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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몇 시간 정도 더 상황을 설명을 들은 뒤 강 중령은 나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 자네도 여기 있으니 어디선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홍 소령이 얼추 이야기
해서 생각한 것도 있는데... "
" 말씀해 보세요. "
" 저격병이 좋을 듯 하네. 마침 몇 정이 남는 게 있으니! 홍 소령말로는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걸세! "
어차피 여기 머무르면서 뭐라도 했어야 했으니 승낙은 했다. 일반 근무를 서는
병사보다 차라리 조금 더 편할 것 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격병은 3인 1조로 내가
아는 재효와 철기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이기로 했다. 그 둘은 내가 사격하는 동안
나를 지켜주는 임무라고 했으니 어 느정도는 내가 지켜줄 수 있을 듯 했다.
우선 오늘은 쉬기로 하고 내일부터 근무에 투입되기로 했다.
" 오빠!! 마셔!! "
" 응?? 와!!! 이거 어디서 구한거야??!! "
내가 평소 즐겨마시던 커피였다. 캠프를 찾아오는 도중에도 몇 개는 먹을 수는
있었지만 한동안 보기 힘들었다.
" 음... 오빠 줄려고 내가 하나둘 모으고 있었어!! "
" 하하!! 고마워!!! 잘 마실게!! "
오랜만에 느껴보는 커피 맛...비록 저렴한 가격에 달기만한 맛이지만 이 세상을
다가진 듯 한 느낌이었다.
" 히히.. 맛있나봐? "
" 응...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거라... 은혜도 마실래? "
" 아니... 괜찮아! "
내가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강 중령의 도움으로 그래도
약간은 넓은 방을 배정받았다. 재효와 미란이는 기숙사 형태였지만 우리는
모텔 쪽으로 배정을 받아 그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훈련이 잘된 핑크도 근무에
투입이 되다보니 많이 배려해준 듯 했다.
" 우와...좋은데... "
" 그렇게요.. 침대도 넓고... "
모텔이라 큰 침대와 작은 티 테이블과 냉장고.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있는
방이었다. 은혜는 오늘 중으로 짐을 옮겨 이쪽으로 오기로 했고 난 따로 풀 짐이
없었기에 지급받은 몇 벌의 사복과 편한 잠옷으로 보이는 옷들을 정리했다.
은혜는 다시 돌아온 내가 마냥 좋은지 옆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고 내
옷을 하나하나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 크르르르릉..."
" 오빠....저....핑크라고 했나? 제는 왜 나만 보면... "
" 글쎄...한 번도 저런 적이 없었는데...?"
은혜가 내 옆에 다가오기만 해도 낮은 소리를 내며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했다.
평소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 아닌 은혜였지만 그러기에는 핑크의 외모는 압도적
이었다. 더군다나 큰 덩치에 검은색 털로 이빨까지 드러내며 위협하는 모습은
누구나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 핑크야!! 언니야 언니...이제 같이 살아야 할 언니라고. 왜 그렇게 불만이야..? "
" 여자애야? "
" 응... 생긴 건 저리 무섭게 생겨도 여자애인데... 도대체 왜 저렇지..? "
" 내가 싫은가... ?"
" 아마도 그동안 나랑 계속 붙어 있다가 그 자리에 은혜가 있으니 자기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해서 저런 행동을 하는 듯 한데.... "
난 혹시 몰라 핑크 목에 개줄 형태로 묶어 침대 끝자락에 줄을 고정시켰다.
방을 대충 정리 후 은혜의 짐을 모텔로 옮겨 왔다. 서린이와 은영이가 많이
아쉬워 한 듯 보였지만 3명이서 지내기는 조금 좁아서 속으로는 안도할지도
몰랐다. 그래봐야 은영은 외박하는 횟수가 많았지만... 필요한 짐을 옮긴 후
시간을 보니 어느덧 일몰시간이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해가 떨어져서 어둑해질
시간이지만 해가 길어졌는지 아직까지는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의 규칙도 있었다. 크게 복잡한건 아니지만 대충 밤늦게는 전기사용 금지와 뜨거운
물은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나온다고 했다. 은혜는
잠시 레스토랑에 들러 다른 사람들의 마감 작업을 도와주러 갔다. 덕분에
혼자 남겨진 난 빈둥거리다 할일도 없고 해서 핑크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걷기
시작했다.
" 그래도..활기찬 모습인데? "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커플들은 광장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 크게 멀지 않은 레스토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난
입구에서 어제 은혜를 안고 있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남자도 나를
의식한 듯 처다 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난 핑크와 레스토랑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의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 안녕하십니까? 김 진수라고 합니다. "
" 네?? 아..전 김 재원입니다. 무슨 일이신지? "
" 혹시...은혜와는 어떤...."
"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자친구 입니다! "
난 죽은 줄만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죽은 줄 알았기에 너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한 것뿐이니 알아서 포기하라는 의미에서였다. 허나 그 녀석
입에서 나온 말은 한동안 날 어이없게 했다.
" 전!! 은혜 씨에게 관심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의 틈만 보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겁니다. "
나를 보며 능글맞게 웃으며 이야기 하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여긴 어느 정도의 법이 존재하는 구역이었다.
" 그러시던가..짝사랑한다는데 누가 말리나요... 잘해보세요.. "
난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옷을 털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보니 어의가 없었다. 얼굴 좀 잘...
아니 많이 잘생겼다고 모든 여자가 넘어올 거란 생각을 하는 녀석의 뇌구조가
궁금했다.
" 전 1구역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쪽에는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여 저의 차량도
있으며 어느 정도의 무기와 식량도 있습니다. 당신은 만약 감염체가 몰려오면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
" 아하...저요?? 전 적어도 은혜는 지킬 수 있어요. 당신은 지금 도망칠 물품만
이야기 했지만... 난 여기까지 맨몸으로 3개월에 걸쳐 살아서 이동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
나보다 한 뻠 가까이 큰 녀석을 올려다보며 이야기 했다. 괜히 올려다보니
기분만 더러워졌다. 1구역이라면..소문의 그 집단이가보다. 아예 유언비어는
아닌 듯 저 녀석은 자신의 특권을 이야기했다.
" 풋....그런가요...? 뭐 그래봐야 앞으로 안전한 생활일 테고 당신보다야 제가 더
상황이 좋으니까요. 은혜씨 같은 여자라면 생각이 깊지 않겠습니까? 알아서
잘 생각하겠죠. "
잘생긴 얼굴에 꼴에 가진 특권인 듯 암묵적으로 내세우는 녀석을 보니 짜증이
몰려왔다. 미란이에게 들은 바로는 행실이 좋지 못한 녀석이라고 했다.
" 흠..진수라고 했나? 내가 나이가 많으니 말 노마. 꼴에 가진 특권내세우지 말고
네 녀석이 가진 특권을 내세워라. 여기가 안전하다고? 밖에서 감염체들은
보기나 했냐? 감염체가 맘먹고 밀고 들어오면 여기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 식량은 어쩌고? 지금이야 버틴다고 해도 얼마나
갈 것 같아? 마치 지금의 이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네 녀석과 나 사이에 네가 말한 대로 생각 있는 은혜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
" 뭐..? 뭐라...?"
내말에 약간은 열 받은 듯 표정에서 나타났다. 난 그 모습에 더 신이 나서 약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 그래 운 좋게 너랑 어제 데이트 할 뻔 했다고 치자.. 근데 그게 연인사이의
데이트일지 아니면 너랑 알던 사이라서 그냥 밥 한 끼 먹는 거 일지 누가
알아? 너만의 착각 속에서 마치 그게 사실인 마냥 행동 하는거 아냐? 만약
너한테 관심이 있다고 하면 내가 배정받은 방에 일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이사 왔는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해? 은혜가 조금 잘해줬다고 너한테
관심 있다고 좋아하는 거야? 그럼 내 옆에 있는 핑크도 좋아하겠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녀석이 나타나서 헤프닝 생긴 것도 맘에 안 드는데 더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해서 없던 관심도 생긴다."
어느덧 우리의 언쟁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문을
통해 나온 은혜와 미란이도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와 언쟁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본 후 은혜는 어제의 행동이 미안했는지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갑자기 어제의 저 녀석과 은혜가 하던 행동이 생각나 분노가 몰려왔다. 신경
안 쓰려 노력해도 질투심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 어..어디서!! 너 따위 녀석이..!! "
" 너 따위? 넌 배운 것도 없냐? 연장자한테 녀석이라니! 얼굴도 반질반질하게
생겨서 뇌 주름까지 반질반질 해졌냐? 1구역주민이라고 했으면 어서 거기로
꺼져... 왜 굳이 11구역까지 와서 설쳐..... 왜? 거긴 여자들이 네 성에 안차냐?
여기서는 임자 있는 여자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냐? 혹시 모르지
너처럼 반질반질한 뇌를 가진 여자도 있어서 너한테 넘어갈지!! 하지만 말야..
보통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옆을 지켜줬던! 지키고 있는! 자기만 바라보는
사람을 버리고 딴사람에게 가지 않아! 그들은 너처럼 원초적인 욕구만 챙
기는게 아니라 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느낄 수도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그러니까 어서 꺼져! 괜히 기분 좋게 있던 사람 건들지 말고! "
" 쳇!!! 너 같이 말만 뻔지르르 하게 하는 녀석 따위! 후회하게 해주마! "
" 꺼져! 정말 이 병맛 같은 새끼가.."
" 뭐라고!!!! "
평소 욕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정말 짜증이 몰려와 욕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녀석이 울컥한 듯 오른손을 들어 펀치를 날렸다. 뻔히 보이는 속도...난 그
주먹을 잡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주먹을 말아 쥐고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받아쳤다. 감염체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고 싸우고 긴장 속에 살다보니 저런 온실속 화초마냥 자란 녀석의 공격이야 눈에 뻔히 보였다.
" 컥!!!! "
꽤 힘을 실어서 날린 펀치라 충격이 있었는지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난 천천히 녀석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 있잖아... 이번은 처음이라 봐 줄께...하지만 말야...다음번에는....
죽을 각오로 덤벼..... "
난 작게 귓속말로 마지막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뒤돌아 모여 있는 사람 표정을
보니 왠지 통쾌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평소 행실이 마음에 안든 녀석이었나 보다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은혜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 아가씨! 나 음료수 한잔 줘요! 여기 스테이크만 파는 거 아니죠?! "
" 응?? 아!!네!!! "
내가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자 밝게 웃으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괜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면 아마도 나보다 몇 배는 신경쓸 걸 알았기에 별일
아니라는 행동을 보여줬다. 얼마 후 은혜가 차가운 탄산음료를 가져왔다.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맛보니 꽤 맛있었다.
" 크하....따...따..목따...."
급하게 마시느라 탄산의 따가움이 목 안쪽에서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은혜는 내 등을 쓰다듬어 줬다.
레스토랑을 마감하고 하나둘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홍 소령이 구출해온
서린이와 은영이도 나오는 모습에 반갑게 인사했다. 수수하게 차려입은
서린이와 달리 약간은 노출이 있고 야한 화장을 한 은영이의 모습을 보았다.
굳이 저렇게 꾸미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은혜는 손에서 무언가 들고
쭈뼛거리며 핑크주변을 맴돌았다.
" 응?? 왜??? "
" 아.. 우리 고기 남은 게 조금 있어서..핑크 주려고... "
핑크의 적대적인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한손에는 고기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난 핑크의 목을 잡고 조심스럽게 은혜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갑자기 달려들어
물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기에.. 한동안 은혜의 눈치를 보던 핑크가
천천히 걸어 쪼그려 앉아 고기를 들고 있는 은혜 쪽으로 다가갔다. 이내 몇 번
냄새를 맡고는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여기 와서도 변변찮게
챙겨 먹은 게 없으니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 히히. 잘 먹네?? "
은혜가 용기를 내어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몇 개의
고기를 먹은 뒤 은혜가 용감하게 핑크의 목줄을 잡았지만 역시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 먹을 거 한방에 넘어가네... 줏대 없는 녀석.. "
" 그래도 귀여운데 뭘... 힘은 굉장히 세다.. 내가 끌려가네..? "
" 원래 힘이 좋은 품종이라 그럴 거야... 배가 불렀으니 힘 좀 쓰겠지. "
" 귀엽다!! "
" 처음이다. 핑크를 보고 귀엽다고 하는 사람은.."
손에 먹을 게 없어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반응을 하지 않는 모습에 아마도 자기
서열이 은혜보다 낮다는 걸 인식한 듯 했다. 다들 한동안 핑크를 보며 신기해
하는 동안 멀리서 차량 소리가 들렸다. 여기 와서 방벽 안에서 본 차는 군용차가
전부였기에 별다른 신경은 안 썼지만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차량을 보고 다들
시선이 차량 쪽으로 몰렸다. 차는 급정거를 하며 우리일행 약 10미터 앞에
정차했고 차안에서는 진수 외에 건장한 성인 2명이 내렸다.
" 사람들이 뜸해질 동안 기다렸는데...마침 이렇게 있네?? "
차에서 내리면서 능글맞게 웃는 모습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 왜 또 온 거야..? 할 말은 조금 전에 끝나지 않았나? "
" 아아!! 우리 도련님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한 녀석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렸지..
네놈인가 보지? 곱상하게 생겨가지고는...꼴에 예쁜 여자 친구 있다고 허세 좀
부렸나본데... "
" 난 너한테 물은 게 아니다 멍청아. "
" 하하!! 역시 입은 살아 있구만!!! "
차안에서 각목과 쇠파이프를 하나씩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난 놀랐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정신 못 차리고 저런 짓 하는 녀석이 아직도 있다니!!! 권력 좀 있는 녀석한테 붙어 살살거리는 저런 놈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감염체는
뭐하느라 저런 놈 안 잡아먹고 불쌍한 사람들만 잡아먹고 돼지마냥 살찐 놈이
생긴 거냐!
" 하하!! 쫄았구만!! 저 여자인가? 우리 도련님이 마음에 들었다고....헉.. "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남자가 은혜에게 다가오자 은혜 옆에 있던 핑크가 앞을
막으며 이빨을 드러내며 무섭게 으르렁 되고 있는 모습에 살짝 겁먹은
표정이었다.
" 어이...조심하라고..그 녀석 혼자서 감염체 둘 셋은 가볍게 물어 죽인 놈이야.. "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녀석이 한손에 든 각목을 다른
한손바닥에 탁탁 치며 말했다.
" 개와 마누라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제 맛이라고 했는데!! 하하하!! "
" 하하하!!! "
다들 겁을 상실했는지 비웃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저런 놈들이 나타나는구나.... 난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만 나왔다.
" 저놈이 실성했나..실실 웃고 **이야.. "
" 형님!! 어서 처리하고 움직이죠! 옆에 어여쁜 아가씨들도 있고 하니!! "
은혜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미란이와 서린이 은영이는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기에
더 기세등등해진 모습이었다. 은혜도 살짝은 겁 먹은 듯 내 팔을 꽉 잡았다.
" 왜?? 무서워?? "
" 아?? 오빠... "
오히려 여유로운 내 모습에 당황하는 은혜였다. 난 살짝 웃으며 은혜의 뺨에
가볍게 키스한 뒤 말했다.
" 잠깐만...고개 숙이고 있을래? "
" 하하!! 왜!!!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냐!! 어차피 봐야 할텐데??!! "
나를 비웃듯 약 올리는 모습에 그나마 남아있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팟! 퍽!! 쾅!!!!!!!!!!!! "
내가 단 몇 걸음에 10미터 가량 떨어진 차로 뛰어 들어 바로 조수석 문을 발로
차버렸다. 차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구겨진 상태로 밀리며 뒤집혔다. 단 2초도 안 걸린 시간동안 일어난 일에 다들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난 손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 덤벼....... "
붉게 변한 내 눈동자를 보며 각목을 들고 있던 놈 중 한 명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떨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으니까. 아무리 숫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하지만 방금 그 충격을 고스란히 맞고도 버틸수 없다는 것을
저들도 잘 알 것이다.
" 아까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갔어... 내가 말했잖아... 나 살아서 여기까지
온몸이야. 변종 감염체랑도 붙어서 살아왔는데 기껏 각목 몇 개 들고 있는
녀석들 따위 무서워 할 거라 생각했어? 너도 참 생각 없다... "
내가 거만하게 진수의 뺨을 두어 대 찰싹거리며 말했다. 이미 정신이 온데 간데
없는 듯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고 신발위로 한줄기 물이 떨어졌다.
" 더러운 놈... "
난 그런 저들을 보며 돌아섰다. 우리 일행도 엄청나게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 가자!! 가서 밥 먹자!! 나 배고파!!! "
" 오..오빠...."
" 걱정 마.. 그 오빠 맞으니까!! 가자가자!! "
난 은혜의 허리를 잡고 아이들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집에 도착 후 은혜와
미란이는 나의 모습에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난 그저 나도 모르는 변화고 아마
혼자서 살아오는 동안 단련이 되서 그런 것 같다고 랬다. 미란이의 말에
따르면 재효도 요새 부쩍 힘이 좋아졌고 체력도 늘었다고 했다. 어차피 감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등장한 판국에 나란 존재도 크게 놀라울 건 없었다. 다음날 나의 행동은 빠르게 소문이 펴졌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만 하루도 안돼서 강 중령이 나를 호출했다.
"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군.. "
" 뭐가 엄청난 일입니까?? 그냥 남자들끼리 싸운 건데요.. "
" 뭐 맞은 놈도 때린 놈도 없으니 싸움은 아니지..단지 차량한대가 파손
됐다는 거지"
" 아... 면허도 없는 놈이었나 보죠.. "
난 능글맞게 대답했다.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어떻게 된 거지? "
" 몰라요 저도. 왜 이렇게 변한건지.. "
" 너와 같은 능력. 구역 내에도 몇 명 있다. 그중에 한명이 네가 아는 재효고. "
" 알고 있어요. "
" 응??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특별히 볼 수 있던 시간도 없었을 텐데? "
" 그냥...느낌이요.. 말로 설명 못 할... "
" 흠..."
강 중령의 이야기로는 나와 같은 변화를 격은 생존자가 몇 명 있다고 했다.
체력이나 근력이 월등히 높아지거나 시력이나 후각 청력 등 인간의 오감 중
한부분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생존자 캠프는 그들의 능력을
주축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뛰어난 시각과 청각은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하고 체력과
근력이 좋아진 사람들은 보다 쉽게 감염체를 처리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능력은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 자네는...근력이 증가한 건가? "
" 아마도요.. "
차마 모든 능력이 증가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한부분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람은 있었지만 나처럼 모든 능력이 발전한 경우가 없을 듯해서 괜히
알려 줘봐야 좋을 게 없을 듯 했다.
" 알았네!! 우선 별다른 조취는 없네! 솔직히 저쪽에서 시비를 걸었지만 말일세
하지만 건들이 녀석이 골치 아픈 녀석이라.. "
1구역에서 꽤 높은 위치의 아들이어서 문제를 일으켜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
갔다는 것이다. 많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불량배 같은 행실에 다들 눈에
가시였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동안 나타나지 못 할 거라 했다. 그래봐야 그
녀석은 평범한 인간이니까...
" 그럼..이만.. "
" 그래...들어가 보게... 근무는 성실하게 서고... "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답답한 방을 나왔다. 근무까지는 꽤 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은혜도 일을 나가는 상황이라 혼자 집에서 빈둥거렸다.. 핑크와 가볍게
광장을 산책한 뒤 근무지로 가서 지급받은 총을 받고는 방벽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방멱은 두께 2m, 높이 약 5.5m라고 했다. 방벽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맨 위는 걸을 수 있게 약 1미터 정도의 폭이 있었고 방벽 바깥쪽은 바리케이드와
철조망 등 감염체의 접근을 막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봐야 변종감염체가
오면 쉽게 밀리겠지만 없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 형님. 사고 치셨다면서요? "
" 응?? 사고는 무슨 사고... 그냥 헤프닝! "
" 하하!! 뭐 그런 헤프닝이 다 있어요! "
" 그나저나 민정이랑은 잘 지내고 있지?"
" 네! 덕분에.."
이제는 형님이라 부르며 꽤 친해진 철기였다. 한 시간 반 동안 정해진 구역을
순찰한 후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이동했다.
" 응?? 오빠 왔어?? 춥지 밖에? "
숙소에 도착하니 은혜도 도착한지 얼마 안 된 듯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난 순간적인 욕구로 은혜를 강하게 껴안고 깊게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행동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익숙한 모습으로 나의 리드에 맞춰서 움직여줬다.
" 하아...."
키스 할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지 숨을 몰아쉬는 은혜였다.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고 귀여워 약간의 숨 돌릴 시간을 준 뒤 다시 키스를 했다.
" 오빠 키가 큰 거 같은데요? "
" 응! 조금 컸어. 먹은 것도 없는데 조금씩 커가더라."
몸에 변화에 따라 체형도 변한지 이제는 은혜와 10cm이상 차이가 났다.
" 뭐... 크게 변한 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
" 그럼요! 오빠가 살이 통통 쪄도 난 오빠만 볼 테니까요!! "
귀엽게 웃으며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아직은 젖은 머리를 만지며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나도 씻을 생각에 내 품에 안겨있던 은혜를 감싼 팔을
풀며 은혜를 봤다. 약간 거리가 생기자 은혜를 감싸고 있던 수건이 힘을 다한 듯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 툭..."
아무소리도 없는 공간에 수건 떨어지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다. 위에서 봐도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은혜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더
아래로 향했다. 살이 찐 은혜는 처음 카라반에서 봤을 때 보다 더욱더 풍만한
가슴을 자랑 했고 팔과 다리도 살이 찐 듯 예전의 마른 체형이 아닌 어느 정도
살이 찐 섹시한 체형으로 변하였다.
" 일부러...그랬죠?? "
이런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말을 저렇게 해도 표정은 당황하거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 어...어...아닌데....어...라... ? "
" 풋...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렇게 당황해요? "
" 아..아니...너...의외로 대담해졌다..? "
내말에 살짝 앉아서 떨어진 수건을 줍고는 다시 몸을 감았다.
" 흠...어차피 한번 봤었고...예전에 날 울린 것도 있고.... 아니면.... "
은혜의 긴 손가락이 내 상의 속으로 들어왔다. 긴 손톱으로 배부터 가슴까지
쓸고 지나갈 때 짜릿한 느낌에 닭살이 돋았다. 그런 나의 변화를 보더니 은혜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 하하하!! 이래서 오빠가 그때 나한테 그런 장난을 쳤구나!! 아!! 재밌어! 하하!!"
" 너...복수 하는 거냐... "
" 응!!! 피부에 닭살이 좌르르르!!! "
" 굉장히 위험한 장난이라고 생각 안 해봤어? 내가 변해서 덮치면 어쩌려고??! "
" 음... 뭐... 그럼..어쩔 수 없고..!! "
은혜는 말을 마치고 서둘러 화장실로 속옷을 챙겨 들어갔다. 그래도 하의 속옷은
입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이 가능했다보다. 순진한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라더니... 다시 한 번 닭살을 경험한 채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