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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6화 (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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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와우... "

몇몇의 차량들이 텐트나 우리와 비슷한 캠핑카를 가지고 모여 있었다. 중간

중간에 생존자들이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마트 외에 생존자를 본 것이

오랜만이라서 다들 누군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이지만 반가운 마음이었다. 원래

입구였던 곳으로 가니 철망과 벽으로 막혀있었다. 차에서 내려 입구 쪽을

기웃기웃 거리자 몇몇 남자들이 손에 파이프와 야구배트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딱히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지금 저상황이

안녕해 보일까? 처음 뵙겠습니다.? 소개팅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뭐라 말문을

열까 한참 고민했지만 그런 나의 고민을 고맙게도 저쪽에서 날려주었다.

"  상당히 큰 카라반이네요.. "

마흔은 넘어 보이는 한 남자가 말했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차에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유심히 지켜보는 눈빛이었다. 아마도 감염 의심자를 찾는 듯

했다.

" 우선 여기 들어오실 수는 있으십니다. 몇 가지 규칙만 지켜주신다면 저희와

같이  생활하실 수 있습니다. "

" 그 규칙이 무엇인지요? "

최대한 정중이 물었다. 괜히 밉보여서 문전박대 당하면 다른 곳을  찾기도

괴로울 테니...

" 우선 식량은 나눠드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른 분들이랑 친해져서 얻어

가실 수는 있으나 저희가 가진 물품을 나눠드리진 않습니다. 그리고 남자

분들이 계시다면 시간별로 경계를 서야 합니다.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범법행위라고 불리었던 행위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

열심히 주절주절 말씀하시는 아저씨.. 일정시간이 지나자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군요. 쉽게 말하자면 서로 피해를 주지 말았으면

한다는 거군요. "

" 대충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

우리를 마중 나온 남자 뒤 쪽으로 뛰어노는 아이들 몇몇이 보였다. 나름 이

집단의 치안이 불안하다면 저 아이들은 저렇게 뛰어놀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들어갈까 말까하는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 네 알겠습니다. "

난 저쪽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했다.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지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본 생존자 집단에서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몇몇은 철망과 방벽을 옮겼고 나랑 재효도 거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내부는 꽤 넓은 공간이었다. 차량들은 전부 캠핑카나 카라반, 폴딩, 루프탑등이었다.

" 입주 조건이 캠핑 시리즈 인가 보군요. "

"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

"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사이에 나타나는 불화를 막기 위한 것..인가요?

아무 말이 없으신 중년의 아저씨. 아마도 초기 일행이 캠핑카를 보유한 듯

싶었다. 집단의 덩치가 커지면 통제도 어려울 테고 감염체들이 모일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존자라고 하지만 누구는 캠핑카 안에서 밥해먹고

자고 하는데 달랑 승용차만 가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편한 차에서 지내다

보면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 뻔했다. 승용차에 식량을 실어봐야 얼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최소한 원년 멤버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가진 자들만 받아 주는 것 같았다. 극장을 둘려 설치되어 있는 펜스는 꽤 높고  튼튼해보였다. 높은 이유야 한적한 도로 옆에 있는 자동차극장이니 도로에 주차해 얌체마냥 영화를 보는 차들을 방지하기 위함 일 테고 바람이 많이 부는지 아니면 사태직후 수리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꽤 튼튼해 보였다.

" 눈썰미가 있는 청년 같으니 허튼짓은 안하겠군. "

우리에게 설명해주신 옆에 있던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말을 했다.

말에 칼이 있는 듯 날카롭게 들렸다. 크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무리나

배타적인 인물이 있으니까. 저 사람은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 듯 했다.

원래 있던 무리와 약간은 거리를 둔 곳에 주차를 시켰다.

" 오늘은 이미 경계순서가 정해졌고 처음이고 하니 그냥 쉬게나.  한 시간 후쯤

우리일행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지. 아참. 내 이름은 김현준이라고 하네"

우리를 마중 아저씨가 말했다.

" 김 재원이라고 합니다. 이쪽 순서대로 재효. 미란, 은혜입니다. "

" 그래..그럼 잠시 후 보세.. "

아저씨가 돌아가시자 재효가  말했다.

" 경계심이 심하구나... "

" 어쩔 수 없지. 이 상황에서 어서 옵쇼 하고 받아주는 것도 이상하고 대부분

아는 사이인데 외부인을 받아 생기는 문제도 있을 테니 우리가 꺼려지겠지. "

" 세상이 이런데도 살아있는 사람끼리도 견제해야 하는 게 싫다.. "

" 은혜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했어.. 우리라고 마냥 마음

놓을 순 없지. 우리도 긴장하고 견제해야 하니까.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카라반 안으로 들어갔다.

" 우와!!!! "

실제 카라반에 들어오는 게 처음인 아이들. 카라반 구조는 픽업트럭에 얹어지는

부분에 계단 몇 개를 올라 큼지막한 더블침대가 배치되어있었고 중앙에는 TV와

컴퓨터 안마의자처럼 생긴 의자 2개와 3인용 의자 한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뒤로는 오븐과 전자렌지까지 갖춘 부엌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 그리고 화장실에는 욕조까지 딸린 카라반 안에 있기에는 꽤 넓은 화장실 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크기에 비해 구조가 단순했고 슬라이딩 구조로 확장까지 되었다.

" 원래 2분이서 쓰시던 걸 개조 한 거라 구조자체가 여유가 있었고 내가 사면서

혼자 다니려고 산거라 조금 더 손봤더니 이렇게 됐네. "

다들 어린아이 마냥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난 카라반을 땅과

수평이 되도록 고정한 뒤 슬라이딩을 작동시켜 더 넓은 내부가 완성되었다.

" 와..그래도 넓은데 더 넓어졌네.. "

여전히 신기한 듯 소파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은혜였다.

" 아마..얼핏 본 결과 여기 있는 것 중  제일 클걸.. "

" 재효 오빠 이거 봐 이거 봐!! "

" 미란언니 욕조까지 있어요!! "

내말은 듣지도 않은 채 활보하는 아이들이었다..

한 시간 후 현준아저씨가 원래 있던 일행들을 소개시켜줬다. 이름은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었지만 대충 정리하면 현준아저씨가 원래 이 극장 주인이고 그분

친구와 식구들 12명이 이곳으로 피난 왔고 남자만 8명 있는 일행도 있었다. 군대

동기 및 선후임으로 전역 후 다 같이 여행을 가기 위해 유행이었던 캠핑카를

빌려 여행 중 이곳으로 피난 왔다고 한다, 그 밖에 우리와 같은 커플 2쌍과

4인 가족 한 팀이 있었다. 30명이 안 되는 집단이었다. 성인남자만 우리까지

17명 여자가 8명 아이들이 7명이었다. 다행이 첫인상은 좋아보였으나 남자8명이

속해있는 그룹에서 역시나 은혜와 미란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보는 눈도 많으니 쉽게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카라반으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했다. 저들이 무얼 가졌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우리가 초반부터 진수성찬을 차리고 먹을 수는 없었다. 이미 카라반 자체로 저들의 경계심을 높였는데 괜히 저들 신경을 이쪽으로 쏠리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카라반이 크다는 건 그만큼 많은 양의 물품을 보유하고 다닐 수 있기에 저들이 신경 쓰는 건 당연했다. 극장한편에 마련된 화장실에서 물을 끌어와 카라반에 저장시키고는 내부 배터리 용량을 체크했다. 출발 전 충전을 해놨고 주행 중에도 소량이지만 충전이 가능했고 상판에 태양집열판까지 있는 상황이라 배터리는 만충 상태였다. 여차하여 전기가 부족하면 발전기라도 돌리면 되었다.

" 똑똑똑.. "

식사를 마친 후 잘 준비를 하는 우리카라반에 누군가 찾아왔다. 약간의 긴장감이

돌긴 했지만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다.

" 네.. 누구세요? "

청량한 목소리로 은혜가 말을 했다. 저음인 나와 재효보다는 은혜가 나을 듯 했다.

" 아..주인일세.. "

이름을 대셔도 될듯한데 굳이 주인이시라는 현준아저씨.

" 네 무슨 일이십니까? "

난 상대가 누군지 파악되자 말을 이어갔다.

" 아마 전기가 필요할 듯해서.. 아직 이 동네는 전기가 공급된다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풍력시험발전소도 있어서 전기가 여유가 있네. 너무 많은

양만 아니라면 저쪽에서 끌어와서 써도 상관없으니 쓰게나.. "

친절히도 전기사용까지 허락하신 아저씨였다. 솔직히 말 안 해줬으면 우린

최대한 아껴가며 전기를 사용했을 것이니까.

" 네! 감사합니다! "

굳이 쓰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난 연장선을 들고 아저씨가 알려준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했다. 이로써 우린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할 듯 했다.

다들 씻고 나와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3인용 소파는 침대로 변환이 가능했지만 누가 어디서 자느냐가 문제였다.

미란이와 재효는 2년 넘게 사귄 커플이랑 상관없었지만 나와 은혜는 아직 정확히

사귄다거나 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랑 재효랑 같은 곳에서 자려니

잠귀가 밝은 미란이가 버티지 못 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체력이 중요한데

굳이 잠자리까지 설쳐가며 체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나와

은혜도 같이 잤다간 둘 다 한숨도 못잘 듯 했다. 결국 미란이와 재효가 침대를

쓰고 은혜가 침대로 변한 소파에서 난 안마의자처럼 생긴 리무진의자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어차피 의자도 180도 눕혀지는 의자였기에 자는 데는 별무리가

없을 듯 했다. 은혜는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 말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빌라에서 나와 처음으로 밖에서의 잠자리. 평소 주말에 곧잘 이용하는

데이트 코스인 파주였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데도 상당한 체력이 소모돼서

그런지 다들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난 어제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잠드는 것에는 별 무리 없었지만 평생을 침대에서 자는 버릇이 있던 사람이 의자에서 잠을 청하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중간 중간 불편함에 잠을 깨서 거의 잠을 설친 수준이었다. 내가 일어나는 소리에 눈을 뜬 은혜가 미안한 듯 나를 쳐다봤다.

" 응?? 나 때문에 일어 난거야? "

" 아니..그냥 눈이 떠졌어요. 불편했죠? "

" 크게 불편한건 아닌데 갑자기 바뀐 거라 그런지 온몸이 뻐근해.. "

이 상황에서 괜찮다고 거짓말을 해봐야 내 표정은 온갖 인상을 쓰고 있었기에

눈치 빠른 은혜한테 통할리가 없었다.

" 오빠 여기 엎드려 봐요. "

은혜가 침대중앙을 치면서 말했다. 난 별다른 생각 없이 은혜가 말한 곳에

엎드렸다 생각보다 푹신한 게 다시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들듯 했다.

" 기다려봐요. "

은혜는 덮고 자던 이불을 반으로 접어 내 하체를 덮어준 뒤 내 허벅지에

올라탔다

" 야야야!!!! "

" 가만히 있어봐!! "

자신도 민망한지 하이 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곧 은혜의 손가락이 내 어깨에

닿는 것을 느꼈다.

" 오오!!! 완전 시원해!!! "

마치 전문 안마사 같이 뭉쳐있던 근육을 마사지 해주기 시작했다.

" 이래봬도 마사지 좀 배운 여자에요! "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전문안마사에게 받는 것 이상으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 벌컥!!!! 흠.....쾅..... "

잠에서 깬 미란이가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어떻게 보면 꽤 야한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갔다.

' 아...씨.... '

속으로 이 상황에 대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은혜는 미란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마사지를 이어갔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동안 마사지를 받았더니 몸이 좀 풀리는 듯 했다. 대충 세수를 한 뒤 밖으로 나가보았다. 이른 아침이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 8명 일행은 아직 군대물이 덜 빠졌는지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일행끼리 인사정도만 하고 크게 친근하거나 챙겨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힘을 합쳐 살아가도 부족한 판국에 자기들만 챙기는 모습 같아서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 일찍 일어 났구만... "

" 네. 근처 좀 돌아볼까 하고요. 먹을거리도 구해야 하고 만약을 대비해

지형도 확인해 볼 겸 해서요. "

" 흠.... "

어제의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였다. 이름이 민수..였나 최민수씨라는...

" 그래도 다른 일행보다는 계획 적인 것 같군, 여유 연료나 짐들이 꽤 많은 것

같더니 준비성이 철저한 친구구만. "

" 아닙니다. 운 좋게 감염체를 몇 번 만나지 못 했던 것 뿐 인데요. "

생각보다 서글서글한 말투와 인상이었다. 역시 첫인상은 첫인상인가?

" 오늘 경계시간은 오후에 알려줄 거야. 그리고 나가는 문은 저쪽이고 나가기 전

현수한테 말은 꼭 해줘야해. 허락의 개념이 아닌 혹시나 실수를 방지하자는

취지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

" 네 알겠습니다. "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주의사항 몇 개를 더 들은 뒤

극장안쪽을 살펴보았다. 자동차 극장답게 넓은 평지였고 한쪽 구석에는 공사를

위한 물건인지 자재들이 쌓여있었고 한쪽에는 휴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동

자전거와 전동 AVT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저씨 말로는 고장이 났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상태가 온전한 건 이미 먼저 온 일행들이 사용 중이었다. 전기자전거는 속도는 괜찮게 나오나 짐이나 물건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난 ATV쪽으로 가서 그나마 외형이 멀쩡한 한대를 끌고 왔다.

배터리충전이 안 된 것은 아닌 듯 충전을 해도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난 하나하나 분해를 시작했다.

어차피 재조립 못한다고 문제될 것도 없고 밑져야 본전이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기계과를 졸업해서 전혀 다른 직업을 택했지만 어째든 희미하게 살아있는 기억을

더듬어서 살펴봤다. 아마도 배터리에서 모터 쪽으로 보내는데 문제가 있어

보였다.

" 형 뭐해요?  "

" 이거 고칠 수 있으면 써도 된다고 해서 한번 보고 있었어. 고칠 수 만 있다면

한동안 이걸로 식료품이나 이것저것 운반할 때 편할 것 같아서. 이거 그래도

속도가 꽤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 "

예전에 몇 번 타본 경험을 말해줬다. 성인2명을 태우고 30km/h는 무난히 나왔던

걸로 기억했다. 그 정도 속도면 감염체가 다가와도 쫓아올 수 없을 테고 무엇보다 전기로 움직이니 소음이 굉장히 적었다. 한참을 배선을 뜯고 연결해도

도무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 에이씨!!!! "

난 신경질 적으로 모터부분을 발로 차버렸다. 괜히 고생한 게 억울한 마음에...

" 엥!!!! "

발로 차는 순간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횡재인가!!! 난 바로

주차장에서 시운전을 해봤다. 바로 가져나갔다가 혹시나 시동이라도 다시 꺼지면

감염체 한 끼 식사거리가 될 수 있었다. 배터리 잔량이 얼마 없었는지 시동은

금세 꺼졌다. 난 다시 전원을 연결해 배터리를 충전했고 몇 번 더 운행을 해보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식량이 남아있긴 했지만 더 구해온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 오.. 손재주가 있는 친구구만 "

" 재주는 무슨요.. 운이 좋았습니다. 발로 차니까 전원이 들어오던데요. "

멀리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민수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자네들 경계시간은 새벽 2시부터 3시라네. 밤10시부터 아침7시까지 9시간동안

두 명이 한조가 되어 그냥 저기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된다네. 혹시

감염체가 발견되면  무전기 여기를 누르면 되네. "

생활용무전기를 건 내 주고는  내가 고친 ATV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가셨다.

고칠 수 있다면 쓰라고 했으니 다시 돌려 달라 하기 도 뭐하니 말이다.

샤워를 마친 미란이와 은혜가 카라반 밖으로 나왔다. 아직 머리가 덜 마른

상태고 날씨가 싸늘해 감기 걸리기 좋은 날이었다.

" 어서 들어가 머리도 덜 말라서 잘못하면 감기 걸려.  "

" 네. 아침 먹어야죠? "

아직 덜 마른 긴 생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은혜가 말했다.  마치 신혼부부의

한 모습이란 느낌이 들었다. 단지 장소가 피난처라는 게 문제였지만.

편한 옷차림인 은혜는 쌀쌀해진 온도에 버티지 못하고 후다닥 카라반으로

들어갔다. 그런  귀여운 모습에 살짝 미소 지었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군대전역한지 얼마 안 된 일행들이라고 했던 남자들이 황급히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동안 여자라곤 아이들과 결혼한

사람만 보다가 자기 또래를 보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 차라리 다른 일행처럼 식구라면 걱정이 안 될 텐데.. 저놈들이 제일 위험한데."

" 그러게 형... 남자만 8명이나 되고 어떻게 보면 제일 지내기 힘든 팀인데.. "

난 재효와 담배를 피며 캠핑용 의자에 앉아 말했다. 어차피 거리가 멀어

들릴 리가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작은 소리도 말했다. 8명이서 렌탈한 캠핑카

1대와 일행의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루프 탑 텐트차량 1대에서 지내는 건 크게 불편하지 않을 테지만 다른 일행들은 제법 덩치가 있는 카라반과 자기소유의 캠핑카를 보유했다. 안에서 생활이 가능한 자와 그냥 잠만 잘 수 있는 자의 차이는 엄청난 것 일 테니. 혹시나 8명이 흑심을 품는다면 여기 있는 일행들은 당할 수가 없을 테다. 다른 생존자들과의 단합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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