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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다음날 아침....
다들 생각을 굳힌 듯 짐을 챙기는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남는 사람이
없을 듯 했다. 더 좋은 환경이니 굳이 여기 남을 이유가 없었고 자신들이 직접
생존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생존 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우리도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더 빠른 이동을
위해 다시 연수원을 방문하였다.
" 그래...결정은 한 모양이지? "
" 네.. 다들 이곳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
" 그래!! 잘 생각했네! 그래야 여러모로 이득이 될걸세! "
"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것인데요.."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력지원을 요청했다. 부사관 5명이 우리를 위해
흔쾌히 자원했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트럭한대를 몰고 펜션으로 이동했다.
신속하게 이뤄지긴 했지만 워낙 많은 양이었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나마 도움을 준 부사관 5명이 있었기에
해가 지기 전에 이동할 수 있었다.
" 드르르르륵.. "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가 찌그려 놨던 철문이 열렸다. 혹시나 안 열리면
어쩌나 조마조마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 없이 열리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2명씩 짝을 지어 방을 배정 받았다. 방은 작은 원룸을 연상하게 했다.
싱글 침대와 간단한 취사를 할 수 있는 부엌과 드럼세탁기와 TV가 구비되어
있었고 화장실도 욕조가 마련되어 있어 꽤 만족...싱글침대?? 싱글침대라고!!
난 혼자서도 더블침대에서 잤단 말이야!
" 뭐..!!! 뭐야!!! 싱글침대라니!!! "
설마 2인 1실인데 적어도 싱글 2개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 150명 정도
지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했는데...난 당장 내려가서 대령을 찾았다.
" 대령님! 분명 150명 이상 지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왜 싱글 침대입니까! 2인 1실인데!! "
" 허허..난 150명 지낼 수 있다고 했지..사병 80명에 간부 80명 정도가 지내던
곳인데..? "
" 사병..? 설마...생활관 침실까지 포함된 숫자였습니까? "
" 그렇다네...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
" 끄응..."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저 능글맞은 너구리같은 영감탱이가
왠지 나를 속인 것 같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짐을 다 옮겨
왔는데.. 이래서 이사하기 전 사전답사를 꼭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앞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대령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 체 방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본 사람들의 표정은 다행히 밝아
보였다. 이번 결정이 틀린 결정이 아니길 빌었다. 생존자캠프의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기에..
소동 아닌 소동을 격은 뒤 우리는 강당 비슷한 곳에 모여 주의사항을
들었다. 근무는 방재실에서 감시카메라만 보면 되었기에 부사관1명과 우리 측
남자 1명이 2시간씩 편성된 근무표로 돌아가기로 했고 음식은 여자들이 도와서
같이 하기로 했다. 그 외에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남자는
교장선생님 훈시마냥 이어진 말들은 지루하기만 했다.
" 우선 내 이름부터 말하지. 난 김훈 이라고 하네."
" 저는 재원입니다. 여긴 기태. 재효...."
" 우린 저쪽에서부터 김 중사. 하 중사...."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매우 두렵다. 다행히 군복이
본인 군복인 듯 이름이 틀리지 않는 걸로 보아 비교적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김 대령을 제외한 두 명의 장교와 8명의 부사관. 5명의 연구원과 20명의
식구들이 거주 하고 있었다. 우리는 30명 정도 이니까 대충 7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편성된 것이었다. 이정도 인원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방어하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은 가져 온 무기를 연수원 무기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무기고에는 상당한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꽤 넉넉한 탄약도 비축되어 있었다. 언제 긴급 상황이 생길지 몰라 무기고는 잠금장치가 없다고 했다. 혹시나
딴마음 먹고 행동하면 무조건 사살이라는 방침을 들었다. 그리고는 건물 지하에
있는 연구실을 보기로 했다. 여자들은 삼가라는 말에 대부분이 방으로 돌아갔고
병사 몇 명도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연구실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지만
불이 켜진 곳은 몇 군대 안 되었다. 아마도 인원이 없다보니 필요 없는 곳이
생겨 절전하는 듯 했다. 강화유리 속에는 감염체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한 곳당
한 명씩 팔과 다리가 십자가 형태로 고정된 체 수십 개의 바늘과 기계장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식 으로 보니 불쌍하기도 했지만 저 녀석들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니 잠시나마 들었던 동정심이 사라져 버렸다.
" 여기서는 내성과 유전자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특정 약물에 취약하다거나
신체의 약점을 찾고 있습니다. "
연구원의 짤막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이제 까지 알아낸 것이라곤 락스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 이지만 솔직히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기에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진척은 있는지 연구원들의 표정은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다. 빠르게 둘러본 뒤 우리는 다시 대령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 흠... 이제 우리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으니 잘 해보세! "
" 네. 잘 부탁드립니다. "
우리는 간단한 다과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은혜와 주위를
둘러볼 의향으로 산책을 하자고 했다. 이제는 제법 따스한 바람이 느껴지는 날씨
와 햇살마저 따뜻했기에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 히히..오빠랑 오랜만에 걸어보네요..? "
" 그렇게... 자주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매번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해서
미안해.. "
" 괜찮아요!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어서 좋아요! "
" 하하!! 그래!! "
내 팔에 바짝 붙어 팔짱을 낀 상태로 걸었다. 생존자 캠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튼튼해 보이는 벽돌 벽이었고 운동장도 꽤 넓은 편이었다. 주차장에는
여러 군용차들이 보였다. 장갑차와 군용트럭. 그리고 신기하게 제독차도 보였다.
아마도 락스를 살포하는데 유용하게 쓸 차량이라 구해온 모양이었다. 운동장을
돌아본 뒤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주위
풍경도 시야에 가려지는 건물이 없이 보였다. 간이로 설치된 초소에는 의자와
기관총을 놓을 수 있는 책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밤바다는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거친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우리 귀에 들려올 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웠다. 한동안의 깊은 입맞춤은
내 마음을 충분히 달아오르게 했고 자연스럽게 손은 은혜의 심장부위로 올라
가기 시작했다.
" 안 돼요! 밖에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 "
" 힝.... 왜...."
" 밖에서는 싫어요! 어린아이 마냥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
내가 툴툴 거리는 표정으로 말하자 은혜가 웃으며 말했다. 집안에서는 거부하지
않지만 유독 밖에서는 애정표현에 민감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밖에서의
애정표현이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연예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런 듯 했다. 이제는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 체온이 떨어지자 한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서둘러 방으로 내려갔고 오랜만에 은혜는 오랜 시간 동안 목욕을 했다.
" 대단하다..벌써 1시간 30분 째 인데...저러게 버티는 모습이 신기하네.."
예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정말 목욕을 즐겨 하는 은혜였다. 난 길어봐야 30분을
넘기기 힘들었지만 은혜는 뭘 하는지 별다른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히 목욕에
열중했다. 여자들이란 가끔 아니 자주 이해할 수가 없었다. 2시간이 다 되서야
문을 열고 나온 모습이었다. 새하얀 얼굴에 젖은 긴 생머리. 이제는 머리가 제법
길어진 듯 염색한 머리 밑으로 검은색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목욕타월로
가려진 몸이었지만 은혜의 바디라인은 고스란히 보였다. 펜션에서 챙겨온 목욕
가운을 몸에 두르고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리는 모습에 이성이 통째로 날아
갈 뻔 했지만 억지로 참았다. 욕구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큰 책임이 따르기에
이제는 부를 일이 없는 애국가를 속으로 4절까지 불렀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조금 전...이라고 하기에 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후였지만 옥상에서
하지 못한 스킨쉽을 이어가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6시..... 난 정말 너무나도 치가 떨릴 정도로 듣기 싫은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27살 이후...절대 들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가
건물 내부에 울려 펴졌다.....
" 도대체....왜!!! 저런 빌어먹을 소리로 깨우는 건데!!!! "
내가 울컥해서 말하자 은혜가 상당히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은혜도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깬 듯 했지만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절대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니까.
" 와....제대로 미쳤나... 아무리 건물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지만 감염체가 들으면
어쩌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야??! "
" 오..오빠...? 왜 그래요...? "
" 응?? 미안...자기는 절대 이해 못할 남자만의 이야기야.. 젠장... 당장 가서
조취를 취해야지.."
난 대충 세수만 한 채 대령의 집무실로 내려갔다. 내가 눈에 살기를 뿜으며
내려가는 모습에 마주친 부사관 들이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 철컥.."
난 노크도 없이 대령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 응?? 무슨일인가?? 노크도 없이? "
" 저 소리..도대체 뭡니까? "
" 아..기상나팔 소리? 군인이라면 당연히 듣고 일어나야 하는거 아닌가? "
"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건물 내부에만 퍼진다고 한들
감염체들이 듣고 몰리기라도 한다면 어쩌실 라고 그럽니까? 아무리 낮은
볼륨이라도 나팔소리 자체가 음역대가 높아서 멀리까지 퍼지는데!! "
" 무슨 소리인가? 감염체들은 우리의 체취로 추적하는데...? "
" 네??? "
내가 잘못 알리가 없다. 그전에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총소리나 큰 소음에
반응하여 몰려들지 않았던가? 난 순간 대령의 경험에 의심이 생겼다. 혹시....
" 지금까지...얼마나 많은 감염체를 상대하셨습니까? "
" 흠...사태 이후에 여기 계속 머물렀고...4개월 전쯤인가...그때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감염체를 본 것 외에는 없고... 내부에서 생겨난 감염체를
상대한 것 외에는 없구만.."
4개월 전이라면..우리가 공격받던 시점인데... 그건 그렇고 건물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까지 감염체를 격어본적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 설마... 한 번도 마주치신 적이...? "
" 없다네. 굳이 마주쳐야만 하나? "
" 흠.... 그렇다면 감염체가 체취 외에 소리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을 모르겠군요."
" 뭐??!! 그게 사실인가?! "
" 저는 지금껏 수많은...감염체를 상대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있을 경우
조심해야 하는 건 체취보다 소음이었습니다. 함부로 사격조차 못했으니까요
솔직히 체취는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고 바람에 소금기가 있어서
감염체들이 우리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소음과
빛은 절대 적으로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혼자 3개월을 살아서
생존자 캠프로 이동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아무리 추워도 차에서 시동
조차 키지 못하고 개를 끌어안고 잤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소음입니다.
차량의 아이들링 소음은 상당하니까요."
" 허허.... 이런... 도대체 연구원들은 뭘 연구한단 말인가.."
" 우선 앞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중단하도록 하고 부사관 들에게도 당부
하여 주십시오. 소음과 빛... 이것만 지켜도 우리의 안정성은 보장될 것입니다.
솔직히 어떻게 지금까지 공격받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 기적이군요."
" 고맙네!! 역시 자네를 부른 건 좋은 결정이었군! 문 하사! 지금 간부들을
소집 하게나! 30분 후 회의를 할것이네! "
" 넵! "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문 하사를 보면서 앞으로의 생존의 길이 험난함을 느꼈다.
다시 방으로 올라가니 은혜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자기 전 2시간의 목욕은
왜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물이 풍족하다고는 하지만.. 그전에 하지 못했던 샤워를 한 번에 하려는 건지... 그래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도 빠르게 샤워를 한 뒤 대령의 집무실로 내려갔다. 이미 다들 모여 있는 모습이었고 난 대충 아무 곳이나 앉아서 대령을 기다렸다. 얼마 후 대령이
들어왔고 나를 보고는 의아한 모습을 지었다.
" 내가...자네도 불렀던가? "
" 아뇨... 그냥 구경왔어요. "
" 허...구경이라니....그게 무슨..."
" 솔직히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오늘 상황만 봐서는 저보다 아는 게
없어 보이는데요? 최소한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야 우리가 안전하고
오랫동안 생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 흠....그렇게나... 그 자리 말고 이쪽으로 오게나."
대령은 자신의 옆 좌석에 의자를 하나 밀고 와서는 말했다. 부담스럽게 왜 저기
앉으라는 건지..
" 우선.. 재원 군이 말했다 시피 감염체들은 소리에도 반응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아침마다 울리는 기상나팔은 취소하고 평소에도 소음에 신경을 쓰도록
한다. 밤에는 등화관제를 실시하여 빛이 밖으로 나가는 걸 방지하고 발전기
가동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도록 한다. "
" 네! "
한동안 이어진 회의에서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종합되었다.
지금까지 평화롭게 살아온 연수원은 생각보다 정보가 부족했다. 감염체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해독이나 치료에 관한
실험이었기에 행동유형이나 반응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다.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체취에 반응한다는 것 외에는...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에서는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고 40명이서 내부 생활만 하니
별다른 소리가 날 일도 없었던 것이었다. 지하에 대부분의 시설이 몰려 있어
소리가 퍼지지도 않았고 대부분 1층에서 묵었기에 빛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았다.
정말 천운이 겹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듯 했다.
" 정말..운 좋았다는 말 외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
" 그렇게 말일세... 우리야 말로 우물 안 개구리 였구만.. "
" 앞으로 더 조심하면 되죠. 그나저나 저희는 평소에는 무엇을 하면 되나요? "
" 경계근무 외에 락스 살포 작업이 있다네. 일주일에 한번 꼴로 하는데 내일이면
작업날이군. 밖에 있는 제독차를 이용하여 살포하고 있네. 앞 도로와 최대한
나무는 피해서 살포 중이라네. 괜히 나무에 뿌려 죽기라도 한다면 우리건물이
밖에서 보일수도 있으니..."
그래도 역시 군인답게 방어에는 신경 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인간이 아닌 감염체라는 지금까지 격어 보지 못한 존재였기에
감염체와 전투 경험이 없는 이들의 방어는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 난 대령에게
부비트랩 설치 지점과 지뢰 등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이동 매설을 건의 하였다.
어차피 저들이 본다고 해체할리도 없었기에 최대한 많은 수를 제거 할 수 있는
위치를 건의 하였고 내 의견을 들은 다른 부사관 들도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 우리가 상대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익혔던 전술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함이지 이런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배운 게 아닙니다.
조금은 생각을 비틀어 행동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
난 최대한 저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괜히 내가
잘난 척 하는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었고 저들과 같이 협력해야 하는 입장인데
위에서 지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면 좋을 것이 없을테니까. 다행히 다들 자신
들이 생각한 게 조금은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는 듯 했다. 인간을 상대하는 게
아닌 감염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 듯 했다.
" 흠.... 솔직히 자네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게 아닌가 해서 불안했었네.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도와가며 견제가 아닌 협동하는 모습을 보니..
내 걱정이 정말 쓸 떼 없는 걱정이었네. 덕분에 우리쪽 에도 활기가 넘치고
지금까지 없던 희망이 생긴 듯 하구만.."
" 아닙니다. 저희야 말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편한 생활이 가능한데요."
솔직히 제일 고마운 건 더 이상 은혜가 씻지 못해 신경 쓰면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행동이 사라진 것이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 허허...자네와 같은 인물이 군에 있었어야 하는데... 이미 썩어 빠진 놈들만
살아남았으니... 내가 굳이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는 이유도 더 이상 그런 놈들
뒤치다꺼리나 하느니 여기서 지내는 편이 더 나아서 그랬다네. "
아마도 그동안의 군 생활 동안 험한 일을 많이 격은 듯 했다. 나와 시선을
피하면서 이야기 했지만 언 듯 보이는 눈빛은 왠지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한동안은 여러 곳을 손보고 다녔다. 장교들은 새로운 전략에 적응하여 조금 더
효율적인 방어계획을 마련했고 역시 사람이 많으니 일의 진척 속도도 빨랐다.
그런 것이 인원의 반 정도가 군인이니 능숙한 건 당연했다. 서로 다른 생존자
집단이 뭉쳤지만 잘 융합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라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식량을 구하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몇 명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움직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제외된 재효와 기태가
나가기로 했다. 은혜가 이번만은 절대 보낼 수 없다며 엄포를 선언했고 만약
나간다고 하면 한달 간 손도 잡지 않을 생각이라는 말에 고민조차 안하고
절대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잡혀사는 남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