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8화 (2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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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

5구역 지역 앞은 감염체로 가득하다고 한다. 이미 최소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해버린 감염체를  제거하기란 개인화기정도가 전부였다. 그러게 자주포가 있었으면 멀리서 발견했을 때 쏴버리면 이렇게 까지 안됐을 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지... 1구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며 누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원래 외부로 이어지는 출입문은 봉쇄하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감염체  숫자만

늘리느니 차라리 한명의 생존자라도 늘려서 훗날을 기약하는 편이 좋을 듯해서

내가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진행한 일이네. 아마 지금 1구역에서도  알

테지만 자신들 발 앞까지 온 감염체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테지..그래서 지금까지

잠잠한 것이고  조만간 누군가 와서 무력으로 막을 수도 있다네. "

" 도대체... 폐쇄된 공간에 몰아서 뭘 하겠다는 건가요...? "

" 아마도 배수진이라도 생각하는 듯 하네. 구석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것이겠지.. "

" 배수진도 훈련받은 병사들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원래 배수진이 패배의

지름길 아닌가요? 어느 바보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의 적을 상대한단

말입니까..."

" 아마도...아니 확실히 우리는 패배할걸세.. 자네도 어서 피하게나..가장 먼

11구역이라도 곧 있으면 우리도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세.. "

" 생각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생각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

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이제는... 올 일이 없을 건물을 보며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동안 앞으로 이동할 곳을 찾아봐야만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재효는 근무를 나가고 없었다. 이미 모텔 내부에서 사람이

많이 피난길에 오른 듯 문이 열린 방들이 많았다. 급하게 나간 듯 방안 물품들

이 어지럽게 널려진 모습을 보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간

방들을 뒤져 혹시나 필요한 물건들이 있을까 하고 뒤져봤다. 생각보다 식량이

나 물품들을 많이 두고 가서 꽤 쏠쏠한 양을 챙길 수 있었다. 나는 방안에

앉아서 지급받은 총기를 점검했다. 원래는 반납하려 했는데 강 중령이 자신 때문에 고생한 선물이라며 남은 탄약과 함께 가져가도 된다고 허락을 하였다. 열심히 닦고 조여서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했다. 어째서 대한민국 정식 저격총도 아닌 모델이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지도 의문이었기에 그냥 말없이 받아 챙긴 상황이다. 무겁고 구경도 크고 이 상화에서 어떻게 보면 권총보다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없는 것 보다야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안전한건 어쩔 수 없었다.

" 재효오빠..괜찮겠지? "

" 언니. 걱정 마요. 오빠는 강하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

" 그래도...걱정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 걱정 마 미란아 재효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한 아이야. "

미란이가 근무를 나간 재효가 걱정되는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상황에 나

만 방안에 있는 것 도 미안하긴 했지만 누군가는 여자들을 지켜야 했다. 물론

핑크도 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다는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그리고 아직은 11구역까지 감염체가 다가온 것도 아니잖아. 너무 걱정 마. "

재효를 걱정하며 근심에 빠진 미란이를 위로하며 우리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

고 있었다. 얼마 전 까지 이런 시간에 은혜와 산책을 즐기거나 이런저런 수다

를 떨며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한동안 어색

한 분위기가 감돌 때 다행히 재효가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 별일 없었지?!! "

미란이가 튕겨져 나갈 듯 뛰어가며 재효를 반겼다.

" 응! 아직은 우린 별일 없어. 지금 5구역 바로 앞에 득실득실 하게 몰려있는 감

염체들은  우선 소총이나 유탄 등으로 처리중이래. 그래봐야 얼마 제거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 나을 듯 하니까. 부대에서 먹을거리 좀

빼왔어.  이거라도 먹자."

겉옷 안에 두툼하게 챙겨온 전투식량 몇 개를 꺼내어 흔드는 모습이었다. 저

라면스프에 밥 말아 먹는 기분을 또 느끼는 건 싫긴 했지만 그래도 탄수화물

은 몸을 움직이는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다들 질려버린 맛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잘만 먹는 모습이었다. 한 창 밥을 먹고 치우는 중에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 재원아!!! 재원아!!! "

" 응?? 기태구나!!!! "

" 아!! 여기 있었구나! 아직 피난 가지는 않았나봐? "

" 아직은 버틸만해서.. 최대한 여기서 버티다가 움직여야지. 어차피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미리부터 움직일 필요도 없고 지금은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속도가 너무 더뎌."

" 그래? 그런데 우리 묵을 방은 좀 있어? "

" 무슨 소리야? 5구역이 밀렸어? 너희도 피난 온 거야? "

" 흠...그건 아니고 이미 명령체계가 무너져서 뿔뿔이 흩어졌어. 우리도 버티다

못해 이것저것 챙겨서 내려와 버렸어. "

" 그렇구나.. 아마 이 모텔 나간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니까 지내는데 무리가

없을 거야. 우선 방부터 확인해보고 짐을 풀자."

" 그래! 김 병장! 우선 병사들 몇 명을 차출해서 방들을 확인하고 빈방은

가족들이 있는 병사들 위주로 편성해서 배정하도록! "

" 네! 대장님! "

" 너...출세했다? 대장님 소리도 듣고? "

" 하하!!! 방어담당 중대장인데 그냥 대장이라고 불러 다들. 우선 급하니까 나도

방부터 확인해봐야겠다."

기태는 방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빈방들을 체크했다. 역시나 많은 사람이 나간 듯

해서 우리 층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나간건지..저런 실력들 이라면 아마 감염체에게 발각 될 일은 없겠구만...

비교적 빠르게 빈방이 파악이 되고 짐들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되자 난 애들을 기태에게 소개시켜 줬다.

" 기태야! 여긴 은혜고 내 여자친구야. 그리고 재효.미란이고."

" 이런 상황에서 인사하는 것이 아쉽지만. 잘 부탁해요."

" 네!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

" 호탕한 녀석일세! 마음에 드는데?! "

" 잘 부탁드려요 오빠. 이 은혜라고 해요. "

" 전 이 미란이라고 해요! "

" 하하!! 두 분 다 아주 미인이네! 재원이 같은 녀석이 어디가 좋다고 저런

미인들과 다니는 거야? 부러운데?? 하하!! 아참! 여긴 내 와이프 보미라고 해요

인사해 보미야!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 초등학교부터 친구인 재원이야! "

" 아..안녕하세요.. 너..결혼했었어? "

" 아..뭐 그렇게 됐어! 원래부터 아는 사이었는데 피난길부터 같이 다니다가

여기 캠프  도착 후에도 같이 지내다 보니... 하하... "

" 그래?? 늦었지만 축하한다! 잘 부탁해요 제수씨!"

"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

" 제가 감사하죠. 기태에게는 너무 과분한데요? 하하!"

미란이와 은혜랑은 다르게 나랑 기태정도의 연령대로 보였다.. 방이 많이 남아 옆방에는 재효와 미란이가 지내기로 했고 앞쪽 방에는 기태와 보미가 그리고 그 옆으로 기태부모님이 지내기로 했다. 다시 물건들을 정리하고 은혜와 미란이는 보미랑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다가가서 말도 걸고 여자들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풀어갔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들을 보여주며

관심을 이끌어갔다. 그런 모습을 본 기태는 안심이 되는지 나와 함께

옥상으로 담배를 피러 올라갔다. 이제는 제법 햇살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

했지만 찬바람으로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멀리서는 간간히 들리는 총성과

폭음이 지속되고 있었다. 한동안 담배를 피며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만 워낙에 친하다보니 굳이 대화가 필요한 관계도 아니었고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니까. 적막감을 깨고 질문을 던진 건 나였다. 더 이상 답답했기에..

" 예상 시간은? "

" 길어야 5일. 짧으면 3일?"

" 심각하군.."

" 그래도 차량 몇 대는 있고 탄약도 어느 정도 챙겨왔어. 식구들이 많지도 않아.

나를 제외하고 병사 30명에 딸린 식구 30명이야. "

" 우리까지 70명이면 대인원이야. 모두 살아서 나갈 순 없어. "

" 알아... 죽고 살고는 자신의 뜻이 아니니까.."

" 후우.... 갈 곳은 정했어? "

" 아니... 없어... 너는?? "

" 우선...우리가 있었던 강원도 펜션에 들려보려고... 아직 무기나 식량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고.. 상태가 쓸 만하면 조금 더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고 아니라면 근처를  뒤져서라도 새로운 캠프를 만들까도 생각중야. 아직은

확정은 없어."

" 흠....우리도....같이 가도 될까? "

" 의견만 맞는다면 상관없어. 너희 병사들 의견도 물어야지. 강원도 펜션이

멀쩡하다면  거기서 지내는 것도 괜찮을 듯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면 이정도

인원이 지낼만한  곳을 찾기는 힘들어. 나도 처음에 그 정도 인원이 움직인

건데 펜션을 찾은 것도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어. "

" 우선 병사들에게 물어보고 우리도 어떻게 할지 알려줄게."

" 그래...어서 들어 가봐.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보미씨랑도 이야기도 좀 해보자. "

" 아!! 보미는 우리랑 동갑이야! 30살! 의외로 동안이지? "

" 응?? 응?? 어...동안이네... "

동안이라면 내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리가 없는데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한동안 기태는 모텔 주차장에서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인원이 많다보니 여러 의견들이 나오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인원이 많으면 좋은 의견이 나올 확률도 높은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 의견이 분분해... 우선 탈출하자는 인원이 절반에 나랑 뜻을 같이 하겠다는

인원이 정확히 절반이야. "

" 가져온 차량은 몇 대인데? "

" 60트럭 3대..."

" 나눠 그럼. 두 대 줘버려서 물품 챙기고 나가라 그래."

" 너... 굉장히 쉽게 이야기 한다? 잡을 생각은 안 해? "

" 왜? 왜 우리가 그들을 붙잡아야 하지? 인원이 많으면 감염체의 공격에 방어

할 수 있는 인원이 늘어 안전할 확률은 높지만 늘어난 만큼 분열이 생기기

쉬워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많아. 좋은 방향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잘못하여 일이 어긋나버리면.. 일행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어."

" 흠. 괜히 다 몰고 가서 분열 생기는 것 보다 소수의 인원이 살아남자 이건가?

잘 될 수 있는 확률도 있지만 그 만큼 나빠질 확률도 있는 카드를 받고 모험을

하기보다 지금 들고 있는 안정된 카드로 배팅을 건다.. 딱 너 카드치는 스타일

이네?"

" 응. 카드 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 그리고

이제 마트나 물류창고 뒤져봐야 나올 식량도 얼마 없을걸. 그런데 70명이나

되는  인원이 먹는 양도 엄청나. 하루 종일 식량만 구하러 다닐 수도 없고

농사를 짓기에도 아직은 일러. 더군다나 농사를 지어본 사람도 없고..

차라리 적은 인원으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야."

" 듣고 보니 그렇군. 너무 내 새끼들 마냥 챙기려 한 것 같네.. "

" 판단은 네 몫이야. "

" 그렇게 말해 놓고 판단하라면 내가 다른 판단 할 거라 생각했냐? "

" 아니..이런 식으로 너에게 책임회피 하는 건데? "

" 무서운 놈..예나 지금이나... "

" 언제 말 하려고? "

" 지금... 결정한 순간 말해줘야지. 떠나는 무리는 편할 때 떠나라고 해야지.

괜히 시간 정해 주는 건 내 쫓는 기분이라 조금 그래. "

" 그래... .."

병사들과 한참을 이야기 한 기태는 떠날 인원들은 모텔에서 쉬다가 언제든

떠나라고 이야기 했다. 60트럭에 있던 탄약과 식량을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어

실은 뒤 두 대는 피난 인원에게 한 대는 머무르고 있는 인원에게 배분을 하였다.

남은 인원은 기태를 제외한 병사들과 가족. 총30명. 정확히 반반 나뉘었지만 떠나

는 인원을 배려하는 듯 2대를 건네 줬다. 모텔 지하주차장에 승용차 몇 대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작동의 유무는 알 수가 없었다. 몇 달간 방치가 되었을 텐데

당연히 배터리는 방전되었을 테다. 우선 내가 가져온 차량을 이용하여 점프선을

연결한 뒤 시동이라도 걸리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시동만 걸린다면 무리해서라도

이동은 가능 할 테니까.

" 이제 해가 질 듯 하네...세상은 이래도 노을은 멋지다."

" 그렇게요. 오빠....우리..... 살아남을 수 있겠죠? "

" 걱정 마!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하니까 설마 사람인데 어디서 뭘

못 하겠니! "

" 정말...참....긍정적이야 오빠는.. "

" 긍정의 힘! 이란다..하하!! "

옥상에서 같이 노을을 보며 은혜와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나에 대한 믿음이

굳어진 듯 예전보다 더 많은 애교와 애정표현으로 가끔은 날 당황하게 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다더니... 은혜를 보고 하는 말인 듯 했다.

은혜는 팔로 내 가슴부위를  감싸 안고 난 은혜의 허리를 감싸듯 손을 휘감았다.

간은 서늘한 기온이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르는 총성과 폭음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교적 방

음이 잘되어있는 모텔이라지만 엄청난 소음에는 크게 도움이 못되는 듯 했다.

불안에 떨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은혜를 껴안고 누웠지만 나또한 예민해진

청각으로 더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정말....오늘은 잠 다잔 듯 하네요.."

" 흠...그렇게... 하루정도야 어떻게 버텼겠지만 지속되면 힘들어지는데... 사람이

잠이 부족하면 모든 게 제대로 안되는데.."

" 그...그.. 렇게...요....하아.. "

" 응?? 왜그래...? 어디아파? "

" 하아.... 알면서 뭘 물어봐요!!! "

" 흠...모르는데?? 난 잘 모르겠는데?? "

진지한 대화와는 다르게 내 손은 은혜의 상체부위에서 연신 반죽하듯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은혜는 상체가 꽤 예민한 듯 길지 않은 시간에 반응이

오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더욱 나의 본능을 자극하여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심심치 않게 시도하였고 은혜는 혹여나 들켜 버리기라도 할까봐 힘겹게 참았지만

방안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한참을 괴롭혔지만 은혜는 꼼짝을 못하고 숨만

거칠게 내쉬었다.

" 그...그만!!! "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자 내손을 뿌리쳤다. 자신도 감당 못할 감정이 느껴졌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된 모습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하악....하악... "

" 오호... 오늘은 잘 버티네?! "

" 아...정말!!!! 얄미...흡!!! "

난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입으로 입을 막아버렸고 은혜는 말 중간에 당한 키스에

버둥거렸다. 천천히 보듬으면서 안정을 시키자 팔로 내 목을 껴안고는 나지막이

말하였다.

" 정말...미워할 수가 없다니까요..."

" 풋... 그런 아가씨도... 벗어날 수가 없네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한 손으로 잡히지도 않는 은혜의 가슴을

만지며 남은 한쪽의 은밀한 부분은 내 입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서서히 흥분상태에 빠지는 은혜의 몸을 느끼며 옷들 하나하나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 하아..."

어느새 한 몸이 된 나와 은혜는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쾌락의 늪에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 격렬한 체력소모로 소음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의 단잠에서 깨어났지만 역시 은혜는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안했다.

팔베개를 해준 팔을 조심스럽게 걷은 뒤 옷을 챙겨 입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5구역 위치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이었다.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자 뒤에서 미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자고 뭐해? "

" 응? 저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있나.. "

" 그래?? 난 다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은혜 잡겠더라? "

" 응???? 하하......"

젠장....방음이 생각보다 약한 건지 아니면 우리 소리가 컸는지 미란이가 어제

우리 소리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난 최대한 표정변화 없이 대답을 했다.

이럴 때 당황하면 못할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솔직히 성인들인데

뭐가 부끄럽다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마음에 평온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강원도 펜션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 그쪽도 만만치 않던데 뭘 그래...강원도 펜션에서도 너희 둘 장난 아니던데?

솔직히 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한다."

" 뭐..뭐??"

" 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어? 재효가 너 죽이는 줄 알고 놀랬다!"

" 아!!! 몰라!!! "

" 전에는 잘만 이야기하더니.. 오늘은 왜 그래?"

내가 약 올리며 말하자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하지 못하는 미란이의 모습에 그저

웃었다. 난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가져온 커피를 줬다. 아직은 김이 나는 모습에 완전히 식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후르륵.. 앗! 뜨..거.."

" 다 마시지마..아까워..남은 것도 얼마 없어.."

" 아깝다는 사람이 이 엄청난 양의 커피는 뭐야? 그리고 왜 이렇게 진해?"

500ml 용량의 머그컵에 한 가득 타온 모습에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이해는 하는 표정이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보였다.

" 흠.. 어쩌다 보니... 언제 또 이렇게 여유롭게 마실 수 있겠어?"

" 지금 이 상황이 여유로워?"

" 아직 밀리 상황도 아니잖아? 5구역 앞에서 농성중이지 우리 앞에서 농성

하는 것도 아니고.. 뚫린다고 해도 우리가 피해 갈 시간은 충분해."

" 정말..낙천적이야.."

" 세상 이렇게 변해도 희망은 가져야지.."

난 미란이 때문에 못 붙인 불을 붙이고 깊이 연기를 들이마셨다. 씁쓸하지만

멘솔 향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었다.

" 그 놈의 담배.. 아직도 못 끊었어.."

" 이거라도 있어야 스트레스라도 풀리지.."

" 은혜가 잔소리 없다는 것이 신기하단 말야.. 담배 피는 남자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 알아. 그래서 잘 안 펴..

" 그냥 끊어! "

" 싫어!"

" 참네.. 술은 잘만 끊더만.."

"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어."

" 뭔 소리야?"

" 풋.."

난 별 말없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5구역 방향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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