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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생존자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재효가 울면서 나를 반기었다.
" 혀엉...흑흑..."
" 인마!! 사내자식이 왜 울어!!! 형 멀쩡해!!! 안 죽었어!!! 그만 울어!!! "
" 형...미안해..!!! 흑.....흑....."
" 뭐가 미안해? 결과가 좋으면 된 거잖아!! 그만 울어! 징그러워!! "
" 끄윽...끄윽... "
마침 방벽에서 순찰을 돌던 재효가 나를 발견하고 빛의 속도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너무나도 그립고 뼈에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던
아이들...
미란이도 나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였다.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엄청 무서운
개를 데리고 나타난 나의 모습에 다들 놀랬지만 미란이의 반응에 내가 더
당황했다. 나는 미란이를 데리고 재효랑 같이 어르고 달래어 겨우 울음을
멈출 수가 있었다. 특별히 중령의 허가로 인해 미란이와 재효가 잠시 근무를
빠질 수 있었다. 난 그들의 안부를 묻고 내가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하다
키가 커진 내 모습에 신기해했고 탄탄해진 몸과 상처투성이인 몸을 보고
너무나도 미안해하는 모습이 보여 화제를 돌렸다.
" 은혜는 어디 있어?"
" 어....은혜....지금.....광장에 있을 텐데..... "
미란이가 심히 당황하듯 말했다. 뭐가 저리 당황스러운지...
" 그래?? 광장이 어딘데..? "
" 여기서 직선거리로 가다 보면 학교 비슷한 것을 지나서 우측으로 돌아서
10분정도 걸어가면 있어. 그전에 의무실에 홍 소령님도 계셔! 이제는
홍 선생님이지만 군의관출신이셔서 의무실에 편성됐고 지금 아마 의무실에
계실 테니 먼저 들려봐. "
재효가 광장의 위치를 알려줬고 난 오랜만에 만나는 은혜의 모습을 기대하며
오랜 시간 샤워를 했다. 내가 샤워를 하는 시간을 줄였거나... 광장에 가는
시간을 줄였다면...좋았을 상황이었다.
" 이야.... 여기도 살만하네!! "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듯 안정된 모습에 예전의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발전된 모습이었다. 화폐가 오가는 시스템은 아닌 약간 공산주의 시스템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난 핑크와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거리를
걸어갔다. 다들 핑크의 모습을 보고 나를 피하는 분위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걸어 어느새 재효가 말해준 광장에 도착하였다.
" 그르르르릉...."
순간 핑크가 낮게 으르렁됐다. 보통은 감염체를 보거나 정말 기분이
안 좋은 경우가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 핑크였는데 난 핑크를 달래기 위해 잠시
자리에 앉았다.
" 응??? 왜 그래 핑크...왜?? !!!!!!!!!!!! "
핑크가 응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내가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뚱땡이 감염체와 죽을 각오로 싸운 이유...
3달 가까운 긴긴 방황 끝에 찾은 그녀.... 그런 그녀가...내 눈앞에 있었다....
단지 젠장맞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 품에 안겨 서있는 채로...
" 하....하.....하...... "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만 나왔다. 난 왜..죽을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온 거지..
난 왜 죽을 각오로 변종 감염체와 싸운 거지.... 난 왜.... 난 왜....
수많은 의문들과 눈앞의 광경에 난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직시했다.
' 그래...내가 다들 죽었을 거라 생각했으니... 3달 가까이 지난 시간이니...
남자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외모의 은혜인데...바보같이 나랑 어울리지 않은
아이인데...나만의 착각에 빠졌었구나.... 차라리 잘됐네.. 저런 잘생긴 놈을
만났으니...이런 상황에 나보다 더 잘해줄 테지... 펜션에서도 사람들 지키느라
신경도 못썼는데... 차라리.....잘 된 거야...'
" 가자! 핑크! "
난 말없이 돌아 핑크를 데리고 왔던 길을 걸어갔다. 그 어떤 소리도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은 모습에 핑크와 함께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오...오빠!!!! "
그토록...그리워하던....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자...그런 남자가 은혜의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모든 걸 체념한... 예전에 마트에서 은혜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찌른 모습을 본 후 재원이가 은혜를 바라봤던 눈빛....
너무나 미안해서 너무나 미안해서 다시는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고
약속했지만 지금 이 순간 재원의 눈빛은 그때의 눈빛보다 더 처량해 보였다.
" 아!!!! "
은혜는 뒤늦게 왜 오빠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봤는지 알 수가 있었다. 지금의
진수와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연인마냥 껴안고 다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 놔!!! 놔!!! 오빠!!!! "
은혜가 정신 차리고 진수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하지만 재원을 불렀을 때
이미 재원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타타타타탁!!! "
모든 사물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내 속도를 간신히 따라오는
핑크의 모습이 힘겨워 보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캠프의
끝자락으로 보이는 방벽에 가로막혔다. 재원은 5미터나 되는 방벽을 한 번의
도움닫기로 올라가 버렸다. 방벽중간 도움닫기 했던 곳은 큰 망치로 맞은 듯
움푹 패인모습으로 변했다. 방벽끝자락에 걸터앉아 담배를 하나 물었다. 밑에서
따라오지 못한 핑크가 연신 짖고 있었다.
" 금방 내려갈게 앉아! "
내말에 짖는 걸 멈춘 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평소에 자주 피던 담배지만 오늘따라 매우 쓴맛이다. 짠맛도 난다..
" 쳇.....쳇..... "
억지로 나오는 눈물을 멈추고는 하늘을 봤다. 순찰을 돌던 병사들이 나를 봤지만
이미 중령과 아는 사이인걸 알았는지 별 말 없이 지나갔다.
" 재효 오빠!! 오빠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
"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 오자마자 너 찾으러 갔는데!! 너도 봤을 것 아냐!! "
은혜는 진수를 광장에 두고 의무실에서 응급처치만 받은 채 쩔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재효를 붙잡고 소리치는 모양이었다.
" 왜!!?? 진수라는 놈과 데이트 하는 거 봤냐? 형이??! "
"아니야! 데이트!!!."
"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도 네가 형을 찾아??! 양심은 있냐?!!
형은 너를 구하려고 펜션에서 혼자 남아 싸우고 그리고 살아서 3개월을 혼자서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넌 그 3개월 동안 뭐했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잘생긴 남자들이 다가오니까 금세 흔들렸냐?!! 이제
안전하니까 형 보호 없이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제 필요... "
" 짝!!!!!!!!!! "
은혜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강하게 재효의 오른쪽 뺨을 날렸다.
" 짝!!!!!!!!!!! "
맞아서 돌아간 고개가 정면을 바라보기도 전에 재효도 은혜의 뺨을 강하게
날렸다. 그 모습을 중간에서 본 미란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 감히 어디서.... 너 따위 애가....우리 형을..... "
재효의 눈이 빨갛게 변하며 말했다. 미란이는 한번 열 받으면 난폭함의 끝은 보이는 재효의 성격을 알았기에 중간에 말렸다
" 그만!! 오빠!!! 말이 심해!!! "
" 끼어들지 마. "
낮게 외치는 재효의 낮선 모습에 순간 움찔거린 미란이었지만 더 놔뒀다간 정말
큰 싸움이 될듯했다. 평소 미란이에게 잡혀 사는 재효였지만 한 번 폭발하면
미란이가 제지할 수 있는 선은 한참 넘어섰다. 그럴 때 마다 재원오빠가 진정을
시켰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없으니 미란이가 사태를 해결해야만 했다.
" 됐어!! 그만!!! 진정해 오빠도!! 은혜도!! "
미란이가 재효와 은혜사이에 서서 말했다. 재효는 한 번 더 은혜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 채 등을 돌렸다.
" 제발...말해줘....오빠....어디 있는지.... "
은혜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재효에게 애원하는 말했다.
" 몰라...알아도... 너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아... "
매몰차게 걸어가는 재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은혜는 서럽게 울었다.
" 에햐....."
여전히 방벽 끝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경 쓰는 표정도 아니었다.
" 저기....어....저희가...통금시간이 한참 지나...이제 기숙사로 들어가셔야... "
" 난 기숙사도 없는데?? "
" 아...그럼...중령님께....."
순찰을 돌던 병사들이 안전부절 못한 채 나에게 말을 했다. 어디든 보내야하는데
갈 곳이 없으니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 그만둬...우리 집에 가면되니까 너희들은 신경 쓰지 말고 근무에 집중해."
" 충성!! "
" 응! 수고 했어 가봐.. "
" 넵! "
" 홍 소령님...아니 이제 홍 선생님이라고 했나요? "
" 하하...뭐 그거나 그거나... 역시나 살아왔구나..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네? "
" 워낙에 길치라 서요... "
" 너의 그 당당함은 어디 갔니..? "
" 이젠...당당할 필요가 없어요... 목표를 잃었다고나 할까요... "
" 은혜일인가? "
" 이제는 아닐 걸요... 앞으로도..... "
" 너...의외로 시야가 많이 좁아졌구나...3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니었는데..
혼자 다녀서 그런가..예전보다 무언가 빠진 느낌이야.. "
" 시야는 항상 좁았죠. 단지 그때는 억지로라도 넓게 봐야 하니까.. "
" 지금도 억지로 라도 넓게 볼 생각이 없냐? "
" ?????? "
" 뭐 그러다 면 할 말은 없지만 낮에 은혜 왔다갔어. 발목을 접질린 듯 한데
뭐가 급한지 펑펑 울면서 대충 붕대만 감겨 보냈어. 그렇게 다니면 상당히
아플 텐데 자긴 꼭 가야할 때가 있다고 가더라... 그럼 난 간다.. 마누라가 요새
입덧이 심해서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해. 병사한명이 너 여기 있다고 해서
잠깐 들렀다. 안녕! "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홍 소령... 그런 거였나... 마치 노래의 한 소절
처럼..잠시 어지러워 기댄 것뿐인데... 내 눈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보인건가.....
" 에햐......"
난 방벽에 누워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 형 여기서 뭐해? "
" 응??? "
눈을 떠보니 내 위에서 재효가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건가..
" 잠시 생각 좀...너 뺨은 왜 그러냐? "
" 맞았어. 누구한테..."
" 누구? 미란이? "
" 아니. 은혜."
짤막짤막한 대화가 순간적으로 끊겼다.
" 가봐....201호야... 나랑 미란이가 사는 기숙사인데 아마 지금 펑펑 울고
있을 테니 가서 달래줘... 홍 선생님한테 들었을 거 아냐.. "
" 네가 말해줬구나.. "
" 처음에는 몰랐는데 홍 선생님이 연락해줬어. 무슨 일이냐고.. 그래서 퍼즐이
맞춰진 것뿐이야. 어서 가봐...밑에 개도 좀 치워 무서워 죽겠어.. "
" 훗...그래..... 고맙다..."
" 미란이에게 고맙다고 해... 미란이 아니었음 난 평생 그 아이 안 봤으니까.. "
내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바라봤다. 냉정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정이 많은 아이.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핑크를 불렀다.
" 핑크!! 가자!! "
" 시커먼 개한테 핑크가 뭐냐! 작명센스가 뭐 그래!! "
" 귀엽기만 하구만..."
난 방벽을 뛰어 내려와 여유롭게 걸어갔다. 201호를 향해..
" 끄윽....끄윽...."
" 은혜야...뚝....그만 울어.... 착하지..? "
" 끄윽....끄윽.... "
" 에햐....너 몇 시간째 울고 있는 거야.... 뭐라도 먹자? 응? "
" 흑.....흑.... "
" 아...이 판국에 3개월 고생고생해서 찾아왔으면 어디선가 보여야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기에 안 보이는 거야?!! "
" 누구 말하는 거야? "
" !!!!!!!!!!!!!!!!!!!!!!!! "
둘이 동시에 날 쳐다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붓고 한쪽 뺨까지 부은
은혜는 언제 울었냐는 듯 딸꾹질만 연신 하고 있었다.
" 딸국! "
" 여..여긴 어떻게 알았어!!?? "
" 재효가...방벽에서 잠들었는데 순찰 중 이었는지 깨워주더라.. "
" 그르르르르...."
" 핑크 그만! 앉아... "
핑크가 은혜를 보고 으르렁 되는 모습에 난 핑크를 진정시켰다. 같은 여자라고
질투 하는 건지....
" 어...미란아..미안한데 자리 좀..."
" 응?? 응...."
미란이가 서둘러 자리를 비켜줬다. 난 엎드려 있던 은혜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면서 이야기 했다.
" 더럽게 세게 때렸네. 퉁퉁 부었네.. 재효이시키..."
내가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자 은혜도 약간은 풀린 듯 보였다. 난 은혜의 상체를
일으키며 앉히고 난 침대 밑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 안녕? 아가씨...나왔어....좀 걸렸지..? 미안...."
" 오빠....."
울먹이며 나에게 안기는 은혜...얼마나 그리웠던 체온인지...얼마나 그리웠던 향기
였는지...그리움에 눈물이 나기 전 핑크가 우리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야야!! 핑크 뭐해!! 안내려가??!! "
내말이라면 죽은 척이라도 하던 녀석이 절대 말을 듣지 않았다. 덕분에 약간은
어색했던 상황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은혜는 연신 미안하다며 내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난 그런 은혜를 말없이 안아주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딸꾹질을 하며 거친 숨을 내쉬던 은혜는 점점 안정이 되는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 잘 해결됐나?
" 응... 덕분에...고맙다.... "
" 고맙긴...오빠가 우리한테 해준 게 얼만데..평생 갚아도 못 갚을.."
" 바라고 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그나저나 난 어디서 잔담.. "
아직은 방배정도 못 받았고 여기서 자기에는 원룸이라 좁았다. 옆방이
은혜 방이라고 했지만 여자 2명이 더 있으니 부담스럽기 여기보다 더했다.
" 우선 여기서 다 같이 자자. 어차피 이보다 좁은 카라반에서도 지냈잖아. "
" 솔직히 카라반이 더 큰 거 같은데? "
" 아!! 그냥 넘어가!!! 사람이 변한 게 없냐!!! "
말은 저렇게 해도 밉지 않은 아이였다. 결국은 나와 은혜가 밑에서 잠을 자기로
했고 나와 은혜사이에 핑크가 중간에 껴서 잠이 들었다.
" 끼야야야!! "
동이 틀 무렵 옆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에 잠이 확 깨어났다. 머리 쪽에 두고
잤던 정글도를 집어 튀어나듯 일어났다. 몇 초 후 재효 방이라는 걸 인식한 뒤
옆에서 바들바들 떨며 눈앞에 있는 핑크를 바라 본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은혜가
보였다. 아무리 개를 안 무서워 한다고 해도 핑크는 위협적으로 보일만큼 사나워
보이는 외모를 자랑했다. 옆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옆으로 누운채로
있다가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본 뒤에야 몸을 일으키는 핑크였다.
" 핑크 일루와.."
내말에 서서히 몸을 움직였지만 시선은 은혜에게 가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유독 은혜에게 반응하는 핑크였다.
" 하아...하아.. "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긴 일어나자마자 곰 같은
외모의 개가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은 아침에 일어나 처음 본 광경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었을 테니까..
" 괜찮아 은혜야. 보기와는 다르게 사납지는 않아.. "
" 그르르릉...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낮게 으르렁 되며 은혜를 위협하는 자세를 취한
핑크였다.
" 왜 이러지...원래 안 이러는데.. "
꼼짝도 안하는 핑크를 억지로 들어 화장실에 가둬버렸다. 몇 번 중저음을 내며
짖던 핑크는 이내 조용한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소동 아닌 소동을 격은 뒤 나와 은혜는 책임자인 중령을 찾아갔다.
은혜는 미란이에게 레스토랑은 오후에 출근하기로 부탁을 하고 나와 같이 이동했
다. 아침부터 그동안 못한 이야기와 쌓였던 그리움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쏟아지며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 그래서... 죽도록 도망쳤지... 다행히 중간 중간에 먹을거리랑 잘만한 곳이
많아서 크게 위기는 없었어.. 핑크도 있어서 근처에 감염체가 오면 반응을 해서
미리 도망갈 수 있었고. "
" 오빠...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난...이런 편한데서... "
지금까지 편한 생활로 잊혀져간 기억과 불과 3개월도 안 되서 그런 모습을 보였던 한없이 미워지는 모양이었다. 괜히 그런 감정을 유발하려고 한 게 아닌데 살짝 미안해 졌다.
" 아니야... 그런 생각하지 마.. 어째든 이렇게 아가씨 옆에 내가 다시 왔잖아..
미안한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잘 해가면 되는 거지!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봐야
다시 돌이킬 수 없잖아! "
" 오빠는...참 긍정적이에요... 정말 대단 하리 만큼.. "
"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보다야! 훨씬 좋지! 긍정적인 생각일수로 안 될 일도
되게 할 수 있는 거야! "
활기찬 나의 모습을 보고는 살며시 보여준 미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습..
3개월간 죽어라 찾아다닌 모습이었다. 은혜와의 대화를 마치고 은혜를 출근 시킨 후 나는 중령이 있는 건물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한 참을 찾다 어렵게 중령이 있다는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교회였던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식이 남아있었다. 사무실에는 홍 소령, 이제는 홍 선생님으로 불리는 남자와 잘 차려입은 중령의 계급장을 단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오오... 왔는가!! 늦었군! "
"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찍 오고 늦고 가 어디있습니까..?"
" 흠...그런가..난 어제 바로 올 줄 알았는데.. "
" 만나야할 사람들이 많아서요.. "
" 잘 왔네 재원 군! "
" 잘 지내셨죠?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안부도 못 물어봤네요. 희욱이 누난
어때요? "
" 이제 배가 제법 나와 임신부 티가 나지!! 하하!! "
" 다들 별일이 없었으니...다행이네요.. "
강양묵 중령은 11구역 책임자라고 했다. 정확한 면적을 측정할 순 없지만
여의도면적 쯤 된다고 했다. 체감 적 크기가 아니기에 감흥이 없었다. 외부
방벽을 중심으로 내부 또한 구역을 나뉘어 방벽을 설치한 형태라고 했다. 원래는
더 넓은 지역이었으나 변종 감염체의 등장으로 밀리고 밀리다 여기 까지 왔다고
한다. 구역은 총 15구역이고 중앙 1구역을 기준으로 14구역으로 쪼갠 형식이며
각자 맡은 구역에서 경계와 생활을 한다고 했다.
" 생존자는 얼마정도 됩니까? "
" 하...하...그게 말이지...솔직히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인원을 알 수가 없어. 대략
군인만 약 400여명인데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정확한 인원은 알 수가 없어..
경계를 서고 있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서 말이야.. 기숙사에서는 약
1500여명이 생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숫자야.
예전에야 전산장비가 있어서 빠르게 됐지만 지금은 일일이 호구조사 형태로
해서 취합해야 하는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는 상황이지.. '
정확한 인원을 모른다면 생황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 기숙사나
모텔, 호텔 등에 뿔뿔이 묵고 있는 인원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11구역이 이정도이지만 다른 구역은 어떨지 감도 안 잡혔다.
강 중령은 그 외 여러 가지 상황을 말해줬다. 다행이 어려운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언제까지나 방벽이 우릴 지켜 줄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식량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직 완전한 봄이 되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엄청난 인원이 있는 생존자 캠프에서의 식량소비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몇몇 구역은 식량부족으로 구역을 이탈하는 인원이 늘어갔다고 한다.
" 몇몇 구역을 제외하고는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야. 1구역에는 국회의원이었거나
군에서 장성급들이 지내고 있는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출입도 허가가 안 떨어져
소문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느라 우리에게 관심도 없다고 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상황이야."
다행이 우리 11구역은 꽤 안정된 쪽에 속했다. 나름 치안도 유지되었고 가장
남쪽에 위치한 덕분에 감염체들의 습격은 많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