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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복층 방에서 홈시어터와 이제는 쓸모없어진 핸드폰 하나를 연결했다. 부모님이
미국으로 가실 때 남겨뒀던 구형 핸드폰이었지만 해제 하는걸 까먹고는 아직까지
개통되어있던 핸드폰이었다.
" 오빠 뭐해요? "
한동안 내가 보이지 않자 편한 옷차림으로 나를 찾아온 은혜였다
" 응??? 아..혹시나 해서 뭐 좀 만들고 있었어.. "
" 신기하네. 뭐에 쓰는 건데요? "
" 아무래도 마트에서 봤던 녀석들이 우리 위치를 알아버린 듯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종의 덫이랄까.. 그런 걸 만들고 있었어.. "
" ............. "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이 생각났는지 말이 없어졌다.
" 걱정 마. 난 은혜가 생각하는 것 보다 강하니까. "
난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나를 보고는 은혜도 걱정 끼치기 싫었는지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양반다리를 하고 핸드폰과 홈시어터 선을
연결하고 있는 내 앞으로 와서 다리를 한쪽으로 포개며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편한 차림이지만 약간 폐인 상의 안으로 빨간색의
속옷이 보였다.
' 은혜야..왜 이려냐... '
" 응?? 왜 그래요? 오빠? "
내가 말이 없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며칠 전 밤에 느꼈던 충동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엄청난 인내력으로 본능을 억누르면서 마음과 다른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했다.
" 응?? 아니야..이제 다 만들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께. "
" 응?? 오빠!! "
난 대충 말을 하고는 대형홈시어터를 들고 빌라 앞쪽으로 갔다.
" 흐미... 이성이 통째로 날아갈 뻔했네.. "
난 빌라 앞쪽 화단에 핸드폰과 홈시어터를 잘 숨긴 후 집으로 돌아왔다
.
알람을 아침 일찍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설정해 놔서 우린 제법 일찍 일어났다.
이미 은혜와 미란이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했다.
둘 다 등산바지에 등장용 점퍼를 챙겨 입었고 재효도 등산바지와 점퍼를
입고나왔다. 미란이와 커플룩인 듯 색과 디자인이 비슷했다. 나도 대충 씻고
나왔더니 은혜가 쪼르르 달려와 나에게 옷을 건 냈다.
" 오빠 이거 입어요! "
" 어? 이게 뭔데? "
" 마트에서 가져온 옷들인데 오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챙겨뒀어요. "
싱글싱글 웃는 모습에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었지만 난 순순히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 에햐...... ''
난 내 옷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나 했던 느낌은 역시였고 미란이와
재효가 커플 형태인 듯 나와 은혜도 커플형태의 옷이었다.
' 등산복도 커플룩을 만든 놈.. 내 평생 저주하리라.. "
가능한 어두운 색으로 입어 움직이는 모습이 잘 안보여도 모자랄 판에
등산복은 화려한 색으로 산에서 사고 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색감들이 많다.
이런 옷을 입었다가 밤이 아니라 낮에도 감염체에게
' 야식이 여기 돌아다녀요~ '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는데...
그래도 밝은 마음으로 출발하는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어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집을 나서기 전 복층 방에서 밖을 보니 역시나 차량한대가 꽤 먼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마트나 이런저런 곳에 식량을 구할 것
이라는 생각에 며칠간 잠복한 듯 했다. 차라리 복수할거면 담 넘어 들어와 밤에
쳐들어오는 게 저렇게 차안에서 있는 것보다 감염체로부터 안전 할 텐데..
어지간히 돌 머리들이다. 이미 빌라 근처에는 꽤 많은 감염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 흠..아무래도 마트에 그 녀석들이 저 앞에서 잠복하고 있는데? "
" 응??!! 그럼 어떻게 해!? "
당황한 듯 미란이가 물었다. 난 잠시 생각하고는 어제 저녁 생각한 계획을
말했다.
" 우선 카라반과 픽업트럭은 후문으로 돌아서 주차해놓자. 저쪽에서는 보이지
않을 테니 후문에 트럭을 주차하고는 나랑 재효는 SUV를 타고 정문으로 나가자
나가면서 우리 둘 만 나왔다는 걸 보여주면 아마 미란이랑 은혜만 집에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올 테니까."
" 내심 저런 놈들이 들어온다는 게 싫다. 다시 올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좋은 곳인데... "
은혜가 많이 억울한 듯 말했다. 비록 떠나는 집이지만 저런 놈들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싫은 모양이다.
" 우선은 우리가 안전해야지. 처음 나서자마자 감염체가 아닌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이 개똥같지만.. "
난 애들을 다독이며 우선 카라반을 후문 쪽에 주차해 놨다. 빌라 단지가 꽤
큰 편이라 후문까지도 꽤 시간이 걸릴 듯 했다. 물론 그래봐야 3분 남짓이지만
긴장한터라 체감시간은 훨씬 길어보였다. 혹시 몰라 캠핑나이프를 챙긴 후
재효랑 정문으로 향했다. 아직 전기가 끊어지지 않은 듯 했지만 일부러 재효와 둘이 내려 철문을 수동으로 여닫는 모습을 보여줬다. 혹시 몰라 전기선도 다 끊어놔 버렸다. 차량 뒷문을 열어 무기를 챙기는척하고는 우리 둘만 나왔다고
광고를 한 뒤 빠르게 차를 몰고 갔다. 아무래도 저들 시야에서 사라진 후 다시
후문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일반 도로였지만 시속 140을 넘게 밟아
시야에서 멀어졌다. 저들에게는 빨리 식품을 구하러 나가는 모습으로 보여야 했기에 최대한 다급하게 행동했다. 어느 정도 시야에서 멀어진 뒤 더 빠른 속도로 후문으로 갔다.
"혀..형!! 좀 천천히!! "
평소 과속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다. 안전운전의 표본이라 불리던 내 운전습관
과는 정반대의 레이서 모습이 당황하는 재효였다.
" 1초가 급하다 참아! "
난 이미 150을 넘고 있는 속도계를 무시한 채 엑셀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평소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왕복시간을 찍으며 픽업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 부우우웅...-
대용량의 디젤엔진 특유의 소리가 울렸다. 지금쯤이면 저들이 들어왔을 거라
생각하고 저들이 있던 위치랑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카라반을 끄는 운전이었기에 무리 하지 않은 선에서 속도를 내어갔다.
어느 정도 달린 다음 빌라 위치보다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 차를 잠시 멈춘 뒤
빌라를 바라봤다. 역시나 그 승용차가 정문에 주차되어 있는 게 망원경으로
보였다. 차에서는 무려 6명이나 내렸다.
" 저런 덩치에 많이도 탔다. "
난 담배를 하나 물고 말을 했다. 트럭에서 하나둘 내려 양아치들이 우리가 살던
집 쪽으로 가는 모습을 멀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모습에 다들 인상을 썼다.
빌라 정문 쪽은 사람들이 있던 체취 때문인지 몇몇 감염체가 다가왔지만 나름
덩치가 있던 저들은 어렵지 않게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한손에 배트며 골프채
따위를 들고 빌라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빌라에서 정문까지 거리가 있는데
왜 저놈들은 걸어가는 걸까. 그리고 왜 철문은 닫지도 않을까. 자신감이 부른
과욕인가..저들 눈에는 그저 며칠 전 보았던 미란이와 은혜만 생각하는 듯 했다.
" 멍청한 놈들... 아무리 여자가 좋다지만... "
" 감염체는 뭐 하는 거야!!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
은혜가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 누가 그래 안 잡아간다고? "
" ???? "
다들 내 말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난 슬쩍 웃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부모님 전화번호를 누른 후 통화를 눌렀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바로 신호가 가지 않았다.
"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 왜!! 왜요?"
" 잠시만.."
몇 번을 더 통화버튼을 눌러 신호음을 기다렸고 1분 정도가 지나자 간신히
연결이 되었다.
-아들아~~~ 아침은 먹고 가야지~~~ 아버지~~~ 빈속이 날기 편해요~~~ -
최대한 큰 음량을 찾다가 넣어둔 벨소리가 몇 개의 홈시어터에서 나오는 음량은
엄청났다. 빌라 주변에 있던 감염체 수십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빌라 쪽으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불량배들이 순간 당황하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핸드폰을
분리하려고 애썼지만 어제 저녁 꽤 튼튼하게 묶어둔 덕에 잘 되지 않는 듯 했다.
이미 감염체들은 정문을 통과해 빌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들 나를 존경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난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 가자...이번 공포영화 엔딩은 별로야..30세 미만 관람불과 장면이니
너희는 어서 차에 타.. "
난 억지로 차에 태우고는 저들의 최후를 바라봤다. 괜히 살아남았다간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것 같아 확실하게 하는 게 좋았다. 결과는 뻔했다, 감염체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속속들이 모이는
감염체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한 두 마리는 상대하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감염체를 이기지 못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로 이동했다.
" 신이 있다면.. 언젠가 벌을 받도록 하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
난 짧아진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우리 어디로 가? "
아직 행선지를 이야기 하지 않아 궁금해 하던 미란이가 물었다.
" 우선 파주 쪽으로 가서 최대한 북쪽으로 붙어서 이동해서 의정부 쪽을 지나
강원도 쪽으로 갈까 생각중이야. 감염체도 감염되기 전에 인간이었으니
밑으로 내려갈 생각이 간절했을 거야. 지능이 완전 떨어진 상태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아마 가장 원하는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남쪽지방이었으니
그리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야. 그리고 생존자가 많은 쪽으로 움직인다고
했으니 밑으로 내려갈듯 하니 우린 반대로 위로 가는 거지. 그리고 강원도로
가는 이유는 혹시 장기전으로 생활해야 한다면 산과 바다가 있으니 식량구하기
수월할 테고... 우리 식량정도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고 가면서 휴게소나
마트가 보이면 무조건 털어야해. "
난 운전하면서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이동 후 카라반 수리를 맡겼던 업체에
들려 차량 소모품이나 간단한 정비도구를 챙겼다. 더불어 무기가 될 만한
공구들을 챙겼다. 사태가 나기 직전 잔뜩 있던 캠핑카와 카라반들은 몇 대를
남기고는 모두 가져간 듯 보였다. 내 차량은 트레일러마냥 픽업 트럭위에
카라반 앞부분을 얹어서 가는 방식인데 남은 카라반들은 차 뒤에 연결해서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즉 그림의 떡...이다.
"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는 제외하고 최대한 국도로 다니도록 하자
무슨 일이 생겨도 국도가 빠지기 편하니까 중간에 정박해서 쉴만한 곳도 꽤
있을 테니까.
어차피 속도를 내어 빠른 속도로 주행하다 갑자기 튀어나온 감염체라도
쳐버리면 차량 데미지야 뻔하다. 어차피 사람 걷는 속도야 차로 20km/h만
넘어간다면 따라 잡힐 리가 없었으니..최대한 주의를 살피며 주행하였다. 재효도 중간 중간 망원경을 이용하여 전방과 옆쪽을 주시하며 상황을 알려줬다.
" 형 스톱! "
" 응?? "
난 급하게 외치는 재효를 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뒤쪽에 4톤이 넘는 물건을
끌고 다니는 차량치고는 제동거리가 상당히 짧았다.
" 앞에... 수백의 감염체가... "
난 재빠르게 재효가 들고 있는 망원경을 뺏어서 봤다. 족히 300명은 되어 보이는
감염체들이 엉기적엉기적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는 약 500미터.
보통사람이 1분 넘는 시간이 걸려 백 미터를 걸어오니 시간상 적어도 5분 이상
걸릴 것이다. 다행이 도로는 편도 5차선이라 역주행을 한다면 쉽게 피해갈수도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우리가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감염체 무리들이 퍼져
부채꼴모양이나 생각했던 경로를 막아버린다면 집 나온 지 하루도 안 돼서
저들과 일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지금은 기다렸다가 30미터 정도 남았을 때 왼쪽도로로 빠르게 치고 가자.
그러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시간보다 우리가 치고 나가는 시간이 빠를 거야."
" 정면으로 치고 가면 무리겠지? "
" 당연하지. 우리가 차는 장갑차가 아냐. 몇 놈쯤이야 밟고 갈 테지만 밀고가다
보면 속도로 줄어들 테고 우리 뒤에 4톤이 넘는 물건을 싣고 가는데 이차가
얼마나 힘을 쓸 수 있는지 아직 몰라. "
운전한 시간이 얼마 안 되다 보니 제원 상 100토크가 넘는 차량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제원 상이었다. 4명의 인원과 5톤에 가까운 물건. 쉽진 않을 듯 했다.
5분정도 지난 시간.. 마치 5시간을 버틴 듯 힘든 표정이었다. 손에서는 땀이
흥건했고 심장이 터질듯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 안에는 공회전하는 엔진 음만
들릴 뿐이었다.
" 미란이랑..은혜는 감염체를 안 보는 게 좋을 듯 해... 공포영화 특수 분장이
아닌 놈들이야...언젠가는 볼 테지만....굳이 지금 볼 필요는 없어.. "
내말에 미란이와 은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
않았어도 그들은 저놈들을 볼 자신이 없었을 테지만..괜히 패닉을 유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 조금만...조금만 더... "
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느덧 50미터 앞까지 다가온 감염체 무리.
30미터 정도 다가왔을 때 난 엑셀에 힘을 주어 밟았다. 뒤에 카라반도 불안했고
깊게 밟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가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 부아아아아앙!! -
속도보다는 힘이 필요한 상황이라 기어를 스포츠 모드로 하여 최대한 토크를
유지한 채 질주하였다. 다행이 감염체들은 차량이 움직이고 나서야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지만 그들이 방향을 바꿔 움직일 때 우린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하아.... "
다들 긴장감이 풀렸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재효와 나는 어느 정도 거리에서
감염체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를 직접 마주친 건 처음이어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게 첫 번째이자 시작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더 자주 감염체를 마주하게 될지 몰랐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되기는 힘들듯했다.
" 자자! 이제 벗어났으니 다들 기운 차리자!! "
다들 조금 전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힘든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달려 우리는 주유소에 도착했다. 차를 항구에서 하역하고 바로 점검을 맡기고 집으로 바로 주차한 거라 기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연료통 용량은
약 36갤런(130리터)이니까 현재 대충 30리터 남았다. 가능한 소리 없이 내려
재효와 나는 주유소 근처에 감염체가 없나 확인을 하였다. 주유소와 붙어 있는
편의점도 확인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더 체크했다. 조심해서 손해볼 것은 없으니. 재효와 미란이 은혜가 편의점으로가 먹을거리가 있는지 확인하러
들어갔다. 난 주유를 하기 위해 주유기 잡았다. 다행이 작동은 되었다. 주유소 알바를 해본 적이 없고 셀프주유소랑은 틀린 방식이라 약간은 헤맸지만 그래도 무난히 기름을 주유할 수 있었다. 디젤은 주유 시 주유 속도가 높으면 거품이 많이 발생되어 최대한 천천히 주유해야 연료통에 꽉 차게 들어간다. 연료통용량이 큰 차라 주유하는 동안 가져온 말통과 캠핑용 하드워터백과
소프트백에도 가득 채워 넣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연료통 150리터와 말통 5개, 45리터 하드워터백3개와 20리터 소프트 워터 백 2개 분량을 채워 넣었다. 다행이 카라반이 연결 되어 있었지만 무난히 적재함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여유 연료만 280가까이 확보해 둔 셈이었다. 문제는 연비.. 시내주행 8.5km정도.. 대충 반 토막 4.5km 확보된 연료로 갈수 있는 거리 약 1500km...제대로 계산이나 된지 모르겠다. 편의점을 갔던 재효가 예전 알바경험을 살려 창고구석에 있던 먹을거리 몇 개를 가져왔다. 아직 많은 사람이 다녀간 건 아니었나 보다. 하긴 우린 남들과 다르게 정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이니까. 아직 정오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아침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긴장했던 탓에 배가 고파왔다. 그렇다고 아직 위험 지역을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먹을 수는 없어 차안에서 육포로 허기를 달랬다.
어느덧 한강을 지나 임진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북한에서도 분명 감염자가
발생되었을 테지만 물을 피하는 특성상 임진강을 헤엄쳐 건너 넘어 올리는 없어
보였다.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파주에 도착했다. 평소 일반 승용차였다면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테지만 60내외의 속도를 유지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다행이 대형픽업트럭이라 뒷좌석도 키가 큰 미란이와 은혜도 편안하게 탈수 있었고 승차감도 웬만한 승용차 수준이라 크게 체력에 무리는 없었다.
" 올라오면서 내려가는 차량 3대. 우리처럼 올라가는 차3대 있네.. "
옆에서 크게 할 게 없었는지 별걸 다 기억하는 재효였다.
" 대피소를 찾아 내려가는 사람들과 우리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올라
가고 있는 거겠지. 서울에 있는 감염체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으니까 내려가도 감염체보다 빠를 거고.. 벌써 2시가 넘었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는지 창문사이로 부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가로수
마다 낙엽이 물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픈 풍경이었다. 6시정도면 어두워
질 테니 그전에 묶을 곳을 찾아봐야 했다. 평소라면 가로등과 건물 사인 등으로
해가 진다해도 꽤 밝은 거리였지만 빛이라곤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있는 상
황에서는 일몰 후 매우 어두웠다. 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을 찾던 중 이정표에 자동차극장이 보였다.
" 그래! 자동차 극장! 거기라면 꽤 넓고 펜스도 있어서 괜찮겠다! "
" 아!! 거기! 나도 미란이랑 가봤는데! 거기가 괜찮겠다. 형! "
" 힝...나만 못가본건가... "
뒤에서 우리의 말을 듣던 은혜가 징징됐다. 내가 거길 안 다는 건 가봤다는
이유이고 재효도 미란이랑 가봤다고 하니 은혜는 누군지도 모르는 내 전 애인에
대한 질투를 보이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그렇게 좋슈... "
옆에서 나의 모습을 본 재효가 중얼거렸다. 운전만 아니라면 민망함에 한대치고
싶었지만... 별 대꾸 없이 난 자동차 극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가는 도중에 몇몇 감염체가 보였지만 우리를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고 숫자도 생각보다 적었다.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해봐야 2,3마리가 몰려 다니는 것 외에는 대부분이
소수의 감염체만 보였다.
" 신기하네... 분명 몰려서 다닌다고 했던 거 같던데... "
" 제대로 된 연구가 아니라서 신빙성이 좀 떨어지나봐?"
재효와 나는 뒤에서 잠들어있는 애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 무언가 다른 게 있어... 마냥 인육만 탐하는 건 아닌데... '
지금까지 수집한 내용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감염체. 다행히 우리한테는
좋은 쪽 이기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20여분을 달려 자동차 극장에
도착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