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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5화 (2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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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아침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기태를 만날 수가 있었다. 마침 나를

찾기 위해 본부대로 가던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광장 벤치에 앉아 음료수

한 개씩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그전에는 어디서 있었어? "

" 강원도 한 펜션에서.... 그나마 버틸 만 했는데 막판에 변종감염체가 몰려와서

피하지도 못하다가 구출됐어. 난 남아서 변종 감염체 상대하다가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3개월이나 걸렸고. 그러는 넌? "

"  난 서울에서 일터지자 마자 밑으로 내려왔지. 마침 여기에 피난처가

마련되어서 지내다가 밀리고 밀려서 지금 이상태가 됐어. 원래 군인도 더

많고 장비도  많았는데 꽤 많이 줄었어. 5개월쯤 된듯하네...? "

" 그래? 5구역은 어때? "

" 엉망이야. 지금이야 감염체가 온다는 소식에 그나마 긴장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없었어. 아!!! 유흥가는 제대로 돌아가더라!

봤지? 참네.. 유흥가 생기는데 3개월도 안 걸린 것 알아? 어디서 나타났는지

직업여성에 술에... 가뜩이나 모자란 식량인데 어디서 구했는지 안주까지

있더라고..."

" 가봤다는 말투다? "

" 처음에는 운영하지 말라고 경고를 주러 갔었지. 위화감도 조성시키고 지금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위에서도 별다른 말을

안 하더라? 알고 보니 단골 이더만.... 참네 더러워서!!! "

"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겠지..."

" 문제인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내는 사람보다 여유롭다는데

있어. 물품이나 식량들은 배급제가 원칙인데 예외인 지역이 발생됐으니 그

쪽으로  유입되는 여자들도 생긴다고 하더라... "

"  만약....세상이 다시 바로잡아진다면... 우린 다시 저런걸 봐야겠지..? "

" 너..이제 와서 바로 잡아질 수 있다고 생각 하냐..? 잠깐 안정됐다고

저런 꼴인데? "

" 힘들겠지... 나도 가끔은 펜션 생활이 더 좋을 때도 있어. 거기서는 솔직히

대식구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여긴 뭐랄까.. 서로 살고 싶어서 남들보다 더

좋은 생활을 위해서 발악하는 느낌이야.. "

" 동감이다.... 솔직히 11구역이 제일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 나도 11구역

근무신청 했어. 아마 여기 인원이 부족해서 크게 무리는 없을 듯 해. 기숙사는

좀 불편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 보다야...."

" 그래!! 오게 되면 한잔하자!! "

" 그럼!!! 조만간 갈 테니까 맥주나 모아둬!!! 간다!!! "

" 조심히 가고!!! "

기태는 나의 배웅을 뒤로 한 채 가져온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생각보다 캠프의

상태는 좋지 못한 듯 했다.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광장 중간 중간에

어린새싹들이 보였다. 아직은 날이 쌀쌀한데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을 보고

싶은 듯 일찍 나온 느낌이었다. 그런 새싹들을 보면서 나도 이곳 생활에 불만을

가졌지만 안도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여기가 무너지면 갈 곳도 없지만 대피할

방법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량이라고는 내가 가져온 차량이 있지만

상태도 별로였고 더군다나 이곳에 온지 한참이나 됐지만 여기가 어디였는지도

모르는 내 모습에 한심했다. 이제부터라도 대피계획이나 다른 피난처를 알아봐야

할듯했다. 본부대로 돌아온 나는 우선 위치를 파악했다. 병사들 말로는 논산 쪽에 가깝다고 했다. 광주에도 피난처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서로 통신이 안 되서 잘 모른다고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통신은 유무선 전부 불통이었다. 내비의 GPS는 간간히 작동하는 모습이었지만 연결될 때마다 위치가 어긋나서 크게 신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전기만 쓸 수 있었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근무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은 많았다.

방벽을 넘어 갈순 없었지만 우선 내가 가져온 차량부터 손을 보기 시작했다.

수리부속이나 공구들은 어느 정도 구비가 되어있었기에 별다른 무리가 없었고

문제는 식량이었는데 방벽을 나갈 수 있는 인원은 수색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번 나갔던 인원은 하루쯤 같이 생활 후 에야 각자의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수색대에 포함된다고 해도 많은 식량을 가져올 수도 없었고 그러자니

혼자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괜히 발각이라도 되면 골치 아플 듯 했다.

" 재효야. 우리 여기가 무너졌을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

" 흠...형도 그 생각했구나. 나도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해.  지금은 안전하지만

여기 조만간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야. 우리가 처음 여기 왔을 때와는 지금

확연히 틀려. 그때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 안했는데.... 요새 보면 근무서는

병사들조차  긴장이 풀렸어. 이제는 아예 대놓고 자는 놈들도 있다니까. "

일이 끝나고 은혜와 미란이와 재효랑 일종의 PX형태인 매점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미란이와 은혜도 비슷한 생각인지 각자의 의견을 말하며 대비책을

세웠다.

" 먹을 게 없네... 더 달라고 해봐야지.. "

" 응?? 원래 한 사람당 한 개씩 아냐? "

" 그렇긴 한데 은혜랑 내가 미인계라도 쓰면 넘어오지 않을까? "

요새 은혜와 미란이는 유독 군것질거리나 단 음식을 찾는 편이었다. 아마도

배급으로 나오는 음식이 양도 부족했고 맛도 떨어졌으니 그럴 법도 했다.

" 하하...그래 가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

" 음...그럼 다녀올게! 은혜야 가자!! "

" 응. 언니! "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재효가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 무슨...딸아이 보듯 그런 얼굴을 해..노인네 마냥... "

" 아..그런가?? 이러면 어떠하며 저러면 어떠하니..."

" 시조를 써라 시조를... "

" 하하!! "

" 어?? 재원오빠? "

" 응??? 아.. 은영이구나..?!! "

" 네!! 여기서 뭐하세요? "

" 응. 잠깐 이야기 중이었지. 넌 어디가? "

여전히 옷차림이 날씨와는 거리가 멀었다.  춥지도 않은가....

"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서요. 혹시 담배 있어요? "

" 응??? 아...여기... "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담배를 빌리는 모습에 약간은 당황했다.  여자가 담배를

핀다고 싫어하거나 안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기분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 자...여기... 불도 빌려줘? "

" 아니에요!! 감사해요!! 아웅..추워.."

" 이 날씨에 그런 옷 입고 안 춥다고......!! "

춥다고 하면서 살며시 내 팔짱을 끼는 모습에 나보다 재효가 더 당황했다. 내가

은혜랑 만나는 사이라는 걸 잘 알 텐데 라는 표정을 지어보인 재효를 보다가

내가 반응이 없자 더 강하게 팔짱을 끼는 은영이었다. 그냥 팔짱을 끼는 형태가

아닌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켜 유혹하듯 끼는 모습에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슴도 큰 편도 아니면서 저런 행동은 무슨 자신감인지 정말 대단했다. 난

은영의 행동을 뿌리치며 말했다.

" 놔... 추우면 옷을 제대로 입고 다녀... 그런 차림으로 춥다고 하면 어쩌냐? "

" 흠...오빠는 여자의 마음을 몰라요!! "

" 알고 싶지도 않아... 약속 있다면서 안 늦엇어? "

" 흠...이제 슬슬 가야죠. 재미있게 놀아요! 안녕오빠! 재효도 안녕! "

높은 힐을 신고 잘도 걷는 은영이었다.

" 대단한데... 뻔히 알 텐데? "

" 그렇게 말야... 무슨 속셈인걸까? "

" 아마도..이번 목표는 형인 듯 한데... 엄청 여우같아서 남자 홀리는 데는

천부적이라고들 하던데... 근데 목표가 너무 높은데? 아무리 그래도 은영이도     미인 형 이지만 은혜에 비하면 티코와 에쿠스 차이의 배기량인데..."

" 비교가 적절하구만... "

" 내가 말해놓고도 민망한데 잘도 받아친다? "

" 사실이니까... 하하하!! "

" 언제부터 저렇게 능글맞게 변한거지...후... "

" 오빠!!오빠!!! 은영이 왜 왔다 간거야!!! 그리고!!! 팔짱은 왜 낀 거야!!! "

" 응?? 담배 빌리러 왔어... 그나저나 대담하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야.."

" 으..... 여우같은 계집애!! 감히 우리 오빠에게까지 꼬리를 치다니!!! "

은혜가 주먹까지 쥐어가며 말했다. 아마도 팔짱 낀 모습도 본 모양인 듯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 자연스럽게 팔짱 끼더라? "

" 걱정 마. 에스프레소 컵 따위 별다른 감흥 없어. "

" ........!!!!!!! "

내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몇 초간 소요된 듯 했다.

" 와....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 하하....형 정말 많이 변했다? "

" 응?? 왜??? "

시큰둥한 내 반응에 재효와 미란이는 변한 내 모습에 약간 당황한 듯 했고

내말을 들은 은혜는 안심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표정이었다. 난 그런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저런 여우같은 계집애 다가와 봐야  옆에는 호랑이 계집애가 있어서 괜찮아! "

" 내가 왜 호랑이야??? "

" 가끔 보면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느낌이 들어서.. "

" 오빠!!!!!! "

" 하하하!!! 그래도 몇 개 얻어왔네? 먹자먹자!! "

나와 은혜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인계로 얻어온 과자를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웃고 떠들며 오랜만에 우리들끼리 여유롭게 즐기는 이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러 만난 건데 어쩌다보니

수다만 계속되었다. 다른 놀이감이 없었던 캠프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소 중에 하나가 수다였다. 나도 간만에 서로서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즐거웠다.

" 흠.... 집에 가서 먹을거리나 마실 거리 좀 더 가져와야하나..? "

" 집에 아직도 남은 게 있어?  "

" 요새 미란이가 주전부리를 많이 먹어서 챙겨둔 게 조금 있기는 해."

어느덧 주전부리의 부족함을 느낀 재효가 숙소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재효 입에서 나와야할 이름이 아닌 은혜의 이름이 나와 살짝 당황했다.

" 은혜야 나랑 다녀오자. 너랑은 할 말도 있고...."

아마도 얼마 전 싸운 일 때문에 그런 듯 했다. 이야기 중에도 미란이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아마 미란이가 은근 압박을 가한모양이었다.

" 그래.. 다녀와..."

" 네...오빠 다녀올게요.. "

은혜의 표정은 약간은 겁을 먹은듯한 표정이었다. 재효가 화나면 무섭긴 하지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나를 원망 아닌 원망을 하는

모양이다.

" 흠...그래도 풀긴 풀어야 했나봐? "

" 뭘 풀어? 이미 다 풀었는데?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둘이 자리를 비켜준 거야."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입에 털어 넣으며 이야기 하는 미란이었다. 이미 다 먹은

과자를 손을 털며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은 나를 패닉에 빠뜨렸다.

" 손만 잡고 잤다며? 그때 처음 집에서도 정말 그냥 잠만 잔거라며?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보통 남자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인내력과 자제력과 참을성인데?"

" 너...너... 조금 민감한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

" 어린애들도 아니고 알건 알잖아? 오빠의 그런 모습이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 흠... 재효가 왜 눈치를 봤는지 알 것 같군.. "

" 응! 이런 고민을 가진 아이가 마련한 자리니까. 은혜는 이미 재효 오빠랑 화해

했어. 오빠 성격상 뒤 끝은 없잖아.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줄을 모를걸? "

" 응??? "

난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 은혜는 자기가 매력이 없어서 오빠가 그런다고 생각하는 듯 해. 은혜가 아무리

순진해도 알건 아는 나이인데 오빠는 매번 장난만 쳤다며?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장난만 치는 오빠에 대한 의문도 들었을

테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

평소에도 남녀사이에 민감한 문제도 표정변화 없이 주고받던 사이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주체가 나라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고 은혜가 그렇게 까지 생각하는지

몰랐기에 난 담배를 하나 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 담배피는 남자 무척이나 싫어하는 은혜인데 오빠가 계속 피는걸 보아하니

별말 없었나봐? "

" 응. 싫어하는 건 알아서 가능한 피해서 폈지. 별 말은 없던데? "

" 하.... 의외로 속에 담아두는 말 못하는 타입 이야..  여자란... 자신을 지켜

주는 남자를 믿고 따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켜만! 주는 남자에게 의심을

가지고 점점 호감이 떨어질 수도 있단 말야! 남자나 여자나 같은 사람인데...

그리고 내가 아는 오빠 성격상 분명 나이차이 많이 나서 아빠처럼 행동했을 듯

하고 은혜 말을 들어보면 그런 내 생각이 어느 정도 맞는 듯 해. "

" 하하... 무섭구나 너란 아이.. "

" 지켜주고 싶고 아끼고 싶은 마음을 알아. 하지만 은혜는 수집용 양주가 아냐.

언제까지 셀러에 두고 아끼고 있을 거야? 가끔은 남자가 박력 있게 들이밀

줄도 알아야지! 예전에는 은혜 좀 어떻게 해 볼라고 하는 남자가 줄을 섰는데

정작  만남 남자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다니... 아이러니 한데? "

" 하하... 칭찬이냐? 솔직히 너무 빨리 발전해 버리면 그만큼 빨리 식어버리니까

가능한 천천히 발전하려 했지. 순간을 즐기고 끝인 사이도 아니고..."

" 몇 개월 동안 같은 침대에서 지낸 사이가 할 말은 아닌 듯 합니다만?  오빠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너무 맞춰주는 경향이 있어. 상대방의 심리를

너무 잘 알다 보니 그 사람이 원하는 것 원하는 모습을 미리 눈치 채고

행동하는 모습은 좋지만 그런 모습이 지속되면 여자는 오히려 매력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말야. "

" 어렵구만.... 여자란.... "

" 아니! 어렵게 생각하는 건 오빠야! 상대방이 주먹을 낸다고 했으면 오빠는 아무

생각 없이 보자기를 내면되는데 오빠는 수십 번을 꼬아서 생각해. 물론 변수를

예상하려는 건 알겠지만 가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고맙다.. 이러말 해줘서.. "

" 그만큼 은혜가 오빠를 생각한다는 거야. 솔직히... 상황이 나아져서 서로 다른

사람 만날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사회였으면 오빠 결혼을 생각해야할

나이잖아. 너무...지금의 상황에 연연하지 말고 가끔은 편하게 생각해.. "

" 응.... 새겨들으마... "

" 제발 좀.... "

살짝 웃으며 말하는 미란이의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은혜를 딸처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연인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지켜줘야만 한다는 인식이 너무 커진 듯

아빠마음에서 행동한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음료수를 입안에 털어 버리고 얼마간 침묵이 이어졌을 때 숙소에서 먹을거리를 한가득 들고 온 재효 모습이 보였다.

" 도대체...얼마나 챙겨 둔거야? "

" 요새 미란이가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어서 조금 많아... "

" 어쩐지 요새 살이 찐 듯한 모습이더니만... 엄청 먹었구만! "

" 뭐 어때. 내가 살찐다고 재효 오빠가 딴 여자한테 갈 것도 아니고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살찐다고 나보다 괜찮은 여자 없던데.. "

"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

" 됐어! 스트레스 주지 마! 더 먹을지도 모르니까! 가뜩이나 맞는 브라도 없어서

입지도 못하는데!! "

" 풋웁!!!!!"

그 말에 입안에 가득 들었던 음료수를 내뿜었다. 저 말은..설마....

나와 은혜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미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은혜 너도 맞는 거 없어서 입을 수 있는 것이 몇 개 안 되는거 뻔히 아는데 뭘

그렇게 봐? 세탁하면 하루 종일 마르지도 않아서 가끔 못 입는거 아는데?

그렇게 가리면 지금 안 입었어요 라고 광고하는 거다 너.."

" 언...언니!!!"

"수색대가 가져오는 건 죄다 A컵..끄엑.. "

미란이의 목소리가 커지자 황급히 입을 막는 은혜였다. 자신도 못 입었다는 상황

이 창피한 듯 얼굴이 붉게 변했지만 우선 미란이 입부터 막고 봐야했다.

재효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저런 미란이 성격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재효였으니까. 약간은 민망해진 분위기를 뒤로 한 뒤 우리는 몇 시간의 수다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내 왼쪽에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은혜는 한동안의 스트레스가 풀린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 옆에서는 이제는 목줄도 필요 없어진 핑크가 장난을 치듯 걸으며 은혜 옆을 지켰다. 미란이의 말을 들은 직후라 기분이 묘했다. 언제나처럼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었지만 속옷의 유무로 인한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다. 왼쪽 팔에 힘을 주어 일부러 걸을 때 마다 가슴에 팔꿈치가 닿게 하자 내 행동을 눈치 챈 은혜가 내 등을 강하게 쳤다.

" 으따!!가워!!! "

" 그만...장난쳐요...이제는 안 봐줘요... "

" 알았어. 알았어... 손은 정말 맵네...흐미.. "

" 흥!!! "

계속된 장난이 이제는 싫은 듯 예전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같은 표정이지만

미란이의 조언 후 달라져 보일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말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무리가 묵고 있는 모텔이 보였다. 예전 사회였으면 밤늦은 시간도 아닌

지금에 서로 팔짱을 끼고 태연하게 들어 갈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짓자 은혜가 궁금한 듯 물었다.

" 무슨 생각을 하길 래 그렇게 혼자 미소 지어요? "

" 응?? 아아... 우리 지금 모텔에 들어가고 있잖아? 아무리 숙소지만..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냥 멀쩡한 상황에서 만났다면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 란 생각 좀 했어. "

" 흠... 그렇게요... 하지만 오빠라면! 대낮에도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

" 하하!!! 날 뭘 로 보고!! 이래 뵈도!! "

" 됐어요. "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 내말을 끊어버렸다. 쌓인 게 많은 듯 한가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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