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6화 (2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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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언제나 그렇듯 방에 들어가 은혜가 먼저 씻을 준비를 했다. 나야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 양보한 건데 오늘은 내가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 내가 먼저 들어갈게 괜찮지? "

" 네?? 아....그래요. "

내가 은혜 행동에 제재를 한다거나 반대한 적이 거의 없기에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난 그런 은혜를 뒤로 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평소보다 오랜 시간

샤워를 했다. 내가 나온 뒤 바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하는 은혜였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잘못생각 하는 게 너무 많은 듯 했다.

그리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너무 모두만 생각했다. 정작 내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은혜의 모습이 어느 순간 당연하게 느껴져 익숙해져가는 모습을

회상하니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내 주제에 내 능력에 왜 다들 지키겠다고

주제넘은 짓을 했는지. 정작 지키고 아껴줘야 할 존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왜

멀리만 보았던 걸까. 한참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은혜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 나를 바라봤다.

" 응???"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내가 한참을 가만히 있는 모습에 은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여전히 덜 마른

머리카락에 보통 모텔에 있는 목욕가운을 착용한 모습을 한참을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듯 몸을 돌려 화장대로 가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난 말없이 은혜 뒤로 가서 의자에 앉아 드라이기를 뺏어 머리를 말려주었다.

이런 나의 행동에 약간은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 와...이거 굉장히 기분 좋구나... 누군가 내 머리를 대신 만져 준다는 건... "

미용실에서 당연히 해주는 행동과 남자친구가 해주는 행동은 확연한 차이가 있어

다. 긴 머리카락으로 말리는데 한참은 걸렸지만 묵묵히 말없이 말려주었다.

" 오늘따라 말이 없네요? 오빠 느낌도 좀 이상...흡!! "

고개를 돌려 말을 하던 은혜에게 손에 잡았던 드라이기를 놔버리고 강하게

키스를 했다. 은혜를 일으켜 세워 한참을 서서 키스를 하다 이제는 제법

무거워진 은혜를 안고서 침대로 갔다.

" 오...오빠...? "

말없이 하는 행동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난 여전히 말없이 은혜의 뺨에

손을 올린 채 살며시 미소 지었다. 나의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는지

은혜도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애무에 은혜는 처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점점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이었다. 난 한손으로 은혜가 입고 있던

가운허리끈을 당겨 풀어버린 후 보이지는 않지만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곳을

잡아버렸다.

" !!!!!!!!!!!!!"

여전히 키스중이라 말은 못했지만 행동에서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두 손으로

잡아도 모자라는 크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하아.... "

이제는 숨이 버거운 듯 키스중간에 입을 떼어 숨을 쉬는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약간의 시간을 주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숨을 쉴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키스를  이어갔다.  이제는 완전히 나를 받아들인 듯 행동하는 모습에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눈을 떴다.

" 살살....아파요.. "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다 보니 꽤 고통스러웠나보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간단한 속옷만 입은 모습에 은혜는 나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 그동안 미안...내가 너무 소홀했나봐... 어째보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봐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본 너였는데... 난 너무 멀리 보기만 했나봐

미안해.....그리고 사랑해... "

" 히..."

내말에 웃고는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은혜의 모습에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듣고 싶었을 테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몇 번 해준 적이 없는 단어.

단 세 글자이지만 참으로 하기 힘든 말. 그 어떤 말보다 세 글자가 가진 의미는

그동안 쌓여왔던 은혜의 마음을 풀어주는데 충분한 단어였다.

" 저도...오빠를...너무 사랑해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려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직은 애정표현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맞춰가는 모습.

" 하아 하아..."

아무 말 없이 가벼운 숨소리만 나는 방안에서 그동안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은밀한 부위를 처음으로 입장하는 그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보일러가 돌지 않아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수도 있는 방안이었지만 두 명의

열기는 방안의 온도를 뜨겁게 올려놓기 시작했다.

새벽이 오기 전 습관처럼 눈을 뜬 나는 옆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잠든 은혜를

보며 어깨 밑으로 내려가 있는 이불을 올려주었다. 팔베개를 하고 내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에 몇 시간 전 쾌락보다는 고통이 큰상황이지만 말없이

나에게 맞춰준 고마운 아이. 그런 은혜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우선이라고.... 펜션에서 그렇게 고생했지만 정서 형과 철기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나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건넨 사람이 없는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언제 새벽이

지나도 해가 뜨는 모습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장 무서운 건 밖에서 우리를

노리는 감염체가 아닌 안에서 우리를 노리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새벽이 지나 해가 중천에 걸쳐 있었지만 우리는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어젯밤의

엄청난 체력소비에 둘 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잠이 들었고 어차피 일어나봐야 할 일도 없었다. 서로의 체온을 전달하며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방해한건 재효였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두들겨 되는 문소리로 잠이 깨어나 버렸다. 나와 은혜는 대충 옷을 걸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재효는 무언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형!!! 광장에 공고문이 걸렸는데 내용을 보니 캠프 상태가 심각한가봐."

" 무슨 내용인데? "

아침 일찍 일어나 광장을 산책하던 재효와 미란이는 몇 명의 병사가 푯말을 세워

공고문을 붙이는 모습에 호기심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공고문은 지금까지 11구역에서 유지했던 레스토랑을 오늘부로 폐지하고 다른 공장이나 수작업장에 편성되어 있는 남자들을 거의 모두 경계근무나 수색조로 편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군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아침배식이 중단된다고 했다. 더불어 모든 업장은 하루 4시간만 근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따로 업무가 정해진 업무가 없는 사람은 우선 대기하고  추후에 전달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감염체가 근처에 많이 발견되고 있고 현재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재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 흠.... 생각보다 심각하네..."

" 응. 지금 작업장 남자들이 따지러 강 중령한테 갔을 거야. 근무조야 그렇다고

하지만  수색조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강제적으로 편성해서 원성이

높아.  강 중령이   현재 병사들을 모두 소집한 상태고 나도 이제 가 봐야해. "

" 잘 다녀와... "

" 응?? 형은 안가? "

" 난...용병형태라 안가도 돼. 애초에 이런 억압이 싫어서 감투도 마다한 건데... "

" 우선 내가 가서 상황을 보고 알려줄게. 혹시 모르니 미란이를 부탁해."

" 응. 여기로 오라고 해. 기숙사 보다는 여기가 조금은 더 넓어서 생활하기는

편할거야."

나는 다급히 대화를 끝내고 서둘러 돌아서는 재효를 보며 얼마 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한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은혜가

불안한 듯 말을 꺼내었다.

" 우리.....또 어디론가 피난해야 하는 거예요? "

" 아직은 아니지만... 언제일지는 몰라도 아마 움직여야 할 거야. 그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가씨는 걱정 마세요!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자는 게  어때?"

" 이런 상황에서 잠이 와요? "

" 우리..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잘 잤잖아. 한동안 편해진 건 알지만 예전의

그런  긴장감까지 잃으면 안 돼. 난 솔직히 여기가 더 불안해. 사람들도 그렇고

아가씨를 노리는 무리들이 많아서 이래저래 치이고 다닌다고.."

" 풋... 행복한 고민인줄 알아요! "

은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온수가 나올 시간이 지났기에 샤워는 무리였고 대충

세수만 한 뒤 방안을 정리했다. 재효야 문 앞에서 이야기 했기에 방안을 볼 수

없었지만 얼마 후에 도착할 미란이에게 까지 우리의 지난밤을 알려주는 듯 한 모

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무렵 미란이가 도착했고 난 문단속을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채 본부대 쪽으로 걸어갔다.  본부대 앞은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 아니!!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수색조가 말이 됩니까??!!! 나가서 죽으란

소리입니까?"

" 그리고!! 아침은 왜 안주는 거요!! 병사와 차별하는 거요??!!! "

입구 앞에서 수십의 사람들이 모여 본부대로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이었지만

병사들도 만만치 않은 숫자를 자랑했기에 잘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를 알아본

병사는 나를 본부대 안으로 통과시켜 주었고 어느새 도착한 강 중령의 방 앞에서

잠시 멈칫거렸다.

"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시민들의 반발이... "

" 지금 시민들을 신경 쓸 때 인가? 우선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강 중령!!

현재 11구역을 제외하고는 식량 보유량이 턱없이 부족하네! 그러니 서로

돕자는 건데 왜 그러나!! "

" 언제부터 구역끼리 돕고 살았습니까?!! 예전 저희 구역 앞에서 감염체들이 발견

되어 전투할 때 그 어느 구역에서 도와줬답니까? 10구역과 9구역이야 인접구역

이니 같이 전투를 했지만 반대 5구역은 탄약한발도 지원해준 적이 없지

않습니까! "

" 1구역 회의 후 나온 명령일세! 군인이라면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지! "

" 언제부터 1구역이 상부가 된 것입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고자

11구역 책임자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몇 명이서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고성이 오갔기에 방문에서 거리가

있는 내 위치까지도 육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 방안에서의 고성이

잠잠하여 지자 대령의 계급장과 준장계급장을 단 중년의 아저씨 두 명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고는 인상을 쓰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이 판국에  뭘 먹고 저리 살들이 오르셨는지

궁금했다.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 아..재원군 들어오게나..자네도 아마 광장에 걸린 공고문을 보고 온 것이겠지? "

"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만... 보아하니 중령님 생각은 아닌 듯 하군요."

" 그렇지.. 1구역에서 우리 비축식량을 가져가겠다고 했네. 말은 모자라는 구역에

배급 하여 조금은 상황을 좋게 해보자는 취지인데 솔직히 누가 그걸

다른 구역에 배급하겠나? 더러운 것들... "

"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을 테지 않습니까? "

" 대가? 불우이웃 돕는다고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냐고 하던데? "

" 적어도 멀쩡했을 당시 사회에서 기부했으면 최소 소득공제라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 흠...."

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강 중령이었다. 내가 봐도 멋진 말대꾸였다.

" 지금 그런 걸 따질 시기가 아니네. 이렇게 가다간 우리도 결국 다른 구역과

마찬가지로 체계가 무너져서 감염체가 와도 싸울 수 있을 런지 모르겠네!

우리가 가진 그나마 많은 게 식량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부족한 탄약을

교환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1구역의 회의 후에 나온 결정이라고 무작정

따라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된 다고  생각하나??!! "

" 전...애초에 이런 시스템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만...? "

" 큰일이군... 아무리 그래도 우리 식량을 가져간다니... 지금도 부족한

실정인데..."

" 반대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

" 다른 구역으로 가는 문을 막을 것이야 아마도.....자신들의 명령에 불복하는

구역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줄 테지. 우리가 무너져도 아직 13개의 구역이

있으니까. "

" 막힌다면... 자립은 불가능 한 겁니까? "

" 솔직히 이 많은 인원을 살릴 순 없네. 그렇다고 다른 곳에 정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착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움직일 텐가? "

" 없군요. "

" 그렇지.... 애초에 너무 많은걸 기대...."

" 중령님!!! 현재 5,6,7구역 외부에 대량의 감염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긴급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입니다."

작동되는 게 신기한 군대용어로 속칭 딸딸이라 칭하는 전화기는 긴급 상황에만 통화한다고 알고 있었다. 어차피 삐삐선만 연결하고 건전지만 있으면 통화가 가능하긴 했지만 워낙 구형이라 작동되는 게 앞으로의 상황보다 더 기적인 듯 했다.

" 우선 시민들을 숙소로 대피시키고 병사들에게 탄약을 지급해라!   우선

오 분 대기조를  먼저 출발시키고 병사들 무장이 완료되면 보고하게! "

" 네!! "

난 바빠지는 본부대의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건물을 나왔다. 상황설명을

들은 시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이었고

군용트럭 몇 대에 나누어 탑승한 병사들이 5구역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이었다.

난 그중 한 대에 올라타 같이 이동을 했다.

" 총...안 가져가시는 겁니까? "

" 응?? 아..필요 없어... "

어차피 전투를 하러 가는 게 아닌... 감염체 숫자와 앞으로 우리 상황을 예측해

보려 가는 것이기에 별다른 긴장감도 없었다. 여차하면 혼자 11구역으로 되

돌아오면 그만 이었다.  제법  속도를 내어 달린 차량은 금세 도착하였다.

" 쾅!!! 쾅!!! 펑!!!!!콰광!!!"

쉴 새 없이 들리는 폭발음과 소총소리에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난 방벽위에

올라선 뒤 감염체들의 모습을 살폈다.

" 하.....하......"

엄청나게 많은 숫자와 중간 중간 보이는 거대형 감염체들은 느리지만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숫자에 넋 놓고 바라만

봤다. 방벽 위를 빼곡하게 메운 병사들이 쏘아 되는 탄의 양은 엄청났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감염체들은 쓰러지는 숫자보다 시야에 잡히는

숫자가 더 많은 실정이었다.

" 재원아!!! "

어디선가 부르는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만났던 기태였다. 아마도

5구역에 배정되어 있다 보니 제일 먼저 전투에 참여했을 테다.

" 여기서 뭐해!! 어서 너희 구역으로 돌아가!!  여기 있으면 위험해!! "

" 걱정 마! 혼자서도 살아남은 몸이야! 그나저나 상황은 어때? "

" 절망적이야. 이런 식으로 계속 밀고 들어오면 5구역을 포기해야해...."

표정에서 보아하니... 승산이 없는 듯 했다. 다른 구역 병사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여기서 가져온 탄을 다써버린다면 정작 자기 구역에 감염체가

공격한다면 지켜낼 탄이 부족할 수도 있었기에 소극적인 사격을 하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밀리면 다른 구역 밀리는 건 시간문제인데...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은 욕망인지 아니면 자신의 구역을 버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인지 알 길이 없었다.

" 뚱땡이 감염체는 뭘로 처리 할려고? "

" 응?? 아....적어도 유탄이나 대구경이 아니면 힘들더라. 저격병들이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기는 한데... 워낙 숫자가 많아야지.."

" 너...우리구역으로 넘어와라...우선 부모님부터 00모텔로 보내고 너도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넘어와...여기서 아까운 목숨...버리지 마라..."

난 정말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은 듯

기태는 웃으며 이야기 했다.

" 걱정 마! 여기서 죽을 몸이 아닌데!!  우선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

만약....우리가 밀리면... 다른 구역도 시간문제 일거야.. "

" 다른 구역은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너부터 걱정해라... 난 간다.."

" 그래!! 조심해서 가!! "

추가로 지급받은 탄창을 소총에 끼우고는 감염체를 향해 발포하는 모습을

뒤로하고는 서둘러 11구역으로 이동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뿐이었다. 식량창고를

약탈하거나 필요한 물품들을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모습들...

서로 원하는 물품은 많으나 양은 제한적인 상황에 주먹다짐이 오가는 모습과

군용차를 탈취한 듯 빠르게 감염체가 나타난 곳의 반대방향으로 질주하는

차량들도 보였다. 방벽보다 일찍 무너진 사람들의 평정심이었다. 아직 감염체

들이 방벽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아직 방벽에 도착조차 못한 상황인데 이미 캠프

내부는 마치 감염체들이 내부로 밀고 들어온 모습을 본 마냥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 내부에서 무너지는 건가... 11구역까지 밀고 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한동안은 시간을 벌수 있겠네.. "

저들이 저렇게 행동해봐야 방벽외부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염체가

내부로 들어온 상황이라면 저런 행동들은 독이 될지도 아니 분명 이득은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난 빠르게 한참을 달려 우리가 묵고 있는 모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겁먹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미란이와 은혜가

보였다. 핑크는 그런 그들을 지키려는 듯 뒤에서 묵묵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 우선 짐들을 정리하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빠른 시일 안에 무너질듯해.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도 움직일 준비를 해두자."

" 네. 오빠. "

" 재효 오빠는? "

" 우선 재효는 본부대 안에 있고 다행이 5구역으로 지원가지는 않은 상황이야.

재효에게 내가 말해둘게. 은혜는 미란이 짐 챙기는 거 도와주고 다시 오도록

하고 항상 핑크를 데리고 다녀. 핑크! 둘을 지켜야해! 알겠지? "

" 컹!!!컹!!! "

" 그래..너만 믿는다. 우선 출발해. "

둘을 서둘러 출발시킨 후 난 지하에 주차한 우리 차량을 살폈다. 대부분의

모텔이 그런 듯 여기도 주차장은 외부에서도 내부에서 조차 어두운 조명으로

인하여 잘 보이지 않았기에 차량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여분의 연료와

약간의 식량 그리고 몇 가지 생필품을 채운 트렁크를 점검하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했다.

" 준비는 하고  있지만...제발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

강원도 펜션에서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3개월이나 걸렸지만 현재 위치를 알고

가야할 위치를 아는 상황에서는 반나절이면 충분할 듯 했다. 만약 여기가 밀리면

우선 펜션으로 돌아가 본 뒤 물품을 챙겨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 듯 싶었다.

펜션에서 급하게 나와 간단한 물품 외 에는 거의 가져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만약  전기가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면 식량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고 아직은

많은 양의 탄약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다른 생존자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전제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름 치안유지가 잘 된 편인 11구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가 본 5구역만큼은 아니지만 물건들을 몰래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식량창고에는 많은 수의 병사들이 경계를 서서 지키고 있었고 그들 눈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차량을 점검한 뒤 방으로 올라가고 나도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은혜의 옷가지와 내 옷들 그리고 간단한 생필품과 식량들을 모아서 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작업이 완료되자 미란이와 은혜가 돌아왔다.

" 밖에...사람들이 미쳐 가나봐...장난이 아냐... 핑크 없었으면 임꺽정 같은

녀석한테 끌려갈 뻔했네.... "

" 무슨 소리야? "

" 아니..짐 챙겨서 오는데 어떤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자기랑 같이 도망가자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은혜 팔을 잡고 빨리

도망가자고 하니까  핑크가 바로 물어버리던데? 평소 귀여운 큰개라고

생각했는데 이빨 보이면서 물어 버리니까 장난이 아니네. 역시.. 가장 사나운

품종 이라는 게 맞나봐..."

" 그래도 무사하니 다행이다. 내가 같이 갈걸 그랬나..괜히 걱정되네.. "

" 거의 다 챙겨 와서 이제 갈일도 없어. 오는 길에 다행히 재효오빠 만나서

상황은 설명했으니까 아마 눈치껏 복귀할 거야. "

난 사람을 물었다는 말에 핑크 입을 쳐다봤다. 피가 굳은 듯 피 딱지가 입주위에

묻은 모습이었다.  별다른 훈련을 시킨 적도 없는데 잘 행동하는 모습이

기특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의아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품종이지만 해도

너무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 정체가 뭐냐...넌.....? "

내가 입 주위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뭐 물어본다고 말해줄 거라 생각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불을 끄고 조용히 방안에서 잠복 아닌 잠복을 해야 했다.

괜히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버리면 혹시나 악한마음을 먹은 생존자가 와서

해코지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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