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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307화 (307/309)

00307 10. 흐려진 별 =========================

달밤에, 대평원이 생각날 정도로 시야를 막는 것이 없는 밤. 이런 밤에 누군가가 우리를 습격해 올 리는 만무하다. 사람의 보행 속도에 맞춰 천천히 전진하는 마차 두 대, 그리고 그 마차 주변을 호위하듯 빙 둘러선, 한 무예 한다는 사람들. 그러니까, 경계만 잘 하고 있으면, 굳이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약간은 안심했고, 톨라츠 아저씨가 “이 속도면 세 시간 정도 후면 도착하겠군요”라고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우리는, 저 앞의 도로와 그 주변에, 커다란 구덩이 하나가 파진 것을 발견했다. 구덩이...라고 하기에는 좀 너무 컸다.

“땅을 파내는 마법이라도 쓴 건가?”

부지불식간에 내가 중얼거리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이 땅을 파서 만들 수 있는 크기도 아니고, 모양도 아니군요.”

“모양이 아니라구요?”

아저씨는 방패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기리인 씨는 삽과 친하지 않지요?”

“네, 뭐...”

마법을 잃기 전에는 몸도 약했거니와 마법을 쓰면 됐고, 마법을 잃고 나서는 삽질할 틈이 없었지. 지금은... 내가 삽을 잡았다가는 대번 가쉽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고.

“삽으로 땅을 팔 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판 흙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저런 큰 구덩이를 팔 때는 흙을 실어내는 것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얼핏 봐서는 저 구덩이는 그런 모양이 아니군요.”

그러고 보니...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파낸 흙이 없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 구덩이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에하트나스 경이 그 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리가 아닌, 우리가 탄 마차 안을 향해 말했다.

“마법사 에빌로 레페프.”

“...네?”

반 박자 느렸던 누나의 대답에는 약간의 당황과 황당이 들어 있었지만, 에하트나스 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혹, 라이트 마법을 허공에 띄우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어딘가에 부착점 없이 그저 빛덩어리를 띄워놓는 것은 빛 계열 마법을 5서클 이상 수련한 전문 마법사 이상이어야 합니다.”

“쯧. 알았다. 그럼. 어이!”

혀를 한 번 찬 그는 뒤로 돌더니 수행원 한 명을 불렀다. 에빌로 누나의 표정이 궁금하다. 누나가 혹 기분나빠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 중에, 에하트나스는 그 수행원에게 불 붙이지 않은 횃대 하나를 꺼냈다.

“불을 붙여 저 구덩이 안으로 던져라.”

생각보다 생각없는 지휘는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구덩이는 분명 우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생긴 위치도 그렇고 방식도 그렇고 반드시 마법의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었다. 즉, 저게 어떤 함정일지, 무엇을 감추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전진을 우선시해 저 구덩이를 우회했다가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해 못 참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활에 화살을 재었다. 간만에, 전쟁 이후, 아니, 그랜드 아카데미 지하 수련실에서 허수아비를 상대로 쏴 본 이후, 나는 정말 간만에 마나로 레일을 그렸다. 허공으로 약간 솟았다가, 저 구덩이를 향해 정확히 떨어지는 레일. 디오틀라 공방에서 (눈물을 머금고) 이제는 정식 가격을 주고 구매한 산탄 화살을 재어, 아직 시위는 당기지 않은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100걸음쯤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에하트나스 경의 지시를 받은 그 수행원이, 약간은 주저하는 걸음걸이로, 붙여든 횃불을 든 채 그 구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대략 열 걸음쯤 앞에서 멈춰선 그 수행원이 뒤를 돌아보자, 에하트나스 경은 자세나 표정에 변화 없이 말했다.

“더 앞으로 가라. 횃불을 던지고, 안을 살펴라.”

“하지만...”

에하트나스 경은 하다못해 칼자루를 쥐거나 하는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수행원을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수행원이 결국은 체념하고,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뗐다.

‘띠링!’

<경고! 구덩이 안!>

이런! 나는 얼른 산탄 화살을 잰 활 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아아. 충직한 활은 언제나 그렇듯 내 지시에 충실히 반응해 주고 있었다. 왼손을 가볍게 건드려, 붉은 보석을 길게 한 번 누른 후, 나는 언제든 릴리즈만 놓으면 활을 쏠 수 있는 자세로, 잠시 대기했다. 그러면서, 대체 뭐길래, 시스템이 정말 오랜만에 자동 정보확인으로 나에게 위험을 일러준 것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그 수행원이 횃불을 휙 던지고,

멀리서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그 순간.

“으, 으아아아악!”

그 수행원이 갑자기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발길질을 하며 황급히 물러나려 했다.

순간, 나는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르륵.

아무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간 산탄 화살은, 중간부터 불붙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나의 레일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기에 아직 터지지는 않은 채, 달밤에 붉은 선 하나를 허공에 그리며, 솟아올랐다가, 구덩이 허공의 하늘에서 아래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앙!

평상시의 폭음과는 약간 다른 음을 내며, 레일을 벗어난 산탄 화살은 바로 폭발했다. 평상시의 하얀 줄기가 아닌, 하나하나가 불타는 자그마한 못들이 수십 수백개가 아래로 쏘아졌다. 갑자기, 구덩이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고 진짜였다. 반딧불이 수백마리가 하얀색의 꼬리를 달고 땅을 향해 쏘아져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에,

뭔가 거대한 발 하나가 구덩이 밖으로 나온 것이 보였다.

“뭐, 뭐야...!”

어느 누군가가 외쳤다. 그 순간. 불타는 못들이 구덩이 속으로 쏘아졌고...

꾸어어어어어어-

이 세상 생물이 아닌 것만 같은 기묘하면서도 끔찍한, 소름이 돋게 하는 비명 소리가 구덩이 속에서 울려나왔다.

“전원! 전투 준비! 마차 앞으로 집결하라!”

나야 이제는 거의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냉철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렇다지만, 에하트나스 경은 그것도 없이 바로 저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다니, 기사 출신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두 번째로 화살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익숙하게, 화살 중에서 미늘촉 화살을 꺼내들고, 톨라츠 아저씨가 세워든 무지막지한 방패 너머로 마나의 레일을 그렸다.

“쿠워어어억!”

순간. 불타는 못들이 만들어낸 불길들이 가라앉은 그 순간, 뭔가 구덩이 밖으로 확 뛰쳐나왔다. 달빛만이 비추고 있는 이 평야에 그 시커먼 형체는, 아까 내 화살이 쏘아지기 전 구덩이 밖으로 나왔던, 한 쪽 발에만 하얀 두꺼운 털이 달려 있는 그 형체는- 마치 개구리처럼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두꺼운 털이 달려있지 않은 반대쪽 팔은... 날카롭게 갈린 발톱들이 마치 모닝 스타(morning star)처럼 수십 수백개 꽂혀 있었다. 달빛이 그 발톱 중 하나의 끝에서 빛났다. 인간이 벼려내고 날을 세운 검 끝만큼이나, 날카로웠다.

“키... 키메라(chimaera)...!”

“크르르르르르르....”

마치 땅이 진동하는 느낌. 몸의 여남은 군데에 아까 내가 쏘아낸 못으로 인해 피를 흘리고 있는 그 키메라는, 곧, 우리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순간.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륵.

나는 마나의 레일을 150보만큼 길게 뻗을 수 있다. 그리고 저 키메라는 100보 정도의 거리에 있다. 그렇기에, 마나의 레일을 벗어나지 않기에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을 그 화살은,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쿠어어어어!”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까. 그 키메라는 갑자기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내 마수목 화살이 직선으로 날아가, 아슬아슬하게 그 키메라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제기랄! 내가 얼른 두 번째 화살을 재고 있자니, 그 키메라는 열 길 넘게 솟아올랐다가,

아주 사뿐하게,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착지했다.

순간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놓았다.

전쟁으로 인해 단련된 내 속사는 충분히 빠르다. 마나의 레일을 순식간에 뻗어내는 것도 얼마든지 단련되어 있다. 전쟁중에는 열 개 넘게 레일을 만들어 쏘아본 적도 있는 나다. 그렇기에, 이 화살은 충분히 빨랐다, 라고 생각했다. 저 키메라의 몸을 사람들 몸을 터트리듯 터트리지는 못할지라도 틀어박히기는 할 거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수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한 걸음 오른쪽으로 비켜섰다. 마치, 찔러들어가는 검을 빗겨내며 옆으로 스텝을 밟던, 대련할 때의 에아임 형을 생각나게 하는, 유려한 동작이었다.

“뭣?!”

마차 앞에 도열한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냈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 키메라는, “크르르르...”하는 소리를 내더니, 우리 쪽을 향해 다시금, 달려들 채비를 했다.

그와 동시에, 내 손이 익숙하게 화살을 찾아 시위에 먹이며 다음 화살을 날릴 준비를 하는 동시에... 내 머릿속 한 군데에서는 뭔가 이상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위화감. 뭔가 내 무의식은 잡아냈지만, 아직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실. 뭘까.

“신이시여, 정의를 실천하는 신의 종들을 보호하소서!”

아저씨가 방패를 치우지 않은 채,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순간 아저씨의 몸 전체가 환하게 빛나더니, 그 빛이 우리 일행 전체를 덮었다. 속으로 순간 매우 긴장했다. 최근 있었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신이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면, 나에게는 신의 가호가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아주 잠깐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도 흰 빛이 무리없이 섞여들어왔다. 신이시여. 당신을 쩨쩨하게 생각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크와아아아아아!”

그 마수는 울부짖으며,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얼음길(ice road)!”

에빌로 누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터졌고, 그 키메라 앞의 대략 스무 걸음 정도의 직경의 지면이 하얗게 얼어붙어 버렸다. 키메라가 미끄러지면 대박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회라도 하겠지, 하고 생각한 그 순간.

키메라는 다시 한 번 허공을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위화감이 들었다. 뭘까.

세 번 그냥 당하면 바보다. 나는 약간,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마무리되기 이전에 화살은 활을 떠났다. 톡. 스르르륵.

허공 한 가운데에 떠 있던 키메라를 향한 화살은... 그러나, 마치 물 속에서 수영하듯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다급하게 몸을 뒤채는 키메라의 옆구리 쪽을 스쳐지나갔다.

자연스럽게 속사를 준비했던 화살들을 쏘아내며, 나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신했다. 빠아아. 톡. 빠아아. 톡. 빠아아. 톡. 세 발을 속사로 쏘아낸 내 화살은, 서로가 교차하는 궤적을 그리며, 키메라가 도저히 동작으로 피할 수 없는 궤도로 쏘아지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콰앙.

키메라의 몸을 지나쳐, 한참 뒤에서 콰앙 소리를 내며 허공에 하얀 꽃을 그렸다.

“뭐, 뭐야?”

그 키메라는 세 발의 화살 모두를 몸에 맞았다. 아니, 몸을 스쳐보냈다. 그러고서도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애초에 화살을 맞지 않은 것처럼.

“저게 뭐야....”

“환영(illusion) 마법이다!”

내가 외쳤다. 그 순간,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저게 환영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순간... 키메라는, 아니, 키메라의 환영은, 스르르 흔들리더니, 흩어졌다.

“에하트나스 경!”

내가 외치자 경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아까 내가 발견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던 열등감이 약간은 들어있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그 사실에 께름칙해하며, 나는 경에게 외쳤다.

“근처에 마법사가 있습니다! 환영마법을 잘 다루는 마법사입니다! 에빌로 누나와 협력하여 수색을!”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 전의 조회수를 회복할 때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시고, 선/추/코/쿠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마렝고 님 // 감사합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인페르니우스 님 // 감사합니다. 멍청한 아군은 적보다 더 위험한 존재죠.

낙화vs목련 님 // 사람을 좀먹는 감정 중 1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투도 열등감의 한 표현형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더더욱 말이죠.)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Guaaaaak 님 // 아직 반역이라고 밝혀진 게 아닌데다가, 수사기사들은 지금 사람이 모자라서요. ...어찌 보면 저런 사람이 수사기사로 들어오게 된 게 그 탓이기도 하네요.

신천홍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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