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4화 (2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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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이제는 어느 정도 캠프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근무자들은 별도의 휴일은 없었고

근무 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근무

없이 쉬도록 배려를 해주었고  난 틈만 나면 은혜와의 데이트를 즐겼고 가끔

레스토랑에 가서 일을 도와주곤 하거나 탄약을 만드는 공장에서 탄약을 만들거나

하며 시간을 때웠다.  이런 나의 부지런한 모습에 처음에는 견제하던 사람들이

제법 친해졌고  덕분에 군것질 거리나 소소한 물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 재원 씨 이거 받게나!! "

" 네?? 오오!! 커피네요??!! 이걸 어디서!! "

" 하하!! 이번에 수색 갔다가 마침 몇 개 보여서 재원씨 생각나서 몇 개

가져 왔다네  저번에 우리 해들 보살펴 준 것도 있고 해서! "

" 감사합니다!! "

딱히 유치원이 없는 관계로 사람들이 돌아가며 애들을 봐주곤 했는데 얼마 전

내가 시간이 남아 애들을 돌봐준 적이 있어 부모들이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했다. 핑크도 아이들이 싫지는 않은 듯 잘 놀아줘서 애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 동물은 아이들의 친구 아니겠는가. 간혹 여성용품도 나눠줘 나를

당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이 판국에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뒤로 한 채 열심히 챙겼다.

"  재원님 강 중령님께서 부르십니다."

" 응?? 알았어요. "

딱히 호칭이 없는 나였다. 재효도 군제대후 다시 군에 들어간 거라 하사라는

직급을 얻었고 다들 병사직급이나 부사관 직급을 얻었지만 난 다시 입대해서

그럴 생각 없으니 그냥 용병취급을 요구했다.

" 재원군 앉게나. "

" 네... 무슨 일이신지..? "

" 흠...  상부에서 연락이 왔네. 지금  위쪽에서 많은 수의 감염체가 내려온 게

정찰조에 의해 발견되었다네. 우리랑 반대방향에 거리도 있고 하니

아직은 안전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 구역별로 인원차출을 요구한

상황이네"

" 지금도 빠듯한 상황에 무슨 차출입니까? 거절하시죠. "

" 하....그게 쉽지 않아..  어찌됐든 군이라는 특성으로 유지하는 캠프라...

괜히 밉보였다간 좋을 게 없어.."

" 우리가 1구역에서 지급받는 물품이 있습니까? "

" 딱히 그런 게 있는 건 아니네.  우리는 수색 범위 내에 마트나 물류창고가 많은

편이라 먹을거리는 넉넉한 편이지. 하지만 전투에 필요한 탄이나 무기들이

부족한 편이라서 물물교환 형식으로 교환을 하고 있지만 만약 밉보여서

다른 구역과 단절이라도 된다면 공격받으면 힘든 상황이 생길 테니.."

말이 생존캠프지 각개의 캠프를 몰아서 건설 한 것과 다른 게 뭐일까..

1구역에서는 하는 것도 없이 출입을 철저히 한 채 지시만 내리고 있고 나머지

구역에서 알아서 수색과 근무를 서고 있는데.. 아마 감염체가 내려온 구역이

1구역과 가깝다 보니 불안감을 느끼고 지시를 한 모양이었다.

" 무언가..잘못되었군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잘도

버텼네요."

" 하하..그렇지...원래 이것보다 더 넓은 캠프였는데 벌써 몇 번이나 밀리고

밀려서  그나마 시간이 좀 걸려도 가장 튼튼한 방벽을 설치한 거지.. "

" 전 거절하겠습니다. 솔직히 전 용병개념으로 들어온 거라 그쪽에 크게 관심도

없고 이런 시스템이라면 더더욱 가기 싫어지는군요. "

" 그렇군.. 우리가 가장 병력이 적은 상황이지만  방벽길이는 긴 편이라서

빠듯하지 그런 쪽으로 핑계를 만들어 거절 하는 편이 좋을 듯 하겠군. "

" 네.... 하지만 감염체가 몰려있는 구역에는 다녀와 보겠습니다. "

" 그러게나. 밖에 차량이 있으니 병사에게 말하고 한대 몰고 가게나. "

간단한 대화를 마친 후 난 밖으로 나왔다. 덩치만 급하게 커진 캠프고

예전 사회의 악한 모습이 축소되어 유지되는 캠프형태를 보고는 희망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건물 한쪽에 주차 되어 있는 군용차를 한대 빌린 뒤

5구역으로 향해갔다. 길이 좋지 않아 시간이 좀 걸렸지만 5구역이라고 해서

우리랑 크게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민보다는 군인이 많은지 거리에

군복을 입은 많은 군인들이 보였고 군부대를 그대로 가져온듯한 거리였다.

병사의 안내를 받고는  방벽위로 올라가보았다. 아직 시야에는 잡히지 않지만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감염체를 견제하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밖의 모습은 우리보다 더 견고한 바리케이드와 각종 철조망 등이 보였다. 아마도 11구역보다 위험한 곳에 위치해서 그런 듯 했다. 꽤 많은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에 크게 걱정할건 아닌 듯 했다. 난 동행했던 병사와 방벽을

내려온 뒤 차량까지 이동하면서 주위건물들을 유심히 봤다. 11구역과는 다른

모습이 당연했지만 술집 비슷한 건물도 보였다. 더 놀라운 모습은 마치 예전

유흥가를 연상케 하는 여자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5구역은 왜

이모양인거지.. 난 동행한 병사에게 물어봤다

" 저...저기 보이는 여자들과 술집이..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 "

" 아??!! 네!!  나름 캠프에서 물 좋다고 소문난 곳입니다.! "

" 아..아니...우리는 지금 감염체를 피해서 지어진 캠프에 있는거 잖아..? 화폐가

통용되는 곳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곳이 생겨날 수 있지? "

" 아... 수색나간 병사들이 가져온 귀금속이나 고가의 술이나 의류 등으로 교환을

하는 형태입니다. 나름 꽤 체계적인 교환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

" 너...그렇게 잘 아는 것 보니 가봤구나? "

" 아...아...그...그게.... "

생각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병사에게 한마디 던졌는데 정확하게 찍었나보다.

" 걱정 마. 그럴 수도 있지.. 한창일 나이에... 하지만...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도대체 어쩌다 저런 것이 생길 수 있었으며 왜 저런 걸 계속 방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리타분한건지도....

난 차량으로 이동전에 근처를 자세히 관찰했다.  감염체에게 위협받는 시기만

아니라면...  잘나가는 유흥가 거리인 듯한 모습.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다.  지금 이거리가 말이 되는 건가? 내가 너무 상황을 암울하게

보는 건가 싶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약 30명의 병사를

이끌고 가는 한 남자가 시선에 잡혔다.

" 응?!! 기태??!!! "

" 어??!!! 재원아!!!! "

" 너!! 왜 한국에 있는 거야?  호주에 있는 거 아니었어? "

" 하하!! 일이 커지기 전에 귀국했어. 귀국하자마자 일이 커져서 연락도 못했네!!

너야말로 살았구나! 역시 너라면 어디선가 살아남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데서 보다니 짜식!!! "

반가움에 서로 손을 꼭 잡고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부터 친구였으니 벌써 20년

넘는 친구였다. 내가 착실히 회사를 다닐 때 이 녀석은 온갖 사업과 별별일을

다하면서 지내었다. 몇 번을 망해서 힘들어 할 때 생활비도 챙겨주고 술도

사주고 여자 친구와 헤어져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위로의 말을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벌써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그나저나 넌 몇 구역이야? "

" 난 11구역! 넌 5구역에서 생활 하는 거야? "

" 응! 5구역 경계 담당이야. 11구역이면 캠프 중에서 가장 평온한 곳인데..

너랑 잘 맞는 곳이구나! "

" 그래?? 여기 온지 며칠 안돼서 잘 몰라.  그나저나 부모님은....? "

난 조심스럽게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명절 때도 가서 인사드릴 정도로 친해서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경우가 많은 나에게 김치나 반찬을 많이 챙겨주시던

분들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

" 다행이도 무사하셔! 너희 부모님?"

"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미국으로 출국하셨는데.. 연락은.... "

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나의 기분을 알았는지 바로 화제를 돌려

말했다.

" 무사하실 거야! 미국쪽은 우리보다 상황이 좋다고 들었어! 그리고시간되면

놀러와! 난 저기 보이는 5층 건물에 살고 있으니까! 언제 한번 맥주한잔

해야지! "

" 너...주량이 맥주 1병 아냐? 맨날 취해서 나한테 업혀가던 놈이.. "

" 하하!!! 그래도 호주가서 꽤 주량이 늘었다고!! 지금은 감염체가 온다고 해서

빨리 가봐야 하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놀러와! 아니면 내가 5구역으로 갈께! "

" 그래!! 바쁜데 수고하고 !!! 긴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

" 그래!!! 그럼 너도 수고해!! "

반가운 얼굴을 봐서 그런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와 병사는 멀어져가는

5구역을 바라보며 11구역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 그래...상황은 어떤가? "

" 아직까지는 별탈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근무를 서는 병사들도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그런 구역은 아닌 듯 합니다.."

" 흠....유흥주점을 본 모양이구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구역을 제외하고는

남자들 인원이 월등히 많아. 애초에 군부대가 모여 이루어진 캠프니까. 우리

11구역은 그나마 괜찮지만  다른 구역은 더한다고 하더군.  "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이야기 했다.  강 중령은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담배 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흡연자일줄 몰랐기에 약간은

놀랐다.

" 뭘 그리 놀라나.. 담배가 많이 없어 잘 안 피게 된 것 뿐이지.. 자네가

걱정 하는 게 뭔지 아네만... 어쩔 수가 없다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 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면 좋겠다만 세상이란 것이

그렇지만은 않지. 1구역 놈들을 봐서도 그렇고...아마 거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안을걸.. "

" 가 본적이 있으시군요... "

" 그럼...나름 11구역 책임자인데.. 몇 번 다녀온 후  여기도 오래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  마치 영원한 평화를 얻은 듯 유흥에 빠져 지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왜 그렇게 일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네. 그때 자네

여자 친구에게 관심을  보인 녀석도  같은 부류지... "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했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버틸 만큼 버텨야 했다. 완전히 겨울이 지나가야  피난을 가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은 편할 수  있었다. 남쪽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춥기는 추웠다. 한 달

정도만 더 버틴다면 어느 정도 날씨가 풀릴 듯 했다.

" 그럼 저는 이만..."

" 그래.. 몸조리 잘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하는 강 중령의 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직은 퇴근을 안 한 듯 텅

비어있는 방이었다. 이미 끝나서 와야 할 시간인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핑크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향하였다.

다행이 일이 바빠서 늦게 끝나는 상황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침일이 끝난

듯 구석 테이블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하는 모습이었다.

" 오빠!!! "

" 올 때가 지났는데 안와서 와봤어. 오늘은 사람이 많았나봐? "

" 응!! 일반 레스토랑도 아닌데 완전 힘들어!! 힝... "

" 으구....  오늘 힘들었구나?? "

" 히히!! 그래도 오빠가 마중 나오니까 좋다!! "

어린아이 달래듯 엉덩이를 툭툭 치며 말했지만 이제는 이런 스킨쉽에 별다른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듯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단지 뒤에서 지켜보던

미란이만 구토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혀를 내밀었다.

" 부러우면 너도 재효 불러.."

" 아아!! 재효는 요새 근무로 바빠! 누구처럼 한가하지 않다고!! "

" 재효 나랑 같은 조야.. 내가 쉬면 재효도 쉰다고... 근데 뭐가 바빠? "

" 응?? 오빠랑 같은 조야? "

" 응. 이번에 조금 바뀐 조가 있는데 나랑 같은 저격조인데..?  몰랐나? "

" 아하..!!! 집에서 또 퍼질러 자고 있겠 구만... "

자신이 몰랐던 내용을 남에게 들어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집에 가면 미란이의

폭풍 잔소리에 미쳐버릴지도 모를 재효를 위해 짧은 위로의 묵념을 했다.

" 나도 한잔 부탁해도 될까? "

" 그럼!! "

은혜는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한 캔 꺼내왔다. 차가운 냉기가 손바닥에 전해졌지만 시원한 청량감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었다.

"  이제 슬슬 문 닫고 가자! 오늘도 수고했어요! "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다들 일어나 겉옷을 챙긴 뒤 문을 잠그고

거리로 걸어갔다. 나처럼 마중 나온 사람도 있었고 방향이 같은 일행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기에 다들 두껍게 입은

모습이었지만 유독 은영이 많은 짧은 스커트에 두껍지 않은 자켓을 입은

모습 이었다

" 은영이는 옷이 없나? 아직은 추울 텐데? 그렇다고 스타킹을 신은 것 같지도

않은데 무슨 옷차림이 저래? "

" 은영이 언니가 좀 차려입는 걸 좋아해. 화장도 야하고... 그래서 꼬이는 남자도

많아. 나랑 같은 방에 있을 때도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어. 그래서 요새 서린이

언니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

" 어찌 보면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1인 1실이 아닌...."

" 응??? "

" 아냐.... 우리 아가씨만 안 그러면 됐지! 남의 인생사 관여해봐야 좋을 것도

없고! "

대부분이 2명 내지는 3명이 지내는 방인데 외박을 했다면 어디서 자고 왔다는

걸까라는 의문을 내뱉기에는 은혜의 상상력에 상당한 타격을 줄듯하여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제는 핑크가 은혜 옆에서 걷는 것도 익숙해 보였다. 집에서도 잘

챙겨주고 장난도 치면서 노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의 그런 경계심은 아예

사라진 듯 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핑크가 옆에 있다면 그래도 안심이 되니

다행이었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와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 날씨였다. 몸을 움츠리며 빠르게 집으로 걸어가던 중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 응???? "

" 왜요 오빠?? "

" 음...아니야! 그냥 이상한 기분이 느껴져서...바람이 차서 그런가봐."

" 흠...감기 걸려요 어서 들어가요. "

은혜의 생리주기야 이제는 말 안 해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후각이 됐다.

얼마 전에 끝난 은혜는 아니고 그렇다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난 그냥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은혜의 허리를 잡고 껴안는 듯한 모습으로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 후 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왔지만 은혜는 욕조에 물을

받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오랜만에 목욕이라도 하려고 하는 듯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한때 연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거품목욕제를 들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 얼마 전 수색 나갔다 오신분이 마트에서 거품목욕제를 가져와서 주셨어요!

한 번도 안 써봤는데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서 안 쓰고 있다가 생각나서

해보려고 하는데 설명서도 없고... "

" 아..그거 물 나오는데 밑 부분에 반으로 쪼개서 놔두면 알아서 거품이 생겨"

" 아!! 그래요??!! 신기하네?? 그런데...."

" 응???? "

" 오빠는 이거 사용법을 어떻게 아는 거예요?? "

' 아차!!! '

남자가 집에서 거품목욕을 하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다. 보통 연인이 펜션이나 스파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사용법을 안다는 건 충분히 지금 여자 친구의 폭풍 질투심과 잔소리를 동반해버리는 크나큰 실수였다.

" 솔직히... 안 써봤다는 거짓말은 안 할게. "

차라리 솔직해 지기로 했다. 8살의 나이차와 은혜는 내가 초반의 남자친구

지만 난 여러 번의 연예경험이 있는 남자였다. 괜히 이런저런 핑계로 더 난처해

지기보다 정공법으로 나갔다.

" 흠...... 너무 솔직하니까 할 말이 없네... "

" 이상한 상상 하지 마. "

" 아닌데..난 아무생각 안했는데... 오빠가 생각하는 이상한 상상은 뭘 까나? "

약간은 약 올리는 말투로 흥얼 되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 은혜였다.

" 쾅! "

"에휴......"

제법 힘찬 소리를 내면 닫히는 문을 봐선..... 조금은 화가 난 듯 하다.

생각해 보면 화를 내야하는 순서는 내가 먼저였다. 내가 없다고 2달 만에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 화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헤어진 것도 아닌 다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자신만 혼자 지내야 한다는 외로움을

견디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인원이 부부나 가족이니

그 외로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음으로 자신이 알던 사람을

만났으니 오죽 했겠는가? 물론 그런 생각으로 만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미란이와 은혜에게 들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환경에서 예전과 같은 잣대를 들이밀며 싸울 순 없었다.

그래도 나이 많은 내가 남자인 내가 져줘야 연예나 결혼생활은 행복하게 오래

유지된 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숨을 내쉬며 화장실 앞으로 갔다. 난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어봤다. 역시나 잠겨있는 문. 난 주머니 속에 칼을 꺼내어 열쇠구멍에 대고 돌려버렸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은 쉽게 열렸다.

" 어!!어떻게!! 분명 잠겼는데?!! "

" 이 정도 화장실 문도 못 열거라고 생각한 거야 ? "

내가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혜는  뜨거운 수증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게 변해있는 모습이었지만 난 크게 관심 없는 듯 변기

뚜껑을 덮고는 그 위에 앉았다.

" 왜...? 내가 연인들이 잘 사용한다는 입욕제 사용 방법을 알아서 화가나? "

" 핏...  난 잘 모르는데 오빠는 이런 것에도 능숙하잖아요. 난 이제 알아가고

느껴가는 중인데  오빠는 이미 알고 느꼈던 감정들 이라는 게 화가 나요.."

" 음...솔직히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있기에 경험 없다는 거짓말은 좀 그렇지?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예전에 겪은 게 아니야. 너랑 나랑 겪어

가는 감정이지... 은혜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고 하자. 넌 그 음식이 너무

좋고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야.  하지만 그 음식을 은혜가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단둘이 먹는다고 해보자. 그럼 그 음식이 맛있을까?  우

선 다 먹어버려서 최대한 같이 먹는 자리의 시간을 줄이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 음식을 나랑 먹는다고 해보자. 과연 전자와 동일한 속도로 먹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서로 챙겨주고.. 친구들과 먹던 같은 음식이지만

은혜가 느끼는 맛은 어떨까? "

내말에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 내가 과거에 여자 친구와 같이 무엇을 했던 그건 그때의 감정인거야. 지금은

아가씨와 같이 생활하고 지내는데 그런 감정들이 생각이나 날까?  경험과

감정은 별게인거야. 그러니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예전 애인에 대해서

질투 하지 말고 나한테 잘하라고..."

" 치.... 하여간 말은 잘해요... "

" 하하... 얼굴 못생겼으면 말이라도 잘해야지!! "

" 못생긴 얼굴 아니니까 말이라도 좀 못 해봐요! "

은혜는 나의 말을 듣고는 기분이 풀린 듯 나의 장난을 받아쳤다. 난 욕조 옆에

가서 욕조끝부분에 걸터앉아 거품을 만졌다. 은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거품을 걷어내며 장난을 걸었다.

" 하지 마요!!! 하지 마!!! "

목욕탕이라 크게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발버둥 치면 거품이 사라질까 팔만

바둥바둥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욕조는 은혜의 키에 비해 작은 편이라 몸

전체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리는 가지런히 모아 욕조 속에 숨기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풍만한 상체는 가슴의 반이 보일정도였다. 괜히 여기서 더 장난을 쳤다가는 내가 못 버틸 듯 했다.

" 하하!! 귀엽다!! "

" 뭐가 귀여워요! 빨리 나가요!!! "

"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하다 나와.."

" 흥!!! 엉큼해!!! "

" 그래도 아가씨한테만 엉큼하니까 걱정 마! "

난 뒤돌아서며 말하며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사소한 것이지만 마음에 담아

두는 것 보다 이렇게 가서 풀어주는 게 좋을 듯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 듯 했다. 얼마 후 목욕을 끝내고 나와 오랜만에 안마를

해주겠다고 했다. 펜션에서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난

신이 나서 허락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웃는걸 보아하니 기분이 많이 풀린

듯 보였다.

" 와.....시원하다....... 우오..."

" 확실히 많이 뭉쳤네요.... 자주 자주 해줬어야 했는데.. "

" 괜찮아! 이제부터 해주면 되지!! "

" 풋... 이럴 때 보면 나보다 어린아이 같아요... "

" 너만 아는 모습이니까 간직해둬. 난 밖에서는 철두철미한 사람이란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으니까. 이런 쪽에서는 이중인격이 좋구만.. "

" 이중인격은 무슨... 오빠의 원래 모습인거죠!! "

" 하하하!!! "

한동안의 대화와 장난 그리고 스킨쉽을 이어가다가 우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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