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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밤이 늦도록 멀리서 들리는 총성과 폭음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간간히
움직이는 군용트럭들의 소리로 보아 아무래도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아무리 5구역이 밀린다고 하더라도 11구역 까지 지나쳐야 하는 방벽의 숫자는
많았다. 정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아직은 안전한 편이고 최악의 경우
피난할 방법도 대비해둔 상황이다. 밤이 깊어서야 재효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우리는 지금 상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 어때? 상황은 좀 나아질 듯 보여? "
" 전혀..현재 강 중령이 외부로 나간다는 인원을 막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야. 다른 구역과 달리 우리구역만 아마 외부로 나가는 걸 허락한 듯 외부
구역사람들로 보이는 인원들까지 우리구역을 통해서 나가는 중이야. 구역 간
방벽은 아직 폐쇄가 안돼서 그런지 엄청난 인원이 빠져나가더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 5구역은 어떻다고 하니? "
" 아직은 방벽에서 밀리지 않은 듯 보여. 하지만 끝도 없이 몰려오는 감염체로
병사들도 탈영하는 마당에 제대로 방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야."
" 흠...그렇군... 우선 여기 있어봐 내가 몰래 5구역에 다녀올게. "
" 위험해!! 언제 밀릴지도 모르는데!!"
"걱정 마.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으니까. 우선 씻고 나와.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앞날을 대비해서 우선 체력을 아껴두고. 난 다녀올게."
자칫 잘못하다 병사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플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난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법 거리가 있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5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는 듯 했다. 이미 방벽 앞에서 빼곡히 서서 우리를 향해 팔을 벌리며
허우적 되는 일반 감염체들과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속도가 느린 내가 뚱땡이
감염체라 부르는 거대 감염체들은 방벽을 몸으로 들이 밀고 있었다.
" 쿵!!!! 쿵!!!!! 꾸에에에엑!!! "
듣기 거북한 음역대의 목소리를 내며 연신 방벽에 몸을 들이 미는 모습과 방벽과
거대 감염체 중간에 괜히 말려 들어가 몸이 터져 죽는 감염체들을 보기란 상당한
비위를 요구했다.
" 부르르르.....부르르르..."
" 충격이 상당한가 보네. 거리가 꽤 있는데 여기까지 충격이 전해지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방벽 위였지만 발끝에서 느껴지는 진동음이 날 긴장하게 했다. 급하게 만든 방벽이었지만 그래도 꽤 튼튼한 내구성을 가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충격을 주었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듯 했다.
더군다나 점점 늘어나는 거대 감염체들의 숫자를 보면서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다행이 방벽위에서의 전투로 인해 사망자는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점점 보유한 탄약이 줄어드는 건지 처음에는 연사로 사격하던 병사들이
단발로 사격하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먼발치에서 5구역의 상황을 관찰하던 도중
힘없이 걸어가는 기태를 발견하였다. 난 조심스럽게 기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괜찮냐..? "
" 헉!!! 깜짝이야! 어떻게 온 거야?"
" 걸어왔지...그나저나 상황은 어때 보여? "
" 풋.... 병력의 30%가 1구역 방어로 이동됐어. 어차피 탄약도 없어서 많은
인원이 있어봐야 쓸 때 없이 탄만 소비하긴 하지만 기분은 영 찜찜하더군.
우리도 조만간 후퇴할 듯 해. 탈영병도 너무 많고 일반 시민들도 빠르게
빠져나가는 상황이라 5구역을 포기하겠지."
지금까지 힘들게 지킨 구역인데 이렇게 밀리는 모습에 허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물론 1구역명령도 한 몫 하긴 했지만... 이제는 제법 가까이서 느껴지는 방벽의
울림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길어야 2~3일 정도면 무너질 듯 보였다. 난
기태에게 미리 적어온 쪽지를 전해주었다.
" 우리 집 주소랑 강원도에 머물렀던 펜션 주소야. 이대로 밀려서 피난가게
된다면 둘 중 어디 라도 가봐. 운 좋으면 우리가 있을지도 모르고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식량과 물품은 얻을 수 있을 거야. 먼저 떠나는 사람이 다음
목적지를 적어 남기면 따라가도록 하자. "
" 그래... 어릴 적부터 계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짜던 놈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도
그렇네. 고맙다. 몸조심 하고! "
" 그래! 너도 조심하고 꼭...살아남아라!! "
" 하하!! 걱정마라!!"
꼭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끼리의 포옹에서 느낄 수 있는 우정이라는
감정. 반평생을 알아온 녀석이라 그런지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쉽기만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보니 이미 입구에 짐을 한가득 적재하고는 언제든 나갈 준비를
마친 듯 보인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없었다면 아마 이 녀석들도 밖에
사람들처럼 행동했을 테지만 나라는 존재가 있어서 인지 그들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어보였지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마음속은 다급한 모양이었다.
" 어...당장이라도 나갈 기세인데? "
" 상황이 어떨지 모르잖아요! 우선 준비는 해놨어요! "
은혜가 ' 나 잘했죠? ' 라는 표정을 지으며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 그래그래..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 우선 늦었으니 잠 좀 자자!! 내일을 위해서 쉬어야지지! "
아쉽게도 오늘은 은혜의 옆자리는 미란이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 쾅!!!!! 쾅!!!!!!"
"응?? "
이른 아침부터 들리는 포성에 잠이 깨어버렸다. 캠프 안에 자주포나 야포가
있었던가? 다들 잠을 깨우게 만드는 포성소리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감염체가 나타 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포성이 들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이제야 쏘네..1구역 자주포.. "
" 응?? 1구역에 자주포가 있었어?"
" 응..1구역만 특이하게 2중 방벽구조인데 방벽과 방벽사이에 자주포나
다연장 로켓포 몇 대가 있다고 하던데? "
" 그런데...그걸 이제 와서 쏘는 건 뭐야? 애초에 발견순간부터 다가오기
전에 쐈으면 좀더 조금 더 수월했을 텐데? "
" 아마도... 밀릴 거란 생각은 안했나 봐. 이제 와서 힘들어 지니까 쏘는 거
아니겠어...? "
이제는 더 이상 잘될 수가 없을 듯 했다. 처음부터 포를 사용했으면 효과적으로
많은 수의 감염체를 제거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쏘는 건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인간의 욕심인지 아니면 지휘관의 머리가 어딘가 부족하다 던지... 하지만 이내 포성은 멈췄다.
몇 발 사격한 것도 아니었는데 금세 멈추는 듯 했다. 난 창문을 열어 밖을 본 순간 엄청난 인파가 몰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밤새도록 모여든 일반
생존자들이 아침에 외부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 나가려는 듯 입구에서도 거리가
있는 편인 우리 숙소까지 늘어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휑한
느낌이었다. 맞서 싸우는 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모면서 저들도 어째든 식구, 친구, 연인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입장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도 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하나
물고 먼 산을 바라보듯 서있자 어느새 뒤로 다가 온 재효가 느껴졌다.
" 이제...정말 가야지..? "
" 아마도.... 그래도 우린 버텨보자. 가능한 한곳에서 버틸 만큼 버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도 버티고 이동하고... 이 방법이 최선이겠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이런 방벽을 건설하여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데..
불가능 하겠지? "
" 어딘가... 그런 장소가 있을 거야... "
" 그런 곳을 찾기보다 우리가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야지! 언제까지 찾아서 다니기
만 할 수는 없어! 어디선가 정착을 해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할
때가 올 거야! "
" 그래 형!! 힘내자! "
애써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럴 때 일수록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마음이라도 가벼워 질듯했다. 문득 난 강 중령이 이야기한 감각이 좋아진 생존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재효는 그저 내가 느낌으로 아는 것 이었고 딱히 말을
해주지 않아서 어떤 능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옥상에서 굴러다니던 축구공을
하나 들어 뒤돌아 서있는 재효에게 전력을 다해 던졌다.
" 텅!!!!!!!! "
공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꽤 큰 소리를 내면서 축구공은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공에 맞기라도 한다면 크게 다칠 속도로 말이다.
" 흠...너도 근력과 스피드인가? "
엄청 빠르게 던졌기에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대로 옥상에서 떨어
졌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만 난 대수롭지 않듯 이야기 했다.
" 미...미친!!!! 내가 못 피했으면 어쩌라고!! "
" 응? 아....그 생각을 못했네... 난 왜 네가 근력과 스피드가 증가했다고 확정지어
생각한 거지? 큰일 날 뻔했네...?"
" 그 태도가 지금 정말 미안해서 말하는 사람의 말투야??!! "
" 뭐...피했으면 됐잖아! 뭘 그래... 어느 정도 까지 늘어난 거야? "
" 펜션에서 봤던 형정도... "
" 흠....얼마 안 된 모양이네?
" 아니..시간은 좀 됐는데 늘어가는 속도가 더딘 편이야.. 그래도 보통
사람이었으면 상상조차 못할 속도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한시가 급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력단련에 힘쓰고 있는데 맘처럼 쉽지는 않네.."
어딘가 아쉬워하는 표정의 재효였다.
" 그래? 난 특별히 운동한 적이 없는데? "
" 응?? 무슨 소리야? "
" 난 근력이 좋아지고 나서 특별히 운동 같은 거 해본 적이 없어. 그저 펜션에서
여기까지 감염체들만 죽어라 상대해왔고 여기 와서도 별다른 운동하지도 않고
매일 놀고먹고 있는 중인데? 아마...너 너무 신경 쓰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마음을 편히 가져. 너무 부담 갖지 말고. "
생각해보니 재효는 캠프에서 틈나는 시간마다 운동을 하는 모습을 봐왔지만
난 그저 은혜와의 데이트나 잠. 그리고 근무 외에는 따로 몸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런 나 보다 재효가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있었 보였다. 아니면 서로 다른 능력일지도 모르고 아직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거라곤 그저 남들보다 발전된 감각이라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보니 우리가 걱정된 듯 옥상으로 올라온 미란이와 은혜가 보였다.
" 여기서 뭐해? "
" 아... 생존자들 피난 가는 모습 좀 보고 재효랑 이것저것 이야기 좀 했어.
재효도 근력이 좋아진 듯해서 시험해봤는데.. "
내가 말을 끝내기도전에 미란이 옆에서 내가 한 행동을 일러바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괴롭힌 친구 일러바치는 듯 한 모습이었다. 미란이도
처음에 재효의 이야기를 듣다가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모습이었다.
" 아예.... 오빠를 던져버리지 그랬어? "
" 그 생각은 못해봤네... 다음에 기회 되면 한번 해볼게. "
" 뭘 해본다는 거야!! 우리 오빠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
" 걱정 마! 안 죽어 안 죽어!! 뭘 그런 거 가지고 길길이 날뛰고... "
" 뭘 그런 거라니!! 오빠가 던진 공이라면 분명 엄청났을 텐데 뭘 그런 거라니!! "
졸지에 그 부모님에게 혼나는 친구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차마
소리 내어 웃지 못하는 은혜의 모습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조금은 말려줘도
좋을 텐데...흑...
아침부터 소동 아닌 소동을 격고는 다들 배가 고팠는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래봐야 얼마 남지 않은 캔 형태의 음식이었지만 지금에서는 진수성찬
이었기에 빠른 속도로 먹어치웠다. 아침을 다 먹고 남들과 다르게 느긋하게 쉬고
있던 중 병사 한명이 우리를 급하게 찾았다.
" 김재원씨 계십니까? 김재원씨!!! "
" 전데 왜 그러는 거죠? "
" 아!!! 강 중령님께서 찾으십니다! "
한동안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쉬어서 말하는 병사에게 초반에 대답하지
안았던 것이 조금 미안하긴 했다. 몇 번 부르다 갈 줄 알고 대답을 안했는데
여기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듯 연신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시끄러워
답했기 때문이다. 매우 급해 보이는 병사와 달리 난 아주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런 내 모습에 약간 짜증이 난 듯 말했다.
" 저기..빨리 가셔야.. "
" 그렇게 급하면 직접오시지..왜 저를 부르고 그런답니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걱정 마세요. "
난 일부러 약 올리듯 말했다.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차량에 탑승했고 지금까지의
허비된 시간을 벌려는 듯 무섭게 운전을 하면서 본부대로 향했다.
" 무슨 일이시죠? "
내가 강 중령의 방에 들어가며 물었다. 이미 담배를 한가득 핀 듯 재떨이에는
꽁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감염체에게 죽기 전에 폐암으로 죽을 듯한
모습이었다.
" 1구역에서... 각 구역별로 생존자중 자네처럼 감각이 발달한 병사들을 주축
으로 공격을 막자는 내용일세..그러니..자네도.."
" 거절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의견이군요."
" 흠...하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해 막고... "
" 오늘 아침 포성을 들었습니다. 어제 5구역 밖에서 감염체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사격했으면 아마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윗사람의 무능함을 아랫사람의 능력을 빌려 처리 한다고 해도 그들은 마치
마치 자신들이 해결한 것처럼 행동 할 테죠? 안 봐도 뻔합니다. 결과를 아는
영화를 뭐 하러 돈 주고 본답니까? "
" 하..하지만!! 다른 생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
" 제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합니까? 전 군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한번 경험했습니다! 내가 목숨 받쳐 구해봐야!!!!
그들은 정작 내가 뒤로한 내 일행들도 챙겨주지 못합니다! 아니!!
안한다고 봐야겠죠! 이런 상황에 자신들 지키기 바쁘니까요!
저도 그들과 같아 질것입니다!! 저도!!! 가족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놈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저를 욕하기 전에 저기 밖에서 외부로 나가기 위해
줄 서있는 저 사람들에게 먼저 말씀해보시지요. 과연 제가 잘못한 거냐고.."
" 하아....."
어느 정도 예상을 한 표정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제의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 의견에 동의한 사람은요? "
" 현재 한명도 없다네.."
' 그럼 그렇지..바보가 아니고서야...'
" 당연하겠죠. 누가 그 의견에 찬성하겠습니까? "
담배 핀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담배하나를 물고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저러다 정말 폐질환 걸리는 것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