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36화 (36/281)

0036 / 0281 ----------------------------------------------

생존

꽤 오랜 시간 물건을 날랐지만 인기척은커녕 그 흔한 길고양이나 강아지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의심은 가지만 심증이 없었다. 마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생명체들만 증발해 버린 모습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급하게 나간 흔적도 없고 잘 정돈된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기태는 어느 정도 물품을 챙겼는지 날 재촉 하였다.

" 어서 가자! 감염체가 없는 건 좋은데 이 마을 괜히 기분이 나빠."

" 동감이야. 마치 영화 속 건물 같은 느낌이야. 우선 출발하자. "

차에 시동을 걸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뒤 천천히 마트를 벗어났다.

혹시 몰라 마을을 몇 번 돌아본 후 감염체가 나타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마을을 벗어났다.

펜션에 도착하여 우리가 가져온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4명이서 운반할

때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물품을 정리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필품들은 인원수에 맞게 배분하였고 먹을거리는 펜션내부에 있는 카페에 보관

하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번으로는

부족한 듯 싶어 다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모텔이나 펜션 등 숙박시설을

뒤져보기로 했다. 적어도 화장지나 수건을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고 그래도

20여개는 넘는 듯 보이는 숙박시설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은 상당할 듯 했다.

모텔이라고 해봐야 크지 않은 규모였고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폐쇄적인

구조는 아니었다. 운 나쁘게 문은 잠겨있었고 유리문을 깬 후 자리를 벗어났다

혹시나 내부에 감염체가 있다고 하면 곤란한 일이었으니 한참을 멀리서 지켜

본 후 진입하였다.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기에 각자 손전등을 들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 대낮에 남자 4명이서 은밀하게 들어오는 모텔이라니...색다른 경험인걸? "

" 조용해! 남자 4명이 아니라 감염체 4명이 될수도 있어! "

" 만약 감염체가 있었다면 우리가 문 깨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

" 하긴...15분 정도 지켜봤는데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으니.."

우리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었다. 모텔이기는 하지만

작은 매점을 운영하였고 생필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세탁을 마친 듯 보이는

침구류도 상당량이 보관되어 있는 모습이었고 주전부리들과 소량으로 포장된

쌀이나 즉석 식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군데만 수색해도 이정도면 남아있는

숙박업소에서 구할 수 있는 양은 꽤 될 듯 했다. 침구류는 세탁을 했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여 포기했고 그마나 최근에 지어진 펜션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가져오기로 했다. 여러 곳을 뒤져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챙길수 있었다.

" 와...이제 1/3 수색했는데 양이 엄청나다.. "

" 그렇게... 역시 관광지역 숙박시설이라 그런지 서울이랑은 틀린데? "

이름만 모텔이고 리조트인 건물들이 많았다. 서울의 모텔과는 내부구조는 완전히

달라 커다란 창문에 채광까지 좋았다. 물론 서울의 모텔과 이 지역의 모텔은

단어는 같지만 들어가는 이유는 달랐으니까.. 그래도 예상외의 수확에 기분이

들떴다. 시간이 조금 남아 우리는 펜션보다 북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주도로로

진입하여 빠른 속도로 우리 펜션에서 북쪽으로 가장 가까운 마을에 가는 길에

00연수원이라는 푯말을 보고는 차량을 돌려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연수원이라면 꽤 많은 양의 식량이나 물품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로에서 입구까지 약 500미터인 도로는 과속방지턱의 연속과 바리게이트로

인해 직선 주행이 아닌 S자 형태의 주행으로 지나가야만 했다. 일반적인 우리가

가는 연수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연수원은 단지 이름뿐인 느낌이었다.

" 절대 일반적인 연수원은 아닌 듯 하네?"

" 그렇게... 그나마 최신 지도인데 여기에는 그냥 공터로 표시되어있어. 만약

연수원이란 푯말이 없었더라면 아마 들어올 생각도 안했을 도로인데? 도로에서

보인 것 이라고는 나무만 우거진 모습이었잖아? "

" 아무리 연수원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튼튼한 벽이 필요한가? "

회사재직시절 단합대회란 이름으로 극기훈련이라는 말도 안 되는 행사를

다녀본 경험이 있었기에 연수원이라는 곳은 매년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물론

그때 가봤던 건물도 삭막하긴 했지만 저렇게 벽이 높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약간은 넘기 힘든 벽이었지 저렇게 높은 벽은 아니었다. 우리는 입구에 내려

문을 열어보기로 했지만 굳게 잠긴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철문이네.. 더군다나 감시카메라까지? "

" 감옥 수준 인데..? 별게 다 있네..?"

" 군사시설 인가봐. 딱 봐도 보안이 철저해 보이는데... 이런 곳이 연수원이야? "

" 그냥 가자... 굳이 열어봐야 별거 없을 것 같다."

" 그래.."

기태와 내가 돌아서고 몇 걸음 걸었을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난 고개를

돌려 담벼락 위의 감시카메라를 쳐다봤다. 조금 전과 다른 듯 했지만 다르지

않은 위치를 고정하고 있었다. 그냥 느낌인가 하고는 돌아섰다.

우리는 북쪽 마을을 대충 둘러보 한동안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기온도 많이 올라 들판에는 새싹들이 올라오는 모습이었고 얼었던 수도관도 녹은 듯 발전기를 연결하자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며칠 전만 해도 방이 너무 추워서 마치 혹한기훈련 온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감염체의 존재였다. 여기로 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이상해....무언가 이상해..."

" 왜요 형? "

한가롭게 앉아 경계근무를 서던 재효가 말했다. 다들 여기 온 후 감염체가

나타나지 않자 점점 긴장감이 풀리더니 이제는 완전히 풀어진 모습이었다.

" 예전 펜션에서는 그래도 몇 번 마주쳤던 감염체들이.. 물론 거리가 있는

지역이지만.. 왜 ... 한 녀석도 안 보이는 거야? "

" 좋은 일 아닐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감염체를 제거 하고 다닌다던가..?"

" 그렇다면 좋겠다만... 이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야. 물론 영화가 아니니 메뚜기 떼 마냥 몰려 다니지

않다는건 알지만... 이건 너무 이상해.."

" 감염체 자체가 이상한데요. 우리가 모르는 습성이 있겠죠. 바다 특유의

냄새를 싫어 하거나 여기 근처에 풀 냄새나 뭐 그런 것 아닐까요? "

" 흠... "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유를 알면 감염체를 방어할

엄청난 발견이겠지만  모르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안감만 높였다. 예전처럼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다 긴장이 풀어진 모습을 보고 대량으로 몰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몇 감염체는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아예 가능성

없는 이론도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연수원 건물이 생각났다. 이질적인 건물과

위치, 그리고 보안 능력까지... 현재로서는 가장 의심되는 건물이었다. 난 기태를

찾아 내 생각을 말했다. 사태 초기부터 캠프에서 생활했던 기태라면 그래도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 흠... 내가 있을 당시에도 근처에 있는 생존자 캠프도 정확히 알지 못했어

통신 상태도 좋지 못했지만 식량을 구하기 바쁜데 다른 곳을 수색할 여력이

없었어.. 솔직히 없었다기보다는 안 했다는게 맞겠지만. "

" 무슨 소리야? "

" 솔직히 포화상태인 캠프에서 더 이상 생존자를 찾아 봐야 어려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었으니까. 윗선에서도 크게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지도

안았고... 자기들 살기 바쁘니까."

" 난... 예전에 봤던 연수원에 가보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

" 아..그 연수원..?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가서 뒤져볼 필요성이

있을까 하는데..? "

" 아무도 없다고 해도 그 위치는 지금 우리 보다 더 좋아 보여. 방어도 수월할

테고.. "

" 네가 그렇게 말하니 한번 가보자. 밑 져야 본전인데 뭔들 못하겠어."

" 고맙다.."

" 고맙긴... 친구사이에 고맙단 말은 하는게 아니라고 누가 그랬더라..? "

" 훗..."

기태는 주섬주섬 일어나 소총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은혜에게

나의 행선지를 말하고는 기태와 재효랑 차량에 탑승한 뒤 빠르게 이동했다.

20여분 정도 달렸을까. 연수원 초입 도로에 도착했다. 그 전에는 연수원까지

빠르게 진입하여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천천히 들어가기로 했다.

" 타이어 자국..."

" 이 모양...우리가 타고 왔던 차량은 아닌데... 모양을 보니 체인을 달고 다녔던

차량인데...?"

우리가 들어왔을 당시에는 눈에 덮인 도로는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분명 차량이 지나간 흔적들이 보였다. 이곳에는 분명 또다른

생존자들이 있는 것이었다. 천천히 차량을 몰고 입구로 들어갔다. 예전에 내가

지나친 감시카메라는 분명 위치가 변해있었다. 큰 철문 옆으로 사람이 다니는

용도로 만들어진 입구가 보였다. 입구 오른편에는 인터폰도 설치되어있었다.

난 인터폰을 들어 대충 아무번호나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통화음만 유지될 뿐 반응이 없었기에 난 철문 쪽으로 다가갔다.

" 왜?? 반응이 없어? "

" 응...통화음은 가는데... 아마도 받지 않는 듯 한데? "

" 당연한 건가... 치사한 건가.. 우리를 받아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야."

" 받아줄 마음이 없고... 우린 들어가 볼 마음이 있다면..들어가 봐야지. "

" 쾅!!!!! 쾅!!!!! "

난 철문을 향해 힘껏 발길질을 했다. 한방에 무너질 거라는 기대는 안했기에

지속적으로 쳤다. 물론 부술 마음은 없었다. 혹시나 아무도 없는 연수원이라면

괜히 우리가 쓸 문을 내가 망치는 꼴이 되니까. 누군가 있다면 이렇게 큰 소리를

지속적으로 낸다면 감염체들이 올까 겁을 먹고 뭐라도 조치를 취할 것 이라는

생각으로 냅다 쳐버렸다. 점점 충격이 가는 듯 모양이 변해가는 철문을 보며

아예 부숴버릴 생각으로 마음을 바꾼 순간.

" 철컥..."

" 응?? "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사람이 다니는 문이 조금 열리는 모습이었다.

" 역시...누군가 있었군... "

" 조심하자. 이런 상황에 감염체보다 무서운 존재가 인간이잖아."

" 재효는 뒤에서 잠시 있어. 내가 먼저 들어가 볼게. "

" 응! "

난 손에 쥔 정글도를 들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 수명의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 뒤로 꽤 커보이는 건물이 보였고

전기가 들어오는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이었다. 말없이 병사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통일된 복장에 장비와 훈련이 잘된 자세와 모습들. 계급장은 사병이

아닌 부사관인 듯 흔히 말하는 갈매기 표시들이 보였다. 서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