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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39화 (3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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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두 대의 트럭에 나눠 탄 인원들이 신속히 출발했다. 출발 후 등에 물통을 메고

뿌리는 대형 분부기로 입구 주변에 뭔가를 뿌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락스겠지.

남은 인원들이 경계근무에 투입이 되고 난 은혜와 방으로 들어왔다. 작지만

그래도 아담한 보금자리. 예전에 호화스런 펜션보다 몇 배는 좋아 보이는 모습

이었다. 정말 필요한 공간에 필요한 물품만 있었으니. 침대에 누워 있자 은혜가

안마를 해줬다. 나만 아니라 은혜도 피곤할 텐데 굳이 나를 위해 해주는 모습에

미안했지만 몸의 은혜의 안마는 그동안의 피로와 뻐근함을 한방에 날려 보내는

효과가 있었기에 항상 내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말싸움을 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미안하긴 하지만 매우 기분 좋은. 기분 좋긴 하지만 매우

미안한...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내가 괜찮다고 해도 매번 괜찮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타박한다. 물론 내가 힘으로 일어 설수 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

" 그래도...기분 좋은가 보네요?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걸 보니? "

귀신같이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은혜였다. 순간 은혜는 독심술이 생긴 건

아닐까 라는 의심도 들었다.

" 원래 오빠만큼 사람 심리에 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긴장 풀고 편히

누워 있어요. 누가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안절부절 해요? "

분명 독심술이 생겼을 것이다.... 난 그렇게 은혜가 해주는 안마를 받으며

기분 좋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수색을 나갔던 인원들이 무사히

복귀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가지고

왔지만 나쁜 결과물도 한 가지 가져왔다.

" 아직 바로 위쪽 마을에 감염체가 없지만 항 쪽에는 상당수의 감염체가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 대형 감염체는 볼 수가 없었지만 일반

감염체는 상당한 숫자였습니다. "

" 흠... 여기 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겠군. "

" 네. 하지만 마을도 아니고 밖에서 눈에 잘 보이는 건물도 아니라 그냥 지나칠

확률도 있습니다. "

" 만약 온다고 하면 철문 외부에서 우선 방어를 하죠. "

" 무슨 말인가? "

내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전투를 하자는 말에 다들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 우선 우린 여기로 진입할 수 있는 도로는 이곳 한 곳 뿐입니다. 물론 비상용

후문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상용이더군요. 길도 제대로 없는.. 철문에서

주도로까지는 약 500미터입니다. 중간 바리케이트를 기준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뒤 천천히 후퇴하는 방법이 좋을 듯합니다. 감염체는 우회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혹시 모르니 옆을 방어하는 인원도 편성하고요.

가능한 많은 구조물을 구비해서 만약에 사태에 아예 길을 막아버리는 것도

좋겠군요. "

" 하지만! 길을 막아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나간단 말입니까?! "

" 어차피 감염체가 막으나 바리케이트가 막으나 못 나가는건 마찬가지입니다. "

장교 한명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아마도 내 계획이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방어 작전이었다.

" 하지만 위에서 사격하는 방법보다는 일직선상에서 사격해야 이득입니다.

저들은 우리 육체보다 약합니다.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확실히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보다 약하더군요. 그러니 사격을 했을 경우 관통되어 뒤쪽에 감염체

에게 타격을 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그리고 걷는 속도로 다가오는 감염체

보다 우리가 월등히 빠르니 철문까지 이런 형태로 방어한다면 꽤 많이 사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솔직히 더 나은 의견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보니 별 다른 의견들이 없었다.

" 우선 락스를 가져가서 주도로에 살포하죠.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으니 주도로에

광범위하게 살포하면 감염체의 이동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나의 말에 반박했던 장교가 말했다.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 같았다.

" 좋네! 다들 차량으로 이동하여 도로에 락스를 살포하고 남은 인원들은 벽에다

대형 분무기를 이용해 뿌리도록 하지! "

" 네! 알겠습니다.! "

다들 대령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독차에 락스를 채운 뒤 철문부터

메인도로까지 살포를 시작했다.제독차는 흔히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도로물청소용

차량처럼 앞쪽 범퍼에 노즐이 있어 도로에 살포하는 기능과 소방차처럼 2개의

호스가 있어 자유롭게 살포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물탱크에 2500리터가 들어

가서 제법 많은 면적에 살포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락스의 유해성 때문에

우리는 방독면을 쓰고 일을 해야 했고 덕분에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했다.

" 하악..하악...정말 방독면은 고역이다... 우웩... "

" 하...살 것 같다... 진짜 힘들다.. "

다들 한 시간 넘게 방독면을 쓰고 작업을 해서 인지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방독면을 쓰고 일하는 느낌이 어떤지를..

우리는 물탱크에 남은 락스를 벽면에 살포했고 남은 양을 모두 소진했을

때에는 이미 어두워져 가는 시간이 되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해두었다. 무기고에 무기들을 바로 꺼내어 갈 수 있게 해두었고

경계근무를 서는 인원도 2배로 늘렸다. 그리고 원래 담장에 있던 감시

카메라들도 주도로와 입구 쪽 도로 중간으로 위치를 바꿔달았기에 효과

적으로 반응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갔고 내 근무시간에 맞춰서 장비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근무를 서는 모습이었고

후번 근무자가 올라오자 간단한 인수인계후 방으로 내려갔다. 가로등은

커녕 우리 주위에서 나오는 빛이 전혀 없는 상태의 하늘은 맑았다. 6개월

가량 정지된 산업 활동으로 하늘은 밤이지만 깨끗한 상태를 자랑하듯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하고 있자 나와 같은 조인

문 하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저기... "

" 네?? "

대부분의 간부들이 나보다 어렸지만 그래도 존칭은 해주었다. 내가 계급이 없는

상황이고 군대식으로 돌아가는 연수원이기에 반말을 하기 에는 조금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 3개월 동안...혼자서 살아 남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 네...정말 지옥 같았죠.."

" 어떻게 살아남으신 겁니까? 솔직히 저희는 안전하지만 그래도 매일 불안감에

잠이 듭니다. 혹시나 감염체가 오지는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혼자서 3개월을

버틴 것 입니까? "

" 우선...핑크가 있었고요.."

" 아.. 그 무서운 개 말씀이십니까? "

" 네...그리고...."

" ......."

" 전.... 절대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내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아이들을 두고 먼저 죽을 수는 없었어요. 약속했으니까요. 지켜주겠

다고... 그리고 강해진 육체도 한 몫 했죠. 체력이 버텨주니까 그나마 수월하게

처리 할 수 있었던 것도 있고요. "

" 아...그 모델분..?"

" 어?? "

모델이라는 직업을 말 한 적이 없는데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랬다.

" 인터넷에서 유명하신 분이라..TV에도 몇 번 나와서 본 적이 있습니다.

다들 싸인 이라도 한 장 받아볼까 했지만 재원님이 계시니 다들

다가가기 힘들었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진화인간이라서 더 무서운 것도

있었습니다 "

" 진화인간이요? "

" 네.. 저희 김 중사님과 김 대령님처럼 변한 사람을 우리는 진화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딱히 정해진 명칭도 없고 해서요.."

" 그런가요... "

" 저도...이 상황이지만 꼭 살아남을 것입니다. 저도 제 여자 친구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부모님과 연락도 되지 않은 상황에 제 옆에는

여자 친구 뿐입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외박을 받아 근처에서

놀던 중 일이 터지는 바람에 부대로 같이 복귀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신혼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

" 다행입니다. 문 하사님이 미남이시니 여자 친구 분도 한 미모 하시겠습니다? "

" 에이...아닙니다. 재원님에 비하면... 부럽습니다!! 하하!! "

우리는 영양가 없는 대화로 긴장을 풀어 갔지만 경계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순간의 실수가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이

점점 깊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밤사이에 감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지나 간 것이

아니었기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연수원에서 항 까지 거리는 약 8km

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법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연수원에 와서 틈틈이 운동을 하면서 힘을 길러왔다. 대형

감염체를 마주친다 해도 예전처럼 맥없이 패배할 수는 없었다. 점점 눈에 띄게

늘어나는 근력과 체력 스피드를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지하에서 무슨 진전이라도

있을까 라는 생각에 내려가 봤지만 표정들이 안 좋은걸  봐서는 크게 얻은 것은

없어 보였다. 이런 저런 불 꺼진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 아... 재원님 이셨군요..."

"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

처음 연구원이라고 했을 때 나이 엄청 먹은 할아버지들을 생각했는데 40대로

추정되는 남성 2명과 30대쯤 되는 여성 3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여기 처음

와서 잠깐 소개받은 것 외에는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이름 따위는 알 수가

있었나.. 뭐 알려 줬다 해도 내 기억력으로는 무리였겠지만... 연구원중 그래도

나이가 제일 어려보인 여자 연구원이었다. 그래봐야 나랑 비슷한 나이또래

이지만 말이다.

" 뭐 찾으시는 것 있습니까? "

" 아...그냥 뭐가 있나 해서요.. 궁금해서 돌아다니는 것 뿐입니다.

뒤지다 보면 쓸 만한 물품이 나올지 누가 압니까? 하하.. "

" 그런가요..? "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곳저곳 쑤시고 다닌다고 뭐라고 할 줄 알았

는데 그건 아닌 듯 했다.

" 아.. 허리에 그건..? "

" 아...예전에 구해서 쓰고 있는 정글도에요. 날이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 안심이 돼서 가지고 다니는 중이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르

는 일 아니겠습니까?"

" 검도를 배운적  있으셨나 봐요?"

" 그건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휘두르고 다니는 거죠."

" 흠..."

내 모습을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보는 연구원이었다. 이 사람 눈에는 내가

인간이 아닌 연구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

"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

" 네?? 네.."

어딘가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한참을 어두운 길을 걷다가 복도 끝 작은

방을 열었다. 방에는 어지럽게 널려진 물품들이 보였다. 아마도 창고인 듯 했지만

창고라고 해도 너무 너저분한 모습이었다. 여자 연구원은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넓적한 금속형태의 박스를 꺼내는 모습이었다.

"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도와주시죠? "

" 얼렝..? 네?? 네!! "

난 별다른 생각 없이 박스를 집었다. 생각보다 엄청 묵직한 무게..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거지?

" 에햐... 정말 무겁네... "

힘겹게 박스를 대충 아무 곳에 올려놨다. 연구원은 007가방마냥 다이얼이 붙어

있어 번호를 맞춰야 열리는 박스를 열려고 한참을 번호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번호를 까먹은 듯 연신 다이얼만 돌리는 모습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제가 해 볼께요. "

" 네? 이건 번호를..."

" 쾅!!!!"

괜히 죄 없는 박스에 화풀이를 하듯 힘을 주어 열었다. 어차피 박스가 철제라고

해도 잠금장치를 티타늄이나 합금으로 제작 했을 리 만무했기에 힘을 주어

뜯다시피 열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난 그런 시선을

무시한 채 뜯어버린 박스 내용물을 봤다. 무광 검정날이 있는 두 자루의 칼이

보였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정글도와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포스가 느껴지는 도였다.

" 이건 티탄산바륨주석합금을 개량....어쩌구....저쩌구.."

외계에가 난무하는 설명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수도 없이 한 귀에서

튕겨버렸다. 도대체 뭐라고 중얼 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론은 현존하는

합금 중 가장 단단하다는 소리인 듯 했다. 그냥 쉽게 설명해주면 안되나..

" 그러니까 가장 단단하다는 거죠? "

" 네?? 네...뭐...쉽게 설명하자면.. "

" 아하...저 주시는 건가요? "

" 네...아무래도 재원님이 쓰는 게 가장 적합할 듯 해서요. "

" 왜 하필 저죠? 솔직히 진화인간은 저 말고도 김 중사님도 계시는데..? "

" 칼 한번 들어보세요. "

" 얼레? "

생각보다 엄청 무거웠다. 난 철 재질 때문에 무겁다고 생각한 박스는 칼 때문에

무거운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손으로 겨우 들 수 있는 무게일 것이다.

" 실험삼아 만든 물건인데.. 너무 무거워서 그냥 실험용으로만 썻던 물건이예요.

재원님이라면 적합하게 쓰겠군요. 주의할 점은 날이 상하면 끝이에요. 다시

만들 재료도 없고 여기서는 그 칼을 보수할 장비가 없으니까요. "

" 오...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물건을 얻었네요. "

" 뭘요... "

밝은 LED 불빛이라 얼굴에 홍조가 생기는 걸 볼 수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

이었지만 칼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어 별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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