이 모여있달까요. 계속 한 가문이 사령관을 맡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묘한 분위기에 한 몫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음?
“한 가문이 계속해서 사령관을 맡고 있다고요? 실질적인 세습이네요? 그런데도 문제가 안 되나요?”
에하트나스 경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했다.
“모스 백작님, 그 발언은 해군들 앞에서는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잠깐만.
“꽤나 오래 지속되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고, 개혁하려는 자는 모두 쫓겨나거나 백안시될 정도가 됐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죠... 로그푸스 가 같은 가문이 하나 더 있는 건 좀 이상할 것 같고, 제국이 지금까지 해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에 해군이 독점되더라도 그다지 걱정이 없었다, 는 쪽이 더 가깝겠네요?”
“...대단하시군요.”
“여전하시군요.”
“그러게요. 여전히 마술사 같은 솜씨네요.”
세 사람의 짧은 감탄. 아. 이 버릇 고쳐야 하는데. 하지만 쑥쓰러우면서도 기분이 좋단 말야.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사과 한 조각을 집어들어 깨물었다. 에하트나스 경이 말했다.
“제도는 사실, 해군이 없어도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제도와 이오브농 항은 마차로 한나절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고,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들어오기 힘들지요. 그리고 설령 해군이 제도를 공격하려 한다 한들, 어찌 하겠습니까. 반도 바깥쪽으로 돌아가 봐야 제도에 실질적인 공격을 하기 힘들고, 제도의 아카데미에서 파견한 마법사 한두 명이면 그 배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릴 수 있죠.”
“하긴, 마법 이상의 유효한 장거리 타격 수단은 아직 없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나는, 저번 전쟁에서, 남부인들이 들고 왔던 ‘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만약, 그걸 크게 만들 수만 있다면...? 마법을 능가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까?
“황도가 있기에 해상 봉쇄도 의미가 없고, 해군 본부를 지킬 수 있는 육상병력도 거의 없다 보니, 해군 사령관을 연속해서 역임하고 있는 드네프 백작가는 그저 황가에 충성하며 해군들 안에서 작은 왕처럼 지내는 데 만족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드네프 백작가요...?”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그래. 아드마 경.
“네. 제도에는 거의 올라오는 적이 없기 때문에 백작님도 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실제로, 해군 기지를 떠나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군 사정에 대해 대단히 박식하시군요...”
반쯤은 마음에 없는 칭찬을 날렸는데, 에하트나스 경은 의외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실은 제가 수사 기사단에 투신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전까지는 황실 기사단의 평기사였지요.”
“네? 그렇게 채용하기도 합니까?”
내 물음에 그는 약간은 쑥쓰러운 듯 말했다.
“몇 차례 수사 기사단과 함께 일할 일이 있었고, 제가 부하들을 부리는 것을 의외로 높게 쳐준 모양이었습니다. 대략 반 년 전에 특채되어 수사 기사단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에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렇구나... 특이한 사람이네. ‘정보 확인’.
<이름 : 기하드어 에하트나스
나이 : 36
HP : 3500/3500
힘 : 88
민첩 : 85
지력 : 87
마나친화력 : 67
매력 : 79
지구력 : 89
특수 : 복합성격
스킬 : 분대지휘 A->
<황실 기사단의 기사였다가 지금은 수사기사단 3급 기사입니다. 소규모의 분대를 지휘하는 경우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부하들의 평가는 좋게 말해도 엇갈립니다.>
복합성격이라는 건 뭘까. 흐음. ‘좋게 말해도 엇갈린다’라는 건... 분명 아랫사람들은 혹평하고 있다는 거잖아. 에빌로 누나가 마지막 샌드위치를 입에 집어넣고 물잔을 비우자, 에하트나스 경이 일어나 말했다.
“그럼 얼른 출발하시죠. 어이! 너! 너! 이리 와서 그릇들을 싣고 자리를 정리해라!”
어우. 순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에하트나스 경은 커다란 목소리를 내며 부하들을 부렸다. 군대 같은 모습이지만... 글쎄. 다른 조직인데, 다른 분위기가 있을 텐데, 군대식을 반기려나... 그게 악평의 원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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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는 별다른 언덕이 없는 평지에 난 길을 계속해서 달려갔다. 여전히 마차의 소음은 대화를 방해할 정도는 되었고, 게다가 간간히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하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에빌로 누나를 본받아 조용히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럴 거면 바깥 구경이나 하자, 라는 심산으로 마부석에 난 계단을 통해 마차 지붕으로 올라갔다. 공무로 떠난 여행도 여행은 여행이니, 이런 길에서까지 체면을 따지다가는 여행을 즐기지 못할 거다, 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띠링!’
<자기합리화 기술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스킬화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좀 닥쳐.
어쨌든, 나는 마차 지붕에 실은 여러 가지 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황도 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길도 꽤나 쭉 뻗어 있었다. 애초에 제도 남쪽의 이오브농 반도에는 별다른 언덕이나 산 같은 것들이 없고, 그다지 비옥하지도 않아 가끔씩 제도에 치즈와 우유를 공급하는 낙농가들만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야를 막는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해, 그런 지형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마침 그 때 마차 지붕에 올라갔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부지불식간에 내 입에서 저런 멍한 소리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진행 방향 왼쪽, 그러니까... 평지 너머 푸른 산맥밖에 없을 그 곳에서, 자그마한 흙먼지가 일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 탓이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왠지 찜찜해서 나는 그 흙먼지를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10분 쯤 지난 후, 나는 확신했다.
저건 뭔가 여러 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저씨.”
“네?”
마차 안에서 용케도 경전을 읽고 있던 아저씨가 대답했다.
“저기, 아홉시 방향에요. 흙먼지 보이시나요?”
아저씨가 마차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서는, 이마에 손을 얹고 먼 곳을 살펴보았다. 한참 말없이 바라보던 아저씨는, 말했다.
“기리인 씨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를 부른 거겠죠?”
“네. 언제쯤 마주치게 될 것 같나요?”
“석양이 질 때쯤에 만나게 될 것 같네요.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요.”
순간, 흙먼지를 일으키던 자들이 갑자기 속도를 내어 앞으로 쭉쭉 달려나가 버렸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보고 있는 사이 그들은 한참 앞으로 달려나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되면... 언제 덮쳐올지 모르겠군요.”
“에빌로 누나. 메시지 스펠로 에하트나스 경에게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누나가 곧, 용케도 그 마차 안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메시지 스펠을 시전했다. 내가 뒤쪽 마차를 보고 있자니, 곧 두 번째 마차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있은 후, 병사 두 명이 망원경과 활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왔다.
“기리인. 일단은 경계하면서 계속 가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하네. 역참이 멀지 않고, 역참에는 소수나마 경비 시설도 되어 있기 때문에 역참에 먼저 도착하는 게 좋을 것 같대.”
“옳은 판단인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띠링!’
<서브 퀘스트 – 간만의 위기>
<몇 달 만에 당신은 당신을 노리는(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긴장이 있는 환경에 다시 처하게 된 당신, 과연 그간 평화의 세월 속에 공부와 연애질로 무력이 녹이 슬지 않았을지? 당신은 이 위기를 무사히 돌파할 수 있을까요? 해야 할 겁니다.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니 말입니다.>
<목표 : (습격이 있다면) 거기에서 살아남는다.>
<연계 퀘스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봐, 시스템.
<말씀하십시오.>
좀 말투가 바뀐 것 같다?
<착각이시겠죠.>
...어쨌든, ‘자동 정보 확인’이었던가? 그, 위험을 미리 감지해 주는 기능 말야. 그건 아직 유효한건가?
<정상 작동 중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저들이 당장은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는 거 아냐?
<물론 그럴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실제로 당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해도, 저들이 지금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빠각!
뒤쪽 마차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뭐, 뭡니까?”
마부들이 말들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사이, 에하트나스 경이 뛰어내려 맨 마지막 마차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 지붕 위에서 보고 있던 나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이 때, 마차의 바퀴축이 갈라져 버렸다.
너무 깔끔하게, 말이다. 마치 누가, 마나 에지 같은 걸로 베어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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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며칠만 쉬겠습니다.
피곤한 상황에서 억지로 연재를 끌고 나가다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났나 봅니다. 선삭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투베에서 밀려나는 사태가. ㅠㅠ
며칠 쉬면서 연재에 대한 생각도 좀 더 하고, 8월 8일(화) 0시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멀리 가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ㅠㅠ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