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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1화 (2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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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참네...더럽게도 많이 오네..."

짧은 스포츠머리에 180이 약간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의 한 남자. 한손에는

핏빛이 되어버린 정글도를 들고 감염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1대 다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두려워하는 상황인데 저 남자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또 너희들이 나를 반기는 거냐...후.. "

정글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여유롭게 말을 이어가는 남자. 3달 전 모든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홀로 변종 감염체를 상대한 소대장. 재원이었다.

" 흠...여기도 아니고....그럼 도대체 어디란 말이야!!! 이 빌어먹을 중령 시캬!!!

캠프위치를 동이랑 구만 말해주면 어떻게 하냐고!!! "

일행과 헤어지기 전... 중령이 말한 주소를 찾아 지도책을 검색했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서울토박이에 지리는 빵점이었던 나는 일주일  넘게 지도책만

바라봤다. 그러던 중 내가 가진 지도책은 신주소만 기록한 지도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옛 주소를 불러준 중령의 주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가져온 차량에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쓸 만한 차량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연신 지도책만 들고

씨름했던 것이다. 어딘지 지역조차 알 수 없는 이름의 동네를 지도책을 한 장씩

정독하며 한 달 동안 생존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일반 감염체들은 수십은

가뿐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50의 숫자는 넘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편이었다.

" 이지역도 아니면...도대체 어디란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사회시간에

잘 들을걸..."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SUV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 오늘은 여기서 묵어볼까.. "

한적한 도로 중간에 주유소가 보였다. 다행히 약간의 기름도 구할 수 있었고

2층은 직원 숙소용인지 꽤 깔끔해 보였다. 혹시나 감염체가 들이닥치면 창문으로

뛰어내릴 생각에 창문 밑에 차량을 주차했다.

" 오늘도...참치 캔 인가...은혜가 해준 밥 먹고 싶다... "

비록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정성이 들어간 음식 이였기에 간절히 생각났다.

챙겨온 휴대용가스렌지에 물을 끓이고 유통기한이 지난 3분 카레와 냄비 밥과

참치 캔을 뜯어 먹어버렸다.

" 에구궁...."

대충 입속에 넣고 씹은 뒤 삼켜버렸다. 이러다 또 배탈이라도 나면 괴롭겠지만

안 먹는 것 보다 나을 듯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커피는 꼭 먹어야 겠다는 나의 의리로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부은 뒤 잔을 들고 주유소 옥상으로 갔다.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났다. 이제 2달이 지났는데 애들은 어디서 잘살고 있을 런지.... 멀쩡히 살아서 돌아가면 어떤 표정일까를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편 생존자 지역에서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다. 기숙사 건너편에 마련된

급식소에서 배식을 배급받고 오전9시부터 오후 7시 까지 각자 주어진 일을 했다.

군에 필요한 탄을 만들거나 일일이 재봉틀이나 수작업으로 군복을 수선하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그 외 필요한 일을 하며 지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

사회에서 주5일이 아닌 순차적으로 3일마다 하루씩 쉬는 형태였다. 아마도 모두

일을 쉬게 되면 타격이 꽤 컸고 그렇다고 안 쉬고 일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재효는 방벽 방어 팀으로 순찰을 담당했고 미란이와 은혜는 같은 방에 있는

서린이와 은영과 함께 일반시민과 군인들이 10일에 한번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였다. 홍 소령은 군의관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졌고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온 희욱은 집에서 요양 중 이었다..

" 에공...오늘도 힘드네.."

" 10일에 한번 이용하는 건데 워낙 사람이 많으니.. "

특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거기서 일하고

있는 미란이 일행들의 미모가 뛰어났기에 일반 남자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았다. 미란이는 서류상 재효와 부부관계이기에 다가오는 남자들은 없었으나

은혜는 워낙에 뛰어난 몸매와 미모로 인하여 항상 붐비는 레스토랑이었다.

서린이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소문이 돌아 뜸했지만 개방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은영은 항상 남자들 사이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 덕에 뒷소문도 많은

편이었다.

" 은영이 또... 저러내.."

조금 잘생긴 남자 옆에서 눈웃음을 치며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서린이가 말했다.

" 그냥  둬요 언니.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요. "

" 에휴....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살지...뭐가 좋다고 저럴까.. "

서린이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착실하게 생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펜션에서도

착실하고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은영은 약간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여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일정선 이상은 넘어가지 않아 딱히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 저기...은혜씨? "

" 네??? "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의 남자가 은혜에게 다가왔다. 보통은 싸늘하게 대하는

은혜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 혹시..예전에.... 00회사 모델 아니셨습니까? "

" 네...예전에...하긴 했었는데...아!!!! 진수오빠? "

" 아!!! 맞구나!!! 이야!!! 너도 살아있었구나!!! "

" 누구야? "

" 아!! 언니 저 예전에 모델일 했을 때 같이 일했던 오빠예요! 오빠 여긴 서린이

언니예요! "

여기 와서 처음으로 예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 묘하게 들뜬 듯 했다.

" 다행이다... 걱정했었는데... 오늘 끝나고 뭐해? "

" 음...별로 할께 없는데.. "

" 그럼 나랑 맥주한잔 할까? "

" 네! "

꽤나 안정된 생존자 캠프라 일종의 PX에서 이름과 기숙사번호만 말하면 맥주는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구해오는 양에 따라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몇 병 정도는 꽤나 활력소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진수는 짧은

인사 후 레스토랑을 나갔다.

" 우씨...오늘도 3분 스페셜이냐... "

근처 편의점과 슈퍼를 뒤지던 중 나온 물품을 집어던졌다. 이러다 질려서 못

먹을 듯했다.  아침 내내 차를 몰아 왔지만 생존자 캠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지도책을 들어 이곳저곳을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영영 못 찾는

거 아닌지 몰랐다.

" 아웅....입 거미줄 치겠네...말상대도 없고... 핑크 뭐해? "

핑크는 수색중 발견한 롯트와일러 새끼였다. 이런 상황에 강아지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잘 짖지도 않고 날 따르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생겨

데리고 다녔다. 간간히 물어오는 토끼나 닭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어서 참

기특한 녀석..아니 여성이니까.. 검은색 털에 엄청 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이름만은

핑크였다. 원래 굉장히 사나운 품종이었지만 나에게 만은 순한 양에 불과했다.

" 꾸응...."

내말에 귀찮은 듯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만 돌렸다. 가끔 보면 이 녀석 사람처럼 행동한만 말야..

" 됐어... 오늘도 3분 스페셜이니까 대충 먹자.. "

역시나 낼 말에 귀찮은 듯 고개만 돌리는 핑크였다.

생존자캠프에서는 일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맥주 몇 병으로 그날의 피로를 푸는

모습이었다. 변변한 안주도 없었지만 이 상황에 맥주는 호화였다.

" 하하!! 그래서 오빠 그때 완전 당황했잖아요! "

" 그렇지!! 그래도 너 때문에 별 탈 없이 끝냈지! "

한쪽 테이블에서는 선남선녀가 웃고 떠드는 모습에 모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자들은 남자한테 남자들은 여자에게 시선을 주는... 그러던 중 재효가 일을

마치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 어??! 재효 오빠!! "

" 응? 은혜구나..여기서...누구...신지? '

재효가 진수를 보고 약간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 아! 여기는 나 모델 할 때 같이 일했던 오빠야! 미란이 언니도 알 걸? "

" 그래..? 음..재미있게 놀아.. 난 잠깐 들른 거니까.. "

" 미란이 언니한테 가는 거야? "

" 응... 요새 단 게 땡기나 많이 먹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 아네...다음에 뵙겠습니다. "

"..................."

진수의 말에 별말 없이 쳐다보다 자리를 뜨는 재효였다. 약간은 살기어린 시선을

느낀 진수가 의아해 한 듯 말을 했다.

" 원래 저렇게 무서운 사람인가? "

" 아니..처음에는 굉장히 부드러웠는데...세상이 오빠를 저렇게 만든 거지.. "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진수는 분위기를 바꾸려 말을

돌렸다

" 됐어. 됐어. 이제는 점점 나아지자나! 힘내자고! "

" 그래요 오빠!! "

차가운 맥주병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에 멀리서 재효는 인상을 쓰고 돌아섰다.

"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네... "

해가 완전히 저물고 잘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차안에서 담요를 덮었다. 다행히

강원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직 겨울이라 상당히 추운 날씨였다. 이런 날 핑크를

껴안고 자면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 핑크!! 일루와!! "

내말에 뒷좌석에 누워있던 핑크가 날렵하게  넘어와 내 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금한 녀석이 이제는 제법 커졌고 힘도 좋아졌다.

" 너 여자가 이렇게 커지면 어쩌니... 이제부터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

이제는 꽤 무거워진 핑크를 안고 말했다. 핑크는 혀로 내 얼굴을 핥으며 애교를

피웠다.

" 징그러!! 저리가 저리!! "

" 그르르르.... "

낮게 으르렁 거리면 이 녀석도 상당히 무섭다. 난 내가 꼬리를 내리고 별 말없이

핑크를 안아준 채 잠이 들었다.

생존자 캠프에서는 침대에서 재효가 조금 전에 본 모습을 미란이에게 말해줬다.

" 흠..진수라는 녀석... 모델 쪽에서는 꽤 유명하고 상품성도 좋았지만..성품이

꽤나 안 좋아서 이 여자 저 여자 건들고 다닌 걸로 아는데..은혜는 그런 소문을

듣지는 못 했을걸? 성격 더럽기로 소문난 내 옆에 있으니 아마 다가오기도

꺼려졌을 테고 은혜가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술자리도 피해서 사적으로 마주칠

시간도 적었으니까."

" 은혜는... 형을 잊은 건가.. "

" 그럴 리가..힘들긴 했지만 이제 3달도 안됐는걸... 그런 애는 아냐.. "

" 그건 우리가 평범했던 때 이야기지...지금은 아니자나...사람이란 환경에

변하는데 은혜라고 안 그럴 수 있나.. "

" 그렇긴 하지...내가 한번 이야기 해볼까? "

" 아니..됐어...그런 거라면...거기까지인 애니까... "

재효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불을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또다시 며칠간의 방황.. 해매임.. 공격....감염체.... 등등을 헤치며 여전히

생존자 캠프를 찾아 다니 던 중  예전에는 큰 도시였는지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난 여기서 한동안 먹을 식량이나 찾고 움직이자는 생각에 시내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맴돌았다.

" 응??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

이제는 내 몸에 적응한 듯 귓가에 맴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차량 소리인

듯 했다.

" 흠....근처에 생존자가 있는 건가...운 좋으면 캠프도 찾을 수 있겠다. "

난 서둘러 시동을 켜고 약간의 예열 후 소리가 들린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느 정도 몰았을까 군용트럭 3대가 보이기 시작했고 마트 주변에서 여러 가지

물품을 뒤지는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규모가 꽤 되는 걸 보아하니 근처에

생존자들이 많이 있을 듯 싶었다. 난 차량에서 내려 핑크와 함께 걸어갔다. 크게

신경 써서 걷는 건 아니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 몸은 단련이 되어있어

소리 없이 근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 저기... "

" 헉!!!!!  탕!!!!! "

나를 보고 놀란 병사가 감염체인줄 알고 총을 쏴버렸다. 난 그전에 빠르게

총구를 잡아채  다행히 피할 수 있었지만 총구의 열기는 꽤 뜨거웠다.

" 아뜨뜨.... 보자마자 총부터 쏘는 건 뭡니까? "

내말에 넋이 나간 듯 한 표정이었다.  총소리에 놀란 병사들이 내 근처로 몰려와

총구를 들이밀었다.

" 뭐여.... 멀쩡한 사람한테 총질을 하지 않나 여럿이 다굴 칠 생각을 하지를

않나.. "

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래도 꽤 감염체를 봤을 텐데

적응력이 느린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만!!! 정신 차려!!! "

저음의 중년 목소리.. 어디선가 들은..

" 당.....신!!! "

" 헛!!! 자네는??!!! "

" 이 아저씨....당신 때문에 여기 찾는데 3달이나 걸렸잖아!!!!!  주소를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주던가!!! "

울컥한 마음에 소리쳤다.

" 굉장하군!!! 그 녀석을 상대로 살아남았단 말인가??!! "

" 죽을 생각도 없었지만!! 당신 때문에 더 많이 죽을 뻔 했수다!!! "

" 흠...내가 주소를...."

"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주던가! 비슷한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

자기가 다시 생각해봐도 조금 미안했던 모양이다.

" 그나저나 다행일세.... 여기까지 온전히 왔으니.. "

" 뭐...그땐 고마웠습니다... "

다시 제정신을 찾은 내가 그때 하지 못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중령아저씨도

흐뭇한 미소를 보인 채 나에게 말했다

" 다행일세! 우린 여기서 식량을 챙긴 뒤 출발 할 테니 따라 오게나! "

오늘은 은혜가 진수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그런 은혜의 모습을

서린이는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사람 마음 이란 게 어쩔 수 없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은혜는 오랜만에 꾸며볼 생각에 언니들에게 빌린 신발과

옷을 챙겼다. 얼마 만에 꾸미는 건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 오빠가...봤으면 참 좋았을걸..."

제대로 꾸민 모습보다 수수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재원은 꾸민 모습보다 수수한 모습을 더 좋아했으나 여자의 마음이란 건

그렇지 않았다.

" 나....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건가..? "

얼마 전 재효의 살기어린 눈빛을 기억하는 은혜였다. 아마도 이런 은혜의 모습이 죽도록 미울 수밖에 없었겠지. 며칠 전 미란이가 재효가 걱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은혜는 그런 감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은혜의 속마음은 그리운 마음을 채워주는 진수에게 마음이 가는 건지 아니면 진수라는 사람한테 재원이라는 존재를 뒤집어 씌어 대리만족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알고 있던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만났다는 것이 반가울 뿐이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서둘러 약속장소로 나가는 은혜였다.

한동안 물품을 챙긴 트럭이 출발했다. 난 그런 트럭 뒤를 따라가며 들뜬 마음이

들었다.

" 핑크!! 이제 우리도 집이 생긴다! 너도 씻고 잘 수 있어! 밥도 제대로 먹고!! "

핑크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조수석에서 연신 짧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2시간 남짓을 달려.... 어느덧 생존자 캠프에 도착한 재원이었다.

" 오!!! 완전 예쁘다!! "

" 잘 어울려요? "

약속한 광장에서 만난 진수는 은혜의 모습을 보며 연신 칭찬을 했다. 확실히 균형 잡힌 몸매인 은혜는 꾸미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진수의

모습에 어딘가 의심이 들었지만 싫지는 않은 듯 살며시 웃음을 보이는 은혜였다.

" 자!! 이거 마셔!! "

" 어!! 캔 커피네?? 어디서 구했어요? "

아마도 은혜가 이 커피를 지속적으로 구한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 아는 사람이 수색 갔다가 몇 개  구해다 줬어. 따뜻할 때 마셔! "

" 고마워요."

' 오빠가 이거 참 좋아했는데...나중에 오빠 줄까....'

속으로 재원이가 좋아했던 브랜드의 커피를 보며 느꼈다. 예전 사회에서

편의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던 흔한 커피였지만 유난히 좋아하던 재원의 모습이

떠오르는 은혜였다.

" 응?? 무슨 생각해?? "

" 아!! 아니에요..잠깐 예전생각이 나서..."

" 그래..? 어서 마셔...! "

" 네... 엄맛!! "

딴생각을 하다 걷다가 오랜만에 신은 힐이 익숙하지 않은 듯 발이 꼬인

은혜였다. 그런 은혜를 순간적으로 부축했지만 부축한 모습이 꽤 민망하였기에

얼굴이 붉게 변했다.

" 아..고마워요... 그런데 손 좀.. "

" 어??!!! 아!!! 미안!! "

진수의 손이 은혜의 오른쪽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은혜는 황급히 옷매무새를

챙긴 뒤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발목이 크게 접질린 듯 했다.

" 아!!!! "

다시 한 번 휘청거리는 모습에 진수는 다시 부축을 해주었고 혼자서는 걷기 힘든

상황이라 은혜도 별수 없었다.

" 미안해요..오랜만에 신어서 그런지 힘드네요.. "

" 아냐!! 내가 부축해줄게!!  저쪽으로 가면 의무실이 있으니 조금만 참아 "

" 네..."

한손은 진수의 손을 잡고 진수의 한손은 은혜의 오른쪽 옆구리를 감싼 어째보면

참 다정하지만  은혜는 어색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

보았을 때..... 은혜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왠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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