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8 10. 흐려진 별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수색은 실패했다.
애초에 성공할 수 있는 수색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어딘가에 있었다가 멀리 멀어졌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 하기야, 우리 전원에게 생생하게 보이는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사라면,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마법사이거나, 혹은 환영 마법의 전문가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라면 우리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 쯤은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어느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와 누나가 묻는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중에’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이 많은 두 사람이니, 내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만으로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 짐작하겠지.
“다시 대형을 갖춰라. 출발한다.”
우리는 구덩이를 크게 우회했다. 다행히 가을인데다 최근 비가 오지 않아 무른 땅에 마차 바퀴가 빠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에하트나스 경은 말에 타고, 말에 탄 나머지 한 명의 5급 기사를 역참 방향을 향해 보냈다. 안 그래도 저 멀리에서 역참 불빛인 것 같은 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띠링!’
<서브 퀘스트 – 간만의 위기 - 클리어>
<누군가의 장난질을 성공적으로 파악한 당신. 별 것 아니긴 했습니다만,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별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당신은 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소행인지 추측을 해 보세요. 성공적인 추측시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간만의 연계 퀘스트다. 어쨌든, 위험은 끝난 거 같고...
“이제는 위험하지 않겠죠?”
내 말에, 에하트나스 경은, 딱딱하게 대답했다.
“군인은 언제든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군인이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만, 뒷말은 삼켰다. 웬지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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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막 넘어가려 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보낸 5급 수사기사 덕분에, 역참은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빵과 물, 육포, 저녁때 먹고 남은 스튜 약간이 식당에 차려졌고, 각자의 방에 간단히 짐을 부리고 우리는 역참 1층의 식당에 삼삼오오 둘러앉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 같은 소음들만 들렸다. 하급 수사기사 전원은 입을 열 생각이 없어보이는 듯, 딱딱한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에하트나스 경 역시, 아까 폭발한 것이 신경쓰이는지 혹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은지 어떤지, 무덤덤한 태도였다. 그나마 톨라츠 아저씨나 에빌로 누나가 없었다면, 두 사람이 나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왜들 이러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뭐 잘못됐나 하고 생각했을 거다.
결국, 늦은 저녁을 빠르게 해치운 후, 나는 나에게 배정된 독방에 아저씨와 누나를 불러모았다.
“후아...”
에빌로 누나는 방문을 닫으며 별 말 없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의 다른 말 없는 긴 한숨만으로도 우리는 오늘 저녁 일을 모두 이야기한 것 같았다.
“저런 사람이 흔한가요?”
“절대 아닙니다.”
단호하게 부정하는 톨라츠 아저씨.
“수사 기사단도 기사단이긴 합니다. 그래서 상하관계나 상명하복이 엄격하긴 하지요. 하지만 저 정도로, 폭력과 무력을 통해 제압하는 선배는 절대 없습니다.”
“군대처럼 경직되면 오히려 창의성을 해친다는 게 수사 기사단 사람들의 대부분 생각이거든.”
에빌로 누나가 덧붙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까 에하트나스 경에게 대들던 것도 좀 놀랐어요.”
“그러게... 나도 깜짝 놀랐어. 수사 기사단에서 일하면서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조롱하는 건 처음 봤거든.”
“외부 유입된 인사가 텃세에 약간 힘들어하는 것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아까같은 상식 이하의 조롱은 좀... 물론, 에하트나스 경의 그 이후 대처도 참 상식 이하였지만 말입니다.”
“걱정이네요.”
“그렇죠. 가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분위기가 저래놔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걱정이라고 한 건 저 인원 속에 내통자가 있는데 그게 누군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두 사람은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백작님?”
“제발 백작님 소리는 좀. 아저씨, 누나. 아까 제가 활 쏘던 거 보셨죠.”
두 사람은 같은 박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피했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놀라운 일이었어요. 아무리 키메라라지만 말이에요. 혹시나 내가 쏘는 동작을 읽고 쏘는 건가 싶어, 몸은 최대한 가만히 있고 릴리즈를 푸는 손가락만 움직여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마치, 화살이 날아오는 궤도를 읽고 피하는 것처럼 움직이더군요.”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빌로 누나가 먼저 고개를 들고 말했다.
“환영 마법사가 화살이 날아오는 걸 보고 환영을 맞춰서 움직인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누나. 마법사들은 반사신경이 빠른가요?”
“별로. 개인차이가 있지만 빠르다고 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지.”
“누나는 제 화살이 얼마나 빠른 줄 알죠. 몇백 보 거리도 아니고, 고작 100보 거리에서, 소리도 안 나는 화살을, 그 어두운 밤에, 보고 피할 수 있을까요?”
누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럼, 내통자가 있다는 말은...”
“네. 최악의 경우 저 인원 중에 환영 마법사가 있거나, 혹은 어떤 수단으로 저기 있는 수사기사나 수행원들 중 한두 명이 환영 마법사에게 직접 연락을 한 거죠. 쏜다고. 피하라고.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읽었을 수도 있구요.”
정신 계통의 마법 전문가인 에빌로 누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말했다.
“정신을 통째로 지배하는 마법은 너무 어렵고 힘들어. 자발적인 협조라고 봐야겠지. 아마 시야 공유(vision sharing) 같은 마법이 아닐까 싶은데. 오래 쓸 수 있는 마법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에는 어렵지 않았을 거야.”
나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자인지 모르지만, 그 자가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었기에, 피할 수 없는 화살을 피한 것이겠지. 그랬기에 기묘한 동작을 취한 것일 테고 말이다.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잠시 원점으로 돌아가죠. 왜 저런 짓을 했을까요?”
“저런 짓이라니요?”
“어... 저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릅니다만, 환영이라는 게 사실은 별 써먹을 데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환영은 믿음에 기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저게 진짜라고 믿고 있는 동안에는 없는 소리도 만들어 들을 정도로 믿지만, 믿음이 깨어지면 환영도 깨어지는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의심하게 되면 환영은 급격히 약해지게 된다. 내가 아까 ‘환영 마법이다!’라고 외친 건 그걸 노린 것이고 말이다.
“그럼, 왜 저런 무익한 짓을 했을까요? 우리가 저것 때문에 잃은 거라고는 저녁 나절의 휴식 정도가 아닙니까? 안그래도 여기 저녁때 도착해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군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아저씨가 지적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잃은 게 없다. 한 사람의 수사기사가 환자가 된 것이 가장 큰 손실일 정도니까 말이다. 어차피 출발도 내일 아침이었고, 해군 기지에 도착하는 것도 내일일테고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랬다가, 퍼뜩 고개를 드니, 두 사람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해군기지에서 오늘 밤 반드시 무슨 일을 벌여야 하고, 그 때문에 우리가 만에 하나라도 그 날 밤에 거기에 도착하는 일을 막으려는 수작일 수는 있죠. 하지만 그렇다면 저렇게 환영을 이용할 게 아니고, 뭐 마차에 불덩어리 하나라도 떨어트렸을 거에요. 저건 너무 비효율적이죠.”
“그렇군요.”
“아니면 우리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끔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이번 키메라 환영을 봤으니, 우리는 해군 기지에 도착해서도 키메라 사건을 볼 때 이거 환영 아냐?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되겠죠. 혹시나 그러다가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거구요.”
“일리가 있네.”
나는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을 정리했다. 저 이유 때문에 그랬다고? 아니, 아니다. 저 안에는 ‘내통자’가 있다. 그 전제 하에 다시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내통자라면, 마차 바퀴를 잘라놓을 정도의 내통자라면... 음...
“아저씨. 누나.”
아까보다 한층 낮춰진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은 흠칫했다. 내가 손짓하자, 두 사람의 머리가 우리가 가운데에 놓고 있던 탁자 위로 모였다. 잠시 두 사람의 머리를 잡고 콩 하고 부딪히는 장난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도 기분도 아니어서 나 역시 머리를 맞대고 입을 열었다.
“에하트나스 경은 원래 소문이 좀 있었지 않았어요? 평이 별로인 거 같던데?”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부하들의 평판이 죄다 별로였죠...”
“아까 같은 위기상황에서 그가 저런 태도를 보인 적도 없지는 않았을 거구요. 혹, 추측해보자면, 황실 기사단에서 밀려난 것도 그런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부하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굴린다거나... 윗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럴싸한데요. 그래서요?”
“만약 어떻게든 이번 수사를 망치고 싶은 사람이 수사기사단 내부에 동조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번 수사기사단의 대표가 에하트나스 경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에하트나스 경과 부하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거에요. 그리고 에하트나스 경은 그 의도에 정확히 부합해 준 것 같구요. 부하들이 창의적인 사고력을 잃고 그저 에하트나스 경의 말에 묵묵히 따르게 된 것은 덤이구요.”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그럼 왜 굳이 키메라였을까?”
“그것도, 우리가 ‘키메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아마 다른 마수 같은 게 나왔으면 한 명쯤 ‘환영 아닌가?’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기리인.”
누나는 조용히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만약 에하트나스 경을 저렇게 발끈하게 만들어서 수사기사단의 기능을 저하시킬 작정이었다면, 너한테도 뭔가 했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폐하꼐서 너를 보내신 것도 그렇고, 네가 전에 보여준 추리력이나 통찰력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생각해. 그러니 만약 수사를 막고 싶었으면 오히려 너를 막았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쉬운 질문이다. 나는, 지하 감옥에서 나를 좆같이 대하던 에흐트라는 3급 기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저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3급 기사를 한 명 만나보기도 했구요.”
“에흐트 경 말씀이시군요.”
“아세요?”
“네, 뭐... 아무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네요. 내부에 조력자가 있다면 말이죠.”
“그래서 두 분을 모은 거에요. 두 분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 작품 후기 ============================
쓰기 시작하는 순간이 늦어서 늦게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전회에서 의문 가져주셨던 Guaaaaak 님의 의문이 해결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리리플은 하루만 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